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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콘텐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 | ||||||||||||||||||||||||||||||||||||
영문명 | SBS[1] | |||||||||||||||||||||||||||||||||||
국문명 | 에스비에스[2] | |||||||||||||||||||||||||||||||||||
이전 명칭 | 국문 | 주식회사 서울방송 | ||||||||||||||||||||||||||||||||||
한문 | ||||||||||||||||||||||||||||||||||||
영문 | Seoul Broadcasting System | |||||||||||||||||||||||||||||||||||
국가 | ||||||||||||||||||||||||||||||||||||
설립 | ||||||||||||||||||||||||||||||||||||
개국 | ||||||||||||||||||||||||||||||||||||
본사 소재지 | ||||||||||||||||||||||||||||||||||||
채널 | ||||||||||||||||||||||||||||||||||||
SBSⓤ TV | SBS V-Radio | ||||||||||||||||||||||||||||||||||||
홈페이지 | ||||||||||||||||||||||||||||||||||||
링크 | 노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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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콘텐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4]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사. TY홀딩스 산하 민영방송으로, 1990년 11월 14일 창립되었다. 초기 몇 년간은 시청권이 한정된 지역 민영 방송사로 출발했지만 꾸준한 성장 끝에 전국 규모 지상파 방송사[5]로 발전한 케이스다.
AM 라디오 방송[6][7]은 1991년 3월 20일에 텔레비전 방송은 같은 해 1991년 12월 9일부터 개국하여 방송을 개시했다.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을 가시청권역으로 설정하여 개국했으나, 현재는 각 지역 민영방송망을 이용한 전국 규모의 거대 방송사로 거듭났다. 초창기에는 여의도광장 앞 태영건설이 본사 사옥으로 쓰던 건물을 방송국으로 개조하여 사용했으나, 22층 규모의 목동 소재 신사옥이 완성되자 2004년 3월 1일 이전하며 목동시대를 열었다.[8]
별명은 '뉸'[9], '스브스'[10], '시방새'[11], '신봉선', '생방송' 등으로 붙여져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흔히 알려져 있고 SBS 측에서도 즐겨쓰는 별명은 '스브스' 생방송이다.
대한민국에서 올림픽, FIFA 월드컵 국제 스포츠 대회의 주관 중계 방송사로 SBS가 중계권을 구입해서 KBS, MBC에 재판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12]
호출부호 대역은 HLSQ[13]이고, TV 가상채널은 6번대를 사용한다.
- 정의로운 사람에게 용기를
- 온 가정에 화목과 행복을
- 직분을 다하는 사람에게 보람을
- 질서를 지키는 사람에게 존경을
-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긍지를
- 하나되어 세계속에 자존을
- 기쁨주고 사랑받는 방송
- 희망과 감동을 주는 방송
기간 | 문구 | |
1 | 세계와 함께 미래를 여는 SBS | |
2 | SBS 뉴스는 빠릅니다 SBS 뉴스는 믿을 수 있습니다 | |
3 |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 SBS 뉴스가 제시합니다 | |
4 | 한국의 뉴스는 SBS가 시작합니다 | |
5 | 빠른 뉴스 책임있는 뉴스 디지털 시대의 중심 | |
6 | 진실의 창 | |
7 | 대한민국 뉴스리더 |
연도 | 문구 | 연도 | 문구 |
장애인을 가족처럼 | |||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 나부터 깨끗해야 나라가 바로선다 | ||
생활문화개혁 - 근본부터 시작합시다 | 경제를 살립시다 | ||
희망을 이야기 합시다 # | 이제는 생명이다 # | ||
정전 50년 - 평화를 이야기 합시다 (참여연대 공동 캠페인) | |||
광복 60주년 다시 뛰자! 대한민국 | 함께가요, 행복 코리아 | ||
대한민국 희망 어젠다 얼쑤! 대한민국 |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합시다 (우리은행 공동 캠페인) | ||
위기를 기회로 # | 일류 국가로 가는 길, SBS 20 G20 | ||
미래세대에 희망을 | 마음을 열면 모두가 가족입니다 | ||
착한성장 대한민국 | 아름다운 당신, 다시 뜨겁게! # | ||
함께 만드는 희망, 대한민국 # | |||
더 나은 세상 |
SBS - 로고송 <함께 만드는 기쁨> (with AOA / 2015년~2018년) |
기간 | 문구 | |
1 | 기쁨 주고 사랑 받는 SBS 서울방송, SBS~~~~~[52] | |
2 | 새로운 기쁨 신선한 감동 민~영~TV | |
3 | 날마다 새로운 기쁨 (SBS~) SBS (서울~) 서울방송[53] 행복이 있어요 (S!B!S!) 사랑을 느껴봐요 서울방송~ 날마다 새로운 기쁨 서울 서울 서울방송 꿈이 있어요 내일을 가꾸어요 서울방송 | |
4 | 기쁨주~고 사랑받는 SBS, 좋은방송 좋은세상 SBS, 감동의 물결과 희망을 느껴요 SBS,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동과 희망주는 SBS, 희망과~ 감동주는 SBS | |
5 | ||
6 | 당신은 SBS, SBS 오~~ 얼굴[55] | |
7 | 기쁨주고 사랑받는 우리의 SBS, 기쁨주고 행복을 드려요 (행복해져요~) 사랑받는 SBS[56] | |
8 | 열정과 패기 하나로 뭉친 우리 올림픽 채널 SBS, 모두가 하나 됩니다. 올림픽 채널 SBS | |
9 |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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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SBS TV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SBS/사옥 문서 참고하십시오.
SBS 개국 소식 (대한뉴스 / 1991년 12월 11일) | SBS 개국특집 SBS 8 뉴스 (1991년 12월 9일) |
1980년 국보위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해 전국방송망을 가진 방송사는 유럽식 2공영체제로 강제 개편되었으며 방송-신문 겸영까지 전부 금지되었다.
그러나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광고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며 TV광고의 적체 현상이 심각해지자[62][63] 민영 방송사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9년 4월부터 관 주도의 '방송제도연구위원회'가 발족된 뒤 민방 설립이 구체화되어가는 가운데 건설회사였던 (주)태영이 이에 관심을 보였던 것.[64] 다른 재벌들이 구 방송법에 묶여 있는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65] 나머지 선정 주주로는 로켓트보일러[66], 한주흥산[67], 로얄섬유, 한성화학, 대일건설, 대한제분, 건영, 일진[68], 이건산업, 대성전선, 남성, 한미약품, 화성산업 등 28개 업체였다.
10월 31일 하오에 경제부총리 이승윤 주재로 재무, 문화, 상공, 체신, 공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민방설립추진위원회는 채널 6의 새 민영방송국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게 될 30% 지배주주로 태영건설을 선정하였다. 이는 노태우 정부 당시 윤세영 회장과 최병렬 공보처 장관과의 친분 관계로 방송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이다.[69] 새 민방 대주주인 윤세영은 신설 민영방송의 성격에 대해 "중산층이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하여 중도보수우익 노선을 표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측의 선정 사유로는 모기업 태영 사옥이 여의도에 있어서 방송사로 활용 가능하며, 이 기업의 요구로 선정된 주주들이 광고업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방 설립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왔는데, 1991년 초 이한열추모사업회가 낸 저서 <진단 제6공화국>에선 애초에 민방 허용 방향으로 방송구조를 개편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둔 뒤 새 방송수요 확인작업부터 시작해 수요를 충족키 위한 바람직한 방법부터 찾고, 선진국 사례를 검토/연구해 국내 실정에 맞는 방법을 택하든가, 과거 언론통폐합으로 문 닫은 민영방송 주체에게 환원해 1980년 11월 이전 방송구조로 되돌리는 것도 대안이긴 하나, 당시 문화의 서울집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서울에 민영방송 차리는 건 서울 편중적 현상이라고 지적했으며, 정부도 일정 기준 없이 민방설립 신청을 받으며 '특정 이익집단 및 정당, 종교단체, 정부 유관단체'를 배제한다고 했지만, 시중에 '태영' 내정설이 나돌았다. 특히 신청기업 명단 유출 후 주식시장에선 태영 주가가 40% 이상 폭등했고, 윤세영 회장 장남 윤석민[70]이 주가 폭등기에 자사주 3만 6천 주를 사들인 것도 '사전 내정설'을 입증하는 장치로도 쓰였다.
모기업 태영부터가 1989년 기준 건설도급 순위가 34위밖에 안된 데다가, 순식간에 지배주주로 내놓을 돈 3백 억보다 적은 292억 원에 당기순이익 15억 원밖에 안 되어 부채비율이 1990년 6월 기준 257%였다.[71] 게다가 건설업 자체가 경기변동에 민감한 데다 태영이 그동안 수주한 공사 중 70%가 정부 관련 공사라는 점에서 관변기업 성격이 강했고, 앞서 주석에서 얘기한 것처럼 윤세영 회장이 최 공보장관과 학연으로 얽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주주 중 신영균 한주흥산 회장도 민자당 소속인 데다가[72] 엄상호 건영 회장도 TK계 인사란 점에서 논란이 많았다.[73] 서기원 사장이 KBS 노조의 파업에도 KBS 사장직에 안착하는데 성공하면서 KBS가 다시 친 정부적인 성향으로 돌아왔던 상황이었던데다가 3당 합당 이후 민자당이 개헌선을 넘었을 정도로 야당의 세가 악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친 정부적인 방송국을 또 하나 만든다는 얘기도 있었고 거기에다가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오락화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자당에선 이런 반대의견 따윈 쌩까고 방송관계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참고로 이 예측은 개국 후에 상당 부분이 실현되었다.
