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기씨
관향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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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기우성( |
중시조 | 기순우( |
집성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전라남도 장성군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연리 황해도 금천군 좌면 암사리 |
주요 인물 | 기탁성, 기홍수, 기윤숙, 기자오, 기철, 기황후, 숙의 기씨, 기건, 기준, 기대항, 기대승, 기자헌, 기정진, 기삼연, 기산도, 기세훈, 기세춘, 기찬수, 기형도, 기모란 |
인구(2015년) | 27,379명 |
비고 | 행주기씨 대종중 |
행주 기씨(
시조는 마한 원왕(
기원
[편집]행주 기씨 족보에서 기자(
역사
[편집]기우성의 65세손인 기문유(
인물
[편집]고려
[편집]- 기탁성(
奇 卓 誠 , ? ~ 1179) :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판병부사(判 兵部 事 ), 문하시랑 평장사(門下 侍 郎 平 章 事 )·판이부사(判 吏部事 )가 되었다. - 기홍수(
奇 洪 壽 , 1148 ~ 1209) : 1194년(명종 24) 추밀원부사(樞密院 副使 ), 1197년 참지정사 판병부사(參 知 政事 判 兵部 事 ), 수사도 중서시랑 평장사감수국사 판병부사 태자태부(守司 徒 中書 侍 郎 平 章 事 監修 國史 判 兵部 事 太子 太 傅 ), 1199년(신종 2) 수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守 太 尉 門下 侍 郎 平 章 事 ), 1200년 수태사 주국(守 太 師 柱 國 ), 1201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 평장사(門下 侍 郎 同中 書 門 下平 章 事 )를 거쳐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壁 上 三韓三重大匡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가 되었다. - 기윤숙(
奇 允 肅, ? ~ 1257) : 문하시랑평장사 - 기철(
奇 轍 , ? ~ 1356) : 고려 후기 권문세족 - 기황후 (? ~ 1370) : 원나라의 마지막 황후, 기철의 여동생
- 기중평(
奇 仲平 ) : 고려 후기 권문세족이며, 기면(寄 勉 )의 부친
조선
[편집]- 기면(
奇 勉 . ?~?):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조선조 정종대왕의 후궁 숙의 기씨의 부친이다. 고려조 권문 세족인 기중평(奇 仲平 )의 아들이다. 외조모는 고려조 태자태사를 지낸 진위 이씨 이중육(李 仲 育 )의 딸이다. - 기건(?~1460) : 조선의 문신이다.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 호조참판,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 하였다.
- 기준(
奇 遵, 1492~1521) : 1514년(중종 9년) 호는 복재이다.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1519년 응교를 지내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교살 되었다. 1545년(인종 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민(文 愍). - 기대항(
奇 大 恒 , 1519~1564) : 1546년(명종 1) 복재 기준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1564년 공조참판·한성부윤에 올랐다. 시호는 정견(貞 堅 ). - 기대승(
奇 大 升 , 1527~1572) :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때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文 憲 ) - 기효간(
奇 孝 諫. 1530~1593) : 호 금강(錦江 ). 하서 김인후(金 麟厚))의 문인으로 호남의 은덕군자(隱 德 君子 )이다. 서태수·변이중·변성온(卞成溫 )·변성진 등과 교유 하였으며, 죽은 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 되고, 호조참의에 추증 되었다. 장성 추산서원 배향 - 기효증(
奇 孝 曾. 1550~1616) : 문헌공 기대승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으로 의병장에 추대 되어 군사와 군량을 의주까지 수송하였다. - 기자헌(
奇 自 獻 , 1562~1624) : 한성부윤 기대항의 손자로,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14년 영의정에 올랐다. 1620년 덕평부원군(德平 府 院 君 )에 봉해졌다. - 기윤헌(
奇 允 獻 . 1575~1624) : 영의정 기자헌의 동생으로 1605년(선조 38)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문학, 장령, 안악군수를 역임하였다. - 기준격(
奇 俊 格 . 1594~1624) : 영의정 기자헌의 아들로 정언, 병조좌랑,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에 내응하려 하였다는 혐의로 사형 당하였다. - 기정익(
奇 挺 翼 . 1627~1690) : 호는 송암(松 巖 ). 금강 기효간의 현손, 우암 송시열 문인, 제릉참봉에 제수 되고, 뒤이어 효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장성 추산서원 배향 - 기언관(
奇 彦觀. 1706~?) : 기대승의 6세손, 헌납,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 기언정(
奇 彦鼎. 1716~1797) : 사간 기언관의 동생으로 대사간, 대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 기학경(
奇 學 敬 . 1741~1809] : 기대승의 7세손이며, 사간 기언관의 삼남이다. 사간원 정언, 무장현감,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였다. - 기정진(
奇 正 鎭. 1798~1879) :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시호는 문간(文 簡)이다. 진원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 기양연(
奇 陽 衍. 1827~1895) :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 부교리, 부수찬을 역임하였다. - 기우만(
奇 宇萬. 1846~1916) : 유학자, 항일의병장 - 기삼연(
奇 參 衍. 1851~1908) : 항일의병장 - 기동준(
奇 東 準 . 1860~1918) : 기대승의 후예로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귀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엿다. 기대승의 문집을 발간하였다. - 기산도(
奇 山 度 . 1878~1928) : 독립운동가
근 · 현대
[편집]- 기세훈(
奇 世 勳 . 1914~2015) : 고봉 기대승의 후손, 서울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 기동민(
奇 東 旻 , 1966~) : 제20, 21대 국회의원 - 기경량(
奇 庚 良 , 1978~) : 역사학자
과거 급제자
[편집]행주 기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2명, 무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다.[1]
- 무과
기경복(
- 문과
기경현(
- 생원시
기경례(
- 진사시
기계상(
항렬자
[편집]90세 | 91세 | 92세 | 93세 | 94세 | 9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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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宇) | 도( |
노( |
서(舒) | 호( |
간( |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편집]인구
[편집]- 1985년 5,244가구, 21,756명
- 2000년 6,660가구, 21,536명
- 2015년 27,37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