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최근 수정 시각:
2020년 홍콩에 적용된 국가보안법에 대한 내용은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
제정 | |
현행 | |
소관 | |
링크 |
제1조(목적)
①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모델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치안유지법으로, 치안유지법의 주요 조항, 조문을 그대로 베꼈다. 애초에 치안유지법도 일본 내의 공산주의자 처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고[5], 당시 한국에는 일본에서 법을 배운 사람이 태반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기 좋았다.
여수·순천 10.19 사건 이후 1948년 12월 1일 '국헌(國憲 )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僭稱 )하거나 그것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에 대해서 최고 무기징역의 형벌을 가하는 등 10개조로 구성된 법률로 제정되었다.
제정 당시의 취지 자체는 국회와 일반 국민들의 공감 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당시의 소장파들이었는데 그들 중 김옥주라는 사람은 1948년 11월16일 '국가보안법안 폐기에 관한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좌우를 막론한 엄청난 반대로 김옥주는 제출 당일 철회했다.
제정 과정은 비교적 순탄하게 넘어갔지만 개정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1949년의 1차 개정[6]은 재적의원 103명 중 99명이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무난히 통과되었고, 1950년 4월 21일 2차 개정[7]에서도 무난히 통과되었다.
1953년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신형법안을 성안하는 단계에서 법사위 안(案 )의 기초자들은 '1948년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신형법(안)의 내란선동·선전죄, 각종 외환죄의 선동·선전죄, 폭발물사용선동죄에 흡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마련하여 본회의에 상정했으나 제1차 투표에서 재석 원수(員數 ) 102인, 가(可 ) 11표, 부(否 ) 0표로, 제2차 투표에서 재석 원수 102인, 가 10표, 부 0표로 다수 국회의원의 기권으로 부결되었다.#
1953년 제정된 형법 부칙 제12조(본법 시행 직전까지 시행되던 다음의 법률, 포고 또는 법령은 폐지한다)는 다른 법률 15개[8]와 함께 국가보안법도 폐지 대상 법령으로 나열하고 있었으나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보다 중시하여 존속하게 되었다.
1958년에 '언론탄압용'이라는 비판을 받은 '인심혹란죄' 규정 등 제3차 개정은 무술경관을 동원하여 끌어낸 야당의원들을 배제하고 자유당 중심으로 3분 만에 가결이 이루어진 '2·4 정치파동'이 있자 195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 '법이론적으로 본 보안법 파동'에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은 "'국회의 절차를 밟아 적법하게 제정된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거나 국민생활에 적합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국민은 그 법률의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켜 입법부의 반성을 촉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이를 "악법도 법률이라는 논법은 여기에 해당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결국 '2·4 정치파동'으로 개정된 신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위한 것으로 3.15 부정선거를 유발했다. 다만, 그 당시 문제가 되었던 조항들은 4.19 혁명 이후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9] 이어 4.19 혁명을 통해 들어선 신정부에서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4차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에 오늘날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불고지죄'와 '반국가단체'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즉,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다르게 이 조항들은 이승만 정권이나 이후의 군사독재 정권이 아니라 자유당을 축출하고 들어선 제2공화국 당시에 추가된 것이다.[10] 게다가 이런 조항들은 수차례의 정권교체에서도 의의를 인정받으며 꾸준히 살아남았다. 이후로도 산발적인 개정을 겪다가 1963년 6월 10일, 1980년 12월 31일에 전면 개정되었다.
1961년에 반공법이 별도로 제정된 바 있으나, 국가보안법과 내용이 중복되는 법률이어서,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하여 반공법 처벌조항을 흡수하는 등의 제6차 개정이 상정·제안·설명 등을 거쳐 가결에 이르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은 채 1980년 12월 31일에 '반공법'을 폐지하고 그 내용을 국가보안법에 통합시켰다.
1991년 제7차 개정에는 1990년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5항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되는 것으로 축소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며 한정합헌[11] 취지 결정#에 맞춰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목적요건을 추가한 여당의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야당의원들에게 심의와 표결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국회의장이 법안에 대한 설명과 심사보고, 수정제의 보고 등 모든 절차를 서면으로 대체하면서 표결 절차를 생략한 채 35초 만에 통과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변란을 시도하는 것을 예방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나 박정희 정부(1963~1979) 때부터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국가변란 시도로 판단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을 억압하고 민주화 운동을 억누르는 역기능이 생겼다.[12] 이 법은 처음 제정되었을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국가보안법이 막 생겼을 때 당시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는 "형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데 왜 국가보안법을 따로 만드느냐"고 평한 바 있고 어떤 국회의원은 "쥐를 잡으라고 사 놓은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씨암탉을 잡듯이 악용될 여지가 많다."고 평할 정도였다. 역기능이 가장 많았던 때가 바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서, 국보법을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용도로 악용하였다. 하도 탄압의 도구로 많이 쓰이다 보니 1990년 헌법재판소가 한정 합헌 결정을 하면서 1991년 8차 개정에서부터는 아예 법을 확대 해석하거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아 두었다. 형법 적용의 기본 원리를 법 내부에 박아둔 법은 이 법 외에는 경범죄처벌법, 옥외광고물관리법 뿐이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때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상당히 강했는데, 그 때만 해도 사상전향제도와 반국가행위자에대한특별조치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 1990년 7월 10일 가입한 대한민국은 규약에 의거하여 제출한 정부 최초보고서를 검토한 유엔이 1992년 자유권규약위원회, 1995년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 아비드 후세인, 1999년 제2차 정부 보고서에 대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로부터 법률의 개정이나 폐지 권고를 받았다.
이에 1997년 12월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여 개정을 공약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치러진 2000년 제16대 국회에서 2000년 11월 27일에 폐지안이, 2001년 4월 27일에 법 개정안이 각 의원 입법으로 발의되었으며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이후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청하는 40여건의 진정이 접수되자 2003년 1월 7일 전원위원회 워크숍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조사·연구를 위하여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기로 결의한 다음 국가보안법에 대한 체계적·심층적 검토를 하여 2003년 8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때도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는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면서 여당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된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공조하여 4대 개혁입법으로 폐지를 추진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으나 7월에 박근혜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한 한나라당이 강력 반발을 하면서 그해 9월 유엔과 국제엠네스티 등 국제기구의 폐지 권고에도 결국 무산되었다. RFA가 보도한이 기사에 의하면 국가보안법에 관한 여론은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 국민 10명 중 6명으로 좀 더 많았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있었고 폐지보다 개정이 우위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당시 남경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법률 내용은 전부 폐지하되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이라도 남기는데 동의했으나 여당 강경파가 폐지안을 고수하면서 법률은 한 자도 고치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보안법이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고,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런 기조는 유지되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이후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춤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유지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리던 공안검사 황교안을 법무부 장관에, 역시 공안검사였던 박한철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이 다시 전성기를 맞는듯 했으나 국정농단 사건으로 힘이 빠지고 탄핵되면서 수원지방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는 등으로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인 찬양, 고무 조항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가보안법이 실질적인 존폐기로에 서 있는 듯 했으나감소 하지만 2018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제14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반포 등에 대한 판단을 하면서 다시 합헌 결정을 내려서 계속 존속하고 있다.[13] 그래도 2017년까지는 국가보안법이 약간정도 활약을 했으나 2018년부터는 일시적으로 남북 간에 평화무드가 강조되면서 국가보안법이 어느정도 주춤했다.
그러나 F-35 도입 반대 운동 간첩 개입 사건 등으로 국가보안법이 다시 활발히 적용되기 시작했고, 2021년 6월 23일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관련해 "폐지가 아닌 존치, 개정"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헌법재판소는 2022년 9월 15일 14시에 대심판정에서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 대해 공개변론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후 선고된 판결문은 2017헌바42, 2017헌바294(병합), 2017헌바366(병합),2017헌가27(병합), 2017헌바431(병합), 2017헌바432(병합), 2017헌바443(병합), 2018헌바116(병합), 2018헌바225(병합), 2019헌가6(병합), 2020헌바230(병합) 참고할 것.