언론들도 6월 당시 정부의 방송제도 개편 전략의 전모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때도 민영방송의 신설에는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민영방송 소유주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신문 사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민영방송의 조건'(6월 15일자 동아일보), '새 민방 누가 차지할까'(10월 11일자 동아일보), '새 민방, 소유는 어디로'(6월 15일자 한국일보)와 같은 식의 내용들이었다.
거기에 공보처는 민영 주체 선정의 특혜 의혹이 일자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듯, 민영방송의 주주인 31개 기업들의 출처자금을 국세청에 조사 의뢰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게 제스처인 이유를 말하자면, 기업의 자금출처 조사는 구체적 탈세혐의가 드러날 때 실시하는 것인 만큼 민방 설립만을 두고 자금출처와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국세청 측이 공식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공보처는 또 "태영 쪽에서 상당한 이권을 받게 되는 만큼 앞으로 3백억 원을 5년간에 걸쳐 공익을 위해 출연할 것이며 민방설립 뒤 매년 순이익의 15%를 장학기금으로 내놓을 것을 약속한다"며 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제도연구위 역시 방송제도 개편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면 민방설립민간자문위도 민방 주체 선정의 들러리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민방설립추진위원장 이승윤 부총리도 들러리였음이 밝혀졌다. 이 부총리는 태영의 선정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보처장관에게 물어보라"며 본인은 지배주주 선정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음을 실토하였다.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신설 민영방송의 가시청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밖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 공보처는 곧 대전, 광주, 전주, 부산, 대구, 강원 등지에 지역민영방송을 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노태우 정부는 민방 주체 선정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지는 몰라도 MBC 본사 및 전 계열사의 민간 불하 계획을 재확인하였는데, 그 와중인 11월 1일과 2일에 서울남부지원 측이 청주 등 일부 지방MBC 주식을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도록 판결을 내림으로써 상황은 반전되었다.
이때 나머지 지방MBC의 옛 주주들을 비롯해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을 각각 신군부에 뺏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서울경제신문을 뺏겼다가 9년만에 돌려받은 한국일보, 합동통신을 빼앗긴 두산유업 등 통폐합 피해 언론사주들이 이 판결에 편승해 손해배상과 반환소송 등을 제기했으나 1991년 2월에 법원은 손해배상을 기각했고, 중앙일보는 1991년 1심, 1994년 2심, 1996년 상고심 패소로 뜻을 못 이루었다. 물론 중앙일보는 2009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디어법 개정 이후 신문사도 방송을 소유할 수 있게 허용됨으로써 20년 후 JTBC로 작게나마 소원을 풀었고, 손석희를 영입하고 다수 예능을 성공시켜 지상파에 버금가는 방송사로 키워서 이제는 거의 한을 풀었다.
또한 당시 정부 당국에선 KBS 라디오서울(구 동아방송) 채널을 SBS로 이관시켰는데, 원 주인인 동아일보에선 이에 대해 비분강개했고 이후 노태우 정부를 까게 되었다.[74] 자세한 내용은 동아방송 항목 참조.
11월 26일 '민방감사'라고 불린 국정감사에서도 민방 주체 선정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어떠한 득도 못 이루었다. 국감에서 최병렬 공보처장관은 "제기된 의혹 중 어느 한 가지도 입증된 게 없는데도 언론사와 야당이 불신감만 증폭시키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지만, 모 야당의원은 "공보처장관은 정부 대변인인가, 태영 홍보실장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단체 및 방송 4사 방송악법철폐공대위는 새 민방지배주주 선정 취소, 방송구조 개편계획 재검토, 최병렬 공보장관 퇴진 등을 요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국 방송계는 KBS와 MBC에 비해 더 공격적으로 TV의 오락성 강화에 매진할 SBS의 집권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위와 같은 설립 비화는 2004년 11월 5일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태영의 특혜 의혹들'에서도 다뤄졌다.
그러나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광고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며 TV광고의 적체 현상이 심각해지자[62][63] 민영 방송사를 다시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9년 4월부터 관 주도의 '방송제도연구위원회'가 발족된 뒤 민방 설립이 구체화되어가는 가운데 건설회사였던 (주)태영이 이에 관심을 보였던 것.[64] 다른 재벌들이 구 방송법에 묶여 있는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65] 나머지 선정 주주로는 로켓트보일러[66], 한주흥산[67], 로얄섬유, 한성화학, 대일건설, 대한제분, 건영, 일진[68], 이건산업, 대성전선, 남성, 한미약품, 화성산업 등 28개 업체였다.
10월 31일 하오에 경제부총리 이승윤 주재로 재무, 문화, 상공, 체신, 공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민방설립추진위원회는 채널 6의 새 민영방송국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게 될 30% 지배주주로 태영건설을 선정하였다. 이는 노태우 정부 당시 윤세영 회장과 최병렬 공보처 장관과의 친분 관계로 방송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이다.[69] 새 민방 대주주인 윤세영은 신설 민영방송의 성격에 대해 "중산층이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하여 중도보수우익 노선을 표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측의 선정 사유로는 모기업 태영 사옥이 여의도에 있어서 방송사로 활용 가능하며, 이 기업의 요구로 선정된 주주들이 광고업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방 설립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왔는데, 1991년 초 이한열추모사업회가 낸 저서 <진단 제6공화국>에선 애초에 민방 허용 방향으로 방송구조를 개편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둔 뒤 새 방송수요 확인작업부터 시작해 수요를 충족키 위한 바람직한 방법부터 찾고, 선진국 사례를 검토/연구해 국내 실정에 맞는 방법을 택하든가, 과거 언론통폐합으로 문 닫은 민영방송 주체에게 환원해 1980년 11월 이전 방송구조로 되돌리는 것도 대안이긴 하나, 당시 문화의 서울집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서울에 민영방송 차리는 건 서울 편중적 현상이라고 지적했으며, 정부도 일정 기준 없이 민방설립 신청을 받으며 '특정 이익집단 및 정당, 종교단체, 정부 유관단체'를 배제한다고 했지만, 시중에 '태영' 내정설이 나돌았다. 특히 신청기업 명단 유출 후 주식시장에선 태영 주가가 40% 이상 폭등했고, 윤세영 회장 장남 윤석민[70]이 주가 폭등기에 자사주 3만 6천 주를 사들인 것도 '사전 내정설'을 입증하는 장치로도 쓰였다.
모기업 태영부터가 1989년 기준 건설도급 순위가 34위밖에 안된 데다가, 순식간에 지배주주로 내놓을 돈 3백 억보다 적은 292억 원에 당기순이익 15억 원밖에 안 되어 부채비율이 1990년 6월 기준 257%였다.[71] 게다가 건설업 자체가 경기변동에 민감한 데다 태영이 그동안 수주한 공사 중 70%가 정부 관련 공사라는 점에서 관변기업 성격이 강했고, 앞서 주석에서 얘기한 것처럼 윤세영 회장이 최 공보장관과 학연으로 얽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주주 중 신영균 한주흥산 회장도 민자당 소속인 데다가[72] 엄상호 건영 회장도 TK계 인사란 점에서 논란이 많았다.[73] 서기원 사장이 KBS 노조의 파업에도 KBS 사장직에 안착하는데 성공하면서 KBS가 다시 친 정부적인 성향으로 돌아왔던 상황이었던데다가 3당 합당 이후 민자당이 개헌선을 넘었을 정도로 야당의 세가 악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친 정부적인 방송국을 또 하나 만든다는 얘기도 있었고 거기에다가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오락화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자당에선 이런 반대의견 따윈 쌩까고 방송관계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참고로 이 예측은 개국 후에 상당 부분이 실현되었다.
언론들도 6월 당시 정부의 방송제도 개편 전략의 전모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때도 민영방송의 신설에는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민영방송 소유주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신문 사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민영방송의 조건'(6월 15일자 동아일보), '새 민방 누가 차지할까'(10월 11일자 동아일보), '새 민방, 소유는 어디로'(6월 15일자 한국일보)와 같은 식의 내용들이었다.
거기에 공보처는 민영 주체 선정의 특혜 의혹이 일자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듯, 민영방송의 주주인 31개 기업들의 출처자금을 국세청에 조사 의뢰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이게 제스처인 이유를 말하자면, 기업의 자금출처 조사는 구체적 탈세혐의가 드러날 때 실시하는 것인 만큼 민방 설립만을 두고 자금출처와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국세청 측이 공식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공보처는 또 "태영 쪽에서 상당한 이권을 받게 되는 만큼 앞으로 3백억 원을 5년간에 걸쳐 공익을 위해 출연할 것이며 민방설립 뒤 매년 순이익의 15%를 장학기금으로 내놓을 것을 약속한다"며 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제도연구위 역시 방송제도 개편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면 민방설립민간자문위도 민방 주체 선정의 들러리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민방설립추진위원장 이승윤 부총리도 들러리였음이 밝혀졌다. 이 부총리는 태영의 선정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보처장관에게 물어보라"며 본인은 지배주주 선정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음을 실토하였다.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신설 민영방송의 가시청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밖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 공보처는 곧 대전, 광주, 전주, 부산, 대구, 강원 등지에 지역민영방송을 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노태우 정부는 민방 주체 선정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지는 몰라도 MBC 본사 및 전 계열사의 민간 불하 계획을 재확인하였는데, 그 와중인 11월 1일과 2일에 서울남부지원 측이 청주 등 일부 지방MBC 주식을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도록 판결을 내림으로써 상황은 반전되었다.
