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라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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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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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라토르(Imperator)는 고대 로마 특히 공화정 시대의 로마군 최고 사령관, 장군의 칭호 또는 로마 제국의 황제 또는 황제권(왕권)을 가진 자의 칭호이다. 공화정 시기에는 대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군사 지도자의 칭호로 쓰였는데,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임페리움(최고위 명령권)을 유지하는 자'라는 의미로 평시의 '최고 명령권자' 또는 전시의 '최고 사령관'이라는 의미가 된다.
흔히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임페라토르가 나중에 갈수록 군사의 통치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군사력 때문에 후기로 갈수록 임페라토르의 권력이 강해지고, 원로원이 임페라토르의 자문 기관이 된 것이다.
정의와 특징[편집]
본래 임페라토르는 명령권의 소재를 가리키는 말로서, 원로원과 민회로부터 영구적인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후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정확히는 원수
고대 중국의 「황제(
또한 「임페리움」은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최고 명령권」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권위도 따르고 있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마인들은 이러한 「권위」를 중시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예를 들어 집정관(콘술)이나 법무관(프라이토르) 등 정국 담당 최고 책임자가 이러한 「임페리움」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 「임페리움」은 후에 가서는 최고 명령권의 대상으로 하나의 피지배 지역 · 민중·정권으로서의 「제국」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적 전개[편집]
기원전 209년에 이베리아반도를 제압한 대(
제국 성립 전의 내란기에는 임페라토르는 군사 지휘권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딕타토르)이 되어 단독으로 로마군 최고 지휘권을 잡게 되면서 「임페라토르」를 최초로 영구적인 칭호 및 개인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아우구스투스도 「임페라토르」를 개인 이름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초기 프린켑스(제1인자)들의 경우는 대체로 카이사르와의 개인적인 혈연 관계를 나타내는 「카이사르」라는 칭호 쪽이 더욱 중요성이 높았다고 여겨지는데, 티베리우스부터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는 「카이사르」라 밝히면서도 「임페라토르」를 자칭하고 있다. 네로 치세에 「임페라토르」 칭호는 불완전하게 부활하여, 베스파시아누스 이후 황제 이름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임페라토르」는 프린켑스의 칭호로 자리잡았고 「황제」를 의미하기에 어울리는 단어로 변화해 갔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그리스어가 제국의 공용어가 되고부터는 그리스어로 같은 의미를 가진 「아우토크라토르(αυτοκράτωρ)」가 황제의 칭호로서 사용되었다.
「임페라토르」는 「카이사르」과 더불어 서구에서 「황제」를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시대에 황제를 가리키는 단어였던 「아우구스투스」라는 단어의 영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그러나 역사학에서는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가지고 로마 황제의 군주로서의 성격을 논하기보다는 제정(원수정) 초기 아우구스투스와 그 후계자의 위치를 가지고 논하는 경우가 많으며, 임페라토르에 대해서도 제정(원수정) 시기의 로마 황제가 내포하고 있던 다양한 특성의 하나였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