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산경표(
특히 산경표의 가치는 산줄기의 표현을 족보(
논란
[편집]사실 산경표는 『산경표』의 저자와 간행 시기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견으로 신경준 연구가들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산경표』의 저자가 신경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시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조 후기 영조 때의 실학파 지리학자 신경준의 『여지고』(
종류
[편집]지금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산경표』의 본(
전국의 산경을 바탕으로 작성된 산경표는 백두대간으로 알려진 한반도의 산줄기들을 분수계를 기준으로 대간(
이후 현대에 산악인 박성태가 신산경표를 간행하였다.[2]
현대의 변화
[편집]조선시대보다 더 전에는 낙동강 삼각주가 하나의 만이었는데, 퇴적이 진행되어 낙동강삼각주에 섬이 생겨나 조선 후기에는 이미 더 이상 바다가 아니게 되었다. 산경표는 낙동강이나 서낙동강에 미치지 않은 김해 분성산에서 끝나게 지어졌다. 오늘날에는 분성산을 지나는 원래의 낙남정맥은 동신어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낙남정맥에서 갈라져 실제 서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산맥은 신 낙남정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3][4] 그리고 한남정맥은 아라천에 의해, 낙남정맥은 가화천에 의해 잘리게 되었다.
산줄기 이름
[편집]![](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6/Nakdongjeongmaek.jpg/350px-Nakdongjeongmaek.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d/Naknamjeongmaek.jpg/350px-Naknamjeongmae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