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동검
비파형 동검(
개요
[편집]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요하(
발굴 및 연구
[편집]중국에서는 1949년 이전에 비파형동검이 발견되었지만, 그 기원에 대해 알지 못했다. 1958년, 주귀에 의해 요녕성 조양현(
그러나 전체적인 모양은 아랫부분이 둥글게 배가 불러 비파의 형태를 이루며, 검몸의 중앙부에 돌기부가 형성되어 있고 검몸과 검손잡이를 따로 주조하여 결합한 다음 사용하는 조립식인데, 중국 중원지역의 서주식 동검과 북방의 오르도스식 동검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의 세형동검(
한반도에서는 1974년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이후, 여수 적량동 유적, 창원 진동리 유적, 서천 오석산 유적, 대전 비래동 유적, 춘천 우두동 돌널무덤, 양평 상자포리 유적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비파형동검은 고인돌에서 출토되고 있어, 고인돌에 동반되는 유물로 파악하고 있다.[5][6]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표지 유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이 모두 고조선의 영역 혹은 영향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간에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은 모두 고조선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퍼져 있으나 실제 비파형동검의 형식도 다양하고 공반 유물을 통해서도 요서(
최근까지 한반도에서는 고인돌에서 출토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는데, 전라남도 보성강 유역과 여수반도의 남방식(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비파형동검
- ↑ 복기대 (1992). 《
夏 家 店 下層 文化 의 기원과 사회성격에 관한 시론》. 국사편찬위원회. - ↑ 복기대 (2005년 9월 30일). 《만주지역의 청동기 시대문화와 민족문제에 관하여》.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 ↑ 김효숙 기자 (2010년 6월 7일). “비파형동검, 한반도 출토 비파형동검 중
最古 ”. 대전일보. 2012년 7월 20일에 확인함. - ↑ 손준호. “호서지역 청동기시대 묘제와 고인돌” (PDF). 한국고고환경 연구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이형원. “경기지역의 청동기시대 묘제와 고인돌” (PDF). 한신대박물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송호정, 〈중국 내몽고 및 요서 지역 답사를 통해 본 한국 고대문화〉, 청람사학 제6집, 2002
- ↑ 김지원기자 (2010년 1월 18일). “한반도 최대 규모 비파형 동검 '햇빛' 전남 여수 고인돌 유적서 길이 43.4cm 발굴”. 한국일보. 2012년 7월 20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김태식 기자 (2010년 10월 22일). “비파형동검 묻은 청동기 석곽묘 발굴”. 연합뉴스(네이버). 2012년 7월 2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