안녕하세요, 24살 여자 대학생입니다. 좀 오래 고민하다가 올려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저지만, 엄마가 원래보다도 최근 들어 더 힘들어하세요. 글이 좀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은 50대 중반이시고, 엄마는 결혼하시면서 일을 관두고 집에 쭉 계시고 아빠가 외벌이를 하고 계십니다. 저희 아빠 직업 특성상 타직종에 비해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유동적인 편인데요, 특정 요일들에만 아침 일찍 나가시고 보통은 낮 11~12시에 출근, 그리고 퇴근은 일찍으면 아주 가끔 밤 10시 전후 즈음, 보통은 밤 열두시가 넘어서 들어오십니다. 주말에는 보통 저녁 먹을 때 즈음 들어오십니다. 아빠는 본업에 있어서는 매우 성실하세요. 직장 내에서 일적으로 동료들의 인정을 받아오셨고, 제가 엄마한테 이때까지 들어온 바로도 아빠는 본인 일에 있어서는 정말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시는 편이세요. 사무직이 아닌 외근직이라 하루 종일 차를 끌고 돌아다녀야 해서 어느덧 50대가 되신 지금, 체력 소모가 예전보다도 더 커졌을 것 같습니다. 힘들어도 별 내색 안 하시는 아빠가 최근 몇 년 들어서는 대놓고 힘들다는 얘기도 가끔 하실 정도니까요. 충분히 이해하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빠는 친구와 모임 자리를 좋아하십니다. 술은 별로 즐겨하지 않으셔서 이때까지 술 문제로 엄마와 싸운다거나 하는 일은 본 적 없습니다. 다만 제가 철이라면 철이 든 이후로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가족보단 친구가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쉬는 날에도 저희(참고로 제 밑에 세 살 터울 여동생도 있습니다)한테 어디 놀러라도 갈까? 바람 쐬러 갈까 하며 한 마디 건네기보다는 주로 친구, 동료들과의 골프 약속이나 무슨 모임, 식사자리인지 술자리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친구 만나는 걸 더 좋아하십니다. 24살이 된 지금 돌이켜보니 대충 제가 초등학생 정도였을 때도 어린 그때 당시 기억으로 아빠와 함께 한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빠는 늘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워낙 바쁜 직종이고 우리와 함께 보낼 시간이 다른 아빠들에 비해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며, 어린 저희가 혹여 아빠를 원망할까봐(엄마가 제일 염려해오신 게 혹시라도 딸들이 아빠를 원망하는 것, 아빠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빠 편에서 얘기를 해준 적도 많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리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더라도 최대한 아빠와 엄마의 고충을 절충적으로 헤아리자는 주의입니다. 두 분 다 다른 의미로 힘드셨을 거라고, 아빠는 돈 버시느라, 엄마는 그런 아빠와 저희를 케어하느라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해서 대놓고 누구 편을 든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치만 특히나 최근 들어 엄마도 그렇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저도 그렇고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글을 씁니다. 필요에 따라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을 아빠한테 직접 보여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밖에서 돈을 번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몸이 고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집안일은 일절 안 하십니다. 엄마가 차려준 밥 먹고, 손도 까딱 안 하는 게 바깥 일 하는 사람으로서 누려야 하는 대접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실제로 "내가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이 정도도 대접 못 받냐"는 말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오늘도 방금 점심 식사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또 하셨어요. 심지어 제가 뭐라고 하니 "그런 마인드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게 맞다. 와이프가 밥 퍼주고 그렇게 하는 게 그게 사랑이고 부부지 그거 갖고 뭐라 그러면 어떡하냐"는 식으로요. 저 보고 "그럼 나중에 니는 그렇게 살아라. 남편한테 시키면서"라고 합니다. "남편이 뭐라 그러는지 보자"면서요. 본인은 식탁에 엉덩이 붙이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혼자만의 룰이라도 정해놓은 것마냥 수저 하나 놓을 줄 모르고, 밥 푸기, 반찬 뚜껑 열고 닫기, 자기가 먹은 밥그릇 싱크대에 갖다놓기(이건 아주 가끔 하긴 하는데, 보통은 제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 밥그릇 들고 일어나면 자기 그릇까지 같이 갖고 가라며 얹어줍니다), 그 무엇도 안 하십니다. 제가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서 본가는 가끔 오는데(지금은 휴학 중이라 반년 동안 본가에 있습니다), 그냥 여전하십니다. 