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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 나무위키

김홍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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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김홍걸 관련 틀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김홍걸
きむひろしすぐる | Kim Hong-geol
100138017
출생
거주지
본관
김해 김씨 안경공파
현직
사단법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재임기간
제9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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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김대중, 어머니 이희호
이복형 김홍일, 김홍업, 배우자 임미경,
아들 김종화(1993년생), 김종석(1995년생)
학력
병역
종교
신체
186cm[6]
소속 정당
zsdkl3gasdg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경력
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제9대 / 문재인 정부)
제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14번 / 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
제21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사단법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
1. 개요2. 상세3. 생애
3.1. 더불어민주당 입당3.2. 민화협 의장으로서 행보3.3. 제21대 국회의원
4. 논란 및 사건 사고5. 여담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가문 출신 정치인.

2. 상세[편집]

김대중3남이자 막내아들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이다. 첫째, 둘째 형인 김홍일, 김홍업은 배다른 형제다. 국민의 정부 시절 36억 9,0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아서 징역형에 처해졌다. # 이후 오랫동안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일 없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있다가 안철수 전 대표와 관계된 모종의 일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의 상임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20년 9월 당 내의 윤리감찰단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여 2020년 9월 18일 오후 5시 이낙연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긴급 최고위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당에서 제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 # 9월 24일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 비대면 의원총회에서 그의 제명이 최종 확정되었다. #

22대 총선을 준비함에 있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강서갑 지역에 출사표를 던져 경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후보자 적격판정이 보류되던 와중 2024년 1월 22일 줄공정란 경선룰을 비판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3. 생애[편집]

1963년 11월 12일, 김대중이희호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 차남김홍일김홍업과는 이복형제 지간이다.[7]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에 82학번으로 입학하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재학 기간 동안[8] 아버지의 정치적 고난을 목도해야 했다. 1988년 7월 18일 육군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56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으며 1990년 1월 7일 상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쳤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2000년 12월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교 포모나 칼리지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에 채용되어 2001년 12월까지 관련 프로젝트에서 근무했다.

큰형 김홍일과 작은형 김홍업과 같이[9]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2020년 전까지 선출직을 맡은 적은 없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를 선언했고 경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비례후보 4번으로 확정되면서 생애 처음 국회의원직을 맡을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연합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후보를 내기로 하면서 그의 순번은 4번에서 14번으로 밀리게 됐다.[10] 당선될 경우 큰형작은형의 뒤를 이어 의원직을 맡게 된다.[11] 다만 후술할 최규선 게이트 관련으로 워낙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인물이라 논란이 있는 편이다.

2009년 8월 18일에 부친상을, 2019년 4월 20일에 큰형님상을, 같은 해 6월 10일에는 모친상을 각각 당했다.

2020년 4월 15일에 있었던 21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신청하여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14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지만 당선된 지 5개월 만에 후술한 부동산 논란으로 인해 9월 24일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되었다.[12]

3.1. 더불어민주당 입당[편집]

2016년 1월 4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안철수이희호 여사와의 비공개 독대 자리에서 이희호 여사의 안철수 신당 지지 의사표현을 들었다고 언론에 발표했는데 이는 언론에 대서 특필되면서 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특히 안철수와 대립 관계에 있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그가 언론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여 "어머니는 그냥 듣기만 하셨다"라고 하며 안철수 측의 내용을 반박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언론에 존재감을 나타내었으며 2016년 1월 24일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에 전격 입당하고 나서 줄곧 안철수 전문 저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13]

입당일에 열린 국회 기자회견에서 "2012년 대선 때 순수한 뜻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뛰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합쳐진 60년 더불어민주당의 정통 본류이며, 더 이상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호남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분열의 수단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며 더불어민주당 탈당파를 겨냥했다. 입당 인사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겠단 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나중에라도 총선에 나가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나중에 분명히 밝히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 무려 15억 원을 뇌물로 받은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두 형들도 모두 감옥 신세를 져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나 평판을 떨어뜨렸는데, 민주당에서 과연 공천을 받아도 되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1년 전에 그 죗값을 다 치렀고, 김대중의 아들을 더불어민주당이 받아들인다면 국민의당과의 정통성 논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문재인 전 대표는 1월 26일 김홍걸 교수 본인이 아예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출마설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었다. 총선에 공천을 받지 못한 대신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 문제에 대해선 "친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친문 의원은 1명밖에 없더라"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하여 비대위의 후보 명단 발표로 당내에 분란이 일어나자, "A, B, C그룹안을 나눈 다음 투표를 하는 것은 당헌에도 어긋난다"는 발언을 하였다.

