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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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의 3요소: 교육자와 학습자(상황에 따라 교육자와 학습자가 동일한 경우도 있음) 그리고 교육수단(주로 교재)
- 형식교육(학교교육)
Formal Education
형식교육은 학교교육이라고도 하며,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과 같이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졸업장이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을 말한다.
형식교육은 학교교육이라고도 하며,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과 같이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졸업장이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을 말한다.
- 비형식교육(사회교육)
Non-Formal Education
비형식교육이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구조화된 학습활동을 말한다. 형식교육과 동일하게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화된 교수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나 국가의 '학력·학위' 인증을 받지 않은 교육이다.
비형식교육이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구조화된 학습활동을 말한다. 형식교육과 동일하게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화된 교수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나 국가의 '학력·학위' 인증을 받지 않은 교육이다.
- 부설형
- 초·중등 및 대학(원) 부설
- 공개강좌 (최고위과정)
- 공공기관 부설
- 사업장 부설
- 시민사회단체 부설
- 언론기관 부설
- 독립형
- 원격형태
- 지식·인력개발형태
- 전담형
- 평생학습관
Informal Education
무형식교육은 형식교육이나 비형식교육 이외에 학교 밖이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비조직적 교육 활동이다. 어떤 기관에 참여하거나 강사·교사로부터 배우지 않고, 학습자가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무형식교육은 형식교육이나 비형식교육 이외에 학교 밖이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비조직적 교육 활동이다. 어떤 기관에 참여하거나 강사·교사로부터 배우지 않고, 학습자가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언중은 교육이라는 분야를 마구잡이로 쓰고 있으나 이보다 좀 더 구체화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교육 속 교과엔 학문 지식이 많이 동원되나, 그 또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전달력' 자체인즉 '어떻게 잘 이해하게 할 지'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 학문과의 큰 차이점이다. 학습자의 평균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사실 내용만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면 오히려 이해도나 설득력을 깎아먹는 것이 그 예다. 그래서 특정 교과를 편성할 때도 단원 배치 순서나 선후 연계도를 크게 신경 쓴다. 이 과정에서 용어가 순화되거나 새로 형성되기도 하며, 이론적 엄밀함은 다소 떨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미적분, 물리학 등이 대표 예시).
또한, 세상엔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많지만, 인간의 지능이나 정서 발달에 큰 효율성이 없는 지식(가령, 원리나 큰 이유가 없는 나열식 지식)은 되도록 문서화 교과에서 배제토록 하고 있다. 특히 살아가면서 터득하는 지혜처럼 비문서성 교육(굳이 문서화할 필요가 없거나 문서화할수록 오히려 교육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들)[2]은 생활 교육의 영역으로, 교과와는 구별된다.
또한, 세상엔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많지만, 인간의 지능이나 정서 발달에 큰 효율성이 없는 지식(가령, 원리나 큰 이유가 없는 나열식 지식)은 되도록 문서화 교과에서 배제토록 하고 있다. 특히 살아가면서 터득하는 지혜처럼 비문서성 교육(굳이 문서화할 필요가 없거나 문서화할수록 오히려 교육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들)[2]은 생활 교육의 영역으로, 교과와는 구별된다.
자세한 내용은 교과 문서 참고하십시오.
입시 때문에 학년을 진급할수록 교육을 '평가(시험)'와 동일시하는 풍조가 팽배하지만, 평가는 교육의 하위 요소일 뿐이며, 모든 교과에서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교육(敎育 )이란 한자어는 《맹자》의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 天下 英才 而敎育 之 )에서 따온 단어이다.[5] 한자를 풀이해보면 갓난아이를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부연을 하자면 敎 는 爻와 子 의 합친자(이끌 교)에 攵(치다 복)가 합친 글자다. '爻+子 '는 자식이 본받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고, 거기에 회초리가 들어가는 식이다. 즉, 본받도록 하고 사랑의 매를 든다는 소리지, 무턱대고 때려키운다는 뜻이 아니다.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경우에는 결국 누군가가 배우라고 준 것이다.
서구권에서의 교육이란 단어는 Education과 Pedagogy다. Pedagogy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노예(παιδαγωγός. Paidagogos)[6]에서 유래했는데 교육노예가 어린이를 배움의 장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잘 알려진 Education은 라틴어 'educo', 'educare'와 'educe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e(밖으로), duco(꺼낸다)는 뜻으로 각각 '양육하다', '바깥으로 끄집어내다' 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선천적 능력을 발현시킨다는 의미.
서구권에서의 교육이란 단어는 Education과 Pedagogy다. Pedagogy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노예(παιδαγωγός. Paidagogos)[6]에서 유래했는데 교육노예가 어린이를 배움의 장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잘 알려진 Education은 라틴어 'educo', 'educare'와 'educe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e(밖으로), duco(꺼낸다)는 뜻으로 각각 '양육하다', '바깥으로 끄집어내다' 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선천적 능력을 발현시킨다는 의미.
- 공교육: 국가 및 자치단체가 운영한다.
- 고등교육: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전문 대학 이상의 수준이 이루어지며 3차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오해: 흔히들 고등학교가 고등교육이라고 착각하는데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왜 고등교육이 아닌데 고등학교라고 불리는지는 하단의 교육사 속 통감부 시절 교육을 보면 나와 있다.