물론 바뀔 거라고 생각도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갈수록 특유의 꼰대끼가 느껴지는 언행을 더욱 더 많이 하십니다. 방금까지 요리하고 이제서야 자리에 앉아서 먹기 시작한 엄마를 바로 앞에 두고, "밥 좀 더 퍼도"(엄마 아빠 둘 다 경상도 분이십니다), "이거 밥 좀 덜어도"라는 식의 툭툭 내뱉는 말투는 기본이고, 엄마가 공들여 차려놓은 식탁에 단 한 번도 설령 빈말이라도 "맛있다"는 말이 먼저 나오기보다는 뭐라도 꼬투리 잡을 게 있으면 간이 싱겁다는 둥, 뭐를 좀 더 넣었으면 좋았겠다는 둥 하는 불만부터 표출하세요. 아니면 그냥 첨부터 끝까지 입 꾹 닫고 계세요. 그냥 빈말이라도 맛있다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든지. 바로 옆에서 저랑 동생은 엄마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칭찬 위주의 말을 먼저 하거든요. 엄마가 되려 좀 싱겁지 않냐, 어떻지 않냐 물으면 그냥 싱거우면 알아서 소금 가져와서 좀 뿌려먹든지 뭘 더 썰어넣어 먹든지 하구요. 제 입맛엔 엄마 음식 충분히 다 맛있어요. 아 예전에 아주 가끔, 쉬는 날 파스타 해주신 적은 몇 번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최소 3~4년 전인 것 같지만요.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비교가 돼버려서 어쩔 수 없는데요, 제 친구도 엄마는 집에 계시고 아빠는 일하시는데 아빠가 엄마보다 요리에 더 적극적이셔서 음식도 종류별로 하시고, 매 방학 때마다 가족끼리 국내든 해외든 여행도 자주 다니더군요. 저희 외삼촌이랑 외할아버지도 되게 가정적이셔서 굳이 시키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셔서 수저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통 꺼내고, 밥 푸고, 심지어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신데도 설거지까지 하십니다. 저희 학교 교수님(최소 40대 중후반)도 연구하고 학회 참석한다고 몸살 걸릴 정도로 바쁘신데도 얼마 전 태어난 아기 밤낮없이 돌본다고 몇 시간 못 주무시고 또 나와서 강의 하십니다. 그런 주변 다른 남자들과 비교하니 아무리 체력적 소모가 크고 바쁜 직종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대체 돈 버는 일이 집안일은 일절 노터치할 만큼 얼마나 끔찍하고 고귀한 벼슬이길래 집에서 손도 까딱 안 하고 누워있다가 다 차려놔도 심지어 그제서야 샤워한다고 바로 식탁에 앉지도 않고 밥 다 식어갈 때쯤 밉상처럼 나와서 앉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네요. 가정환경이 그 사람의 언행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크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빠 쪽 식구들 얘기도 안 꺼낼 수가 없는데요,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엄마 말을 들어보면 할아버지 역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지시 명령만 하는 스타일이지 할머니를 도와준다거나 세심한 것과는 거리가 머신 분이셨습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엄마 아빠를 보며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매번 매 순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게 꼭 경제적인 걸 떠나서 다정한 부모님, 특히 저의 경우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빠가 엄마한테 하는 언행을 보고 자란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이거 말고도 당연히 뭐 화장실 청소, 밀대 청소, 청소기 돌리기, 빨래, 먼지 털기 등 모든 집안일은 일절 관여 안 하시구요. 그리고 본인의 부족한 점은 절대 먼저 인정 안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절대 먼저 할 줄 모릅니다. 똑같은 루트로 똑같이 터져서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 그제서야 궁지에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드시는지 인정답지도 않은 인정 정도 하는 게 다입니다. 별로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세요. 항상 대화의 끝은 "내가 너네한테 딱히 못한 게, 안 해준 게 뭐 있노. 이 정도면 잘해줬지."식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솔직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충분히 여러모로 결핍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다정하거나 가정적이지 못한 할아버지 밑에 자라서,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하셨고, 딱히 가족의 온정을 오롯이 느낄법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하셨어요. 그치만 또 비교 아닌 비교를 해보자면(자꾸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때로는 비교 또한 객관적인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계모 밑에서 자라셨는데도 어린 시절 엄마와 외삼촌에게 늘 더 해주지 못해 아쉬워하셨고, 특히 막내딸인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공주처럼 키워주셨다고 합니다. 