이때 나머지 지방MBC의 옛 주주들을 비롯해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을 각각 신군부에 뺏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서울경제신문을 뺏겼다가 9년만에 돌려받은 한국일보, 합동통신을 빼앗긴 두산유업 등 통폐합 피해 언론사주들이 이 판결에 편승해 손해배상과 반환소송 등을 제기했으나 1991년 2월에 법원은 손해배상을 기각했고, 중앙일보는 1991년 1심, 1994년 2심, 1996년 상고심 패소로 뜻을 못 이루었다. 물론 중앙일보는 2009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디어법 개정 이후 신문사도 방송을 소유할 수 있게 허용됨으로써 20년 후 JTBC로 작게나마 소원을 풀었고, 손석희를 영입하고 다수 예능을 성공시켜 지상파에 버금가는 방송사로 키워서 이제는 거의 한을 풀었다.
또한 당시 정부 당국에선 KBS 라디오서울(구 동아방송) 채널을 SBS로 이관시켰는데, 원 주인인 동아일보에선 이에 대해 비분강개했고 이후 노태우 정부를 까게 되었다.[74] 자세한 내용은 동아방송 항목 참조.
11월 26일 '민방감사'라고 불린 국정감사에서도 민방 주체 선정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어떠한 득도 못 이루었다. 국감에서 최병렬 공보처장관은 "제기된 의혹 중 어느 한 가지도 입증된 게 없는데도 언론사와 야당이 불신감만 증폭시키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지만, 모 야당의원은 "공보처장관은 정부 대변인인가, 태영 홍보실장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단체 및 방송 4사 방송악법철폐공대위는 새 민방지배주주 선정 취소, 방송구조 개편계획 재검토, 최병렬 공보장관 퇴진 등을 요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국 방송계는 KBS와 MBC에 비해 더 공격적으로 TV의 오락성 강화에 매진할 SBS의 집권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위와 같은 설립 비화는 2004년 11월 5일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태영의 특혜 의혹들'에서도 다뤄졌다.
출범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양대 방송사에서 스카웃되거나 혹은 기회를 찾아 이적한 인력들이 꽤 그럴듯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75] 프리랜서 방송인이 대부분인 현대와는 달리 이당시엔 방송국 소속으로 탤런트, 코미디언, MC 등이 독점적으로 한 방송사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가수 외에는 모두 해당 방송국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다. SBS는 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탤런트와 코미디언을 타 방송국에서 데려왔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프로그램이 예능 방송의 큰 축이었기 때문에 코미디언 누구 누구가 이적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경쟁 방송사였던 KBS와 MBC의 경우 뉴스나 연예가 소식 프로그램등을 통해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개국 초기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토요일 아침을 책임졌던 <생방송 행복찾기>를 비롯해 장애인들의 인간드라마를 내세운 <사랑의 징검다리>가 있었고, 뉴스는 밤 9시로 굳어져 있는 메인뉴스 타임을 저녁 8시[76]로 앞당겨 고정시켰고 밤 10시에는 기존의 뉴스 형식을 탈피한 토크쇼 형식의 뉴스를 방영했다.[77] 각종 이슈를 센세이셔널하게 다루는 '그것이 알고싶다'는 현재까지도 롱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심지어 개국 초기에는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에일리언 편성해서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78] 1991년 12월 말에 제1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생중계 했다. 최초의 큰 행사를 생중계 한 셈이다.
개국 당시부터 1995년 초까지는 KBS나 MBC와 달리 전국적으로 방송되지 못하고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에서만 방송하였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무조건 잘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단독주택의 경우 텔레비전 수상기에 설치한 안테나가, 다세대주택의 경우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가 KBS2가 쓰던 7번 채널 아래는 어차피 방송이 나오지 않으니 7번 위쪽 주파수 수신 위주로 설계된 안테나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그래서 개국 초창기에는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우밴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는 안내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충청권 일부[79]도 가시청권역이었으나 음영지역이 많아 한 도시에서도 나오는 곳과 안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SBS를 볼 수 없었으며 굳이 보려면 서울이나 경기도 등으로 원정을 나가서봐야 했을 정도였다. 서울에 왔던 시골사람이 SBS를 보고 SBS가 뭐시여?, KBS나 MBC는 눈감아도 알갔는디 SBS인가 SBC인가 그갓은 모르겠네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80][81] 사실 이 때까지의 SBS는 지방 민영방송 체제가 출범되기 전의 시절이라 그 당시까지 어쩔 수 없이 서울과 경기도 지역 등에만 방영되고 볼 수 있었던 그야말로 듣보잡 시절이었다. 이것은 TV뿐 아니라 라디오도 마찬가지였으며 아예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SBS 방송이 나오지 않게 되어서 청취를 못하게 된 경우도 생겼다.[82] 그러나, 당시 라디오는 AM 792kHz 로 방송된 터라, 종료 멘트와 시작 멘트만큼은 새벽시간이라 부산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이는 837kHz CBS도 마찬가지. 다만, TV의 경우 일부 중계유선방송사가 SBS 오리지널 신호를 재전송해주기도 해서, 해당 지역 유선방송 가입자들은 소원을 풀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5월 14일부터 PSB 부산방송(現 KNN), TBC 대구방송, TJB 대전방송, KBC 광주방송로 구성된 1차 지역 민영방송이 개국하면서 수도권에만 방송되던 게 각 광역시 등지에서 방송되기 시작[83] 하였으며, 1997년 2차 지역 민방인 UBC 울산방송, JTV 전주방송, CJB 청주방송이 개국했고. 그러다가 4년 뒤인 2001년 12월, 2002 한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3차 지역민방인 GTB 강원민방 (現 G1방송), JIBS 제주방송이 개국된 뒤, 2006년에 와서야 마지막으로 남은 경상남도 지역의 사업권을 PSB가 가져가고 KNN으로 이름을 바꿈으로서 마침내 지역민방은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TV방송만 해당되고, 라디오 방송의 경우 수도권에만 방송되다[84] 파워FM이 1997년 말에 먼저 지역 민방들과 협정을 맺어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지지부진했던 러브FM도 2016년 5월 10일에 KNN 러브FM이 개국하면서 동남권도 깨끗한 청취가 가능해졌다.[85][86]
개국 초창기에 방영되었던 인기 애니메이션 <피구왕 통키>와 <축구왕 슛돌이>, <슈퍼 그랑죠>도 1997년에 재방영하여 전국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87]
드라마 모래시계는 SBS의 전국적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모래시계 드라마를 VTR 테이프로 방송을 녹화해서 비수도권에서 몰래몰래 돌려보던 게 유행했고, 이어서 아예 비디오 대여점에 모래시계 전편이 정식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급기야 모래시계 송출 시간대에는 서울 시내 택시가 안 잡힐 정도였다. 그러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신문사들과 잡지사들이 모래시계를 엄청 띄워주었고 자연히 SBS의 존재가 비수도권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모래시계는 지역민방 네트워크 출범 이후 1998년 1월에 전국적으로 재방송하였다. 다만 지역민방이 아직 없던 강원 동부, 제주도는 방송되지 못했다.[88] 아무튼 이 드라마는 그냥 듣보잡 수도권 지방방송사[89]를 대한민국 제3의 방송사로 키워준 1등 공신임은 부정할 수 없다.
1993년에는 용문산, 관악산 TV중계소가 완공되어 난시청 해소 및 종전의 어두운 색감과 화질[90]을 전면 개선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이자 유일 그리고 마지막[91])의 AM 라디오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파워FM(FM 107.7Mhz), 1999년에는 러브FM(표준FM 103.5Mhz)이 차례로 개국했다.
KBS, EBS, MBC와는 달리[92] 순수 민간 자본으로 설립하고 운영되는 완전 민영방송사다. 이 때문에 타 방송국과는 달리 상업적인 성격이 강하며, 돈이 되는 방송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 VOD[93] 서비스를 한국 방송 가운데 최초로 유료화하는 등의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94] 하지만 지상파 방송으로 공익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주요 방송사라는 지위가 있고 그에 걸맞은 책임[95]을 다해야 하므로 규제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 같은 민영방송이지만 철두철미한 상업방송인 CJ E&M계열의 케이블 채널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96] 참고로 설립 당시에는 "서울방송"이었기에 위에 나온 "Seoul Broadcasting System"을 SBS의 풀네임으로 썼으나 2000년에 법인명을 SBS로 바꾸면서 서울방송과 그거의 영문 풀네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법인명은 영문이나 숫자 등을 허용하지 않기에 등기 떼어보면 "주식회사 에스비에스"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HD 방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방송사로 시험방송을 2000년 8월 31일에 MBC, KBS(2000년 9월 3일)보다 3일 먼저 시작했다. 2002년부터 SBS 인기가요, 도전 1000곡,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HD로 본격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행사들이나 공연 실황을 HD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 이것은 2010년대가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HD 편성을 시작한 KBS나 HD였어도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던 MBC와 확연히 비교되는 행보였다.[97]
다만 2002년~ 2003년 상반기에는 서울과 광주[98]에만 HD 방송이 한정되어 지방에서는 여전히 4:3 SD(이자 아날로그) 비율로 시청해야 했다. 2003년 부산과 대구에서 HD 방송을 시작했고 그 후 타 지역방송도 HD 방송을 시작하여 2008년까지 전부 HD 방송 전환이 이루어졌다.
