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시리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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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라트 부다시리(
1332년 10월 영종 린첸발 즉위기간과 린첸발 사후 황제위가 궐위가 되자, 명목상의 섭정에 앉았으나 조정 실권은 킵차크 한국의 군벌 엘테무르에게 있었다. 1332년 8월 문종 투그 테무르가 죽자, 엘 테무르는 그녀의 차남 엘 테구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으나 그는 선황제(문종)의 유언이라는 이유로 엘 테구스의 제위 계승을 거절, 린첸발이 즉위했다. 12월 린첸발이 즉위 2개월 만에 죽자, 엘 테무르는 다시 그녀의 차남 엘 테구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으나, 역시 선황제의 유언을 이유로 거절했다. 1333년 투그 테무르 즉위 후 태황태후가 되고, 차기는 엘 테구스에게 보장하는 조건으로 토곤 테무르를 즉위시켰다. 1340년 토곤 테무르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후계자를 바꾸려 했다. 부다시리가 메르키트 바얀 등과 공모하려 엘 테구스를 추대하려 하자, 혜종은 반역을 이유로 그녀를 폐위, 동안주로 유배보냈다가 중도에 사사시켰다.
생애
[편집]생애 초반
[편집]부다시리는 1305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손자 다르마발라 태자의 딸 노국휘문의복정수대장공주 상가나길(魯國徽文懿福
부계로는 칭기즈 칸의 정비 보르테 카툰의 친정인 옹기라트부 출신으로, 5대조는 데이 세첸(
그의 어린 시절은 알려진 것이 없다. 투그테무르(
천력 원년 (1328년) 11월, 부다시리는 남편 투그테무르가 라기바흐(
황후 시절
[편집]1329년 쿠살라(명종)가 죽자 투그테무르가 황제로 복위, 부다시리도 황후로 복위하였다. 복위된 부다시리는 교활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심복 환관 바이주(
1330년 8월 어사대의 신하가 그녀의 아들 아나트라나다를 황태자로 책봉할 것을 주청, 이후 신하들이 아나트라나다의 태자 책봉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문종은 태자 책봉을 밍설였다. 1330년 10월 제왕과 재상들이 아나트라나다를 황태자로 책봉하라고 상소했으나 문종은 아직 어린 것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계속 된 태자 책봉 상소가 올라오자 문종은 그해 12월 생각을 바꾸어 아나트라나다를 황태자로 책봉하기로 하고, 1330년 12월 2일(양력 1331년 1월 18일) 종묘에 고하고 12월 5일(1331년 양력 1월 21일) 아들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아나트라나다는 1331년 2월 22일(음력 1월 15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신료들은 그녀의 둘째 아들 구나시리를 태자로 세울 것을 상소했으나, 문종은 이를 주저했다. 구나시리는 권신 엘 테무르의 집에 보내져, 엘 테구스로 이름을 바꾸고 그에 의해 양육되었다. 일설에는 엘 테무르가 엘 테구스를 양자처럼 거두었다는 설도 있다.
문종은 자신이 형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 괴로워했고, 자신의 뒤는 자신의 아들 대신 형 명종의 아들 중에서 지명하게 하였다. 지순 3년(1332년) 8월, 투그테무르(문종)가 상도(
황태후, 명목상의 섭정 시절
[편집]1332년, 린친발(영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그해 11월 부다시리는 황태후가 되었다. 부다시리는 형식적으로 섭정이었으나, 정치적 실권은 엘 테무르에게 있었다. 그러나 린첸발은 황제가 된지 2개월만에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부다시리는 광서에 있던 토곤테무르에게 사람을 보내 상경할 것을 권했다.
린친발이 사망하자, 엘 테무르는 다시 투그테무르의 차남 연첩고사(
원통 원년(1333년), 토곤 테무르(순제)가 즉위 함으로 인해 부다시리는 태황태후의 칭호를 받고 임조칭제(臨朝
폐출과 최후
[편집]지원 6년(1340년) 2월, 권신 바얀(
그해 6월 복답실리는 자신의 2자(
6월 14일 혜종 토곤테무르는 조서를 내려 그가 바부샤 카툰을 살해한 것, 자신 대신 린친발을 추대했다는 점, 자신을 명종 쿠살라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부다시리를 폐위한다는 조서를 발표했다. 향년 36세였다.(연첩고사는 고려에 귀향가는 도중, 살해되었다.) 복답실리가 음모를 꾸몄다는 정황은 원사, 원사연의 등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일설에는 이는 기황후의 공작이었다는 설이 있다.
사후
[편집]그녀는 원 문종의 유언대로 1332년 10월과 12월 자신의 차남 엘 테구스를 옹립하려는 권신 엘 테무르의 주장을 거부, 명종의 아들을 칸으로 세우게 했다. 그러나 혜종 토곤테무르는 6월 14일의 칙령에서, '숙모(叔嬸)인 포탑실리(
그녀의 시신과 묘소의 행방은 알려진 것이 없다. 시호는 사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관계
[편집]- 부 : 노왕 조아불랄(魯王 雕阿
不 剌) - 모 : 노국대장공주 상가랄길(魯國
大長 公主 桑 哥剌吉 )
부다시리가 등장한 작품
[편집]전임 바부칸 |
원나라의 황후 1328년—1329년 |
후임 바부샤 |
전임 바부샤 |
원나라의 황후 1329년—1332년 |
후임 다리예테미쉬 |
전임 영종 린친발 카안 (카안/황제) 엘 테무르 (섭정) |
몽골 제국/원나라의 명목상 섭정 1333년 4월 혹은 5월 ~ 1333년 6월 8일 |
후임 순제 토곤테무르 카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