국가보안법(과거 반공법도 포함)을 위반한 사범들이 제일 많이 잡혀들어온 때는 다름 아닌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9년인데, 그 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람이 무려 881명이나 되었다. 사실 국가보안법 창립 이후부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보수정권 50년 때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범이 해마다 100명 이상을 훨씬 넘은 때가 많았고, 정권이 바뀐 후 김대중 정권에서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범들은 무려 100명을 넘었다. 특히 1991년 7차 개정이후인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 10년간(1993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국가보안법 관련 전체 구속자 3,047명중 제7조 관련 구속자는 2,762명으로 90.6%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정권이던 2004년까지 유지되었으나, 2005년부터는 50명 이상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 기준이 2007년까지 유지되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오히려 50명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9년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범들이 다시 50명을 넘었고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다시 100명 가까이 되기 시작하더니 2012년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까지는 다시 100명을 넘었지만 2014년에는 다시 50명 이상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5년에는 다시 70명 이상으로 올랐지만 2016년에는 다시 50명 이하로 떨어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42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이 때 까지는 여전히 40명에 달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잡혔으나, 2018년부터는 남북 간 평화무드가 강조되면서 2017년보다 더욱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줄었는데, 20명으로 줄었다.[14]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국가정보원 직원이 특별사법경찰관리으로 인정되어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경찰과 검찰이 일반수사권에 기하여 따로 수사할 수 있음은 별론이다.[15]
2018년에도 헌재에서 합헌 판결이 나면서 국가보안법은 계속 존속하는 듯 했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국가보안법은 다시 폐지 위기를 맞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이 2020년 10월 22일에 "찬양·고무죄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라 위험성이 높다"며 제7조(찬양고무죄)를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로 '국가보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의원 15명의 서명으로 대표 발의한 데 이어#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현행 국가보안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전면 폐지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진보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2021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10만 국민동의청원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실명 인증한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성립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16]에 나서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청원을 등록하여 10여 일 만인 5월 19일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다음 날 국회는 해당 청원을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했다.# 해당 청원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보수 진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도 5월 13일에 등록되어 6월 9일에 성립되었다.#
2021년 5월 21일부터 1개월 단위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합니다'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각각 60,801명과 29,980명이 서명을 했다.##
국가정보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등이 축소 이관됨에 따라 오남용 소지가 줄었고, 대공 수사에 대한 국가적 대응력을 자체는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로 폐지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여수·순천 10.19 사건 이후 1948년 12월 1일 '국헌(
제정 당시의 취지 자체는 국회와 일반 국민들의 공감 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당시의 소장파들이었는데 그들 중 김옥주라는 사람은 1948년 11월16일 '국가보안법안 폐기에 관한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좌우를 막론한 엄청난 반대로 김옥주는 제출 당일 철회했다.
제정 과정은 비교적 순탄하게 넘어갔지만 개정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1949년의 1차 개정[6]은 재적의원 103명 중 99명이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무난히 통과되었고, 1950년 4월 21일 2차 개정[7]에서도 무난히 통과되었다.
1953년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신형법안을 성안하는 단계에서 법사위 안(
1953년 제정된 형법 부칙 제12조(본법 시행 직전까지 시행되던 다음의 법률, 포고 또는 법령은 폐지한다)는 다른 법률 15개[8]와 함께 국가보안법도 폐지 대상 법령으로 나열하고 있었으나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보다 중시하여 존속하게 되었다.
1958년에 '언론탄압용'이라는 비판을 받은 '인심혹란죄' 규정 등 제3차 개정은 무술경관을 동원하여 끌어낸 야당의원들을 배제하고 자유당 중심으로 3분 만에 가결이 이루어진 '2·4 정치파동'이 있자 195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 '법이론적으로 본 보안법 파동'에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은 "'국회의 절차를 밟아 적법하게 제정된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거나 국민생활에 적합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국민은 그 법률의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켜 입법부의 반성을 촉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이를 "악법도 법률이라는 논법은 여기에 해당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결국 '2·4 정치파동'으로 개정된 신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위한 것으로 3.15 부정선거를 유발했다. 다만, 그 당시 문제가 되었던 조항들은 4.19 혁명 이후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9] 이어 4.19 혁명을 통해 들어선 신정부에서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4차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에 오늘날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불고지죄'와 '반국가단체'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즉,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다르게 이 조항들은 이승만 정권이나 이후의 군사독재 정권이 아니라 자유당을 축출하고 들어선 제2공화국 당시에 추가된 것이다.[10] 게다가 이런 조항들은 수차례의 정권교체에서도 의의를 인정받으며 꾸준히 살아남았다. 이후로도 산발적인 개정을 겪다가 1963년 6월 10일, 1980년 12월 31일에 전면 개정되었다.
1961년에 반공법이 별도로 제정된 바 있으나, 국가보안법과 내용이 중복되는 법률이어서,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하여 반공법 처벌조항을 흡수하는 등의 제6차 개정이 상정·제안·설명 등을 거쳐 가결에 이르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은 채 1980년 12월 31일에 '반공법'을 폐지하고 그 내용을 국가보안법에 통합시켰다.
1991년 제7차 개정에는 1990년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5항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되는 것으로 축소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며 한정합헌[11] 취지 결정#에 맞춰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목적요건을 추가한 여당의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야당의원들에게 심의와 표결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국회의장이 법안에 대한 설명과 심사보고, 수정제의 보고 등 모든 절차를 서면으로 대체하면서 표결 절차를 생략한 채 35초 만에 통과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변란을 시도하는 것을 예방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나 박정희 정부(1963~1979) 때부터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국가변란 시도로 판단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을 억압하고 민주화 운동을 억누르는 역기능이 생겼다.[12] 이 법은 처음 제정되었을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국가보안법이 막 생겼을 때 당시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는 "형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데 왜 국가보안법을 따로 만드느냐"고 평한 바 있고 어떤 국회의원은 "쥐를 잡으라고 사 놓은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씨암탉을 잡듯이 악용될 여지가 많다."고 평할 정도였다. 역기능이 가장 많았던 때가 바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서, 국보법을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용도로 악용하였다. 하도 탄압의 도구로 많이 쓰이다 보니 1990년 헌법재판소가 한정 합헌 결정을 하면서 1991년 8차 개정에서부터는 아예 법을 확대 해석하거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아 두었다. 형법 적용의 기본 원리를 법 내부에 박아둔 법은 이 법 외에는 경범죄처벌법, 옥외광고물관리법 뿐이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때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상당히 강했는데, 그 때만 해도 사상전향제도와 반국가행위자에대한특별조치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 1990년 7월 10일 가입한 대한민국은 규약에 의거하여 제출한 정부 최초보고서를 검토한 유엔이 1992년 자유권규약위원회, 1995년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 아비드 후세인, 1999년 제2차 정부 보고서에 대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로부터 법률의 개정이나 폐지 권고를 받았다.
이에 1997년 12월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여 개정을 공약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치러진 2000년 제16대 국회에서 2000년 11월 27일에 폐지안이, 2001년 4월 27일에 법 개정안이 각 의원 입법으로 발의되었으며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이후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청하는 40여건의 진정이 접수되자 2003년 1월 7일 전원위원회 워크숍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조사·연구를 위하여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기로 결의한 다음 국가보안법에 대한 체계적·심층적 검토를 하여 2003년 8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때도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는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면서 여당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된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공조하여 4대 개혁입법으로 폐지를 추진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으나 7월에 박근혜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한 한나라당이 강력 반발을 하면서 그해 9월 유엔과 국제엠네스티 등 국제기구의 폐지 권고에도 결국 무산되었다. RFA가 보도한이 기사에 의하면 국가보안법에 관한 여론은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 국민 10명 중 6명으로 좀 더 많았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있었고 폐지보다 개정이 우위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당시 남경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법률 내용은 전부 폐지하되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이라도 남기는데 동의했으나 여당 강경파가 폐지안을 고수하면서 법률은 한 자도 고치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보안법이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고,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런 기조는 유지되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이후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이 주춤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유지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리던 공안검사 황교안을 법무부 장관에, 역시 공안검사였던 박한철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이 다시 전성기를 맞는듯 했으나 국정농단 사건으로 힘이 빠지고 탄핵되면서 수원지방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는 등으로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인 찬양, 고무 조항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가보안법이 실질적인 존폐기로에 서 있는 듯 했으나감소 하지만 2018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제14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반포 등에 대한 판단을 하면서 다시 합헌 결정을 내려서 계속 존속하고 있다.[13] 그래도 2017년까지는 국가보안법이 약간정도 활약을 했으나 2018년부터는 일시적으로 남북 간에 평화무드가 강조되면서 국가보안법이 어느정도 주춤했다.
