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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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30 |
제식 명칭 | 97식 경폭격기 ( |
제식 기호 | 키30 (キ30) / Ki-30 |
영문명 | Japanese Army Type 97 Light bomber Mitsubishi Ki-30 |
앤(Ann) |
운용 국가 | |
운용 집단 |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 |
제조사 | |
개발 시기 | 1936년 5월 |
초도 비행 시기 | 1937년 2월 28일 |
생산 시기 | 1938년 1월 |
승무원 수 | 2명 |
전장 | 10.35 m |
전폭 | 14.55 m |
전고 | 3.645 m |
주익 면적 | 30.58 m² |
익면 하중 | 108.6 kg/m² |
자체 중량 | 2,230 kg |
최대 중량 | 3,320 kg |
엔진 | 하5개( |
프로펠러 | 3엽 프로펠러 |
최대 속도 | 4,000 m에서 423 km/h |
순항 속도 | 380 km/h |
항속 거리 | 1,700 km |
상승률 | 8.33 m/s, 5,000 m까지 10분 36초 |
실용 상승 한도 | 8,570 m |
무장 | 주익에 7.7 mm 89식 고정기관총 1정 콕핏 후방 총좌에 7.7 mm 89식 선회기관총 1정 |
폭장 | 최대 400 kg |
생산수 | 686~704대 |
1942년 바탄 전선에서 주력으로 활동했다. Ki-30은 1938년 봄부터 제 2차 중일 전쟁에서 처음 투입되었다. 험지에서의 운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었고, 전투기의 호위가 붙는다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사례로 인하여 Ki-30이 태평양 전쟁 초기 필리핀 전선에서 널리 운용되었다. 그러나 Ki-30 편대가 호위를 받지 못한 채로 연합국 전투기들과 교전하여 손실이 증가하자 곧 후방으로 배치되었다. 1942년 말, 대부분의 Ki-30이 훈련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전쟁 말기에는 대다수가 자살특공으로 소비되었다.
1940년 말, 왕립 태국 공군의 Ki-30이 1941년 1월 프랑스-타이 전쟁에서 투입되었다. 이후 1942년에 Ki-30을 추가적으로 일본에게서 양도받았다.
전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었으며 공산당은 1950년 초 노획한 3대의 Ki-30을 훈련용으로 운용하였다.
1940년 말, 왕립 태국 공군의 Ki-30이 1941년 1월 프랑스-타이 전쟁에서 투입되었다. 이후 1942년에 Ki-30을 추가적으로 일본에게서 양도받았다.
전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었으며 공산당은 1950년 초 노획한 3대의 Ki-30을 훈련용으로 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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