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무
감무(
사마천(
생애
편집어린 시절
편집감무는 본래 초나라(
진 혜문왕 시대
편집감무는 진 혜문왕의 측근이었던 장의 · 저리자 등의 소개로 진 혜문왕을 알현하였다. 진 혜문왕은 감무를 만나보고는 기뻐하며 그를 장수로 삼아 위장을 도와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중을 빼앗도록 하였다.[2] 그리하여 기원전 312년(진 혜문왕 13), 감무는 위장 · 저리자 등과 함께 초나라의 한중을 공격하여 빼앗았다.[3]
진 무왕 시대
편집기원전 310년(진 무왕 1), 과거 진나라가 촉나라를 정복한 후 그곳을 통치하기 위해 세웠던 촉나라 재상 진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감무가 이를 토벌하여 진장을 죽였다.[4]
기원전 309년(진 무왕 2), 진 무왕이 처음으로 승상(
기원전 308년(진 무왕 3), 진 무왕은 감무에게 "과인이 수레를 타고 삼천(
진 무왕은 몸소 식양(
진 무왕의 맹세를 받은 감무는 그해 가을에 마침내 한나라의 의양을 공격하였다.[9] 그러나 의양은 넓은 땅이었고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키는 군사도 10만에 달하였다. 더욱이 한나라의 공중치와 초나라의 경취가 군사를 거느리고 의양을 구원하려 하였다.[10] 이 때문에 다섯 달이 지나도록 감무는 의양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러자 저리자 · 공손석 등이 감무를 참소하였고, 마음이 흔들린 진 무왕은 의양으로 보낸 군대를 철수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감무는 "(과거에 맹서하였던) 식양 땅이 사라지기라도 했습니까?"라 말하며 반대하였고, 결국 진 무왕은 감무로 하여금 싸움을 계속하게 하였다.[11]
이듬해인 기원전 307년(진 무왕 4), 감무는 마침내 한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6만 명의 목을 베고 의양을 함락시켰다.[12] 진나라 군대는 마침내 황하를 넘어 한나라의 무수(
진 소양왕 시대
편집진 소양왕이 즉위한 후, 초나라가 과거 단양(
이후 감무는 저리자와 함께 위나라의 피지(
망명과 말년
편집기원전 306년(진 소양왕 1), 감무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는 위나라를 공격하던 일을 그만두고 달아나 제나라(
당시 제나라의 왕이었던 제 민왕은 감무를 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당시 초나라의 왕이었던 초 회왕은 얼마전 진나라와 혼인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았다. 때문에 진나라에서는 사람을 보내 초나라에 와있던 감무를 진나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초 회왕이 이 일을 범연(范蜎)과 상의하려 하자, 범연은 감무와 같은 인재가 진나라로 가게 된다면 초나라에는 이득이 될 것이 없다며 반대하였다. 이로 인하여 감무는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20]
이후 감무는 끝내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위나라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진나라에 남아있었고, 그의 손자였던 감라(
각주
편집-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15 육국연표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15 육국연표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15 육국연표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전국책》 권1 동주책 〈진공의양〉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15 육국연표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5 진본기에서는 이 때에 감무가 곧바로 위나라로 망명하였다고 하였으나, 권71 저리자감무열전에서는 감무가 먼저 제나라로 망명했다가 이후 위나라로 옮겨갔다고 하였다.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