입당 이후 2월 6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인 진짜가 나타났다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방송에 출연해서도 일측에서 제기된 국회의원 출마설을 거듭 일축하기도 하였으며, 당 입당에 앞서 자신에게 도움의 이야기를 건내준 이른바 '진김' 3인방을 공개했는데, 그 중 설훈, 김한정 전 의원과 김우철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14]이 대표로 언급되었다.

20대 총선 기간 막판에는 문재인호남 선거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때 문재인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 및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호남에서는 패배했으나, 정작 총선 후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올랐기 때문. 비록 호남에서 패배한 것은 맞지만 문재인이 직접 지원 유세를 한 PK 지역에서 낙선을 각오하고 출마한 후보들이 8개 지역구에서 당선에 성공한 기적같은 결과를 이뤄냈고,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집결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15]

그리고 선관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득표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에게 패한 것은 맞지만, '전북의 맹주'라고 불리던 정동영 전 의원이 이제 재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 김성주 후보에게 불과 0.7% 차이로 간신히 이기는 등 압도적 참패보다는 예상 외로 접전 구도가 많았기에 문재인이 섣불리 정계 은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소선거제 하에서 이건 억지논리에 불과하며, 문재인은 처음부터 정계 은퇴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16]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다시 역전하기 시작하면서 2016년 8월 기준으로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율 1위를 회복했다.

2016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6주기 기념식에서 손학규가 "정치의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하자, "국민들께서 이미 20대 총선을 통해 새로운 판을 짜 주셨는데 무슨 새 판을 또 짠다는 것인가?"라며 손 전 지사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최측근인 박지원과는 앙숙관계이다. 김홍걸 입장에서는 어머니를 이용해 먹은 안철수의 '배후'이기도 하고 사실상 국민의당 기획자나 다름없는 박지원은, 본인이 아버지의 적자로 인정한 더불어민주당을 배신하고 나가 본가를 역공하는 배신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이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은 노무현 아들인 노건호와는 막역한 사이다.

2017년 5월에는 광주 및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유세를 적극적으로 나서며 지역민심을 잡고자 하고 있다. 한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도 함께 유세를 하며 다니고 있다. 나름 동교동계상도동계 혈육의 화합이라는 점 덕에 일부 지지자들과 적지않은 수의 지역 주민들에게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17] 결국 문재인이 대통령 당선에 성공하면서 당선기여를 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18] 김홍걸 “목포 더 자주 찾아 정치참여 노력” (목포투데이)

3.2. 민화협 의장으로서 행보[편집]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19] 2018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석이 된 전남 영암·무안·신안에 전략공천이 될 거라는데, 이에 대해 김홍걸 의장은 3월 17일에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6·13 국회의원 재선거에 뜻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당에서 출마하라는 제안이 오면, 헌신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진일보한 답변을 내놨다. 민주당 이춘석 사무총장은 "6·13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김 의장 출마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해당 지역구에는 서삼석 지역위원장이 공천을 받았다.[20]

2018년 6월 28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에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는 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수의 강제징용자의 유골[21]을 고려한 것과, 남북한 모두가 공감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북측 민화협도 이에 대해서 봄부터 논의를 나누었다고 한다. 만일 민간교류 목적으로 방북 신청을 하고 통일부의 허락을 받게 되면 7월 쯤에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통일부의 승인을 7월 12일날 받았으며, 14일에 베이징을 경유하여 방북하였다.[22]

11월 3일부터 4일까지 남측 민화협과 북측 민화협이 금강산에서 공동행사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2019년 3월엔 김홍걸이 의장으로 취임한 이래로 민화협과 관련없는 사람들의 비중이 많아지고 예산문제도 투명하지 못 하며 점차 사유화 되어가고 있단 기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후 후속보도나 부당해고를 당한 측에서 공론화시키지 않은 점을 미루어볼 때, 이것이 단순한 갈등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3월 6일 있었던 행사와 관련된 보도 이후로 민화협의 갈등에 관련된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예정된 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뭐 애초 민화협 자체가 각 정부의 핵심 인사가 맡는 걸로 유명하다.

