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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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23년 12월) |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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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경상북도 청도군 |
시조 | 김지대( |
원시조 | 김알지( |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군위군, 영주시, 영천시, 청도군 경상남도 거창군, 밀양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금정구, 부산진구, 해운대구 울산광역시 울주군 전라북도 고창군, 정읍시 전라남도 해남군, 화순군 충청남도 부여군 |
주요 인물 | 김선장, 김한귀, 김점, 숙공궁주, 김난상, 김희방, 김정호, 김윤정, 김동휘, 김재영, 김석규, 김호복, 김경진 |
인구(2015년) | 91,293명 |
청도 김씨(
역사
[편집]시조 김지대(
이듬해 1218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 첨서추밀원사(簽書
오산군(鰲山
본관
[편집]청도(
인물
[편집]고려 인물
[편집]- 김선장(
金 善 莊 ) : 김지대의 아들로 1340년(충혜왕 복위1) 조적(曺頔)의 난으로 왕(王 )이 원(元 )나라에 불려갈 때 호종(扈從 )하여 일등공신(一等 功臣 )에 책록되었다. - 김한귀(
金 漢 貴 ) :김지대의 증손(曾孫 )으로 공민왕(恭 愍王) 때 동경도병마사(東京 道 兵馬 使 )로 홍건적(紅 巾 賊 )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崔 瑩)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한룡(
金 漢 龍 ) : 김한귀(金 漢 貴 )의 아우로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恭 愍王)을 호종(扈從 )하고 흥룡사(興 龍 寺 )로 갔다가 중신(重臣 ) 김용(金 鏞)이 난을 일으켜 환관(宦官 ) 안도치(安 都 赤 )와 우정승(右 政 丞 ) 홍언박(洪 彦博) 등을 살해할 때 함께 순절한 절신이다.
조선 인물
[편집]- 김점(
金 漸 ) : 김지대의 6세손이며, 김한귀의 손자로 조선 태종 때 공조참의(工 曹參議 )· 예조참의(禮 曹參議 )· 참찬(參 贊 )을 지냈으며, 딸이 조선 태종의 후궁 숙공궁주 김씨이다. 조선 세종(世 宗 ) 때 형조(刑 曹)· 호조판서(戶 曹判書 )와 평안도 관찰사(平安 道 關 察使)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호강공(胡 剛 公 )이다. - 김차산(
金次 山 ) : 관찰사 김호우의 5세손으로 세조(世 祖 ) 때 단종복위(端 宗 復位 )를 도모하다가 능주(綾 州 )의 천태산(天台山 )에 은거(隱居 )하였다. - 김난상(
金 鸞祥) : 중종(中 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을사사화(乙 巳 士 禍 )로 남해(南海 )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선조(宣 祖 ) 때 직제학(直 提 學 )을 거쳐 대사성(大 司 成 )에 올랐다. 경상북도 영주시 오산서원(梧山書院 )에 배향되었다. - 김몽룡(
金 夢 龍 ) · 김희방(金 希 邦 ) :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임란공신에 책록되었다. - 김응하(
金 應 夏 ) : 순조(純 祖 ) 때 성리학자(性 理學 者 )로 문하(門下 )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 김정호(
金正浩 ) : 고산자(古 山子 )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문(學問 )에 진력하여 정밀한 지도(地圖 ) 작성에 뜻을 두고 36여 년간 전국을 돌며「청구도(靑 丘 圖 )」와「대동여지도(大東 輿地 圖 )」를 완성하여 우리나라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 김규일(
金 圭一 ) : 1843~1894. 본관은 청도. 자는 자범(子 範 ), 별호는 병운(丙 云 ). 전북 고창 출생. 동학농민전쟁 당시 무장지역에서 크게 활동하다 체포되어 1894년 12월 12일 52세의 나이로 효수 되었다.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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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편집]- 1985년 15,596가구 64,383명
- 2000년 23,675가구 75,567명
- 2015년 91,29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