2011년부터 MBC 뉴스데스크가 연성화 되면서 '예능데스크'라는 별명을 얻은 것과는 달리, SBS는 뉴스 제작 퀄리티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고유가 시대라서 좋은 점"같은걸 터뜨리던 동네임을 기억한다면 아이템 기획력에서는 아직 MBC보다는 조금 스트레이트한 감이 있지만 불과 1, 2년 전에 비해 그림이나 입체적 구성 등 리포트의 기본 포맷이 상당히 견실해졌다는 평. 이 시기부터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완전히 추월한 듯 하다. 하지만 지상파 후발 주자이자 케이블 뉴스채널, 종편 등의 추격을 너무 신경썼던 것인지 특종 경쟁에 지나치게 목매달다 병크를 가끔 터뜨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자연 편지 사건.[99] 그리고 기자양반이 등장했다. 본격 SBS 뉴스 예능화 선언. 주인공은 바로 이한석 기자. 벌써 디시인사이드 합필갤에서 필수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호평을 받던 중, 2013년 8월 20일, SBS 8 뉴스에서 대형 사건을 일으켜버렸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 유저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도로 제작한 워터마크가 박힌 자료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 자세한 내용은 SBS 8 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이미지 사건 항목 참조.
9월 27일에는 스포츠뉴스에서 위 사건과 같은 사이트 유저가 제작한 연세대학교 심볼마크를 왜곡한 로고를 내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7년 10월 13일 노사 협상 끝에 국내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박정훈 현 사장이 재임명되었다. 사장 뿐 만 아니라 편성·시사교양·보도 최고책임자 역시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데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SBS 사장은 SBS 재적 인원의 60%, 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는 각 부문 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부문 인원의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들어서 다시 노사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모기업인 태영건설이 윤세영 회장의 은퇴와 윤석민 회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SBS가 거꾸로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도록, 지배구조가 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자기 측근들을 지주회사에 심어두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수익을 내는 유통사인 SBS 콘텐츠허브에 윤석민 회장이 "SBS 쪽 사람들은 쓰지 말라."라고 지시했고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이 이를 말리다가 경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SBS 노조가 파업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100]
결국 2019년 4월 16일 범 SBS 비상대책위에서 부천영상단지 경영참사에 대한 특별감사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SBS 내부에서도 경영진의 중대 실책과 태영건설 측의 부당한 경영, 편집권 개입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 여기에 2021년 사측에서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단협(단체협약) 해지 통고 및 임명동의제를 철폐할 것을 SBS 노조측에 요구하면서 노사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심지어 경쟁 방송사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서도 2010~2017년의 무단협 상태에서 겪은 노동탄압, 인권침해 및 방송독립성 침해 실태를 거론하면서 SBS 사측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또한 2019년 고성 산불에서 가로채널 등의 예능을 정상 방송한 후 뉴스특보 체제로 가장 늦게 전환했는데, 이는 재난방송으로서의 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라 국민들에게 비판받았다.
2021년 11월 30일 SBS와 SBS A&T 양사에서 파업결의안이 가결되었으며, 12월 2일 파업결의대회를 거쳐 창사 30년만에 첫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파업 당일 새벽 노사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 잠정 보류 상태에 들어가면서 노조 구성원들은 6일 오전 5시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그리고 12월 7일 '노사 합의문 서명식'을 통해 대타협을 선언하면서 30년만의 첫 파업은 봉합으로 끝났고 사장 임명동의제는 결국 폐지되었다. [101]
2024년에는 모기업 태영건설이 부도 위기에 빠지고, SBS도 1분기에만 150억 적자를 내면서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개국 초기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토요일 아침을 책임졌던 <생방송 행복찾기>를 비롯해 장애인들의 인간드라마를 내세운 <사랑의 징검다리>가 있었고, 뉴스는 밤 9시로 굳어져 있는 메인뉴스 타임을 저녁 8시[76]로 앞당겨 고정시켰고 밤 10시에는 기존의 뉴스 형식을 탈피한 토크쇼 형식의 뉴스를 방영했다.[77] 각종 이슈를 센세이셔널하게 다루는 '그것이 알고싶다'는 현재까지도 롱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심지어 개국 초기에는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에일리언 편성해서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78] 1991년 12월 말에 제1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생중계 했다. 최초의 큰 행사를 생중계 한 셈이다.
개국 당시부터 1995년 초까지는 KBS나 MBC와 달리 전국적으로 방송되지 못하고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에서만 방송하였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무조건 잘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단독주택의 경우 텔레비전 수상기에 설치한 안테나가, 다세대주택의 경우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가 KBS2가 쓰던 7번 채널 아래는 어차피 방송이 나오지 않으니 7번 위쪽 주파수 수신 위주로 설계된 안테나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그래서 개국 초창기에는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우밴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는 안내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충청권 일부[79]도 가시청권역이었으나 음영지역이 많아 한 도시에서도 나오는 곳과 안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SBS를 볼 수 없었으며 굳이 보려면 서울이나 경기도 등으로 원정을 나가서봐야 했을 정도였다. 서울에 왔던 시골사람이 SBS를 보고 SBS가 뭐시여?, KBS나 MBC는 눈감아도 알갔는디 SBS인가 SBC인가 그갓은 모르겠네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80][81] 사실 이 때까지의 SBS는 지방 민영방송 체제가 출범되기 전의 시절이라 그 당시까지 어쩔 수 없이 서울과 경기도 지역 등에만 방영되고 볼 수 있었던 그야말로 듣보잡 시절이었다. 이것은 TV뿐 아니라 라디오도 마찬가지였으며 아예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SBS 방송이 나오지 않게 되어서 청취를 못하게 된 경우도 생겼다.[82] 그러나, 당시 라디오는 AM 792
그러다가 1995년 5월 14일부터 PSB 부산방송(
개국 초창기에 방영되었던 인기 애니메이션 <피구왕 통키>와 <축구왕 슛돌이>, <슈퍼 그랑죠>도 1997년에 재방영하여 전국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87]
드라마 모래시계는 SBS의 전국적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모래시계 드라마를 VTR 테이프로 방송을 녹화해서 비수도권에서 몰래몰래 돌려보던 게 유행했고, 이어서 아예 비디오 대여점에 모래시계 전편이 정식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급기야 모래시계 송출 시간대에는 서울 시내 택시가 안 잡힐 정도였다. 그러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신문사들과 잡지사들이 모래시계를 엄청 띄워주었고 자연히 SBS의 존재가 비수도권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모래시계는 지역민방 네트워크 출범 이후 1998년 1월에 전국적으로 재방송하였다. 다만 지역민방이 아직 없던 강원 동부, 제주도는 방송되지 못했다.[88] 아무튼 이 드라마는 그냥 듣보잡 수도권 지방방송사[89]를 대한민국 제3의 방송사로 키워준 1등 공신임은 부정할 수 없다.
1993년에는 용문산, 관악산 TV중계소가 완공되어 난시청 해소 및 종전의 어두운 색감과 화질[90]을 전면 개선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이자 유일 그리고 마지막[91])의 AM 라디오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파워FM(FM 107.7Mhz), 1999년에는 러브FM(표준FM 103.5Mhz)이 차례로 개국했다.
KBS, EBS, MBC와는 달리[92] 순수 민간 자본으로 설립하고 운영되는 완전 민영방송사다. 이 때문에 타 방송국과는 달리 상업적인 성격이 강하며, 돈이 되는 방송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 VOD[93] 서비스를 한국 방송 가운데 최초로 유료화하는 등의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94] 하지만 지상파 방송으로 공익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주요 방송사라는 지위가 있고 그에 걸맞은 책임[95]을 다해야 하므로 규제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 같은 민영방송이지만 철두철미한 상업방송인 CJ E&M계열의 케이블 채널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96] 참고로 설립 당시에는 "서울방송"이었기에 위에 나온 "Seoul Broadcasting System"을 SBS의 풀네임으로 썼으나 2000년에 법인명을 SBS로 바꾸면서 서울방송과 그거의 영문 풀네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법인명은 영문이나 숫자 등을 허용하지 않기에 등기 떼어보면 "주식회사 에스비에스"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HD 방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방송사로 시험방송을 2000년 8월 31일에 MBC, KBS(2000년 9월 3일)보다 3일 먼저 시작했다. 2002년부터 SBS 인기가요, 도전 1000곡,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HD로 본격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행사들이나 공연 실황을 HD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 이것은 2010년대가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HD 편성을 시작한 KBS나 HD였어도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던 MBC와 확연히 비교되는 행보였다.[97]
다만 2002년~ 2003년 상반기에는 서울과 광주[98]에만 HD 방송이 한정되어 지방에서는 여전히 4:3 SD(이자 아날로그) 비율로 시청해야 했다. 2003년 부산과 대구에서 HD 방송을 시작했고 그 후 타 지역방송도 HD 방송을 시작하여 2008년까지 전부 HD 방송 전환이 이루어졌다.
2011년부터 MBC 뉴스데스크가 연성화 되면서 '예능데스크'라는 별명을 얻은 것과는 달리, SBS는 뉴스 제작 퀄리티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고유가 시대라서 좋은 점"같은걸 터뜨리던 동네임을 기억한다면 아이템 기획력에서는 아직 MBC보다는 조금 스트레이트한 감이 있지만 불과 1, 2년 전에 비해 그림이나 입체적 구성 등 리포트의 기본 포맷이 상당히 견실해졌다는 평. 이 시기부터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완전히 추월한 듯 하다. 하지만 지상파 후발 주자이자 케이블 뉴스채널, 종편 등의 추격을 너무 신경썼던 것인지 특종 경쟁에 지나치게 목매달다 병크를 가끔 터뜨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자연 편지 사건.[99] 그리고 기자양반이 등장했다. 본격 SBS 뉴스 예능화 선언. 주인공은 바로 이한석 기자. 벌써 디시인사이드 합필갤에서 필수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호평을 받던 중, 2013년 8월 20일, SBS 8 뉴스에서 대형 사건을 일으켜버렸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 유저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도로 제작한 워터마크가 박힌 자료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 자세한 내용은 SBS 8 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이미지 사건 항목 참조.