그러나 F-35 도입 반대 운동 간첩 개입 사건 등으로 국가보안법이 다시 활발히 적용되기 시작했고, 2021년 6월 23일 박지원 국정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관련해 "폐지가 아닌 존치, 개정"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헌법재판소는 2022년 9월 15일 14시에 대심판정에서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 대해 공개변론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후 선고된 판결문은 2017헌바42, 2017헌바294(병합), 2017헌바366(병합),2017헌가27(병합), 2017헌바431(병합), 2017헌바432(병합), 2017헌바443(병합), 2018헌바116(병합), 2018헌바225(병합), 2019헌가6(병합), 2020헌바230(병합) 참고할 것.
국가보안법(과거 반공법도 포함)을 위반한 사범들이 제일 많이 잡혀들어온 때는 다름 아닌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9년인데, 그 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람이 무려 881명이나 되었다. 사실 국가보안법 창립 이후부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보수정권 50년 때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범이 해마다 100명 이상을 훨씬 넘은 때가 많았고, 정권이 바뀐 후 김대중 정권에서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잡혀온 사범들은 무려 100명을 넘었다. 특히 1991년 7차 개정이후인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 10년간(1993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국가보안법 관련 전체 구속자 3,047명중 제7조 관련 구속자는 2,762명으로 90.6%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정권이던 2004년까지 유지되었으나, 2005년부터는 50명 이상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 기준이 2007년까지 유지되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오히려 50명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9년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범들이 다시 50명을 넘었고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다시 100명 가까이 되기 시작하더니 2012년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까지는 다시 100명을 넘었지만 2014년에는 다시 50명 이상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5년에는 다시 70명 이상으로 올랐지만 2016년에는 다시 50명 이하로 떨어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42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이 때 까지는 여전히 40명에 달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잡혔으나, 2018년부터는 남북 간 평화무드가 강조되면서 2017년보다 더욱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줄었는데, 20명으로 줄었다.[14]
국가보안법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국가정보원 직원이 특별사법경찰관리으로 인정되어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경찰과 검찰이 일반수사권에 기하여 따로 수사할 수 있음은 별론이다.[15]
2018년에도 헌재에서 합헌 판결이 나면서 국가보안법은 계속 존속하는 듯 했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국가보안법은 다시 폐지 위기를 맞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이 2020년 10월 22일에 "찬양·고무죄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라 위험성이 높다"며 제7조(찬양고무죄)를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로 '국가보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의원 15명의 서명으로 대표 발의한 데 이어#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현행 국가보안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전면 폐지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진보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2021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10만 국민동의청원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실명 인증한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성립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16]에 나서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청원을 등록하여 10여 일 만인 5월 19일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다음 날 국회는 해당 청원을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했다.# 해당 청원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보수 진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도 5월 13일에 등록되어 6월 9일에 성립되었다.#
2021년 5월 21일부터 1개월 단위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합니다'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각각 60,801명과 29,980명이 서명을 했다.##
국가정보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등이 축소 이관됨에 따라 오남용 소지가 줄었고, 대공 수사에 대한 국가적 대응력을 자체는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로 폐지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한민국 법원은 북한 관련 안보 사범의 처리에 있어서, “북한은 간첩죄의 적용에 있어서 이를 국가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한다”고 판결(대법원 선고 4292형상180, 71도1498호, 82도3036호 등)하여 국가 안보 사범에 대하여는 형법상의 간첩죄(98조)로 의율하면서 북한을 '준적국'으로 취급해오고 있으므로 형법상 '외환의 죄'에 의한 규율이 가능하며 북한을 추종하거나 간첩행위를 하면 형법상 간첩죄로, 그리고 국헌문란, 변란을 일으키면 형법상 내란/외환죄로 처벌된다.[17]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는데, 이 법의 악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를 나타낸 여론도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1948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는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1948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국가보안법을 배격함'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는데, 이 법의 악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를 나타낸 여론도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1948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는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1948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국가보안법을 배격함'
(전략) 오늘의 정치적 혼란, 난마적인 사상의 불통일의 이 현상에서 더구나 정부는 국회의 내각개조론에 까지 불순을 꾸짖는 이러한 이 현상에서 이러한 법의 제정은 대한민국의 전도를 위하여서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교양과 그 자주적 훈련을 위하야 크게 우려할 악법이 될 것을 국회 제공(諸公 )에게 경고코저 한다.
원래 법치국됨은 법망의 정비 교묘(巧妙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법치국의 근대적 발달은 법이 민주적 성격을 가지고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달을 도모하여 그 자주와 권리를 존중하는데서 국가의 통치권력으로써도 이를 보장하고 침해치 않음으로써 정치의 인류사적 공헌을 목표하는데 본의가 있는 것이고 국민을 착취나 지배의 대상으로 포로시하는 그러나 법망의 주밀, 세공화는 법치의 역사성에 반역하는 것이다. 그러한 예가 군왕 전제의 일본이나 독(獨 ), 이(伊 )의 파씨즘국가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원리원칙이 오늘 대한민국을 이 상태에서 그대로 적용될 것이냐고도 말할 것이나 우리는 이러한 원리원칙은 언제나 부인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전도양양할 것을 축복코저 할 때 다시금 이러한 원리를 토대로 입법과 정치가 표(表 )와 리(裏 )의 물샐틈없는 실천력을 발휘하여야 한 것을 주장한다. (후략)
이러한 논란으로 국보법의 순기능과 역기능 대립이 문제가 되어, 2005년 당시 한나라당은 보완, 열린우리당은 보완과 폐지 사이에서 갈등을 했고, 민주노동당은 폐지를 주장했다. 사상적인 제한에 대해서 '양심(Conscience, 사상이나 신념의 상위 개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헌법재판소에서는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법 자체에 기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박아놓았고,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상의 범죄의 구성요건을 규정한 조문 중 비교적 가벼운 죄인 찬양고무죄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하는 한 합헌'이라고 하여 한정 합헌 결정[18]을 했고 이를 토대로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었으며, 개정된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것이다. 다만, 이 당시 합헌 결정에도 헌법재판관의 2/3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 뿐, 표결에 참여했던 헌법재판관의 다수가 (즉, 과반이) 위헌이라고 보았다. 즉 5:4 합헌[19]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미국 국무부가 30일 공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한국의) 법은 언론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제공하고 정부가 대체로 이 권리를 존중했다"면서 "그럼에도 국가보안법과 다른 법,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과 실행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평가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상의 범죄의 구성요건을 규정한 조문 중 비교적 가벼운 죄인 찬양고무죄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하는 한 합헌'이라고 하여 한정 합헌 결정[18]을 했고 이를 토대로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었으며, 개정된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것이다. 다만, 이 당시 합헌 결정에도 헌법재판관의 2/3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 뿐, 표결에 참여했던 헌법재판관의 다수가 (즉, 과반이) 위헌이라고 보았다. 즉 5:4 합헌[19]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미국 국무부가 30일 공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한국의) 법은 언론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제공하고 정부가 대체로 이 권리를 존중했다"면서 "그럼에도 국가보안법과 다른 법,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과 실행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평가했다.#
진중권은 국가보안법 때문에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자신들 내부에서만 하려다 보니 생각이 정체되고 더욱 폐쇄적인 모습을 가진다고 보고 있다. 종북주의자와 모순점이 많은 북한의 체제에 대해 오히려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종북주의자 쪽이 도태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자유론을 서술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입장과 같은데, 오히려 사상을 검열함으로서 그 사상이 아무리 잘못되더라도 자유를 헤칠뿐더러 비판과 토론의 장이 될 기회를 제거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론을 서술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입장과 같은데, 오히려 사상을 검열함으로서 그 사상이 아무리 잘못되더라도 자유를 헤칠뿐더러 비판과 토론의 장이 될 기회를 제거해버린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부분은 그렇다쳐도, 북한 뿐만 아니라 다른 반국가세력 및 적대국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게 해야 진짜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악영향을 끼치는 반국가세력은 북한 외에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는데, 정작 이에 대한 부분은 미흡하다. 1991년 개정 시부터 '국가 변란' 개념이 추가됐으나, 현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국가 변란세력은 법적으로 실질적 위험을 초래할 조직이 나오지 않는 한 SF 소설에나 나올 정도로 더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반국가단체의 좋은 예가 IS, 즉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테러 단체들이다. 국가보안법의 목적에 맞추어 보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채 IS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자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IS에 가담한 자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하거나 처벌하였다는 사례가 없다.[20]
2019년 7월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한 육군 전역자가 입대 전부터 IS에 가입을 시도하고, 폭발물 관련 장비를 훔치는 등 자생적 테러를 준비한 정황이 적발되었으나, 정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을 당시에는 소련, 중공 등의 제2세계 국가를 겨냥한 "해외공산세력"이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없어졌다. 혹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해야 할 3대 근원(3.1운동, 임시정부, 4·19의거)을 부정하는 악질 친일세력과 4·19 부정세력 역시 국보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즉, 이 법은 사실상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 법인 셈. 테러단체에 가담한 자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면 IS나 알 카에다 등을 "해외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반국가세력에 대한 처벌조항도 넣는 등 법률 자체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반국가단체의 좋은 예가 IS, 즉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테러 단체들이다. 국가보안법의 목적에 맞추어 보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채 IS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자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IS에 가담한 자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하거나 처벌하였다는 사례가 없다.[20]
2019년 7월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한 육군 전역자가 입대 전부터 IS에 가입을 시도하고, 폭발물 관련 장비를 훔치는 등 자생적 테러를 준비한 정황이 적발되었으나, 정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을 당시에는 소련, 중공 등의 제2세계 국가를 겨냥한 "해외공산세력"이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없어졌다. 혹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해야 할 3대 근원(3.1운동, 임시정부, 4·19의거)을 부정하는 악질 친일세력과 4·19 부정세력 역시 국보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즉, 이 법은 사실상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 법인 셈. 테러단체에 가담한 자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면 IS나 알 카에다 등을 "해외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반국가세력에 대한 처벌조항도 넣는 등 법률 자체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제7조에 규정된 찬양고무죄는 특히 위헌성 논란이 있다. 1991년 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요소가 포함되었다.
