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오만 무스카트, 나승우 기자) 한국 축구는 결국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이 벼랑 끝 홍명보호를 살렸다. 손흥민이 아니었으면 또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랑하는 한국이 이젠 중위권 국가들에도 쉽게 이길 수 없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겼다. 손흥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천신만고 끝에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첫 승을 낚았다. 한국은 11일(한국시간) 오만 무스카트 술탄 카부스 경기장에서 끝난 2026 북중미 월드컵(캐나다·멕시코·미국 공동개최) 아시아 3차예선 B조 2차전에서 에이스 손흥민이 결승포를 넣고 선제골과 추가골을 돕는 등 1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3-1로 이겼다.
한국은 손흥민 외에 황희찬이 전반 10분 선제골, 주민규가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넣었다.
지난 5일 팔레스타인과의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온갖 비판을 받았던 홍명보호는 어쨌든 오만전 승점3을 챙기며 1승 1무(승점 4)를 기록하고 한숨 돌렸다. 1차전 이라크 원정에서 패했던 오만은 2연패 늪에 빠졌다.
이날 오만을 이기지 못했더라면 조기 경질론에 휩싸일 뻔 했던 홍 감독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귀국길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다만 경기력은 오만전에서도 개선되질 않았다는 점이 앞으로도 계속 지적받을 전망이다.
홍 감독은 오만 원정에서 지난 5일 팔레스타인전과 똑같은 4-2-3-1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선발 멤버 5명을 바꾸는 변화를 통해 승리를 노렸다.
조현우 골키퍼가 골문 앞에 선 가운데 백4는 왼쪽부터 이명재,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로 구성됐다. 더블 볼란테로 박용우와 황인범이 포진한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론 이강인이 낙점받았다. 전방 스리톱은 손흥민과 오세훈, 황희찬으로 완성됐다.
공격적인 변화를 도모한 셈이었다. 백4에선 센터백 김영권, 풀백 황문기 대신 정승현, 이명재로 각각 바뀌었다. 미드필드에서도 정우영, 이재성이 빠지고 박용우, 이강인이 들어갔다. 이강인은 팔레스타인전 측면 공격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원톱도 주민규가 빠지고 오세훈이 꿰찼다.
황희찬의 선발 출격도 눈에 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프턴에서 뛰는 황희찬은 팔레스타인전에선 후반 교체로 투입됐으나 특유의 돌파력을 앞세워 좋은 컨디션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날개로 이번 오만전에 들어가게 됐다. 이강인이 윙어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동함에 따라 기존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이재성이 벤치 대기했다.
홍 감독은 자신이 울산 감독 시절 가르쳤으며 현재 중동에서 뛰는 정승현과 박용우의 선발 투입도 단행했다.
홈팀 오만은 4-4-2 전형을 꺼내들었다.
이브라힘 알무카이니가 골키퍼 장갑을 꼈고, 알리 알부사이디, 모하메드 알무살라미, 아흐메드 알카미시, 아마드 알하르티가 수비를 맡았다. 압둘라흐 파와즈 하립 알사디, 자밀 알야흐마디, 나세르 알라와히가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다. 압둘라흐만 알무샤이프리, 무센 알가사니가 최전방 투톱으로 출격했다.
지난 경기 부상으로 교체됐던 알무살라미와 알카미시가 예상과 달리 모두 정상 출전하면서 뜨거운 맞대결을 예고했다.
한국은 팔레스타인전과 달리 전반 시작부터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과감한 슈팅도 이뤄졌다.
전반 4분 가운데로 이동한 이강인이 아크 정면에서 묵직한 왼발 강슛을 날린 것이다. 알무카이니가 다이빙 선방하면서 쳐냈다. 한국 입장에선 일찌감치 기선제압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아쉬움은 6분 뒤 깔끔하게 해소됐다. 오만전 첨병으로 나선 황희찬이 벼락 같은 슛으로 선제골을 터트린 것이다. 이날 2선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황희찬이 손흥민의 패스를 받은 뒤 바로 아크 정면으로 돌아섰고, 이후 반박자 빠른 오른발 '총알슛'을 날렸다. 이게 골망을 출렁이면서 축구대표팀의 3차예선 첫 골로 연결됐다. 홍 감독은 팔레스타인전과 달리 돌파력과 골결정력이 모두 좋은 황희찬을 선발로 집어넣었는데 이른 시간 황희찬이 해냈다.
한국은 첫 골로 마음고생도 덜어낸 만큼 상대를 더 밀어붙이면서 추가골을 노릴 것으로 예상됐다. 전반 25분엔 세트피스 찬스 뒤 문전 혼전 중 흘러나온 볼을 수비수 정승현이 오른발 슛으로 연결했으나 알무카이니가 쳐내면서 2-0으로 달아날 기회를 놓쳤다.