- 평생교육: 인간은 학교를 졸업하면 끝인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우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한다. 게다가 자격이 필요한 경우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 또 교육을 받거나, 이수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기거나 취미를 갖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며 좁게는 각 회사나 기업의 교육팀과 각 대학별 평생교육원에서 평생교육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교육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 영국의 교육 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교육이 '가치어'라는 점과 교육의 준거에 주목했다.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이며 이처럼 교육은 좋고 선한 의미에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 피터스의 주장이자 현대 교육학에서 유의미한 이론이다. 교육의 준거란 규범적 준거, 인지적 준거, 과정적 준거를 말한다. 규범적 준거란 교육목적으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준거는 교육내용에 관련된 것이며 교육받은 사람이란 부분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적인 지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적 준거는 교육이 교육받는 학습자를 존중하여 인간의 이해와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함을 말한다. 최소한 이 3가지 준거를 가지지 못하면 교육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된다.'라고 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고,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은 교육을 받는 유일한 동물이며, 교육을 통해 동물성 대신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자 양성을 주요목표로 보았고 도덕적 인격교육을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왜 교육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미 있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가정하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왜 인간에게 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왜 사람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의 정당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 플라톤은 '덕(
德 )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교육이 과연 사람을 훌륭해지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철인 통치자의 자연적 소양을 중시하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 가능성의 문제가, '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방법의 문제나 '교육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하는 한계의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즉,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교육은 역시 정당성을 잃게 된다.
- 해당 문서 참조.
한 인간에게 교육을 시작할 때의 방향이, 훗날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교육이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인간은 날 때부터 배움을 원한다.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 (十 年 樹木 百 年 樹 人 )
교육은 홍익인간(弘 益 人間 )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 )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 共榮 )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모든 올바른 교육은 전생애의 주요 사업인 자기 교육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야 한다.힐티(스위스의 철학자)
나는 어린 정신을 명예와 자유를 향해 길러내려고 하는 교육에서는 모든 폭력을 반대합니다. 엄격과 강제에는 뭔가 노예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성과 지혜와 기술로 이룰 수 없는 것은 힘으로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교육은 젊은이들에게는 억제하는 효력이며, 노인들에게는 위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재산, 부자들에게는 장식품이다.
많은 선량한 학생들은 어버이를 위해, 단 미래의 아내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임어당(林 語 堂 ;중국의 문학자)
교사가 너무 엄격하면 생도는 자립 정신을 잃는다.스마일즈(영국의 저술가)
학교란 학생 자신의 두뇌이다.
대학은 빛과 자유와 학문의 장소여야 한다.
[1] 중국어로는 jiàoyù(자오위), 일본어로는 きょういく(쿄-이쿠)라고 읽는다.[2] 실제로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생활 · 가치관 · 예체능 영역을 마구잡이로 교과문서화하여 효율성이나 본질을 끌어내지 못하는 분야가 많다. 도덕 교과가 대표적인 예시로, 지금의 도덕 교육은 철학이나 사상 교육과 아울러 혼재하는 형태를 띤다.
이렇게 교과문서화하면 곧 명시적 지식이 되어 필기 시험에 출제할 만한 구실로 작용하고, 결국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다만, 관심도를 끌어올리려면 문서화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실상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학생들의 관심도는 수직하락한다. 따라서 이러한 생활교육은 대개 시험이 큰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 초등교육에 알맞다고 주장된다. [3] 좁게 보면 교재나 교과서나 실험도구, PPT 같은 매체 같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교과, 학문 등 교육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교육부라거나 한국으로 치면 한국교육개발원[5] 원문은 맹자 진심장의 구절이다. 해당 구절을 소개하자면孟子 曰 君子 有 三 樂 而王天下 不 與 存 焉 군자에게는 세 기쁨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은 이에 없다 父母 俱存 兄弟 無 故 一 樂 也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으니 그것이 첫 번째 기쁨이요, 仰 不 愧於天 俯不怍於人 二 樂 也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기쁨이며, 得 天下 英才 而敎育 之 三樂 也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고 기름을 얻는 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영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는 소리다. 삼락이라는 한자어의 연원이기도 하다.[6] 갈라디아서에도 이 단어가 나오는데, 한국어성경은 "몽학선생"(개역한글판), "초등교사"(개역개정판), "후견인"(공동번역)으로 번역했다.[7] 학력에 따라 생애 임금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의 폭이 크지는 않음[8] 단, 빈민층과 부유층은 교육제도가 의도한 계층이 아니다.[9] 스위스나 대한민국은 예외[10] 안전교육을 하기 때문이다.[11] 대한민국만 해도 80년대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안 했고 반공 교육 위주만 하였다. 다만, 90년대 이후부터 '정치·경제' 교과서에 민주주의 교육을 크게 다루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노동삼권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교육 수준과 민주화가 무관하다라고 볼 것은 아니며, 민주화가 교육 수준 상승만으로 당연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2] 말 그대로 100년 앞, 즉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워야 할 계획. 저위에 관자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원래의 의미이다.
이렇게 교과문서화하면 곧 명시적 지식이 되어 필기 시험에 출제할 만한 구실로 작용하고, 결국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다만, 관심도를 끌어올리려면 문서화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실상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학생들의 관심도는 수직하락한다. 따라서 이러한 생활교육은 대개 시험이 큰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 초등교육에 알맞다고 주장된다. [3] 좁게 보면 교재나 교과서나 실험도구, PPT 같은 매체 같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교과, 학문 등 교육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교육부라거나 한국으로 치면 한국교육개발원[5] 원문은 맹자 진심장의 구절이다. 해당 구절을 소개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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