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
신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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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 | |
제31대 신라 국왕 | |
재위 | 681년 7월 30일 ~ 692년 8월 22일 |
전임 | 문무왕 |
후임 | 효소왕 |
신라국 왕태자 | |
재위 | 665년 음력 8월 ~ 681년 7월 24일 |
전임 | 태자 법민 (문무왕) |
후임 | 태자 이홍 (효소왕) |
이름 | |
휘 | 김정명( |
자 | 일초( |
시호 | 신문( |
신상정보 | |
출생일 | 665년 음력 8월 이전 |
사망일 | 692년 8월 22일 |
부친 | 문무왕 |
모친 | 자의왕후 김씨 |
배우자 | 폐비 김씨, 신목왕후 김씨 |
자녀 | 효소왕, 성덕왕, 김근질, 김사종 |
종교 | 불교 |
능묘 | 신문왕릉 |
신문왕(
김
생애
[편집]문무왕과 자의왕후 김씨의 차남으로, 출생연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장남 효소왕이 6세의 나이에 즉위한 점을 고려하면 사망 당시 장수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2] 교서에 자신을 보잘 것 없는 몸이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1] 체격이 작은 편으로 추정된다. 665년 8월 동복 형인 소명태자(
682년 6월, 국학(
683년 10월, 고구려계 유이민이 세운 보덕국의 안승에게 소판의 관직의 등급과 함께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 성을 하사하여 신라 귀족으로 편입시키자, 이에 반발하여 684년 11월, 보덕국이 지배하는 금마저에서 안승의 조카인 대문(
신문왕은 지방 조직 정비와 지방 통치제도를 확립하였으며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지방 행정 조직을 강화했다. 청주에 서원경(
687년 5월, 수조권 만을 행사할 수 있는 문무 관료전을 최초로 지급하였고, 689년 1월 귀족에게서 노동력 징발이 가능한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권한을 약화시킴으로써 왕권의 전제화를 이루었다.
692년 8월 22일(음력 7월 2일)에 붕어하였고 능은 낭산 동쪽에 마련되었다.
가계
[편집]- 조부 : 태종무열왕(
太 宗 武 烈 王 , 602~661) - 조모 : 문명왕후(
文明 王 后 ) - 부왕 : 문무왕(
文武 王 , 626[5] ~681, 재위:661~681) - 모후 : 자의왕후 김씨(慈儀
王 后 金 氏 , ? ~681년)
신문왕이 등장한 작품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전 대 문무왕 |
제31대 신라 국왕 681년 - 692년 |
후 대 효소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