21대 총선 이후로 당분간 상임의장직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상임의장직을 이종걸 전 의원에게 이임하였다.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14번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더불어시민당이 30% 이상의 정당득표율을 확보하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로써 아버지, 큰형, 작은형과 더불어 4부자가 모두 국회의원 경력을 쌓는 이색적인 일이 일어나게 됐다.

그러나 후술된 논란으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받았고, 결국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인지하여 내부 감찰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찰 조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긴급 회의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제명당하며 당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신속한 제명절차에는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동교동계 출신 의원들의 영향이 컸다는 관측이다. 이미 동교동계와 김홍걸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여기에 본인의 실책으로 빌미를 제대로 제공한 셈이다.

다만 비례대표라도 제명으로 당을 떠나면 의원직은 유지된다. 본인이 탈당 내지 사퇴할 경우만 비례대표직을 상실하게 된다. 승계 1순위는 18번 이경수였으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되어 비례 순번을 반납하였고 19번 정종숙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는 불참했다.#

2023년 4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형배 의원과 함께 복당이 의결되었으나, 자진 탈당했기 때문에 최고위원회 의결만으로 복당처리되는 민형배 의원과는 달리 정식으로 제명된 사람이기 때문에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더불어민주당 복당이 확정된다. 이후 7월 7일 당무위원회에서 복당이 의결되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에서의 출마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나 1월 22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애당초 김홍걸 전 의원의 강서구 갑 출마 자체가 무리수라는 비판이 너무 많았다. 김홍걸의 가장 큰 우군이 되었어야 할 호남향우회부터 김홍걸의 강서갑 출마를 반기지 않았으며 김홍걸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이현주 강서미래포럼 대표가 1년 이상 강서구 갑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의원실끼리 집안싸움이나 하는 상황을 김홍걸 본인이 만들어버린 책임도 있다.

그리고 강서구 갑 지역구 의원인 강선우 의원이 두 번의 당 대변인과 21대 국회 개원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의 대변인을 맡는 등 초선 여성 의원 중에서 가장 성공한 커리어를 갖고 있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지역 내 인지도까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당내 공헌도가 없다시피한 김홍걸이 도전하는 것 자체부터 무리수였다는 것이 지역 내 평가였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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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편집]

