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카이
우량카이(몽골어: ᠤᠷᠢᠶᠠᠩᠬᠠᠶ, 한국 한자: 兀良哈 올량합, 페르시아어: اوريانكقت Ūriyānkqat)는 중세 몽골에서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이 알타이 우량카이, 투바인, 야쿠트인 등의 "삼림민"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10세기부터 중국 문헌에 언급이 나타나는데,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확장되어 단순히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일컫는 말처럼 사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몽골인들은 자신들보다 북쪽에 사는 수렵민족을 우량카이라고 불렀고, 명나라와[1] 조선에서는[2] 여진도 우량카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건주여진이 야인여진을 우량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일 칸국의 라시드알딘 하마다니가 쓴 『집사(
14세기 중반 우량카이는 둥베이 요양에 살았다. 우량카이의 지도자 나하추는 거의 반독립 상태의 군벌이었는데, 1375년 북원과 협력하여 요동반도를 공격했다. 이후 나하추는 만주 남부에서 할거했으나 명나라의 공격으로 1388년 항복한다.[4] 한편 몽골 북부 우량카이는 난을 일으켰다가 1538년 다얀 칸에게 토벌되고 대부분이 할하에게 흡수되었다. 바트무크 다얀 칸은 우량카이의 투먼을 해산시켰다.
몽골 중앙에 살던 우량카이는 헹티 산맥 부근에 살다가 16세기 초에 알타이산맥 방향으로 이동했다.[5] 일부는 북원 아래에서 오늘날의 후브스굴 주로 이동하기도 했다.[1]
17세기 초가 되면 우량카이라는 말은 북서부 지방에 드문드문 흩어져 사는 부족들을 그들이 사모예드계인지 튀르크계인지 몽골계인지 상관하지 않고 퉁쳐서 일컫는 말이 되었다.[6] 1757년 청나라는 최북방 국경에 우량카이 기를 설치했다. 몽골인들은 투반인들을 우량카이라고 불렀다. 또 오늘날의 바잉울기 주, 허브드 주에 살던 부족들을 알타이 우량카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오이라트와 관련되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또 동부 몽골의 다얀 칸 밑에도 6개 투먼으로 된 우량카이 부족이 있었다. 이 우량카이는 젤메와 수부타이의 출신 부족이었다고 전해진다. 알타이 우량카이나 홉스굴 우량카이는 튀르크계나 사모에드계가 없었다.
명나라 때는 여진이 중국인들 보기에 만주의 숲속에 사는 "삼림민"들이었고, 그래서 이들도 우량카이와 같은 말인 "올량합"이라고 불렀다.[1] 한국어에서도 여진의 일파를 "올량합"이라고 일컫다가[2] 이 말이 변해 "오랑캐"가 되었는데, 주로 14세기 ~ 15세기에 중화문명에 포함된 세계를 공격하는 외부의 야만인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1] 조선에서 일컬은 우량카이는 두만강 유역에 살던 야인여진 왈카부를 이름인데, 나중에는 건주여진의 후신인 청나라에서도 야인여진을 일컬어 우량카이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3] 임진왜란 때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가 두만강을 넘어가 이 여진 우량카이와 교전했다가 패퇴한 바 있다.
1575년 청나라는 북부 국경에 우량카이 팔기를 설치했는데, 이 우량카이는 물론 야인여진 우량카이가 아닌 몽골 우량카이를 이름이다. 팔기군으로 편성된 우량카이는 후브스굴 우량카이, 탄누 우량카이, 켐치크, 살차크, 토주(이상 모두 투바계), 알타이인이 있다.
한편 야쿠트인의 옛 이름 중 "우랑하이(Uraŋxai)"가 있다.[7] 하지만 야쿠트는 우량카이가 아니며, 이는 단순히 야쿠트인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파벨 네볼신은 1850년대 볼가 칼미크인 중 "우란쿠(Urankhu)" 씨족이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8]
몽골 헹티 산맥 부근에 우량카이의 후예들이 아직도 살고 있으며, 그 인구는 2010년 기준 26,654 명이다.[9]
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Crossley, Pamela Kyle (December 1985). “An Introduction to the Qing Foundation Myth”. Late Imperial China 6 (2): 13–24. doi:10.1353/late.1985.0016.
- ↑ 가 나 태조실록 1권, 총서 126번째기사 / 올량합과 알타리가 조회와서 다투다가 화해하다. 태조가 집에서 이들을 대접하다.
(알타리는 누르하치의 조상 동맹가의 부족인 오돌리 아이만을 말한다) - ↑ 가 나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28일 무진 4번째기사 / 용골대가 한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그대 나라에 있는 올량합(兀良哈) 사람들은 모두 쇄환(刷 還 )해야 마땅하다. ” - ↑ Willard J. Peterson, John King Fairbank, Denis Twitchett-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7, p.158
- ↑ A.Ochir, Ts.Baasandorj "Custom of the Oirat wedding". 2005
- ↑ C.P.Atwood-Encyclopedia of Mongolia, p.9
- ↑ POPPE, Nicholas (1969). “Review of Menges "The Turkic Languages and Peoples"”. Central Asiatic Journal 12 (4): 330.
- ↑ Mänchen-Helfen, Otto (1992) [1931]. Journey to Tuva. Los Angeles: Ethnographic Press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180쪽. ISBN 1-878986-04-X.
- ↑ National Censu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