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쓰
예쓰[1](也斯, 본명: 량빙쥔(
생애[편집]
1949년 중국 광둥성(
예쓰는 홍콩뱁티스트칼리지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70년에서 1978년 사이에 언론사에서 일했다. 1978년 여름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에 유학해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1984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에 돌아온 후 홍콩대학의 영어학과와 비교문학과에서 재직했으며, 지금은 홍콩의 링난대학(
예쓰의 본명은 룡빙콴(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삼국지≫, ≪수호전≫ 등의 고대소설과 루쉰(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68년부터 홍콩의 각종 간행물에 칼럼 산문을 쓰기 시작했고, 시·소설·수필·평론·번역·이론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면서 각종 간행물의 편집까지 맡는 등 홍콩 문단의 만능인으로 평가된다. 사실 예전부터 홍콩의 작가는 특정한 한 장르만을 다루기보다는 여러 장르에 걸쳐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에 따라 장르 간의 상호 영향이나 중첩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예쓰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오랜 기간 주제·소재·체재·언어 등 모든 면에서 혼종을 시도하고 강조해 왔다. 예쓰의 혼종적 면모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그의 장르 파괴 내지 장르 혼종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장르에 상관없이 모든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의 홍콩에 대한 시각과 묘사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단편적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통해서, 홍콩이라는 도시의 혼잡성과 산만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문화가 혼재하고 혼융된 세계인으로서의 홍콩인과 세계 도시로서의 홍콩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예쓰는 소설이 사람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문화적 배경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상호 감정과 사고가 소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소설 작품으로는 ≪용을 키우는 사람(
예쓰는 일찍이 1960년대부터 문단 활동에도 참가했으며, 1970년대에는 동료들과 함께 ≪문림(
예쓰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폐암으로 투병 직전까지 거의 매년 한국의 학술 대회나 문화 행사에 초청되었으며, 한국의 많은 학자, 문학가, 문화인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물론 옮긴이들과도 아주 오랜 시간 꾸준히 인연을 이어 왔는데, 그를 아는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는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며, 다양한 음식을 좋아하고, 매사에 호기심이 많으며, 그의 작품을 읽어 보면 그의 소탈한 성격, 은근한 유머, 따스한 품성이 저절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쓰 자신이 바로 그의 소설이고, 그의 소설이 곧 예쓰 자신인 것이다.
각주[편집]
- ↑ Riemenschnitter, Andrea Hong Anrui (2013). “Leung Ping-kwan (1949–2013)” (PDF). 《Asiatische Studien/Études Asiatiques》. LXVII (1): 7–29. doi:10.5167/uzh-84968. ISSN 0004-4717.
- ↑ “
周 六 病 逝 也斯告別 人間 滋味 -明報 -新 聞頻道 -新 浪 網 ”. News.sina.com.hk. 2012년 11월 7일. 2014년 5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0월 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