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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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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사》(あおい)는 우리 나라의 역대 서얼들의 행적 및 그들이 조정에 올린 장주(あきらそう)들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철종 9년(1858년)에 대구의 유림들이 조광조(ちょうひかり)이이(珥)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달서정사(いたる西にし精舍しょうじゃ)에서 간행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편자는 미상이며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이름의 '규(あおい)'는 '해바라기'라는 뜻으로, 선조(せん)의 비답(批答) 가운데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봄에는 본가지나 곁가지가 다름이 없듯, 임금에게 충성하는 데에도 적자나 서얼이 다르지 않다(あおい藿向 つくりえだ 人臣じんしんあらわちゅう あに正嫡せいちゃく)"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

1권에서는 태종(ふとしむね) 13년(1413년) 이래 서얼이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된 사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광해군 5년(1613년) 칠서(なな庶)의 옥으로 더욱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고 숙종조에 송시열(そうれつ)·박세당(ほおどう)·김수항(きむひさしつね) 등이 인재 등용을 이유로 서얼의 관직 진출을 허용하자고 주장했으나 실현을 보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2권에서는 순조 23년(1823년) 7월에 육도(六道ろくどう) 유생들이 올린 만인소(まんにん疏)인 계미헌의(みずのとけんじ)를 비롯해 헌종(けんむね) 14년(1848년) 11월의 만인소, 철종 원년(1850년) 3월의 삼도(さんみち) 유생들의 상소를 기록하면서, 서얼에 대한 차별 금지를 외쳤던 율곡 이이를 기리는 서원(書院しょいん)을 세우자는 통문(通文みちふみ)을 싣고 있다.

권말 부록에는 《규사현인록》(あおい史賢しけんじんろく)이라 하여, 고려의 정문배(ていぶんつちかえ) 등 두 명으로부터 조선의 양사언(楊士彦)·송익필(そうつばさ弼) 등 서얼 출신 56명의 사적을 약전(略傳りゃくでん)으로 기록하는 한편, 추록에는 이덕무(いさお懋) 등 6명의 사적도 상세히 기록하였다.(조선의 인물로서는 이덕무가 가장 마지막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기미(1859년) 계동(季冬きとう) 달서개간(いたる西にしひらくかん)'이라는 문구를 통해 간행년도와 편찬 장소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가 점차 변모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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