헌법 제37조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
다만 징병제와 관련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에 의하여 제한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 덧붙여지는 '제한하는 경우에도 과잉금지의 원칙을 준수하여 제한하는지, 또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조항의 본질내용침해금지가 어느 정도 선까지를 포함하고 있는지가 관건인 부분이다. '자기 의견을 마음 내키는 대로 개진해도 좋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온갖 명예훼손과 무고죄를 처벌할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는 말도 있으나 미국처럼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는 게 맞다는 말도 있다. 자세한 사항은 법대 교수들이 쓴 헌법 교과서 기본권 파트를 참조하면 기본권의 제한과 충돌에 관한 해석을 알 수 있다.
|
한편, 국가보안법이 인터넷 검열의 도구로 쓰인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박정근 사건이 있다. 세계적으로 '북한을 조롱할 목적으로 리트윗을 했는데 리트윗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속된 사건'이라고 외신뉴스들이 크게 다뤘던 사건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검열'과 '인터넷 게시글 대한 사후적인 형사처벌'을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나무위키 등 인터넷에서 통매음 등을 사후 검열로 비판하는 것과 다르게 헌법재판소는 '사후 검열'을 인정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 대해 '인터넷 검열로 제약하는 것보다 사후적 형사처벌이 합리적이다'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2010년대 이후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는 없다. '북한을 반국가단체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헌재법 제68조 제2항 위헌소원은 각하된 사례가 있다.
CNN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2008년에 5명이 북한 관련 게시물로 인해 기소됐고, 2년 뒤에는 기소자가 82명으로 그 수가 증가했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한국 정부 비판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강제 삭제된 글이 2009년 14,430건에서 2011년 67,300건으로 폭증했지만 유죄가 선고될 확률은 20%에 그쳤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례를 팔로우하는 블로그 포스팅 #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논란으로는 "정치와 사상의 자유라는 점에서 이를 규제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물론 프랑스도 전후에는 나치 독일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옹호의 기미가 보이는 인사들을 싸그리 잡아 족치는 작업을 했고, 그 독일은 지금도 네오나치에 관련한 정당이나 단체의 결성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를 개인적으로 찬양하거나 연구하는 개인/단체는 국가가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대신 광장으로 기어나오면 처벌한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도 실은 국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광신집단' 수준이기 때문에 법 적용에 융통성을 발휘해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자유로이 열린 공간이므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개인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맡길 수준이 된다고 못박고 개개인에게 책임과 권한을 맡겨야 진정한 자유국가라고 보기도 한다. 원로 법학자들 중 (앞서 말한)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치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관점에 의거한 것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의 논란이므로 여러 정치적 입장과 역사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검열'과 '인터넷 게시글 대한 사후적인 형사처벌'을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나무위키 등 인터넷에서 통매음 등을 사후 검열로 비판하는 것과 다르게 헌법재판소는 '사후 검열'을 인정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 대해 '인터넷 검열로 제약하는 것보다 사후적 형사처벌이 합리적이다'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2010년대 이후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는 없다. '북한을 반국가단체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헌재법 제68조 제2항 위헌소원은 각하된 사례가 있다.
CNN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2008년에 5명이 북한 관련 게시물로 인해 기소됐고, 2년 뒤에는 기소자가 82명으로 그 수가 증가했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한국 정부 비판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강제 삭제된 글이 2009년 14,430건에서 2011년 67,300건으로 폭증했지만 유죄가 선고될 확률은 20%에 그쳤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례를 팔로우하는 블로그 포스팅 #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논란으로는 "정치와 사상의 자유라는 점에서 이를 규제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물론 프랑스도 전후에는 나치 독일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옹호의 기미가 보이는 인사들을 싸그리 잡아 족치는 작업을 했고, 그 독일은 지금도 네오나치에 관련한 정당이나 단체의 결성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를 개인적으로 찬양하거나 연구하는 개인/단체는 국가가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대신 광장으로 기어나오면 처벌한다.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도 실은 국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광신집단' 수준이기 때문에 법 적용에 융통성을 발휘해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자유로이 열린 공간이므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개인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맡길 수준이 된다고 못박고 개개인에게 책임과 권한을 맡겨야 진정한 자유국가라고 보기도 한다. 원로 법학자들 중 (앞서 말한)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치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관점에 의거한 것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의 논란이므로 여러 정치적 입장과 역사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각종 처벌규정들이 사문화 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가장 큰 폐해라 할 수 있다. 특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므로 가장 북한에 대한 연구 수준과 이해도가 높아야 할 한국이 오히려 근년까지도 일본, 중국 등 주변국 자료에 매달려야 했던 치명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돈만 있으면 북한으로부터 수많은 자료를 온/오프라인으로 들여올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로 인해 연구자 및 연구기관들이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자료에는 제한이 있고, 이에 따라 연구기관들은 전문 업체들에게 터무니없는 비용을 지불하고 해당 자료들을 구매해 까다로운 보안절차를 거쳐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동신문 1년치 구독하는데 족히 100만원은 나가는데, 당연히 이 돈들은 국민의 세금 아니면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간다.[21]
이나마도 해당 기관이 북한 연구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자료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기라도 하지, 그도 아니면 명색이 국책연구기관들조차 자체 북한자료가 없이 깜깜이 연구를 진행하는 판이다. 이러다보니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보수 성향 연구자들도 정작 연구실에 가보면 승인받지 않은 북한 자료가 몇개씩은 있는 게 예사다. 물론 요새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같은 언론 매체들과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22] 같은 대외 선전매체들은 인터넷을 통해 VPN을 써서 우회적으로 접속하면 볼 수는 있지만,[23] 이놈의 국가보안법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보안업무규정 때문에 승인받은 경로를 통해 자료를 입수했는지 증명해야 하니 돈 주고 정식으로 자료를 입수하지 않으면 결국 자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까다로운 제약은 한편으로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북한, 통일 연구를 싹부터 잘라버리는 요인이 된다. 서울에는 그나마 국립중앙도서관(통일부 북한자료센터)이나 국회도서관,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 등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자료 허브들이 존재하지만, 지방은 현실적으로 큰 맘 먹고 날 잡고 서울 올라오지 않으면 접촉 가능한 북한 자료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방 기관들이 보유하는 자료들도 대부분 정기간행물이나 영상물 위주로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국외에서 조총련 등 북한과 교류가 이어지는 집단과의 접촉 및 협업 역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조항에 걸리다보니 매우 위축되거나 법망을 피해서 진행되는 등[24]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사례로 2022년 '북한 국가종교의 이해'라는 주체사상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대일 박사가 이적표현물 소지등 국가보안법 위반의 혐의로 압수수색 및 체포 되었다. #[25]
다만 학술적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허용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어느 정도 관대한 모습을 보여줬다. 1974년, 정확히는 긴급조치 1호 발효 직후에도 이전에 국립도서관에서 마오쩌둥의 서적과 무려 공산당 선언을 복사해 친구들에게 유포한 사람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는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구형받았다가 법정에서 '피고인이 범행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데다가 학문 연구 범위를 벗어나 북한을 이롭게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기도 했으며, # 전두환 정부 시기인 1983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순수한 학문연구의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의 문서 등을 소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82도2894
그치만 판결이 나기 전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 수사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학술적 목적에서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이나마도 해당 기관이 북한 연구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자료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기라도 하지, 그도 아니면 명색이 국책연구기관들조차 자체 북한자료가 없이 깜깜이 연구를 진행하는 판이다. 이러다보니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보수 성향 연구자들도 정작 연구실에 가보면 승인받지 않은 북한 자료가 몇개씩은 있는 게 예사다. 물론 요새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같은 언론 매체들과