9월 27일에는 스포츠뉴스에서 위 사건과 같은 사이트 유저가 제작한 연세대학교 심볼마크를 왜곡한 로고를 내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7년 10월 13일 노사 협상 끝에 국내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박정훈 현 사장이 재임명되었다. 사장 뿐 만 아니라 편성·시사교양·보도 최고책임자 역시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데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SBS 사장은 SBS 재적 인원의 60%, 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는 각 부문 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부문 인원의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들어서 다시 노사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모기업인 태영건설이 윤세영 회장의 은퇴와 윤석민 회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SBS가 거꾸로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도록, 지배구조가 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자기 측근들을 지주회사에 심어두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수익을 내는 유통사인 SBS 콘텐츠허브에 윤석민 회장이 "SBS 쪽 사람들은 쓰지 말라."라고 지시했고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이 이를 말리다가 경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SBS 노조가 파업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100]
결국 2019년 4월 16일 범 SBS 비상대책위에서 부천영상단지 경영참사에 대한 특별감사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SBS 내부에서도 경영진의 중대 실책과 태영건설 측의 부당한 경영, 편집권 개입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 여기에 2021년 사측에서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단협(단체협약) 해지 통고 및 임명동의제를 철폐할 것을 SBS 노조측에 요구하면서 노사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심지어 경쟁 방송사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서도 2010~2017년의 무단협 상태에서 겪은 노동탄압, 인권침해 및 방송독립성 침해 실태를 거론하면서 SBS 사측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또한 2019년 고성 산불에서 가로채널 등의 예능을 정상 방송한 후 뉴스특보 체제로 가장 늦게 전환했는데, 이는 재난방송으로서의 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라 국민들에게 비판받았다.
2021년 11월 30일 SBS와 SBS A&T 양사에서 파업결의안이 가결되었으며, 12월 2일 파업결의대회를 거쳐 창사 30년만에 첫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파업 당일 새벽 노사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 잠정 보류 상태에 들어가면서 노조 구성원들은 6일 오전 5시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그리고 12월 7일 '노사 합의문 서명식'을 통해 대타협을 선언하면서 30년만의 첫 파업은 봉합으로 끝났고 사장 임명동의제는 결국 폐지되었다. [101]
2024년에는 모기업 태영건설이 부도 위기에 빠지고, SBS도 1분기에만 150억 적자를 내면서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2024.5.7 기준 - 직책과 직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103]
- 방문신 대표이사 사장 - 감사팀 (사장 직속)
- 정책실(양윤석 실장 · 전무) - 자산개발
- 정책국 - 미디어전략, 정책, 법무
- 사업국 - 플랫폼사업, IP사업, 문화사업
- 마케팅국 - 광고마케팅, 제작마케팅
- 편성실(백정렬 실장) - 커뮤니케이션, 아나운서, 심의
- 편성국 - 콘텐츠전략, 편성, 브랜드디자인
- 제작본부(박기홍 본부장) - 운영
- 보도본부(조정 본부장) - 논설위원, 뉴스혁신, 보도운영
- 디지털뉴스총괄 - 편집, 제작
- 스포츠국 - 기획, 취재
- 경영본부(민인식 본부장) - 기획, 인사
- 경영국 - 노사협력, 재무, 총무, ERP
- 기술국 - 기술기획, 기술연구소, 미디어IT, 네트워크기술, 콘텐츠마스터링, 라디오기술
TV는 편성실장, 라디오는 라디오센터장이 책임자 역할을 한다.
- 김광수 (1991~1994)
- 오효진 (1994~1996)
- 임형두 (1996~1997)
- 김수웅 (1997~1999)
- 박준영 (1999~2000)
- 송석형 (2000~2002)
- 안국정 (2002~2005)
- 홍성주 (2005~2007)
- 지석원 (2007~2009)
- 배철호 (2008 / 2009~2011, 라디오)
- 장광호 (2008~2009, 라디오 / 2011~2012, TV)
- 윤영묵 (2009, TV)
- 박정훈 (2009~2011, TV)
- 홍순철 (2012~2014, TV)
- 구경모 (2013, 라디오)
- 이철호 (2013~2014, 라디오 / 2014~2016, TV)
- 김태성 (2014~2015, 라디오)
- 정태익 (2015~2021, 라디오)
- 전수진 (2016~2019, TV)
- 박기홍 (2019~2022, TV)
- 전문수 (2021~, 라디오)
- 백정렬 (2022~,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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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SBS NEWS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SBS NEWS 문서 참고하십시오.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입사년도 및 성별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 순으로 나열하며 지역권 민방 아나운서는 별도 기록 합니다.
'취소선'은 사망(재직 전후) · 퇴사(프리랜서/정년퇴직) · 전향(타 부서/일반관리직 영전) · 이직(다른 직종) · 이적(다른 방송국) 등 각종 사항들로 당사를 떠난 모든 아나운서에게 적용 됩니다.
기수 | 입사년도 | 남성 | 여성 |
1기 | 1991년 | ||
경력 | 1992년 | ||
경력 | 1993년 | ||
2기 | 1993년 | ||
3기 | 1995년 | ||
경력 | 1996년 | ||
4기 | 1996년 | ||
6기 | 1998년 | ||
8기 | 2000년 | ||
9기 | 2001년 | ||
11기 | 2003년 | ||
13기 | 2005년 | ||
14기 | 2006년 | ||
15기 | 2007년 | ||
17기 | 2010년 | ||
18기 | 2012년 | ||
20기 | 2014년 | ||
22기 | 2016년 | ||
24기 | 2018년 | ||
경력 | 2021년 | ||
경력 | 2023년 |
활동 중인 탤런트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 혹은 무명 및 특채 탤런트도 함께 기재합니다.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탤런트입니다.
- 일러두기
- 활동 중인 코미디언을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 혹은 무명 및 특채 및 영입된 코미디언도 함께 기재합니다.
- 취소선은 은퇴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이적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제명된 코미디언입니다.
기수 | 입사년도 | 남성 | 여성 |
영입 | 1991년 | ||
특채 | 장지연 · 유정화 | ||
1기 | 1992년 | 최윤희 · 정은숙 · 정선희 · 박준화 · 김윤희 · 이은주 | |
영입 | 이현주 | ||
2기 | 1993년 | 윤정화 · 이상은 | |
영입 | |||
3기 | 1994년 | 고은주 · 최미미 · 홍호영 · 강남영 | |
특채 | |||
4기 | 1995년 | 안재우 · 최민석 · 조상범 · 김지현 · 김병우 · 이정길 · 맹영기 · 황원식 | 이영경 · 문지연 · 이정은 · 윤보경 |
5기 | 1996년 | 배진경 · 이은영 · 이지영 · 오미지 · 윤미지 · 김현정 | |
특채[189] | 1999년 | ||
6기[192] | 2001년 | ||
특채[웃찾사] | |||
7기[199] | 2003년 | ||
특채[웃찾사] | |||
8기[203] | 2005년 | ||
9기[205] | 2007년 | ||
10기 | 2008년 | ||
11기 | 2009년 | ||
12기 | 2011년 | ||
특채 | |||
특채 | 2012년 | ||
13기 | 2013년 | ||
14기 | 2014년 | ||
15기 | 2015년 | ||
16기 | 2016년 |
자세한 내용은 스튜디오S 문서 참고하십시오.
스튜디오 프리즘 (예능본부)
현직
- 최영인(1996년 입사)[220] 예능본부장
- 유윤재(1995년 입사) 예능1CP
- 공희철(1995년 입사) 예능2CP
- 박성훈(1998년 입사) 예능3CP
- 곽승영(2000년 입사) 예능4CP
- 김용권: 예능디지털스튜디오팀장
- 김용재: 글로벌콘텐츠비즈팀장
- 최승준: 글로벌콘텐츠비즈팀 공연사업담당
- 하승보(1991년 입사)
- 안범진(1994년 입사)
- 김재혁(1995년 입사)
- 김태형(1995년 입사)
- 민의식(1995년 입사)
- 백승일(1995년 입사)
- 심성민(1995년 입사)
- 윤대중
- 이지원(2000년 입사)
前 정글의 법칙 연출 - 이환진(2010년 입사)
- 최보필(2014년 입사)
전직
- 조용호(1991년 입사, 1993년 정년퇴임)[221]
- 윤두병(1991년 입사, 1994년 퇴사)
- 이태흥(1991년 입사, 1994년 퇴사)
- 정상일(1991년 입사, 1994년 퇴사)[222]
- 조항현(1991년 입사, 1995년 퇴사)
- 이기진(1991년 입사, 1998년 퇴사)[224]
- 윤상섭(1991년 입사, 2001년 퇴사)[225]
- 김상배(1991년 입사, 2022년 TV CHOSUN 이직)
- 김태성(1991년 입사)
- 김혁(1991년 입사)[226]
- 김현서(1991년 입사)
- 박재연(1991년 입사)
- 안지용(1991년 입사)
- 연태흠(1991년 입사)
- 윤인섭(1991년 입사)[227]
- 이남기(1991년 입사)[228]
- 이상훈(1991년 입사)[229]
- 이제권(1991년 입사)
- 이충용(1991년 입사)[230]
- 이풍호(1991년 입사)
- 정동천(1991년 입사)[231]
- 정환식(1991년 입사)[232]
- 주병대(1991년 입사)[233]
- 차성모(1991년 입사)[234]
- 최성인(1991년 입사)
- 최수일(1991년 입사)
- 남승용(1994년 입사, 2019년 CJ E&M 이직):
前 예능본부장. - 이영준(2000년 입사, 2017년 CJ E&M 이직)
- 임형택(2003년 입사, 2022년 퇴사)
- 정철민(2010년 입사, 2020년 CJ E&M 이직)
- 박경덕: 퇴사 후 CJ E&M으로 이직.
