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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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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김씨
淸道きよみちきん
Chongdokim1
나라한국
관향경상북도 청도군
시조김지대(金之かねゆき岱)
원시조김알지(きむ閼智)
집성촌경상북도 경산시, 군위군, 영주시, 영천시, 청도군
경상남도 거창군, 밀양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금정구, 부산진구, 해운대구
울산광역시 울주군
전라북도 고창군, 정읍시
전라남도 해남군, 화순군
충청남도 부여군
주요 인물김선장, 김한귀, 김점, 숙공궁주, 김난상, 김희방, 김정호, 김윤정, 김동휘, 김재영, 김석규, 김호복, 김경진
인구(2015년)91,293명

청도 김씨(淸道きよみちきん)는 경상북도 청도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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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지대(金之かねゆき岱, 1190년 ~ 1266년)는 경순왕의 후예로, 초명이 김중룡(きむなかりゅう)이다. 1217년(고종 4) 거란(ちぎり)군이 침입하자「충효쌍수(忠孝ちゅうこうそうおさむ)」라는 시()를 남기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큰 공(いさお)을 세웠다.

이듬해 12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すうみついんごと), 정당문학이부상서(せいどう文學ぶんがく吏部尙書), 지추밀원사(樞密院すうみついんごと)를 거쳐 금자광록대부(きむむらさきこう祿ろく大夫たいふ) 중서시랑평장사(中書ちゅうしょさむらいろうたいらあきらごと)에 치사(致仕ちし)하였다.

오산군(鰲山くん: 鰲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 봉해지고 영헌공(英憲ひでのりおおやけ)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청도(淸道きよみち)를 관향(ぬき鄕)으로 삼아 그곳에 살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결쳐 명문(名門めいもん)으로 명성을 떨쳤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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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淸道きよみち)는 경상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 이서소국(伊西いにし小國しょうこく)의 땅이었으나 신라(しん) 유리왕(儒理おう)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가 구도성(かたきがたなじょう)의 경내(さかい內) 솔이산(りつ伊山いやま)ㆍ경산(おどろきさん)ㆍ오도산(がらすかたなさん)의 3성(しろ)을 합하여 대성군(大城おおきぐん)을 두었다. 경덕왕(けい德王とくおう) 때 와서 구도(かたきがたな)를 오악현(烏岳からすだけけん)으로, 경산(おどろきさん)을 형산현(荊山けん)으로, 솔이산(りつ伊山いやま)을 소산현(山縣やまがた)으로 고쳐 밀성군(ひそかぐすくぐん)의 영현(りょうけん)으로 삼았다가 고려초(高麗こうらいはつ)에 3성(三城みき)을 합하여 청도군(淸道きよみちぐん)이 되었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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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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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장(きむよしそう) : 김지대의 아들로 1340년(충혜왕 복위1) 조적(曺頔)의 난으로 왕(おう)이 원(もと)나라에 불려갈 때 호종(扈從こしょう)하여 일등공신(一等いっとう功臣こうしん)에 책록되었다.
  • 김한귀(きむかんたか) :김지대의 증손(曾孫そうそん)으로 공민왕(きょう愍王) 때 동경도병마사(東京とうきょうどう兵馬へいば使)로 홍건적(べにはばぞく)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ちぇ瑩)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한룡(きむかんりゅう) : 김한귀(きむかんたか)의 아우로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きょう愍王)을 호종(扈從こしょう)하고 흥룡사(きょうりゅうてら)로 갔다가 중신(重臣じゅうしん) 김용(きむ鏞)이 난을 일으켜 환관(宦官かんがん) 안도치(やすあか)와 우정승(みぎせいすすむ) 홍언박(ひろし彦博) 등을 살해할 때 함께 순절한 절신이다.

조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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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점(きむすすむ) : 김지대의 6세손이며, 김한귀의 손자로 조선 태종 때 공조참의(こう參議さんぎ)· 예조참의(れい參議さんぎ)· 참찬(まいりさん)을 지냈으며, 딸이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 김씨이다. 조선 세종(むね) 때 형조(けい曹)· 호조판서(曹判しょ)와 평안도 관찰사(平安へいあんどう せき察使)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호강공(えびすつよしおおやけ)이다.
  • 김차산(金次きんじさん) : 관찰사 김호우의 5세손으로 세조() 때 단종복위(はしむね復位ふくい)를 도모하다가 능주(あやしゅう)의 천태산(天台山てんだいざん)에 은거(隱居いんきょ)하였다.
  • 김난상(きむ鸞祥) : 중종(ちゅうむね)때 문과에 급제하고 을사사화(おつ)로 남해(南海なんかい)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선조(せん) 때 직제학(ちょくひさげがく)을 거쳐 대사성(だいつかさしげる)에 올랐다. 경상북도 영주시 오산서원(梧山書院しょいん)에 배향되었다.
  • 김몽룡(きむゆめりゅう· 김희방(きむのぞみくに) :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임란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응하(きむおうなつ) : 순조(じゅん) 때 성리학자(せい理學りがくしゃ)로 문하(門下もんか)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 김정호(金正浩きむげんばい) : 고산자(山子やまご)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문(學問がくもん)에 진력하여 정밀한 지도(地圖ちず) 작성에 뜻을 두고 36여 년간 전국을 돌며「청구도(あおたかし)」와「대동여지도(大東だいとう輿地よち)」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 김규일(きむ圭一けいいち) : 1843~1894. 본관은 청도. 자는 자범(はん), 별호는 병운(へいうん). 전북 고창 출생. 동학농민전쟁 당시 무장지역에서 크게 활동하다 체포되어 1894년 12월 12일 52세의 나이로 효수 되었다.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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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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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15,596가구 64,383명
  • 2000년 23,675가구 75,567명
  • 2015년 91,29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