이처럼 까다로운 제약은 한편으로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북한, 통일 연구를 싹부터 잘라버리는 요인이 된다. 서울에는 그나마 국립중앙도서관(통일부 북한자료센터)이나 국회도서관,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 등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자료 허브들이 존재하지만, 지방은 현실적으로 큰 맘 먹고 날 잡고 서울 올라오지 않으면 접촉 가능한 북한 자료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방 기관들이 보유하는 자료들도 대부분 정기간행물이나 영상물 위주로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국외에서 조총련 등 북한과 교류가 이어지는 집단과의 접촉 및 협업 역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조항에 걸리다보니 매우 위축되거나 법망을 피해서 진행되는 등[24]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사례로 2022년 '북한 국가종교의 이해'라는 주체사상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대일 박사가 이적표현물 소지등 국가보안법 위반의 혐의로 압수수색 및 체포 되었다. #[25]
다만 학술적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허용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어느 정도 관대한 모습을 보여줬다. 1974년, 정확히는 긴급조치 1호 발효 직후에도 이전에 국립도서관에서 마오쩌둥의 서적과 무려 공산당 선언을 복사해 친구들에게 유포한 사람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는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구형받았다가 법정에서 '피고인이 범행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데다가 학문 연구 범위를 벗어나 북한을 이롭게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기도 했으며, # 전두환 정부 시기인 1983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순수한 학문연구의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의 문서 등을 소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82도2894
그치만 판결이 나기 전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 수사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학술적 목적에서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이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 고무등)과 관련된 문제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북한 체제를 미화하고 선동 및 세뇌를 통해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주입하는 활동이 법적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종북주의자들이 다른 국민들을 대상으로 선동 및 세뇌 활동을 더욱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따라서, 종북주의 세뇌 및 선동이 광범위하게 퍼질 경우, 최악의 경우 종북 정당이 국회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종북주의 선동과 세뇌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는 주장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러한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국민들의 선동에 대한 취약성을 떠나서, '찬양 및 고무에 대한 규정이 있는 상태'와 '그런 규정이 없는 상태'를 비교할 때, 후자가 종북주의자들이 선동하기에 더 용이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종북주의자들에게 김정은 체제를 미화하고 선동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어떠한 이득을 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종북주의 세뇌 및 선동이 광범위하게 퍼질 경우, 최악의 경우 종북 정당이 국회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종북주의 선동과 세뇌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는 주장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러한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국민들의 선동에 대한 취약성을 떠나서, '찬양 및 고무에 대한 규정이 있는 상태'와 '그런 규정이 없는 상태'를 비교할 때, 후자가 종북주의자들이 선동하기에 더 용이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종북주의자들에게 김정은 체제를 미화하고 선동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어떠한 이득을 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전쟁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군대는 적국과 교전할 때 적국에 동조하는 민간인이나 적군의 피해에 수반되는 민간인 피해에 대해 면책받을 수 있는 법 조항을 가지고 있다. 한국군도 마찬가지이나 북한은 헌법상 우리나라의 영토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극도의 적대적 상황임에도 잘 무장한 북한군을 상대로 인질을 잡은 테러리스트를 대하듯 북한 주민 한명한명의 목숨을 신경쓰며 작전하지 않는 이상 국군 전체가 범죄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북한 주민을 적대세력에 동조하는 집단으로 편입함으로써 외국과의 전쟁과 같은 교전상황을 보장해준다.
물론 민간인 피해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하는 건 당연하나, 전쟁의 승리보다 그것을 우선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북한 주민 한명의 목숨값이 국군 혹은 남한 주민 수십수만명의 목숨값과 같아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함이 맞다. 당장 위에서 간첩은 죽여도 된다는 조항을 문제삼았는데, 이 조항이 없으면 북한에서 국군에 침투해서 중요 정보를 가지고 도주하는 북한군 스파이를 포착하더라도 사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군필이라면 닳고 닳게 들었던 초병은 거수자를 사살해도 된다는 규정 또한 이 법이 없으면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26]
물론 민간인 피해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하는 건 당연하나, 전쟁의 승리보다 그것을 우선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북한 주민 한명의 목숨값이 국군 혹은 남한 주민 수십수만명의 목숨값과 같아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함이 맞다. 당장 위에서 간첩은 죽여도 된다는 조항을 문제삼았는데, 이 조항이 없으면 북한에서 국군에 침투해서 중요 정보를 가지고 도주하는 북한군 스파이를 포착하더라도 사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군필이라면 닳고 닳게 들었던 초병은 거수자를 사살해도 된다는 규정 또한 이 법이 없으면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26]
자세한 내용은 국가보안법/내용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래와 같은 행위를 실제로 하게 될 경우 국가정보원 및 경찰청, 검찰청, 해양경찰청[27], 국군방첩사령부의 엄중 수사 후, 중형(重刑 )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반국가단체 구성, 자진지원·금품수수, 목적수행을 제외한 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한다. 하지만 이 점을 모르더라도 안하는 것이 좋은데, 국보법 상으로는 무죄가 될지라도 남북교류협력법 또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개별 판례등을 참조할 것.
한편,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생계지원을 목적으로 돈이나 USB, 물품 등을 북에 보내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고 다른 정부기관에서도 이를 용인한다.# 그러나 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방침에 불과하며, 법은 명백히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반국가단체 구성, 자진지원·금품수수, 목적수행을 제외한 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한다. 하지만 이 점을 모르더라도 안하는 것이 좋은데, 국보법 상으로는 무죄가 될지라도 남북교류협력법 또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개별 판례등을 참조할 것.
한편,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생계지원을 목적으로 돈이나 USB, 물품 등을 북에 보내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고 다른 정부기관에서도 이를 용인한다.# 그러나 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방침에 불과하며, 법은 명백히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 잠입·탈출죄
- 대남 침투
- 이적동조, 이적단체 구성 가입 등 각종 이적행위
- 북한 정권 찬양
- 김일성 일가족 찬양 및 고무 행위: 물론 지금은 사회 통념상 공공연하고 명백하다고 여길 정도로 김일성 일가를 찬양할 경우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이 아닌 단순 보도, 비평, 교육, 연구, 풍자 목적의 이적표현물 인용 게재는 위법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김일성에 대한 평가로 극도 일부에 옹호점을 적시했다고 처벌받지 않는다. 옛날에는 말 그대로 조금이라도 칭찬, 찬양을 했다면 구속이 됐다. 극단적인 경우 집에 감청이나 잠복을 해서 김일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기만 해도 처벌 받았으나, 민주화 이후 집에서 김일성을 찬양한다고 구속되지 않으며, 단순히 그런 글을 쓴다고 처벌 받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불법 단체를 조직해서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경우, 책을 쓰거나 이러한 방송물을 송출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30]
- 목적수행죄
- 중요시설파괴
- 국가기밀탐지, 수집, 누설
- 무고, 위증, 증거인멸 등 반좌율[31] 적용례 - 신고된 죄의 형량을 그대로 따른다. 일반 무고, 위증, 증거인멸 형량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 기타
-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 -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므로 반국가단체 구성과 찬양, 고무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34] 근데 사실상 국가보안법은 대공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기에, 황실 복원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굳이 위협이 되지 않는한 딱히 조선왕조를 찬양한다는 것 만으로 제제를 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법에서 정의된 잠입 탈출은 '대한민국 사람이 대한민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내포한다. 외국인이 북한에 가는 것을 처벌하지 못하는 까닭도 이렇다. 외국인에게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난다는 소리도 못한다. 외국인이 대한민국으로 올 때, 북한을 거쳐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대신 한국인이 북한을 무단으로 통과하면 처벌을 받는다. 물론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통치권에 반할 목적, 대한민국을 해할 목적으로 본국에서 북한으로 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왔다면 처벌할 여지가 있다.
