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청
수춘군부인(사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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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춘군부인( | |
재위 | 1276년 ~ 1283년 |
송나라의 태황태후 | |
재위 | 1274년 8월 15일 ~ 1276년 2월 4일 |
즉위식 | 함순(咸淳) 10년 7월 12일 (1274년 8월 15일) |
전임 | 수성태황태후 사씨(성숙황후) |
송나라의 황태후 | |
재위 | 1264년 11월 17일 ~ 1274년 8월 15일 |
즉위식 | 경정( (1264년 11월 17일) |
전임 | 수명황태후 양씨(공성인열황후) |
후임 | 황태후 전씨 |
송나라의 황후 | |
재위 | 1231년 1월 14일 ~ 1264년 11월 17일 |
즉위식 | 소정(紹定) 3년 12월 10일 (1231년 1월 14일) |
전임 | 공성인열황후 양씨 |
후임 | 황후 전씨 |
이름 | |
휘 | 사도청( |
별호 | 통의군부인( 귀비( |
존호 | 수화성복황태후 ( ↓ 수화성복황태후 ( ↓ 수춘군부인( |
신상정보 | |
출생일 | 가정( (1210년 5월 2일)[1][2] |
출생지 | 남송 천태( |
사망일 | 원 지원( |
사망지 | 원나라 대도( |
부친 | 위왕( |
배우자 | 이종( |
자녀 | 기왕(祁王) 조유( <양자> 도종( |
수춘군부인 사도청(
생애[편집]
황후시절[편집]
사도청은 영종 대에 재상을 지낸 사심보의 손녀로 태어났다. 사심보는 영종이 황후를 고를 때 양황후가 책봉되도록 도와준 인물이었는데 양황후는 그 은혜를 보답할 겸 사씨 집안에서 며느리를 간택했다. 이종은 본래 가사도의 누이로 용모가 아름다운 가씨를 더 마음에 들어했지만 어머니의 압력에 사씨를 통의군부인으로 봉했다가 귀인을 거쳐 황후로 책봉했다.
그 후에도 이종은 황후보다는 가씨를 비롯한 다른 여인들을 더 총애했지만 사씨도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질투하지 않았다. 사씨의 이런 태도는 공성황후는 물론 이종에게도 호감을 갖게 했다.
1264년 이종이 붕어하자, 조카 도종(
태황태후 시절[편집]
1274년 도종이 붕어하고 공제(
이 시기 원나라의 군대는 이미 중국 북부와 남서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상양 일대를 점령한 뒤, 양쯔강을 건너 주요 전략지점을 획득하고,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을 향해 가고 있었다. 태황태후는 백성들에게는 뜻을 모아 황제의 뒤에 나라를 구하라고 명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진하는 원나라와 화평을 모색하는 이중적인 해결책을 추구했다.
1275년 바얀(
남송의 멸망[편집]
1276년 원나라 군대가 임안을 함락시키자 태황태후와 황태후는 공제와 함께 바얀에게 투항했다. 원나라 대도로 끌려가 태황태후에서 수춘군부인(
7년 후인 1283년에 원나라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참고 문헌[편집]
- 샹관핑, 《중국사 열전, 후비 -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달과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