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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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헌조의 황자 원협 | | |
출생 | |
사망 | |
능묘 | 미상 |
재위기간 | 북위 팽성왕 |
? ~ 508년 10월 27일 | |
499년 효문제의 뒤를 이은 선무제를 보좌하게 되었으나 외척 고조의 시기를 사게 되었다. 이 둘의 갈등은 507년 심화되었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선무제의 황후 선무순황후(宣 武 順 皇后 )가 독살당해 새로 황후를 세워야 했다. 고조는 자신의 친족인 고영(高 英 )을 황후로 추천해 고씨 일족이 정권을 장악하고자 했는데, 이를 눈치챈 원협이 추천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선무제는 고영을 황후로 세웠기에 원협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지게 되었다.
508년, 경조왕 원유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고조의 부하 원진(元 珍 )[1]이 원협은 반란에 가담하였다며 무고했고,[2] 선무제는 원진을 시켜 원협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였다. 원협은 결백을 주장했기에 사사를 거부했고 결국 원진은 부하에게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였다.
본래 시호는 선무제가 내린 무선(武 宣 )이었으나, 아들 원자유(효장제)가 즉위하자 원협은 묘호 숙조(肅祖), 시호 문목황제(文 穆 皇帝 )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절민제 시기 원협의 위패는 종묘에서 철거되었고 효장제가 추존한 제호(帝 號 )들은 폐지되었다.
선무제의 황후 선무순황후(
508년, 경조왕 원유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고조의 부하 원진(
본래 시호는 선무제가 내린 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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