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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사다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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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사다쓰네
しょう さだけい
신상정보
시대 가마쿠라 시대(鎌倉かまくら時代じだい) 후기~난보쿠초 시대(南北なんぼくあさ時代じだい)
출생 분에이(ぶんひさし) 9년(1272년)
사망 겐무(たてたけし) 3년/엔겐(のべもと) 원년 2월 29일(1336년 4월 11일)
개명 사다쓰네(さだけい) → 묘에 고칸(みょうめぐみだかかん, 법명)
막부 가마쿠라 막부(鎌倉かまくら幕府ばくふ)
주군 호조 씨(北条ほうじょう) →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あしかがたかうじ)
씨족 쇼니 씨(しょう)
부모 아버지 : 쇼니 모리쓰네(しょうもりけい)
형제자매 사다쓰네(さだけい), 스케노부(しん), 쓰네키요(けいきよし), 아사히 시호(朝日あさひほう)
자녀 요리히사(よりゆきなお), 바바 쓰네카즈(馬場ばばけいいん)

쇼니 사다쓰네(일본어: しょう さだけい, しょうに さだつね)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かまくら時代じだい) 후기에서 남북조 시대(南北なんぼくあさ時代じだい)에 걸쳐 활약했던 무장(武将ぶしょう)이자 쇼니씨(しょう) 5대 당주이다.

생애[편집]

분에이(ぶんひさし) 9년(1272년), 쇼니 모리쓰네(しょうもりけい, 쇼니 쓰네스케의 아들)의 아들로써 태어났다.

가마쿠라 막부(鎌倉かまくら幕府ばくふ)의 싯켄(執権しっけん) ・ 호조 사다토키(北条ほうじょう貞時さだとき)로부터 이름자 한 자를 받아 사다쓰네(さだけい)라 하였다. 겐코(元弘もとひろ) 3년/쇼쿄(せいけい) 2년(1333년) 3월 13일, 기쿠치 다케토키(菊池きくちたけし)가 거병하였을 때 동조를 구하였으나 사다쓰네는 이를 거부하고 진제이 단다이(鎮西ちんぜい探題たんだい) 호조 히데토키(北条ほうじょう英時ひでとき)나 오토모 사다무네(大友おおとも貞宗さだむね) 등과 함께 다케토키를 패사시켰다.[1] 5월에 로쿠하라 단다이(ろく探題たんだい)가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あしかがだか)에게 공략되었음을 알고 반막부세력이 우세함을 깨닫고 다카우지에게 호응하여 사다무네나 시마즈 사다히사(島津しまつ貞久さだひさ)와 함께 막부로부터 이반하여 단다이를 공격, 히데토키를 자결로 몰아갔다.[2] 그 공적으로 겐무 신정(たてたけし新政しんせい) 체제에서 지쿠젠국(筑前ちくぜんこく) ・ 부젠국(豊前ぶぜんこく) ・ 지쿠고국(筑後ちくごこく)의 슈고(守護しゅご)로 임명되었다.

겐무(たてたけし) 2년(1335년) 나카센다이의 난(ちゅう先代せんだいらん)을 계기로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ごだいごてんのう)에 대한 반기를 들자 이에 응하였다. 이듬해인 겐무 3년/엔겐(のべもと) 원년(1336년) 2월에 규슈로 내려온 타카우지를 맞이하고자 29일에 아들 요리히사(よりゆきなお)에게 5백 기를 주어 원군으로 파견하였는데, 바로 이날 주력군이 원정을 나간 틈을 타 기쿠치 다케토시(菊池きくち武敏たけとし)나 아소 고레나오(阿蘇あそ惟直これなお) 등 왕실 지지 세력이 쳐들어왔고, 쇼니 사다쓰네는 이를 필사적으로 막다 중과부적으로 일족 100여 명과 함께 우치야마 성(ゆうさとし山城やましろ)에서 자결하였다.[3] 향년 65세였다.

가독(家督かとく)은 요리히사가 이었다. 요리히사의 동생 ・ 쓰네카즈(けいいん)는 바바 씨(馬場ばば, 쇼니 바바 씨しょう馬場ばば)를 칭하였다.

각주[편집]

  1. 史料しりょう綜覧そうらんだい5へん905 783ぺーじ
  2. だい日本にっぽん史料しりょうだい6へん1 7ぺーじ
  3. だい日本にっぽん史料しりょうだい6へん3 118ぺーじ

참고 자료[편집]

  • 『고다이고 천황기』(後醍醐天皇ごだいごてんのう) 元弘もとひろさんねんさんがつじゅうさんにちいたりこれがつ
  • 『류조지 문서』(龍造寺りゅうぞうじ文書ぶんしょ)
  • 『구사노 가 고문서』(草野くさの古文書こもんじょ)
  • 『매송론』(梅松うめまつろん)
전임
쇼니 모리쓰네
제5대 쇼니씨 당주
후임
쇼니 요리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