- 중국의 국가안전법
1993년에 제정된 형법이다. 본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반혁명법'이 따로 존재하였으나, 시대변화에 따라 1996년 폐지되고 국가안전법에 포함되었다. 반국가활동을 한 단체와 개인에게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죄로, 중국의 주권, 영토의 완전성 및 안보 저해 행위와 더불어 국가분열, 인민민주독재정권 전복, 사회주의제도 파괴 행위를 처벌한다. 심지어 조사 중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는 항목도 존재한다. 범죄 주모자와 주요 가담자의 경우 최고 형량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2015년 개정되어 반간첩법까지 포함하게 되었으며, 국가안보의 범위를 경제, 금융, 문화, 인터넷, 식량, 에너지, 종교, 우주, 심해, 극지방까지 확대시켜, 이 법률의 적용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38] 심지어 법률 적용범위에 일국양제 실시 지역인 홍콩, 마카오 양 특별행정구와 심지어 대만까지 포함시켜 논란이 되었다. 즉, 홍콩, 대만에서 독립을 주장한다면, 이 법률에 따라 일국양제를 씹어먹고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 2012년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영환이 이를 위반한 혐의로 중국당국에 체포된 일이 있다. 특히 2019년부터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2020년 5월 중국 본토에서 홍콩 보안법을 입법해 대놓고 일국양제를 어기고 사실상 일국일제로 가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홍콩의 홍콩 국가보안법 정식 명칭은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으로, 줄여서 주로 '홍콩 국가보안법'이라고 부른다.[39]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대만의 국가안전법
한국에 존재했던 반공법에 더 가깝다. 1976년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인민의 집회, 결사가 공산주의를 주장하거나, 국토의 분열을 주장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중국본토(홍콩, 마카오 포함) 왕래도 허가받은 이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또한 '인민단체법'을 통하여 공산주의나 국토분열을 주장하는 단체를 구성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시켰다. 하지만 2008년 대만 사법원[40]에서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반공관련 부분들이 삭제되고, 본토와의 자유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만공산당과 중화민국 공산당이 창당되었다.
- 일본의 파괴활동방지법
치안유지법이 폐지된 후에 1952년 제정된 법률이다. 내란 및 정치적 목적의 폭력행위와 파괴활동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또한 이 법률에 따라 일부 극우 및 극좌 폭력단체들은 주기적으로 감시를 받는다.[41] 초기에는 좌익세력 탄압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1961년 쿠데타 미수사건도 이 법률이 적용되어 처벌받았다.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이 법률에 따라 옴진리교를 해산시키고자 했지만 기각당했다. 결국 다른 법률로 옴진리교가 해산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법률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있지만 오늘날까지 이 법률이 남용 되지 않고 엄격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일본이 직면한 여러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 기능하고 있기에 파괴활동방지법은 계속해서 존속하고 있다.
- 서독은 1950년대에 '사회주의국가당'(나치당의 후신)과 '공산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바가 있다. 이는 법률의 차원이 아니라, 서독기본법(헌법)에서 규정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 수호"를 위한 조치였다. 당시 반공분위기 속에 이루어진 것인지라 동독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던 1968년 공산당은 다시 합법화되었다. 독일 헌법은 서독 헌법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독일 연방헌법수호청과 같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법률이 있다. 서독의 사례는 국가보안법이 없이 관련 형법만으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세력에 대처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공무원법이나 결사법 같은 법률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인사들의 공직 진출을 제한한다거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수 있는 단체를 해산시킬 수 있는 등의 항목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은 홍콩의 국가보안법이나, 태국 왕실모독법과는 구분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홍콩의 국가보안법은 중앙정부와 체제에 대한 비판, 시위, 집회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법률은 정부 비판을 체제 전복으로 간주하며,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중국, 홍콩, 태국 등에 비하면 상당히 덜 제한하고 있다. 반자유민주적 집단인 북한 체제와 그 사상을 찬양·고무하는 행위를 중점에 두고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중국·홍콩의 국가보안법과 차이가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1980년대까지는 북한과 관련성이 없는 반정부·민주화 세력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악용되었으나, 1991년 5월 31일 8차 개정 이후부터는 비판 세력에 적용하는 것에 제약이 생겼다.
한편, 독일은 나치 정권의 범죄와 반인도적 이념을 반성하며, 헌법상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네오나치 활동 및 홀로코스트 부정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법률은 단순한 사상 표현을 넘어, 사회의 민주적 질서를 파괴하고 증오를 확산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국가보안법도 북한 정권과 그 이념의 미화를 제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하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두 법률 모두 단순한 비판적 의견을 억압하기보다는, 적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이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오세철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수사, 박정근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 국가보안법이 오남용되었다고 비판받는 사건이 이따금 일어났다.
중국-홍콩의 국가보안법은 중앙정부와 체제에 대한 비판, 시위, 집회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법률은 정부 비판을 체제 전복으로 간주하며,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중국, 홍콩, 태국 등에 비하면 상당히 덜 제한하고 있다. 반자유민주적 집단인 북한 체제와 그 사상을 찬양·고무하는 행위를 중점에 두고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중국·홍콩의 국가보안법과 차이가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1980년대까지는 북한과 관련성이 없는 반정부·민주화 세력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악용되었으나, 1991년 5월 31일 8차 개정 이후부터는 비판 세력에 적용하는 것에 제약이 생겼다.
한편, 독일은 나치 정권의 범죄와 반인도적 이념을 반성하며, 헌법상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네오나치 활동 및 홀로코스트 부정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법률은 단순한 사상 표현을 넘어, 사회의 민주적 질서를 파괴하고 증오를 확산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국가보안법도 북한 정권과 그 이념의 미화를 제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하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두 법률 모두 단순한 비판적 의견을 억압하기보다는, 적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이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오세철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수사, 박정근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 국가보안법이 오남용되었다고 비판받는 사건이 이따금 일어났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늘 있어 왔지만, 대표적으로는 2004년 총선이 열린우리당의 과반 달성으로 끝난 후 4대 입법 과제 중 하나로서 당시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건 바가 있다. 그러나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야당인 한나라당이 폐지에 반대했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폐지 찬반이 갈리면서 역풍을 맞았다.
다만 훗날 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민주노동당과 공동발의를 한 이종걸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공식 주장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은 남기고 1조부터 다 삭제해도 된다'는 의미였으며, 국가보안법 이름은 남겨두자고 했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나라당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은 남겨두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 한나라당의 원내수석대표가 남경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름은 남겨놓자, 이름은 없애자로 갈렸으며, 민주노동당은 아예 이름도 없애자고 하면서 사실상 범여권이 분열된 모습을 보여 이 기회를 날리고 만다.
이와 비슷하게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얻는 초압승을 거두자 총선 바로 다음날인 4월 16일에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공동대표가 페이스북으로 "개인적으로 상상의 날개가 돋는다. (국가)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하며 폐지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있었던 것인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지금은 경제 비상시국에서 국민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모으는 게 우선적”이라고 하며 폐지론을 일축했다.[42] 2021년 5월에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법사위로 넘어갔다. 2021년 6월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법사위로 넘어갔다.
북한 역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이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나무라는 것은 내로남불이다.[43] 물론 북한에는 우리의 국보법에 해당하는 법률이나 특별법이 없지만 반국가범죄, 반민족범죄 등을 적용하여 처벌한다. '그것도 당사자를 포함한 일가족 친인척 단위로 말이다. 거기다 최대 무기로동교화형, 사형 및 재산몰수형도 감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전략 및 법체계의 변화 없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북한에는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안보특별법이 없으며, 북한 헌법 제9조는 사회주의 건설의 범위를 북한지역으로 한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북한 형법에 '공화국'을 전복하려는 무장 폭동, 테러, 간첩행위 등 '국가주권을 반대하는 범죄'와 '민족해방에 반대하는 범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들은 우리 형법의 내란· 외환·간첩죄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 법체계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밝혔다.
