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때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목천 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백제 부흥을 도모하자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축성을 내렸는데 후손들이 뒷날 우(于), 돈(頓), 상(尙), 장(張) 등으로 성을 회복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우방재(于邦宰)의 아들 우학유(于學儒)는 의종 때 무인으로서 이의방(李義方) 등이 반란을 모의할 때 군대를 통솔해 달라는 권유를 거절하였다가 정중부가 집권한 후 신상이 위태로웠으나 이의방의 누이인 전주 이씨와 결혼하여 무사하였으며 1179년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올랐다.[4]
우술유(于述儒)는 1186년(명종 11)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역임하고, 신종이 즉위하자 1197년 수사공 좌복야 판형부사(守司空左僕射判刑部事)가 되었으며, 1199년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로 치사(致仕)했다.
우승경(于承慶)은 승진을 거듭하여 재상의 반열에 오르고 추밀원사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