시사교양본부
현직
- 이윤민(1991년 입사)
- 민인식(1992년 입사)
- 이광훈(1994년 입사)
- 김종일(1995년 입사)
- 박상욱(1995년 입사)
- 신동화(1995년 입사)
- 유영석(1995년 입사)
- 최상재(1996년 입사)
- 이큰별(2010년 입사)
전직
- 김형숙(1991년 입사, 1998년 퇴사)
- 윤동혁(1991년 입사, 1998년 퇴사, 2024년 사망)[239]
- 김종찬(1991년 입사, 2004년 사망)[240]
- 황효선(1991년 입사, 2004년 정년퇴임)[241]
- 박영호(1991년 입사, 2009년 정년퇴임)
- 이웅모(1991년 입사, 2013년 SBS 사장 임명)[242]
- 강부길(1991년 입사)[244]
- 고장석(1991년 입사)[245]
- 서유정(1991년 입사)
- 성영준(1991년 입사)
- 신언훈(1991년 입사)[246]
- 신완수(1991년 입사)[247]
- 오기현(1991년 입사)[248]
- 장광호(1991년 입사)
- 장동욱(1991년 입사)[249]
- 조욱희(1991년 입사)
- 홍성완(1991년 입사)[250]
- 홍성주(1991년 입사)[251]
- 박봉곤(1992년 입사, 1995년 퇴사)[252]
- 홍수정(1995년 입사, 2002년 퇴사, 2007년 사망)
- 최삼호(2004년 입사)[253]
편성(애니메이션/외화(영화팀))
현직
전직
라디오센터
- 관악산 송신소와 남산 송신소를 주력 송신소로 한다.
- 본 문단에 기재하는 TV 채널과 라디오 주파수는 디지털 TV의 실제채널(UHF)과 FM 주파수(VHF)이다. 아날로그 TV는 2012년 12월 31일인 오전 4시에, AM은 2022년 11월 8일 오전 10시 26분에 방송이 종료되어 제외되었다. 아날로그 TV 채널 및 송신소 목록(종료 당시)
- 디지털 TV의 모든 물리채널에 부여된 가상채널은 6-1이다.
- 채널과 주파수 앞뒤에 붙는 ch.와 Mhz 등의 단위는 생략한다.
송신소 | 채널ㆍ주파수 | 주소 | |||
TV | 러브FM | 파워FM | DMB | ||
관악산 | 16(HD) 53(UHD) | 103.5 | 107.7 | 12C |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산1-3 |
남 산 | 44(HD) 53(UHD) | - | - | 12C |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길 126[302] |
백 련 | 34 | - | - | - | 서울 은평구 응암1동 산7-4 (백련산) |
장 위 | 39 | - | - | - | 서울 성북구 화랑로13길 144[303] |
목 동 | 16(HD) 53(UHD) | - | - | - |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161[304] |
파 평 | 29 | - | - | 12C | 경기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산23-5 |
불 광 | 29 | - | - | 12C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 (매봉) |
광 명 | 31 | - | - | - | 경기 광명시 철산4동 산68 (도덕산) |
안 산 | - | - | - | 12C | 경기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산40-1 (노적봉) |
성 남 | 29 | - | - | - | 경기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산2-2 (검단산) |
운 중 | - | - | - | 12C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산83 |
경기광주 | - | - | - | 12C | 경기 광주시 경안동 산20-42 |
광교산 | 31(HD) 53(UHD) | - | - | 12C |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52 (광교산) |
용 인 | - | - | - | 12C |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산3-1 |
이 동 | - | - | - | 12C |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산80-1 |
안 성 | - | - | - | 12C | 경기 안성시 당왕동 산26 (비봉산) |
용문산 | 29(HD) 53(UHD) | - | - | 12C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5-1 (용문산) |
이 천 | - | 98.3 | - | - | 경기 이천시 부발읍 무촌로18번길 130[305] |
포 천 | - | - | - | 12C |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산98-5 (천주산) |
동두천 | 22 | - | 100.3 | - | 경기 동두천시 생연1동 산43-4 |
해룡산 | 35(HD) 53(UHD) | - | - | - | 경기 동두천시 탑동동 산79[MBC공용] |
계양산 | 35 | - | - | 12C | 인천 계양구 목상동 산57-1 |
인 천 | 39 | - | - | - | 인천 중구 자유공원남로 51[307] |
만 월 | - | - | - | 12C | 인천 남동구 간석3동 산32-1 (만월산) |
하 점 | - | - | 12C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 산173-3 (별립산) | |
백 령 | 42 | - | - | - | 인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 812[309] |
대 청 | 31 | - | - | - | 인천 옹진군 대청면 |
방송지역
자세한 내용은 SBS TV 문서 참고하십시오.
- 스튜디오프리즘 채널사업부문 소속
- SBS미디어넷 소속
- SBS Sports[314] - 옛 한국스포츠TV, SBS ESPN
- SBS M - 옛 SBS MTV
- SBS FiL UHD - 옛 SBS Plus UHD
참고: 대한민국의 뉴미디어 브랜드 |
앞에 나열된 방송국들은 SBS와 네트워크 협정을 맺은 민영 방송사들이다. 자체 프로그램 제작 여건이 상당히 열악하기 때문에 많은 프로그램을 SBS로부터 릴레이하는 관계로 SBS의 계열사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간혹 SBS 방송에 대한 항의를 다른 지역민방 건의페이지에 올리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SBS는 키 스테이션[319]의 역할 또한 SBS에게 이득이 되는 범위 이상은 하지 않으며 그럴 지위에 있지도 않다. 쉽게 말해서 SBS는 대구·경북 TBC나 광주·전남 kbc처럼 자기네 지역만을 권역으로 하는 지역 민영방송 기업이며, 수도권 지역만을 맡고 있다.
지역민방의 경우 자체편성비율이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어서 평상시에는 지역민방 별 자체 뉴스 + 민방사 별 자체제작 프로그램 + 지역민방 공동 제작 프로그램[320]을 통해서 자체 방송 비율을 무난히 넘기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나 연말에 개최되는 SBS의 연말 시상식(SBS 가요대전, SBS 연예대상, SBS 연기대상)들이 편성될 시기엔 수중계해야 할 프로그램이 늘어나서 이 비율을 맞추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이 된다.
비수도권 민영방송사들이 자체 콘텐츠로만으로는 채울 여건이 안 되는 관계로 전혀 관계 없는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사와서 재전송 하는 형태인데, 제작여건이 우수하여 퀄리티가 어느정도 나오는데다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SBS의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사오는 것일 뿐이다.[321]
이러한 속내를 잘 모르고는 SBS의 프로그램을 안 보내준다고 이들 방송사에 "왜 니들 맘대로 SBS 프로그램을 잘라 버리냐?" 며 항의를 하는 시청자도 있는데 이럴 때마다 이들 방송사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한다. 또한 시청자들의 바람대로 100% SBS의 프로그램만을 보여 주고 싶어도 자체 콘텐츠가 일정비율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법규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사실 SBS의 방송을 그대로 릴레이해 주면 지역민방도 좋은 게, SBS가 우리 프로그램 릴레이해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뜻으로 전파료를 지급한다. 지역민방이 상대적으로 조악한 제작환경 속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광고를 유치하는 것보다, SBS 전파 받아서 상단 오른쪽에 방송사 워터마크만 함께 띄워서 그대로 내보내는게 지역민방으로서는 더 편하다. 오히려 정치권, 언론에서는 자체 콘텐츠의 비율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지역 문화의 창달'이라는 지역민방의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SBS의 중계국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지역민방 아나운서 SNS 프로필에는 '지역민방(지역+SBS)'[322]로 적는 경우가 있다.
즉 극단적으로 말해 아래의 방송국들이 SBS의 프로그램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100% 자체 방송만을 보여 준다고 하여도[323] 그 지역 시청자들은 항의할 권리가 아예 없다.
이 네트워크 협정은 일본처럼 뉴스 네트워크도 겸하고 있는데, 메인뉴스인 SBS 8 뉴스에서 지역 관련 뉴스는 다른 지상파와 종편에서 정규방송을 끊고 뉴스특보 체제로 전환하는 큰 사건일 경우 간혹 SBS 기자가 직접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가 아닌 일상적인 상황엔 그 지역의 민영방송에서 취재한 뉴스를 전송받아 보도한다.
그런데 가뜩이나 우월적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SBS의 위치를 더 강화시키는 일이 민영 미디어렙 출범 이후 발생했는데, SBS와 지역 민영방송사(여기에는 OBS도 포함)가 공동 출자하여 만든 미디어렙 회사인 'SBS M&C 광고 결합판매[324]'에 따른 수입 보장을 조건으로 각 지방 민방사의 방송 편성에 개입하는 듯한 내용을 확약하는 문건을 만들어 둔 것이 폭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 이 문건의 주요 내용은,
1. SBS 8 뉴스를 20시 25분까지 전 회사가 통일적으로 편성하고 지역민방 뉴스를 방송한다.
2. 21시~24시의 '프라임 타임' 중 85% 이상 SBS 프로그램을 릴레이 방송한다.
