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능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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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건국포장 |
1859년 2월 2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에서 청송의진 의병대장인 아버지 심성지와 어머니 함안 조씨(1823 ~ 1898. 10. 2) 조승욱(趙 升 煜)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자식 없이 요절한 5촌 당숙 심강지(沈岡之 , 1814 ~ 1843. 5. 21)에 입양되었다.
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아버지 심성지가 의진을 결성하고 의병대장에 추대되자, 의진에 입대하고 자제군관(子弟 軍 官 )에 선임되었다. 그해 2월 참모 겸 사병도총(司 兵 都 摠)이었던 남승철과 함께 의병을 사칭해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처단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 象 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 坪 )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얼마 뒤에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영덕의진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03년 5월 21일 별세했다.
200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아버지 심성지가 의진을 결성하고 의병대장에 추대되자, 의진에 입대하고 자제군관(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03년 5월 21일 별세했다.
200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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