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이사무
조 이사무 | |
출생지 | 일본, 후쿠오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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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일본, 오키나와 |
복무 | 일본 육군 |
복무기간 | 1916년 ~ 1945년 |
최종계급 | 중장( |
지휘 | 일본제국 육군 제26사단 일본제국 육군 제4군, 남지나 방면군, 지나 파견군, 중앙 지구군, 일본제국 육군 제3방면군 |
주요 참전 | 러일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조 이사무(영어: Joe Isamu, 1895년 1월 19일 ~ 1945년 6월 23일)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그는 초국가주의를 추구하는 황도파 신봉자였다.
경력
[편집]이사무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1916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하였다. 임관 후 첫 부임지가 관동군이었는데, 관동군에는 일본 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정치 군인들이 많았다. 조는 이러한 영향을 받아 정치화되었으며, 일본에 돌아와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여러 정치적인 일에 간여하였고, 민간정치를 전복하려던 육군 중심의 쿠데타 계획인 3월 사건과 10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
그는 1930년 하시모토 긴고로(
그는 돌격에 집착하는 맹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하들의 흡연과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하여 직접 구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편집]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사무는 상하이 파견군 휘하의 제74연대의 연대장을 맡아 참전하였다. 그는부사령관을 맡고 있던 아사카 야스히코(
이후 1939~1940년에는 조선 주둔의 26사단의 참모장에 임명되어 두만강 근처의 국경 부근에서 소련군과 대결한 장고봉 사건(
이후 일본에 돌아와 1941년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전야에 일본 육군성의 군무국에서 동남아 침공작전을 입안하였다. 개전과 함께 남방총군과 함께 동남아시아로 진격하여 필리핀 작전에 참가하였다.
1942~1944년 그는 다시 만주로 돌아가 제10사단의 사단장이 되었고, 이후 관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다가 제1기계화여단의 여단장이 되었다.
오키나와 전투
[편집]1944년 7월 이사무는 오키나와 방위를 담당한 제32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고, 45년 3월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제32군은 슈리산 근처의 방어 진지를 세워두고 지구전으로 미군에 맞서려고 했으나, 그는 미군에 대한 강력한 공세를 주장하여 관철시켰는데, 이는 미군의 반격에 의해 분쇄되어 도리어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그는 섬의 함락이 임박하자 6월 23일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