할머니한테도 잘하셨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저희 식구 외의 양 가족 친지나 아빠 지인 분들께는 아낌없이 베풀고 사람 좋다는 얘길 늘 들으세요. 베풂에 대해서는, 저희한테도 물질적으로는 잘 베푸십니다. 항상 제가 결핍을 느꼈던 부분은 아빠와의 정서적 교류와 가족 여행, 일상 속 소소하게 아빠와 보내는 시간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대성통곡을 하며 아빠와 싸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제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나도 남들처럼 아빠랑 영화도 보러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한데 아빠는 늘 가족은 2순위잖아"라고 소리 지르듯 뱉었습니다. 그냥 항상 쌓인 게 많은 상태였고, 지금도 사실 그래요. 그치만 단적으로 아빠와 저의 관계만 놓고 본다면 제 잘못도 없지는 않은 것 인정합니다. 저도 딱히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못 되고, 아빠도 저한테 불만이 없지 않을 거란 거 잘 알아요. 그치만 그냥.. 아빤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빤데 매번 이렇게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게 이제 저도 좀 지치고 현타가 옵니다. 사실 이 상태로라면 앞으로 아빠가 퇴직하시고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가까워지기보단 멀어질 일만 남을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좀 욱하기도 하고 답답해서 그냥 와르르 다 쏟아내버린 것 같은데요, 일단 제가 해결하고 싶은 가장 큰 문제는 그야말로 '밥 퍼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아빠의 한숨 나오는 마인드입니다. 고치기 힘들 거 압니다. 그치만 도저히 엄마랑 저 두 명의 회유와 지적과 타이름으로는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서 여러 조언을 좀 듣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내가 쓴 글 보기 > 책갈피에서 확인하세요.
베스트 댓글
본인부터가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못되는데 왜 아빠한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거임. 그 나이까지 묵묵히 혼자 일하면서 돈벌고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20년 이상을 묵묵히 일해온 사람한테 대접은 못해줄 망정 나이들면 버릴 생각이나 쳐하고 있네 ㅋㅋ. 우리 딸이 이래 될까봐 무섭다 무서워.
하나 궁금한게 너는 니네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 받아 쳐먹고 살아왔으면서 니네 아빠가 직장에서 뭘 하는지, 무슨 직장을 다니는지, 어떤 일떄문에 체력적으로 힘든지, 아빠가 힘들다고 할 때면 왜 힘든지 한번이라도 관심 가져본 적은 있냐?
전 여성이고 전업입니다. 쓰니 나이에는 들 수 있는 생각이지만 아빠는 아빠 역활을 적절하게 해 내시고 계신듯... 비교가 때론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셨듯이 경제활동도 안하고 음주, 폭력 등등 더 악질도 많아요. 친구와의 자리도 편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골프연습도 해야 정작 영업 상대와의 스트레스나 접대에 도음이 될 수 있읍니다. 적절하게 안 풀면 터지고 폭팔할 지도 모릅니다.
내 딸이 저런다 생각하면 아비 된 입장에서 자살 하고 싶을듯...
작성자 찾기
일반 댓글
질문자님 아버지 마음: 그냥 빈말이라도 멋있다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든지.
내 딸이 저런다 생각하면 아비 된 입장에서 자살 하고 싶을듯...
전 여성이고 전업입니다. 쓰니 나이에는 들 수 있는 생각이지만 아빠는 아빠 역활을 적절하게 해 내시고 계신듯... 비교가 때론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셨듯이 경제활동도 안하고 음주, 폭력 등등 더 악질도 많아요. 친구와의 자리도 편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골프연습도 해야 정작 영업 상대와의 스트레스나 접대에 도음이 될 수 있읍니다. 적절하게 안 풀면 터지고 폭팔할 지도 모릅니다.
본인부터가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못되는데 왜 아빠한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거임. 그 나이까지 묵묵히 혼자 일하면서 돈벌고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20년 이상을 묵묵히 일해온 사람한테 대접은 못해줄 망정 나이들면 버릴 생각이나 쳐하고 있네 ㅋㅋ. 우리 딸이 이래 될까봐 무섭다 무서워.
하나 궁금한게 너는 니네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 받아 쳐먹고 살아왔으면서 니네 아빠가 직장에서 뭘 하는지, 무슨 직장을 다니는지, 어떤 일떄문에 체력적으로 힘든지, 아빠가 힘들다고 할 때면 왜 힘든지 한번이라도 관심 가져본 적은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