이후부터 경기 양상이 달라졌다. 이날 무스카트는 섭씨 33도에 습도도 70%에 이를 만큼 굉장히 무덥고 습한 날씨였는데 태극전사들인 이런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듯 정승현의 슛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반면 오만은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며 한국을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만 선수들이 기회만 나면 중거리포를 쏘아대며 한국을 위협했다. 다만 날카로운 맛 없이 공중으로 뜨는 슛이 나왔다.
결국 전반 추가시간 사고가 났다. 상대 세트피스 때 동점포를 내준 것이다. 오만은 왼쪽 측면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는데 알사디의 오른발 프리킥이 문전 앞 한국과 오만 선수들 사이를 지나 그대로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판독 결과 처음엔 공격 가담한 알 카미시의 골로 인정됐으나 이후 한국 수비수 정승현의 자책골로 바뀌었다.
한국의 전반전 위기는 첫 실점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세가 오른 오만은 한 골 더 넣은 분위기로 태극전사들을 휘저었다. 이강인이 상대 역습을 무리하게 끊다가 경고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추가실점 없이 전반전을 1-1로 마쳤다.
홍명보호는 후반 초반 이날 휘슬을 잡은 중국 주심 마닝이 페널티킥을 취소하는 불운에도 직면했다.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알하르티와 볼경합하는 와중에 그의 오른발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마닝은 곧장 휘슬을 불어 한국의 페널티킥을 선언, 태극전사들이 2-1로 앞서나갈 수 있는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오만 선수들이 비디오판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와중에 실제 판독이 이뤄졌다. 비디오 리플레이를 통해 해당 장면을 3분 넘게 지켜보던 마닝 주심은 결국 취소를 선언했다. 마닝은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서도 김민재와 이강인에 석연 찮은 경고를 주는 등 한국 선수들에게 옐로카드 5장을 뿌려 논란이 됐다. 당시 이를 인터넷 해설하던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마닝의 수준을 거론하며 "이게 바로 중국 축구"라고 할 정도였다.
이번 오만전 앞두고도 마닝 주심 배정된 것이 적지 않은 변수로 꼽혔는데 결국 중요한 순간 페널티킥 취소로 한국의 천금 같은 추가골 기회를 삭제해 버렸다.
이후 한국은 다시 오만의 빠른 역습에 말려들면서 역전골 내줄 위기를 두 차례 맞았다. 후반 11분엔 오만이 오른쪽 측면에서 반대편으로 낮게 올린 크로스가 조현우를 지나쳤다. 오만 선수들이 발을 쭉 뻗으면서 볼 방향을 바꾸고자 했으나 닿지 않아 태극전사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반 24분에도 순간적으로 왼쪽 측면 역습을 내줬다. 홈팀의 패스가 부정확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홍 감독은 후반 중반 원톱 오세훈, 풀백 설영우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재성, 그리고 측면 수비수 황문기를 집어넣어 분위기 전환을 노렸다.
승점3이 절실한 태극전사들의 경기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손흥민이 해냈다. 후반 37분 아크 왼쪽에서 이강인이 오만 선수 4명 사이로 내준 볼을 손흥민이 몸싸움 속에 간신히 버텨 볼을 지켰다. 이어 강력한 왼발 터닝 슛을 쐈는데 이게 오만 골문 왼쪽 가운데를 출렁였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레전드급 공격수의 결정력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이날 골로 A매치 49골을 기록, 황선홍 대전 감독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 선수 중 A매치 최다골 3위(50골) 기록에 한 골 차로 다가섰다.
한국은 이후 마닝 주심이 추가시간을 16분 주면서 거의 연장전 전반 뛴 것 같은 격전을 치렀다. 교체 투입된 주민규가 후반 추가시간 5분(후반 50분) 크로스를 문전에서 다이빙 슛으로 연결했으나 알무카이리가 쳐내 이날 3번째 골을 놓쳤다.
하지만 기회는 한 번 더 찾아왔다. 후반 추가시간 10분 정도 지날 무렵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반대편으로 연결한 것을 주민규가 오른발 강슛으로 넣어 3-1을 만들었다. 한국의 3-1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오만 현지에서 곧장 소속팀으로 가는 유럽파, 중동파들을 제외하고 오는 12일 오후 홍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함께 귀국한다.
한국은 지난 2월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0-2 충격패를 안긴 요르단과 내달 10일 원정 경기를 통해 B조 3차전을 치른다. 이어 전세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라 같은 달 15일 홈에서 B조 2번 시드로 한국을 가장 위협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라크와 격돌한다.
한국은 4~5번 시드 두 팀과의 9월 2연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기력, 전술 등에서 업그레이드를 이뤄야 3~4차전에선 최소 1승1무를 통해 본선 티켓에 점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