3. 한국민영방송협회(SBS와 지방 민방 9개사) 회원사가 아닌 다른 민영방송사(OBS, 종편 4사 등)가 제작한 프로그램은 편성하지 않는다.
4. 월드컵, 올림픽 등 국민적 관심행사의 중계방송은 SBS의 편성에 따라 의무적으로 편성한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19대 국회 때 최민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폭로했다. #
결론적으로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수입 보장 못 해준다는'는 의미를 담은 문건이라서 각 지방민방사와 노조 측에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SBS와 네트워크 관계가 아닌 OBS 노조 측도 강하게 반발했는데, 3번째 항목이 자신들과 방송 권역이 겹치는 SBS가 소규모 방송인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325]
자세한 내용은 SBS/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SBS/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
지하철
● 오목교역
버스
- 목운초등학교.목운중학교 정류장: 부천 버스 98, 서울 버스 6638
- 목동대학학원 정류장: 서울 버스 640, 서울 버스 650, 서울 버스 5012, 서울 버스 5616, 서울 버스 6211, 서울 버스 6628, 서울 버스 6629, 서울 버스 6630, 서울 버스 양천04
- 방송 초창기 일본의 예능프로그램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있었다. 링크
- 개국 초기 "SBS 광고대상" 이라는 이름으로 시상식을 진행 했었으나 알 수 없는 사유로 폐지되었다.[331]
- 국내 지상파 방송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열렸던 올림픽 중에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최초로 중계를 하였다. 1988년에 열렸던 1988 서울 올림픽은 개국하기 이전이라 이 당시에는 중계방송사에 포함되지 않았으며[332] 전체적으로는 2002 한일월드컵이 SBS 개국이래 최초로 중계했던 국내에서 개최한 국제 메이저 대회이다.
- 개국 당시에는 당연히 서울특별시 전역을 비롯하여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 전역과 강원도 원주시 및 홍천군 일부를 중심으로 송출을 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에서는 TV로 직접 시청할 수 없었다. 대신 일부 유선방송 등을 통해서 볼 수는 있었지만[336] 지상파임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까지는 지방 민영방송 체제 이전 시절이라 서울, 인천, 경기도 지역과 강원도 원주나 홍천 일부 등지에서만 지상파식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드라마 모래시계의 흥행을 계기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을 시작으로 지방 민영방송이 출범하였고 후에 나머지 지역들도 자체적인 지방 민영방송을 출범하면서 전국적으로 지상파식의 시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90년대에 서울이나 수도권이어도 TV가 구형이면 SBS 방송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분명히 6번으로 맞췄는데 안 나옴.
- 개국 당시인 1990년대 초중반에만 했어도 다수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빙판으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피구왕 통키, 몽키삼총사, 달려라 부메랑, 슈퍼 그랑죠, 이상한 나라의 폴(재더빙판), 웨딩피치(재더빙판) 등이며 지상파에서는 최초로 짱구는 못말려를 방영하였고[337] 2000년대에는 지상파에서는 유일하게 빛의 전사 프리큐어와 베리베리 뮤우뮤우를 더빙판으로 방영한 적도 있다. 또 자체적으로 빛돌이 우주 2만리도 제작하여 방송한 적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에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지방 민영방송 체제 이전에 방송한 애니메이션들이라 아쉽게도 나머지 지방에 살았던 어린이 및 시청자들은 유선방송이 아니면 직접 볼 수 없었던 단점이 있었다.[338] 애니메이션 쿼터제 시행 전까지만 해도 ‘만화왕국 SB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황금기를 누렸다.
- 국내 지상파 방송사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초기 자사 캐릭터였던 빛돌이를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설정하여서 1990년대 당시 3D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였던 빛돌이 우주 2만리를 통해서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물론 KBS도 국산 애니메이션인 달려라 하니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녹색전차 해모수 등의 제작에 참여하였지만 방송사 자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방송한 곳은 SBS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예행연습을 무단방송해서 가뜩이나 시끄러운 올림픽을 더 시끄럽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똑같은 짓을 자행한 바 있다.
- 2010년 연기대상에서도 상당히 논란이 큰데, SBS 드라마가 2010년에 대박이 많이 터진 편이였지만, 유달리 자이언트가 강한 편이였고, 거기에 자이언트에 출연했던 정보석이 지붕뚫고 하이킥의 쥬얼리 정이라는 바보연기에서 180도 바뀐 악역 조필연 연기를 정말 충실하게 잘해와서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호평이였고, 오죽했으면 "대상은 정보석이겠지"하던 사람에게 뒷통수를 쳤다. 정보석이 연기자로써 처음 도전한 이승기도 받은 우수상을 수상하는데 그쳤기 때문.[340] 그에 반해 대물로 시청률은 좋긴 했지만, 썩 평가가 좋지 않던 고현정이 대상을 타 버려서 "역시 시방새"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 1996년 3월 1일부터 일곱번째로 라디오 24시간 방송을 개시했으며, 2012년 10월 29일부터 KBS 1TV에 이어 두번째로 TV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역민방은 2012년 11월 12일 KNN을 시작으로 전 지역이 24시간 방송을 시작했다.[345] 이후로는 24시간 방송을 점진 축소하면서 토요일과 명절연휴에만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일로 넘어가는 24시간 방송도 2024년 9월 21일부터 네트워크 특선 재방송을 슬그머니 폐지하고 글로벌 특선 다큐를 보낸뒤 오전 3시 15분에 방종을 하면서 부터 이것도 역사가 되어 버렸고 지역민방 역시 네 곳의 방송사가 24시간 정규방송을 중단했다.[346]
- 드라마 덕후들 사이에서 지상파 3사 중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의 관리자가 일을 드럽게 안 하기로 악명높다. 드라마 메이킹 영상이나 촬영현장 포토스케치 업로드가 부실한 편. 종종 부실한 부가 콘텐츠 때문에 오늘도 드덕들 사이에서는 역시 씨방새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터져나오고 있다. 다만 "PD노트"를 런칭한 이후부터는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2018년 야인시대 2차 창작물 저작권 위반 논란으로 다시 비판받고 있는 중.
- 2012년 12월 31일 새벽4시부로 수도권 아날로그 TV 방송 송출을 중단하기 전에 아래와 같은 자막을 띄우고 송출중단 기념방송도 안한채 쓸쓸하게 아날로그 시대를 마감했다. EBS, MBC도 하지 않았으며, KBS는 KBS 1TV만 디지털 전환 특집방송만 하고 아날로그 송출을 중단했지, 일본이나 미국, 호주처럼 과거의 방송국 역사를 정리하고 옛 오프닝/엔딩을 틀어놓는 식의 고별방송을 하지 않았다.[350] 사실 영국도 한국과 비슷하게 고별방송 따위는 씹어드시고 송출중단 직전에 디지털 수신 안내방송을 잠깐 하거나, 런던지역 아날로그 송출 종료 때처럼 정규 프로그램 끝나자마자 전파를 팍 끊어버렸다.
- 2013년 11월 10일부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기술기준개정과 지상파 방송 변경허가에 따라 수도권에서 지상파 3D방송 본방송을 시작했다. 3D콘텐츠를 HD화질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볼 수 있는 시청자는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 아날로그 케이블에서 HDTV 직접 수신 채널을 볼 수 있는 가구에 한정된다. 단말기도 2012년 이전 출시된 삼성전자와 LG전자 3DTV로 외산TV는 제외된다. 이에 따라 혜택 가구는 약 40~50만 가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SBS는 2D콘텐츠를 3D로 변환하거나 스튜디오 강연 등을 3D카메라로 직접 찍어서 콘텐츠를 마련했다. ‘TV 속 움직이는 세상 더 3D’에서 드라마와 K팝 콘서트를 3D로 변환해 매월 한편씩 10개월에 걸쳐 방영한다. 또 지식 강연 프로그램 ‘2013 아이 러브 인 시즌 4’를 통해 박재희, 강신주 등의 강연을 3D 영상으로 제작했다. 프로그램 앞에 붙는 일부 광고도 3D로 제작했다. 프로그램 방송시간은 토요일 밤 12시 15분이다. #
- 2013년 SBS의 수목 드라마 라인업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그야말로 대박이였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부터 너의 목소리가 들려, 주군의 태양,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까지 웰메이드에상속자들을 제외하고막장성 없는 드라마를 계속해서 찍어내며 연이은 성공을 거두면서 SBS는 방송 3사를 통틀어 수목극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2013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한 두번을 제외하고는 1위를 뺏긴 적이 없으니… 다만 2014년 3월부터 방송되는 쓰리 데이즈가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SBS의 수목극 올킬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다행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은근히 회복되는 추세였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조선 총잡이에 상대적으로 밀렸고[351],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아예 1자리 수로 내려가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 드라마가 너목들의 박혜련 작가와 조수원 감독의 피노키오. 덕분에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고, 실제로 경쟁작인 미스터 백이 하향세를 보이고 왕의 얼굴이 크게 흥행하지 못하는 틈을 타 상승세를 보였다.
