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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문화사 1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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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문화사
  • [탁월한 제자들, 그리고 고단한 삶] 예수 · 공자 · 석가 · 소크라테스, 이들 사이에는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활동 기간이다. 예수를 제외한 세 사람이 모두 기원전 5세기 무렵에 활동했다는 점이다.공자는 기원전 551년에서 479년, 석가모니는 기원전 566년에서 기원전 486년,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에서 기원전 399년이 생존 연대이고, 다만 예수만 기원전 4~5년에서부터 기원후 30년 무렵까지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래서 인류학자들은 기원전 5세기 무렵을 인류 역사상 가장 정신문화가 발달했던 아주 특이한 시기로 간주하여 이때를 주목한다. 이들 세 성인뿐만 아니라 그의 탁월한 제자들이 또한 이 시기에 함께 활동했음을 볼 수 있다.공자에게는 안연 · 안회 · 자로 · 자장과 같은 제자들이 있었고, 석가모니에게는 열 제자로 불리는 사리불 · 목건연 · 대가엽 · 아리루다 · 수부티 · 부루나 · 가시연 · 우파리 · 라후라

  •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귀족의 자녀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았다.넓은 이마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체격이 훌륭했으며, 그림 공부와 함께 서정적인 시와 비극을 썼다고도 한다. 원래 그는 정치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당시 30명의 과두정권을 이끈 크리티아스는 그 어머니의 사촌오빠였으며, 아버지가 죽은 다음 어머니와 재혼한 퓌릴람페스는 당시 최고 통치자 페리클레스와 아주 절친한 명망가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스무 살 때 비극 경연대회에 나갔다가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동한 그는 “이제 저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가지고 있던 비극 대본을 불태워 버리고 즉각 소크라테스를 따랐다. 이때 전 생애를 바쳐 철학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고 21세부터 28세까지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섬겼다.그는 항상 “나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 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 여자로...

  •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서도 제기되었다.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무의식이 그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고 프로이트는 단언했다.두 살이 좀 지났을 때 어머니의 몸을 보고 강하게 마음이 끌렸고, 여자 조카를 성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놓고 서로 다투었던 남동생이 죽었을 때는 도리어 기쁨을 느꼈다고 그는 고백했다.아내더러 자기보다 아들에게 더 정신이 팔려 있다고 비난을 퍼붓는 아버지 밑에서, 그는 일찍부터 정신분석학적인 기질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모라비아에서 유대계로 태어난 프로이트는 세 살 때 가족이 수도인 빈으로 이사를 가서 거의 80년 가까이를 그 도시에서만 살았다.빈 대학의 의학부에서 공부하다가 1885년 파리로 가서 히스테리를 연구했다.그런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카타르시스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고...

  • [불교를 상징하는 것들] 불교를 나타내는 상징에는 흔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まんじ, 연꽃, 법륜(法輪ほうりん), 일원상(いちえんしょう), 원이삼점(えんさんてん), 보리수, 5색기 등이다. 여기에서 まんじ는 원래 태양의 광명을 상징했으나, 불교에서는 일심(一心いっしん)의 서기방광(瑞氣ずいきひかり)에 비유했으며, 부처의 가슴과 손발과 머리에 나타난 길상(吉相きっそう) · 행운 · 경복(慶福けいふく)의 마크 등으로 사용했다. 연꽃은 진흙물에서 피어나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꽃과 열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특징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오탁악세(にごあく)에 태어났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3계의 중생을 교육한 데 비유하고 있다. 또한 옛날부터 인도의 왕들은 금륜(金輪かなわ) · 은륜(銀輪ぎんりん) · 동륜(どう) 등의 수레바퀴를 통해 세계를 정복했는데, 석존이 진리의 수레바퀴로 세계를 정복한다는 뜻이 법륜이란 말 속에는 담겨 있다. 일원상은 일심의 원융무애(圓融えんゆう無碍むげ)와 시간의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원이삼점은 불법승

