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관
신라 금관(
연구사[편집]
신라 금관은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 및 금제 관식이 발견되며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24년에 금령총에서, 1926년에 서봉총에서 잇달아 금관이 발굴되며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신라 금관들은 대부분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을 샤먼의 관에 순록 뿔이 장식되던 것에 비유하여 샤머니즘적 권위를 나타낸 것이라는 의견이 1930년대에 처음 제안되었다.[2] 해방 이후의 한국 학계도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금관들과 계통적인 연관성이 제안되기도 하였다.[3] 아프가니스탄 틸리아 테페에서 발견된 서기 1세기의 금관이 끌과 망치로 금판을 오려낸 기법을 사용한 것과 같은 기법이 발견됨에 주목하기도 하였다.[4] 더 나아가서, 1세기의 관식이 3~4세기의 선비족과 고구려의 관식을 거쳐 마립간시기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이를 확장한 견해도 있다.[5] 이러한 연구들은 동시기의 묘제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이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에서도 발견됨에 주목한다.[6]
이와 반대로 신라에서 자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초기에 이러한 주장은 금관이 속관과 겉관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있다고 해석한 것에 근거를 두었다. 허나 이후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되며 금관인 대관은 피장자가 착용한 채로 발견된 반면 모관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에 자생론은 타격을 입었다.[7] 현재는 금관의 장식이 순록뿔이 아닌, 나뭇가지와 유사하다고 보고 이러한 것이 고유의 '신목' 숭배 사상에서 온것으로 보며 자생론을 주장하기도 한다.[8]
목록[편집]
범주 | 사진 | 정보 |
---|---|---|
국보 | 대한민국의 국보 제87호 금관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큰 것이다.[9] 이 금관이 발굴된 노서동의 고분은 금관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62년 12월 1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44 cm, 머리띠 지름은 19 cm이다. 금관은 내관(內冠)과 외관( | |
대한민국의 국보 제188호 천마총 금관은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이다. 1978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천마도와 함께 발굴되어 발굴된 고분 제 155호가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소지 마립간 혹은 지증왕의 왕관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32.5 cm이다.
3개의 나뭇가지 모양과 2개의 사슴 뿔 모양이 금관 테에 달려 있고 금관의 앞 부분에는 옥과 달개가 달려있다.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의 끝에는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드리개는 나뭇잎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관의 테두리에는 위아래에 연속점무늬와 물결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 ||
대한민국의 국보 제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굴된 금관이다. 1978년 12월 12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27.5 cm,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 길이는 13∼30.3 cm이다.
이마에 닿는 머리띠 앞쪽에는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는 좌·우 각각 3개씩 대칭으로 굵은 고리에 매달아 길게 늘어뜨렸다. 바깥의 것이 가장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진다. 장식 끝부분 안쪽에는 머리띠 부분과 같은 푸른색 굽은 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발견 당시 금관과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 ||
보물 | 대한민국의 보물 제338호 금령총 금관은 금령총에서 발굴된 금관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38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금관 중에서는 가장 작고 간단한 형식으로, 높이는 27 cm, 지름은 15 cm이다.
중앙 정면과 그 좌우에 | |
대한민국의 보물 제339호 넓은 관 테 위에 5개의 가지를 세웠고, 상하에 점선으로 물결무늬를 찍고 나뭇잎 모양의 원판과 굽은 옥으로 장식했다. 관 테에 못으로 고정시켜서 세운 5개의 가지 중 중앙과 그 좌우의 3가지는 서봉총 금관은 서봉총에서 발굴된 금관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0.7 cm, 지름 18.4 cm, 드리개 길이 24.7 cm이다. 내부의 골격은 2개의 금판대를 전후·좌우에서 관 테에 연결하여 반원을 그리면서 교차시켰고, 그 위에 3가닥이 난 나뭇가지를 붙이고 가지 끝에 새 모양을 하나씩 붙였다. 관 테 좌·우에 길게 굵은고리(태환식) 귀고리 드리개를 달아 늘어뜨렸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 ||
대한민국의 보물 제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은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굴된 은관이다. 1978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631호로 지정되었다. 남분 관 밖 머리쪽 껴묻거리 구덩이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이 17.2 cm, 머리띠(대륜) 너비 3.2 cm, 지름 16.6 cm이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3개의 가지가 있는 모습으로 신라시대 관모( |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조선일보 (2020년 9월 3일). “금동관으로 얼굴 가린 그녀… 1500년전 저승길은 화려했다”. 2023년 9월 11일에 확인함.
- ↑
濱田 靑陵 (1932). “慶州 の金冠 塚 ”. - ↑ 김병모. 《금관의 비밀》.
- ↑ 이은창 (1982). 《신라금속공예의 원류적인 중앙아세아고대문화》. 한국학보. 149 ~ 150쪽.
- ↑ 이송란 (2003). 《황남대총 신라관의 기술적 계보》. 한국고대사연구. 111~127쪽.
- ↑ 최병현 (1981). 《고신라 적석목곽분 연구(
上 ) - 묘형과 그 성격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 482~483쪽. - ↑
李 松 蘭 (2008년 12월). “김알지 건국신화 속에서 탄생한 신라금관 :임재해,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8”. 《신라사학보》 (14): 319–328. ISSN 1738-2742. - ↑ 함순섭 (2012). “
新 羅 樹 枝 形 帶 冠 의展開 過程 硏究 ”. 경북대학교. - ↑ “Display Detail Information”. 《www.pennfamily.org》. 2012년 2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5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