  • 작은형 김홍업이 아버지를 매우 닮은 데 비해서 김홍걸은 어머니 이희호를 닮았다. 다만 큰형 김홍일, 작은형 김홍업이 김대중의 전처 차용애의 소생이고 김홍걸만 이희호의 소생인 점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2021년 8월 15일 이재명 지지를 선언했다.#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2000 - 2005
정계 입문
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
2005 - 2007
당명 변경
중도통합민주당 남색 글씨
2007
합당[26]
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
2007 - 2008
당명 변경
2008 - 2016
탈당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2016 - 2020
입당
2020
탈당[27]
더불어시민당 흰색 로고
2020
입당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2020
합당[28]
2020 - 2023
제명
zsdkl3gasdg
2023 - 현재
복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도 한화갑을 비롯한 동교동계 구파 정치인들하고는 항상 거리를 두었고 동교동계의 개혁파이자 친노에 가까운 설훈 전 의원과만 친분을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김홍걸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 공식 석상 설훈 전 의원과 같이 발언하는 모습이 보인다.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0
더불어시민당 흰색 로고
9,307,112 (33.35%)
당선 (14번)
초선[29][30]
역대 선거 벽보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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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복형 김홍일, 김홍업이 모두 목포시 태생인 것과 다르게 김대중이 동교동에 거주할 당시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울특별시 태생이다.[2] 본인만 고려대 출신이며, 이복형들은 모두 경희대학교 출신이다.[3] 소집해제[4] 본인만 방위병 출신이며, 이복형들은 모두 중위 출신이다.[5] 본인만 어머니처럼 개신교이며, 이복형들은 아버지와 같은 가톨릭 신자들이다.[6] 같은당 한준호보다 장신이어서 최장신으로 분류된다.[7] 김홍일과 김홍업은 김대중의 첫 부인인 차용애가 낳았지만 차용애는 병마에 시달리다가 일찍 죽었다.[8] 고등학생 때인 1980~1981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형수로 몰리는가 하면 1982년 아버지가 석방되자마자 미국으로 망명해야 하는 신세를 봐야 했다.[9] 김홍일은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목포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했고 김홍업은 아버지의 고향인 신안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했다.[10] 안정적인 당선권이라고 보기는 다소 모호한 위치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 당시 얻은 비례대표 의석수는 13석이다. 당시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이 27.7%였는데 30% 이상의 득표율을 받아낸다면 김홍걸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진다. 물론 30% 이하의 득표율을 얻어도 어떻게든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은 높다. 상위 순번의 의원이 공직 임명이나 지방선거 출마 등으로 의원직을 내놓을 경우 의원직이 후순위 후보로 승계되는데 그렇게 보면 김홍걸의 순번은 승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리다.[11] 큰형 김홍일은 15, 16대 당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17대에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었으나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작은형 김홍업은 17대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국회의원을 지냈다.[12] 비례대표는 탈당이 아닌 제명일 시 의원직은 유지되기 때문에 윤미향, 추미애로 인해서 안좋아진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보여주기식 (의원직이 유지되는)제명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탈당권유를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기사[13] 이에 대해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자 칼럼니스트였던 고종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으면 김홍걸을 족보에서 파버렸을 것이다"라며 비난을 남기기도 했다.[14] 1964년생.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당 내에서 20대 총선 비례대표 지원을 한 바 있으나 아쉽게 컷오프 된 바 있다. 현재는 대구시당 사무처장으로 인사발령 되었다.[15] 특히 수원시에선 더불어민주당이 20년 이상 패배한 팔달구에서 처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남평우 - 남경필 부자가 이 지역의 맹주였는데, 남경필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의원 자리가 비게 된 이 곳에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가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에게 패해 일시적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16] 그러나 당대표가 총대메고 정계 은퇴까지 내뱉은 말이 만약 수도권 및 PK에서 의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면, 은퇴생각을 거둘수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17] 그러나 김현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18]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배반감이 한몫했다는 평도 만만치 않지만, 국민의당이 외쳐대던 김대중 정신을 집중공략하며 지역민심에 호소한 그의 역할도 나름 중요했다 볼 수 있다.[19] 참고로, 민화협은 정부 핵심인사가 맡기로 유명한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6인회의 일원인 김덕룡, 박근혜 정부에서는 홍사덕이 맡았다.[20] 서삼석은 이후 6.13 지선에서 민주평화당 이윤석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승리한다.[21] 민화협 추정 2,300 구[22] 3박 4일 일정.[23] 차라리 아버지와 큰이복형이 국회의원을 역임한 지역구인 목포시나, 작은이복형 지역구였던 영암군·무안군·신안군(작은이복형이 국회의원 역임한 당시에는 무안군·신안군 선거구), 아버지 사저이자 본인 거주지인 동교동과 인접한 마포구 갑에 공천을 신청했으면(마침 현역 노웅래가 비리혐의로 5선 도전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컷오프되 경찰공무원 출신인 정치신인 이지은이 공천되었다.), 그나마 나았을 거라는 의견이다.[24] 상술했듯 박지원과는 사이가 상당히 안좋다.[25] 1cm씩이고 한마디로 장신즈/키다리즈이다.[26]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27] 비례대표 출마를 위한 탈당.[28]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당.[29]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14번.[30] 2020.5.13. 더불어민주당 흡수 합당.
2020.9.24. 더불어민주당 제명.
2023.7.7. 더불어민주당 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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