- 하지만 피노키오의 후속작인 하이드 지킬, 나에서 다시 침체에 빠지기 시작[352]… 하는 듯 하였으나 후속작 냄새를 보는 소녀가 중반까지는 시청률이 별로였다가 동시간대 후반부에(15~16회) 10%대 시청률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도 함과 동시에 10대 ~ 20대 사이에서 화제성이 매우 높았고, 후속으로 방송된 가면이 방영 내내 10% 초반대 시청률을 종종 기록하면서 동시간대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가면의 후속 용팔이는 첫방부터 10%를 훨씬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 단 6회 만에 20%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SBS 수목극 흥행 기록을 썼다.[353]
- 2016년 제일 처음으로 방송사고를 터뜨린 기록을 보유 중이다.
- 자사 드라마 피노키오의 MSC 사옥 촬영지이기도 하다.
- 다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내에서만 무료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수도권이나 해외 거주자는 물론이요 수도권 거주자라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서울 거주자라도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 서초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단점도 역시 존재.
- 2차 프로그램 업데이트는 원래대로라면 2018년 하반기에는 진행되었어야 했으나, 프로그램 선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현재까지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2022년 들어 SBS 홈페이지에 과거 프로그램들을 업로드하는 걸로 이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SBS 초창기 드라마나 시트콤은 일산 스튜디오에서 가까운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많이 촬영되었다. 그 당시의 일산신도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산이 아니더라도 장소 상관없이 촬영한다.
- 농구 방송으로 유명한데[363],프로농구단을 운영한 적도 있다. 현재의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가 바로 그 농구단. 1992년에 안양시를 연고로 SBS가 설립한 농구단으로, 1997년에 프로화되었으나, 2005년에 KT&G에 매각했다.
- 2020년 중후반부터는 TV자막광고를 세로형으로 송출하고 있다.[365]
- 재방송의 경우 광고가 있어도 제공자막을 띄우지 않는다.
- 2019년 이후부터 아나운서들이 줄줄이 퇴사하기 시작하면서[366], KBS, MBC라면 후임을 여럿 받을 만한 연배의 이인권, 주시은 아나운서가 막내 취급을 받는 등 회사가 이들의 짬밥 대우를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고생시키고 있으며, 아나운서팀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367][368] 특히, 스포츠 분야의 경우에는 해외축구는 물론 국내축구, 주요 종목 중계권도 못 사주는… 아니 안 사주는 바람에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크지를 못하고 있는데, 배성재가 퇴사할 때도 스포츠 커뮤니티의 반응이 "드디어 중계를 마음껏 할 수 있겠구나"였다(…).[369]
- 후CM에 다음 프로그램 로고를 미리 띄우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데 예능이나 드라마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으로 추정된다.[370]
- 2022년 5월 26일 정파 중에 시험방송을 진행하였다. SMPTE 컬러바에 '목동 DTV 주조정실 송출'이라고 써져 있었다.
- 화면조정 시 옛날에는 모든 프로그램을 소개했지만, 현재는 KBS, MBC와는 달리 하루 중의 모든 프로그램을 방송순서에 내보내지 않고 주요 프로그램만 오래 띄우며 소개한다.
- 영상구매 쪽에서 MBC, KBS에 비해서 저작권, 초상권을 이건 좀 너무 심한 수준 아닌가 할 정도로 따져서 저 두 방송사들과 비교하면 영상구매가 까다로운 편이다. 그나마 드라마 쪽은 별 문제가 없는데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의 90년대 ~ 2000년대 에피소드나 90년대에 방영된 추적 사건과 사람들 등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계열들은 개인소장용으로 영상구매문의를 해도 저작권, 초상권 문제로 인해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답변이 온다. 그리고 이런 옛날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SBS 공식 유튜브 채널 등에서도 업로드하지 않다보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다시보기를 할 수가 없다.[371] KBS와 MBC는 옛날에 방영된 시사교양 프로그램들도 몇개의 방송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순수 개인소장용으로는 구매가 가능하단 걸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음악 프로그램들의 판매도 한동안 중지된 적이 있었다.
- SBS 사이트에서 영상 다시보기를 제공한다. PC, 모바일 웹, 앱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문제는 너무 긴 광고. 15초나 되어야 스킵이 가능한 광고를 비로그인 상태에서는 무려 4번을, 로그인해도 두 번은 봐야 한다는 것. 거기다 유튜브 광고처럼 어쩌다가 또는 자주 나오거나 한번 보면 잠시나마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켤 때마다 항상 무조건 나온다. 이 때문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앱 광고를 스킵하기 위해서는 300이상의 포인트가 필요한데, 이것도 물론 돈을 내야 한다. 300포인트는 300원에 결제하며 하루 동안, 700포인트는 700원에 결제하고 7일간, 2000포인트는 2000원에 결제하고 30일 간 광고스킵 서비스를 사용 가능하다. 돈 없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광고를 볼 때마다 5포인트씩 모이기는 하나 그걸로 300을 모으려면 무려 60번을 봐야 하는데다 앞서 말했듯 그렇게 해도 하루밖에 이용할 수 없이 때문에 실용성은 떨어지는 방법. 원래 모바일 웹에서는 광고차단 앱 등을 쓰면 광고를 차단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아예 그렇게 광고를 차단하면 아예 영상 자체를 볼 수 없게(즉 광고를 허용해야만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버렸으며 덤으로 모바일 웹에서는 아예 3분 미리보기밖에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 한때 SBS 창의체 / 신뢰체 라는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방송 등에 활용했으나, 2020년 이후로는 사내용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1] 하단에 표기된 "Seoul Broadcasting System"의 두문자어이다.[2] 상호 및 외국인의 성명 등의 등기에 관한 예규에 의거해, 등기 상호에 병기 외에는 한글과 숫자밖에 사용할 수 없어 나온 명칭으로 만약 로마자 알파벳의 혼용이 가능했다면 국문 명칭은 진즉에 내다버리고(..) 주식회사 SBS만 주구장창 사용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SBS가 국문명을 사용하는 대부분이 공식 서류이기도 하고..[3] 원래는 태영건설이 직접 SBS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언론 사유화를 우려한 SBS 노조의 요구로 2009년 물적분할을 하여 중간지주회사가 SBS미디어홀딩스로 분리되어 태영건설이 SBS미디어홀딩스의 주식 60%를 보유하는 걸로 매듭지어졌다. 이후 태영그룹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2020년 6월 TY홀딩스로 대주주가 변경되었으나 2021년 11월 임시주총을 열어 SBS미디어홀딩스와의 흡수합병 계약을 승인하면서 13년만에 소멸했다. 모회사만 지주회사로 바뀌었을 뿐 2009년 이전으로 복귀한 셈이다.[4] 2016년부터 사훈으로 사용 중이며, 2017년부터 TV Sign ON/OFF에서 볼 수 있다.[5]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민방처럼 자체적으로 전국 방송은 하지 않지만 1995년 모래시계의 전국구급 대성공 이후 다른 지역 민영방송과 네트워크 협정을 맺어 전국 방송이 가능하게 했다.[6] SBS 라디오가 사용했던 주파수 792㎑는 종전 동아방송(DBS)의 주파수였다. 1980년 말 언론통폐합 이후 KBS로 넘어가 KBS 라디오서울의 주파수로 쓰이다가 KBS가 조직 개편을 하고, 1991년 3월 11일 폐국하였다. 그리고 SBS가 개국하는 과정에서 SBS가 그 주파수를 부여받았다.[7] 이 때문에 SBS가 개국하자 주파수를 돌려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KBS와 SBS를 장물취득자라고 쌍으로 까버렸다. #[8] 지상파 방송 3사 중에 가장 일찍 여의도를 떠난 방송사로 기록되었다. 그 다음은 MBC로 2014년 8월 4일에 상암동으로 이전했으며, 현재는 KBS만이 여의도에 있다.[9] EBS나 EBSi가 듄이나 듀냐로 부르듯이 SBS도 한글로 오타가 나면 뉸으로 된다.[10] SBS를 소리나는대로 읽은 것이다. SBS에서 '스브스뉴스'라는 뉴미디어 뉴스 서비스로 이 별명을 활용하고 있다.[11] 넷에서 사용 빈도를 따지고 봤을 때 SBS의 대표 멸칭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놀라운 대회 스타킹 PD의 무한도전 편애 발언이나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스타킹 정상 방송 강행, 욕심만 많고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는 연말시상식 등을 비판하는 목적이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SBS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식의 편파보도를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12] 다만 올림픽 중계권은 2026년부터 JTBC로 넘어갈 예정이며, 아시안 게임 중계권은 2022년부터 SPOTV로 넘어갔다.[13] 동아방송(DBS)에서 KBS 라디오 서울로 이어지는 시절까지는 HLKJ를 사용했으며 1991년 서울방송(SBS)가 개국하면서 HLSQ로 부호가 변경되었다. 이후 SBS TV, SBS 파워FM, SBS 표준FM(러브FM), SBS 디지털TV, SBS u DMB, SBS UHD 순으로 개국하면서 파생 부호를 부여받았다가 2022년 11월 8일 이후 6개월간 SBS 러브FM AM방송(MW/792kHz ) 운용을 전면 휴지하면서 표준방송부호 HLSQ를 6개월 운용휴지 기한이 만료되는 2023년 5월 8일자로 대한민국 정부에 반납하게 되었다.(그 이후 SBS 호출부호(HLSQ) 자체는 2012년 12월 31일 중단되면서 반납한 아날로그 TV방송을 제외하고 TV방송 파생부호인 -DTV(SBS 디지털TV), -UHDTV(SBS UHD)와 FM방송 파생부호인 -SFM(러브FM)과 -FM(파워FM),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파생부호인 -TDMB(SBS u)로 계속해서 유지하는 실정) 현재 호출부호 HLKJ은 제주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