  • 휴머니즘이란 말은 인본주의 · 인문주의 · 인간주의 등으로 번역되며, 이는 ‘사람을 위주로 하는 사상’을 일컫는다.그런데 서양의 역사상 이러한 경향이 가장 강했던 때는 바로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였다.그리고 옛 문화에 대한 관심은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와 같은 인본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촉발되었다.이 두 사람은 고전적인 문학작품을 다시 모으고 발굴하는 데 열중했고, 이를 통해 중세의 신학적 영향을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했다. 물론 휴머니즘은 문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신문화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갔다.그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휴머니즘 사상가로 에라스무스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고대 철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고자 했다. 또한 동방의 그리스 신학자들이 고전을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모여들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플로렌스라는 도시에는 아카데메이아가 세워지게 되었다.이곳에서 플라톤이나 플로티노스의 저서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産婆さん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그의 얼굴은 크고 둥근 데다 이마는 벗겨지고 눈은 툭 불거졌으며, 코는 뭉툭하고 입술은 두툼한 데다 키는 땅딸막했다.게다가 배가 불룩하여 걸을 때에는 오리처럼 뒤뚱거렸다. 누가 봐도 추남이라고 부를 만했지만, 신체만은 건강한 편이어서 추위나 더위에도 대단한 인내력을 발휘했고,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끄떡없었다고 한다.그가 전쟁에 참가했을 때, 혹독한 겨울날씨에도 그는 맨발로 얼음 위를 걸어갔다. 한여름철에는 이른 아침부터 꼬박 밤을 새우기까지 연병장 한가운데에 서서 깊은 사색을 했고, 해가 떠오르자 태양을 향해 기도를 드린 후에 비로소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그는 세 번이나 전쟁에 참가하여 용맹을 떨쳤으며, 모든 동료가 도망칠 때에도 장군과 함께 아군과 적군을 돌아보며 태연하게 걸어갔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는 일이나 가족을...

  •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키티움 출신의 제논이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사실 그는 우연히 철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본래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한 장사꾼에 속했던 그가 어느 날 배가 침몰하면서 많은 재산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크게 낙심하여 아테네 거리를 하릴없이 떠돌다가 발길이 닿는 대로 어느 한 책방에 들렀는데, 거기서 무심코 한 권의 철학책을 발견했다.그는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평생 철학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그 후 “배의 침몰이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사건이었다”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토아라는 이름은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본래 이 말은 ‘얼룩덜룩하게 색이 칠해진 복도(Stoa poikile)’라는 말에서 유래하며, 제논과 그의 젊은 제자들이 바로 이곳에 모여 학문을 논했다.둥근 기둥들이 죽 늘어선 서양식 복도를 상상해 보자.의무를 준수하고 절제하고 극기하는 의지의 사나이 제논이 이 엄격하고 진지한 건축물의 보호를 받았다는 상징성이 ‘스토아’라는 말...

  • 옛말을 인용하자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다시 말해, 기독교가 중세 사회의 중심에 놓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는데, 이때 교회가 썩고 성직자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이미 교회의 폐단을 인식하고 있던 일반 대중들은 형식적인 겉치레로 운영되는 교회나 이론에 치우친 신학에 만족할 수 없었다.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황청에 대해서도 불만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즉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속으로만 끓고 있을 뿐, 누구 한 사람 앞장서는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가 문제였다.당시 교회의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이때 분연히 일어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그 역할을 독점하려는 교회에 반대하고, 신자들...

  • 초경험적 · 사변적 방법에 의지하는 형이상학을 배격하고자 하는 철학에는 실용주의 외에 분석 철학이 있다.다만 분석 철학에서는 “철학의 주요 임무란 어떤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기호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다시 말하면, 철학의 모든 문제도 과학적 방법으로 하나하나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수단으로 언어와 기호의 분석만을 철학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석 철학은 과학 철학이라는 성격을 가장 많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 분야의 철학자 중에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아서 현대 과학을 신뢰하는 20세기의 지성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철학의 기원은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고전학파의 신실재론과, 독일 경험비판론의 흐름을 계승한 빈학파의 논리적 실증주의 운동이다.이 두 철학 운동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발전했고 이러한 발전을 더욱 촉진시킨...

  • 스토아학파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에피쿠로스학파다.이 학파의 시조 에피쿠로스는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 도시 외곽의 정원 안에 학교를 설립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이 때문에 에피쿠로스학파를 정원(庭園ていえん)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에피쿠로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분명하게 엇갈린다. 먼저 그를 방탕한 쾌락주의자로 욕하는 사람들은 그가 너무 많이 먹고 마셨다고 말한다.너무 많이 먹은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은 것을 토해내야 했으며, 밤마다 벌어지는 잔치에 자신의 정신력을 모두 없애버릴 정도였다는 것이다.지나치게 향락에 빠졌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는데, 유부녀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은 일과 여자들을 은근히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편지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에피쿠로스가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과 그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는 사실은 당시 대단한 스캔들이었다.사람들은...