실제 사례에서 보듯이 국보법 폐지론자를 죄다 종북주의자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 가운데 보수 세력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와 유림의 지도자이며 철저한 보수주의자이었던 심산 김창숙이 있다. 초대 대법원장 지냈던 김병로는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이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인물이었다. 김병로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일제 잔재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아온 법이니 폐기해야 한다'며,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은 형법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심산 김창숙은 보안법(1959년 국가보안법 파동 당시)은 이 민족을 억압하는 망국의 법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었다.#
다만 김병로 등의 보수 인사들이 비판한 법률은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국가보안법으로,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당시 법률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므로 당시 학자들의 비판을 맥락 무시하고 현재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 그 당시의 국가보안법이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유사한 형태였을지 몰라도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과 차원이 다른 형태의 법률이다.
다만 훗날 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민주노동당과 공동발의를 한 이종걸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공식 주장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은 남기고 1조부터 다 삭제해도 된다'는 의미였으며, 국가보안법 이름은 남겨두자고 했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나라당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은 남겨두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 한나라당의 원내수석대표가 남경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름은 남겨놓자, 이름은 없애자로 갈렸으며, 민주노동당은 아예 이름도 없애자고 하면서 사실상 범여권이 분열된 모습을 보여 이 기회를 날리고 만다.
이와 비슷하게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얻는 초압승을 거두자 총선 바로 다음날인 4월 16일에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공동대표가 페이스북으로 "개인적으로 상상의 날개가 돋는다. (국가)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하며 폐지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있었던 것인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지금은 경제 비상시국에서 국민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모으는 게 우선적”이라고 하며 폐지론을 일축했다.[42] 2021년 5월에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법사위로 넘어갔다. 2021년 6월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되어 법사위로 넘어갔다.
북한 역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이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나무라는 것은 내로남불이다.[43] 물론 북한에는 우리의 국보법에 해당하는 법률이나 특별법이 없지만 반국가범죄, 반민족범죄 등을 적용하여 처벌한다. '그것도 당사자를 포함한 일가족 친인척 단위로 말이다. 거기다 최대 무기로동교화형, 사형 및 재산몰수형도 감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전략 및 법체계의 변화 없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북한에는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안보특별법이 없으며, 북한 헌법 제9조는 사회주의 건설의 범위를 북한지역으로 한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북한 형법에 '공화국'을 전복하려는 무장 폭동, 테러, 간첩행위 등 '국가주권을 반대하는 범죄'와 '민족해방에 반대하는 범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들은 우리 형법의 내란· 외환·간첩죄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 법체계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밝혔다.
실제 사례에서 보듯이 국보법 폐지론자를 죄다 종북주의자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 가운데 보수 세력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와 유림의 지도자이며 철저한 보수주의자이었던 심산 김창숙이 있다. 초대 대법원장 지냈던 김병로는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이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인물이었다. 김병로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일제 잔재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아온 법이니 폐기해야 한다'며,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은 형법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심산 김창숙은 보안법(1959년 국가보안법 파동 당시)은 이 민족을 억압하는 망국의 법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었다.#
다만 김병로 등의 보수 인사들이 비판한 법률은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국가보안법으로,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당시 법률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므로 당시 학자들의 비판을 맥락 무시하고 현재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 그 당시의 국가보안법이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유사한 형태였을지 몰라도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과 차원이 다른 형태의 법률이다.
- 대북기조와 관련하여 2가지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형법 제98조 (간첩죄)의 해석에서 '적국'의 범위에 북한을 포함하거나 헌법 불합치 소지가 있는 적국 규정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하면 국가보안법의 효과를 기본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강경 여론이 우위여야 하며, 정권 차원에서도 대북기조를 유지할 의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형법 해석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아래에 제시된 것과 같은 시나리오를 고려할 수 있다.
- 당국의 허가없이 북한에 방문하거나 이주의 경우 국가보안법이 아닌 남북교류협력법 등으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44]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라는 조항으로 인해 애초에 출입국관리법은 적용이 안된다. 북한에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은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라고 표현한다.
- 주체사상파 계열 NL 등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제재없이 정당이나 단체를 구성해 정치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이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으로 볼 때 정권은커녕 의석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종교정당이 선거때마다 등장해 해당 종교인들만 몰표를 준다면 의석 확보를 넘어 정권 획득도 가능하다고 호언하나 결과는 알다시피 망했다. 그나마 온건한 종교정당이 이럴진데 과격한 종북정당이 등장해 김정은을 따르자며 표를 호소한다면 과연 표를 얻을수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당장 지지하는 사람만 달랐던 극우정당인 대한당, 우리공화당은 총선에서 다 떨어졌다. 또한 이러한 단체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폭력적인 활동을 한다면 다른 법으로 처벌된다. 이러한 행위를 할 경우 내란죄로 처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국보법이 없더라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보수단체들도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45] 다만 실제로 당원끼리는 종북 성향을 띄면서 대외적으로는 단순히 북한에 유화적인 것일 뿐인 것처럼 위장할 가능성은 있다. 설령 국보법이 폐지되어 종북주의 정당이 등장하더라도 공개적으로 김일성 만세를 외칠 가능성은 낮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을 리도 없고, 반발만 살 확률이 높기 때문.
-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전파해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지 않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통일부 신고 후 개인적인 연구 목적이나 호기심으로 듣는 것을 처벌하고 있진 않지만, 전파하는 것은 다르므로 처벌받을수 있다. 때문에 이 법이 폐지된다면 상업 목적으로 케이블 방송 등에서 NHK나 BBC, CNN을 송파하듯 조선중앙텔레비죤도 송파하여 안방에서도 북한방송을 볼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현 국민의식 수준을 감안한다면 북한 방송을 보고 이를 반박하는 세력만 양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수 세력 중에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공개해 놓으면 자연스레 반북 세력만 양성되지 않겠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 독재 정권이 재발생할 시, 간첩 몰이로 인한 악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로 현존했던 모든 독재 정권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간첩을 핑계로 정치적 정적과 국민을 숙청하고 고문하는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독재 공산 국가의 사상 검열로 인한 탄압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 국가단체(테러단체, 반군, 내란 주동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되, 단순히 북한을 찬양하거나, 북측과 접촉하는 것을 처벌하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주요 근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사상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처벌해선 안된다"이고, 존치의 근거는 "반국가 단체를 막을 법적 장치가 부실해진다" 이므로, 문제될만한 부분만 삭제하고, 여기에 더해 테러단체와 같은 모든 종류의 반국가단체를 제재하는 법률로 바꾸자는 이야기이다.
이는 북한이 나중에 한국으로 흡수통일이 된다면 북한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겠지만 통일 이후에도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이들을 무작정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했다가는 북한 지방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탄압하는 일로 비치기 쉬우며, 이에 따라 북한 내 여론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을 법률적으로 없애기보다는 교육과 미디어 노출을 이용해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을 '스스로 잊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애초에 북한이 한국으로 흡수통일 됐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정권이 각종 패악질과 무능으로 자멸을 했다는 것인데, 그런 일이 있었을 정도면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의 실망과 원망으로 지지를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있다.
그외로 국가보안법은 자주국방의 한 방향인 '국가 안보'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률이기에,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하기에는 정치적 위험이 매우 크다. 국가보안법이 군사정권 시절부터 계속 악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악법 취급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국제범죄조직, 테러리스트 등 대한민국의 국가보안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적에도 대응해야 하기에, 국가보안법 역시 이러한 시대상에 맞춰 개정되어야 한다. 즉, '모든 반국가단체'를 대상으로 하자는 주장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낡은 법률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으로 비칠 수 있다.
국제 노동 기구의 105호 협약을 비준하려면 필연적으로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최고형을 금고로 바꿔야 105호 협약 비준이 가능해진다.
이는 북한이 나중에 한국으로 흡수통일이 된다면 북한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겠지만 통일 이후에도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이들을 무작정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했다가는 북한 지방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탄압하는 일로 비치기 쉬우며, 이에 따라 북한 내 여론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을 법률적으로 없애기보다는 교육과 미디어 노출을 이용해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을 '스스로 잊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애초에 북한이 한국으로 흡수통일 됐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정권이 각종 패악질과 무능으로 자멸을 했다는 것인데, 그런 일이 있었을 정도면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의 실망과 원망으로 지지를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있다.
그외로 국가보안법은 자주국방의 한 방향인 '국가 안보'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률이기에,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하기에는 정치적 위험이 매우 크다. 국가보안법이 군사정권 시절부터 계속 악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악법 취급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국제범죄조직, 테러리스트 등 대한민국의 국가보안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적에도 대응해야 하기에, 국가보안법 역시 이러한 시대상에 맞춰 개정되어야 한다. 즉, '모든 반국가단체'를 대상으로 하자는 주장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낡은 법률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으로 비칠 수 있다.
국제 노동 기구의 105호 협약을 비준하려면 필연적으로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최고형을 금고로 바꿔야 105호 협약 비준이 가능해진다.
- 변호사시험 시험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위법수집증거배제의 원칙이나 증거능력과 관해서 많은 판례가 있다. 사건 특성상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매우 많고, 공안사건 특성상 다양한 형태의 전자정보 증거들이 현출되기 때문이다.
- 군무원 군사정보 직렬 과목인 국가정보학 시험 범위에는 국가보안법이 포함된다.
[타법개정] 군사법원법[법률] [법률안] [4] 전문[5] 당시 일본법과 헌법은 원칙적으로 일본 본토에서만 통용되지 식민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덴노가 임명한 총독이 자의적으로 일본의 법률을 적용하거나, 혹은 적용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치안유지법도 이런 형태로 적용된 법률이다. 물론 일본이 이 법을 적용하여 처벌하고자 공산주의자로 몰아 잡아간 독립운동가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제1조의 '국체의 변혁'을 독립운동에도 적용시켜 처벌했다. 결론적으로 조선총독부가 해방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독립운동 관련자들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처벌했다.[6] 법률 제85호[7] 법률 제128호[8] 국가보안법과 함께 형법에 대체조항이 없었던 미군정 법령 19호만 존속되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9] 다만,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처벌이 다시 강해졌는데, 반공법이 공포되고 게다가 유신정권 시절에는 국가보위법과 긴급조치까지 적용되면서 다시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10] 당시 민주당의 보수성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강했다. 예컨대,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빨갱이 네거티브를 써먹은 것이 박정희가 아니라 윤보선이었다. 2공화국 당시에 혁신계의 활동이 두드러져보여서 그렇지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반공은 당연한 것이었다.[11] 한정합헌(한정위헌)은 합헌적 법률해석의 기술로, 법률의 합헌적 해석이란 법률의 개념이 다의적이어서 그 어의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때 가능한 한 헌법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며, 한정합헌(한정위헌)은 심판대상인 법률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존재할 때 위헌가능성을 배제하고 헌법에 조화될 수 있도록 축소 해석함으로써 법률의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형식를 말한다.[12] 이승만 정권 시절 신국가보안법으로 국민들을 탄압한 적이 있고, 장면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개정했지만 박정희 정권부터 다시 국가보안법은 강해졌다.[13] 2016헌바361[14]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어 북한 관련 선전물을 배포하거나 북한을 찬양하기 쉬워짐에도 불구하고 크게 줄어든 것은 오히려 인터넷의 보급이 크게 역할했을 것이다.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의 실체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북한을 좌우를 막론하고 아주 못사는 나라, 지상낙원이 전혀 아닌 나라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15] 국가정보원은 산업스파이 등의 사건은 자료조사만 하고 검찰에 넘기는 것이 통상적이다.[16] 국회청원은 국회의원 추천을 받아서 할 수 있었으나 추천이 없어도 국회 홈페이지에서 누구든 할 수 있었던 제도를 보완하여 개인이 청원하여 추천받는 것으로 변경[17] 국가인권위원회 폐지권고 보도자료.[18] 용어상 합헌 결정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위헌 결정의 일종이다.[19] 위헌 범주 5, 합헌 범주 4라서 정족수 미달로 인한 합헌 판결[20] 첫 사례는 해당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적용할 여지가 없어졌다.[21] 그나마도 COVID-19로 북중국경이 막히면서부터는 종이판 구독도 어려워져 연간 200만원이 넘는 전자판 외에 정식 입수할 방법이 없어졌다.[22] 2024년 1월 폐지되었다.[23] 애초에 국가보안법 기준으로도 연구, 언론 보도 같은 공익적 목적이나 단순 호기심으로 VPN 켜고 이들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처벌 대상이 아니다.[24] 그것도 무려 정부 수탁사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25]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참고인 조사를 3차례 불응한 것도 경찰의 의심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26] 전시가 아닌 이상 타 국가에서는 국경 근처에서 얼쩡거리거나 도망간다고 총쏴버리지 않는다. 이게 가능했으면 멕시코 장벽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27] 바다를 통한 월북 및 북한 국적의 배와 허락없이 접촉할 경우.[28] 과거에는 공산주의를 주장하거나 공산당을 창설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이었으나, 1991년 국가보안법 제8차 개정으로 해당 내용이 담긴 제2조 2항을 폐지하였으므로 단순히 공산주의를(당연히 민주주의에 의한 다당제·정권교체를 긍정하는) 주장하거나, 공산당을 창설하는 것은 이적행위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기도 하거니와, 북한의 이념은 이제 공산주의가 아닌 주체사상이고, 대한민국 내 공산주의자들 상당수가 반북 세력들이다. 실제로 일본공산당은 반북 정당이며, 공산당을 창당한다고 해서 반북 혹은 혐북 정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네팔같은 경우 네팔 공산당이 다당제 하에서 집권하고 있다.[29] 금수산태양궁전을 갔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30] 하물며 북한보다 문제가 될 염려가 없는 일본 문화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 관련 문제 때문에 단순히 송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심위에 의해 경고, 과징금 조치를 받은 경우가 있는데 이적표현물을 뉴스방영 목적 외에 송출할 경우에는 과징금 수준으로 안 끝날 수도 있다.다만 북한영화도 일부 공공장소에서 상영된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아주 불가능하다고 보긴 어렵다.[31] 反 坐 律 ,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고발한 사람에게 고발당한 사람이 받은 처벌과 같은 형벌을 가하는 제도. 근현대 법에서는 존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32] 종북몰이와 같이 단순 정치적 몰이가 아니고 해할 의도를 가지고 고발하게 되면 된다. 무고죄 참조.[33] '북한'이라는 조직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란죄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죄가 될 수도 있다.[34] 일단 반국가단체 구성에는 확실히 해당될 수 있다. 사실 국가보안법 이전에 헌법에 걸리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헌법을 개정해서 군주국으로 체제를 바꾸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35] 수사를 피하기 위해 외국에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북한은 헌법상 대한민국으로 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공소시효가 유지된다.[36] 통일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이다.[37] 스티브 유가 북한국적 취득을 할 경우와 관련된 질문이 있긴 하다. 하지만 골수 종북주의자인 군복무 대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타국 국적을 취득해 스티브 유처럼 대한민국 무기한 입국금지 조치를 받은 사람이 이럴 가능성이 있는 것에 가깝다.[38]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통해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군의 임무라고 명시까지 했다.#[39] 홍콩 경찰이 홍콩 시위대에 경고하는 문구에서도 'HKSAR National Security Law(홍콩특별행정구 국가보안법)' 정도로 줄여서 사용한다.#[40] 대만에서는 헌재가 없고 사법원에서 대법관들이 위헌법률심사를 하는데, 대법원 격인 최고법원은 따로 있다. 한국으로 치면 헌재가 대법원 위에 있는 셈.[41] 일본공산당과 조총련도 이 법률에 따라 감시받는다.[42] 다만 “그런 희망을 저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다”고는 했기에, 기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43] 반대로 보자면 대한민국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북한 역시도 그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하지만 과연 북한이 그럴까?[44] 지금도 대공용의점이 없을 경우 국보법 상으로는 무죄가 될지 몰라도 무조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45] 정보의 개방을 통한 이성적 개인의 판단에 의해 북한의 실태를 정확히 알게 되면 자연히 반북 세력만 양성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독의 사례가 유사하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