  • 사마천은 그가 쓴 《사기(史記しき)》에서, 중국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유세하는 공자를 가리켜 ‘상갓집 개’라고 불렀다.다시 말해서, 밥을 주는 사람은 있어도 돌아갈 집이 없다는 뜻이었다. 공자의 이름은 구(おか)요, 자는 중니(なか)로서, 노(魯)나라의 평창향 추읍(지금의 산둥성 취푸시)에서 태어났다.딸만 내리 아홉을 낳던 그의 아버지 숙량흘은 나이가 들어, 젊은 여자와 정식결혼을 하지 않은 채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숙량흘은 키가 열 척이나 되고 힘이 장사였는데, 공자의 외할아버지 안씨도 딸에게 결혼하기를 종용하면서 그의 늠름한 대장부의 기상이 부럽다고 말할 정도였다.그의 무용담 가운데에는, 노나라의 군대가 성안에 포위되려는 찰나 그가 위로부터 내리 닫히는 성문을 두 손으로 떠받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공자 나이 세 살 때 부친이 돌아가셨고, 그는 결국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게 되었다.그녀는 남편을 공자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에 장사지냈고, 계절에 따라 집에서 정성껏...

  • 어느 날 교사들이 모여 팀을 나누어 축구시합을 했는데, 진 팀이 회식비를 내기로 했다.두 팀의 교사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죽기살기로 달려들면서 교묘하게 파울도 하고, 심판에게 항의하거나 잡아떼기도 했다.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저 사람들이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끄는 교사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교사들이 부도덕한 집단이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것은 아니다.사람은 누구나 집단이기주의에 한번 빠지게 되면, 양보하지도 못하고 관용을 베풀지도 못한 채 그냥 비도덕적이 되어 가는 것이다.따로 떨어진 상태로 있을 때, 개인은 얼마든지 착하기도 하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수도 있다.하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기주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윤리다. 이와 관련해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조차도 자기가 속한...

  • 쇼펜하우어가 헤겔을 미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게다가 그는 다른 철학교수들이 ‘철학의 숨은 황제’인 자신을 시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항상 주위를 경계했다.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고, 불이 날까봐 이층에서 자지도 않았으며,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또한 어머니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인지, 여자를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했다.여자들은 돈을 낭비하는 버릇과 교활함으로 똘똘 뭉쳐 있고,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오직 “성적 충동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본다”라고 비하했다. 그는 독일의 단치히에서 돈이 많은 어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들의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 호강스러운 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자살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죽음 후에 그의 어머니는 문화와 사교 생활에 더...

  •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순자는 전국 시대 조(ちょう)나라의 유학자로서 이름은 황(きょう)이며, 자는 경(きょう)이다.맹자가 성선설에 입각하여 덕치주의를 주장했다면, 그는 성악설에 근거하여 예치주의(禮治主義しゅぎ)를 주장했다.진(はた)나라의 재상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かんぴし)가 그의 제자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했는데, 열다섯 살쯤에는 그의 재능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한다.그는 제(ひとし)나라의 수도 직하(きび)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그곳은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유가를 비롯한 도가 · 묵가 · 명가 · 법가 등의 학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학문의 대향연을 연출할 때였다. 그러나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던 제나라에 대해 시기와 질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주변의 나라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직하의 학자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순자 역시 이때 초(すわえ)나라로 건너갔는데, 제나라가 다시 문화진흥책을 쓸 무렵 직하로 돌아왔다.원로 스승인...

  • 하나님은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든 후 그의 갈비뼈를 빼내어 평생의 배필 하와를 만들었다.그리고 이 둘을 에덴동산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모든 생명나무를 허락하되 단 한 가지,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남편인 아담을 끌어들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과실을 함께 따먹었다. 이에 대한 벌로 아담은 평생 땀을 흘려야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받게 되었으며, 뱀은 배로 땅을 기며 ‘여자의 후손’이 발뒤꿈치로 그 머리를 깨도록 하는 저주를 받았다.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영원히 살 수 있던 인간들은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말하자면, 인간은 유토피아인 낙원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뱀과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하나님은 그 책임을 아담에게 물었다.그리고 그의 씨를 받고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죄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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