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북한
최근 수정 시각:
상위 문서: 열병식
|
1. 개요2. 특징3. 역대 열병식
3.1. 김일성 시대
3.1.1. 1948년 2월 8일 열병식3.1.2. 1948년 8월 15일 열병식3.1.3. 1949년 2월 8일 열병식3.1.4. 1949년 8월 15일 열병식3.1.5. 1953년 8월 15일 열병식3.1.6. 1954년 8월 15일 열병식3.1.7. 1955년 8월 15일 열병식3.1.8. 1956년 8월 15일 열병식3.1.9. 1957년 8월 15일 열병식3.1.10. 1958년 8월 15일 열병식3.1.11. 1959년 8월 15일 열병식3.1.12. 1960년 8월 15일 열병식3.1.13. 1962년 4월 25일 열병식3.1.14. 1963년 9월 9일 열병식3.1.15. 1967년 5월 1일 열병식3.1.16. 1968년 2월 8일 열병식3.1.17. 1972년 4월 25일 열병식3.1.18. 1972년 6월 4일 열병식3.1.19. 1985년 8월 15일 열병식3.1.20. 1992년 4월 25일 열병식3.1.21. 1993년 7월 27일 열병식
3.2. 김정일 시대3.2.1. 1995년 10월 10일 열병식3.2.2. 1997년 4월 25일 열병식3.2.3. 1998년 9월 9일 열병식3.2.4. 2000년 10월 10일 열병식3.2.5. 2002년 4월 25일 열병식3.2.6. 2003년 9월 9일 열병식3.2.7. 2005년 10월 10일 열병식3.2.8. 2007년 4월 25일 열병식3.2.9. 2008년 9월 9일 열병식3.2.10. 2010년 10월 10일 열병식3.2.11. 2011년 9월 9일 열병식
3.3. 김정은 시대3.3.1. 2012년 4월 15일 열병식3.3.2. 2013년 7월 27일 열병식3.3.3. 2013년 9월 9일 열병식3.3.4.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3.3.5. 2017년 4월 15일 열병식3.3.6. 2018년 2월 8일 열병식3.3.7. 2018년 9월 9일 열병식3.3.8.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3.3.9. 2021년 1월 14일 열병식3.3.10. 2021년 9월 9일 열병식3.3.11. 2022년 4월 25일 열병식3.3.12. 2023년 2월 8일 열병식3.3.13. 2023년 7월 27일 열병식3.3.14. 2023년 9월 8일 열병식
3.4. 개최가 예상되는 열병식열병식만큼은 정말 다른 군대에 뒤쳐지지 않게 열심히 하는 군대다. 중국, 러시아 이상으로 열병식 훈련을 빡세게 하기로 유명하다. 열병식 훈련 도중 탈진하는 군인이 나오는 것은 어느 나라든 가끔 나오는 일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그 정도를 넘어 열병식 연습 도중에 관절이 작살나서 불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다.[2] 비상식적으로 팔다리가 올라가는 자세를 몇 개월씩이나 빡세게 연습을 시키니 탈이 안 날 수가 없다.[3] 전체적으로 아동 학대로 악명이 높은 아리랑보다도 훈련 강도가 더 가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기자인 주성하는 평양에 있을 때 열병식 훈련으로 인해 3달 만에 10kg 이상 살이 빠진 사람을 여럿 봤을 정도라고 한다.[4]
특히 구스스텝에서 드는 발 각도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원조 국가보다도 다리를 드는 각도가 과거에는 100도였고 이후로도 완화되었지만 90도에 가까웠다.[5] 다만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군 제식과 같은 약 70도로 완화되면서 안정적인 걸음걸이가 되었다. 각도뿐만 아니라 전체 열병식 과정이 상당부분 중국과 흡사한 스타일로 바뀌었는데, 김정은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 조선인민군의 군사력이야 뻔한 것이며 그래서 대외적으로 억지로 강한 척을 해야 하는 눈물겨운 발악의 일환으로 열병식에 온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훈련 강도가 아무리 높다 한들[6] 현대전을 고려한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평범한 체력단련, 제대로 된 군사학과는 동떨어진 평시제식이나 집단행동에만 중점을 둔 구시대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사용하기에 현대전에 걸맞은 전술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고[7], 사용하는 장비가 몇십 년 전에 쓰던 걸 아직도 쓰는지라 군사력이 답이 없는 수준이고 그렇다 보니 이렇게라도 해서 다른 나라가 얕잡아보지 않게 하려고 열병식에 이렇게나 목숨을 건다. 평양 출신 여성 탈북기자 김길선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열병식때 지금 운용 중인 무기뿐만 아니라 개발 중인 무기와 심지어 구상 중인 무기까지 열병식에 등장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모 국가에서 군사 퍼레이드 중 전차가 사열대를 향해 포사격을 해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북한 당국이 쿠데타를 우려해 열병식에 가짜 미사일을 등장시킨다고도 하였다.
이런 짤방이 유행하고 있으나 2010년 12월 12일 기사에서 언급된 것이다. 김정일 집권기 열병식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는 장성의 옷 색깔조차 다른 시기였다.# 열병식 영상에서는 신형 군복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옷 색깔은 그나마 비슷하다. 물론 오지에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저런 현상은 2010년대 후반에도 있다. # 대신 2020년대 열병식의 군복은 열병식 때만 보여주기식으로 입는다는 추정도 많다.
북한의 열병식 중에 가장 유명한 편집 영상[8]
열병식에 참가하는 인원들은 전부 핵심계층에서만 선발하며 그것도 키 162cm[9] 이상이어야 하고 다른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선발은 정인원과 예비 인원으로 선발[10]하며 정인원에서 탈락자가 발생하면 예비인원으로 충원된다. 여기서 탈락된 정인원에 대한 처우가 다른데 영양실조나 기타 병으로 쓰러질 경우 당해 열병식에서 제외시키고 건강을 회복시킨 후 다음 열병식에 참가시킨다. 만일 어렵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려보내되 다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동작이 틀려서 탈락하거나 한번이라도 실수했다가 김정은에게 걸릴 경우 그 자리에서 즉시 생활제대를 당한다. 대신 성공하면 이후 한번도 누락 없이 진급할 수 있으므로 리스크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 지원을 받는다.
이는 북한의 열병식이 다른 사람이 아닌 김정은이 직접 목격하는 그 현장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눈꼽만큼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진짜 정예 인원은 따로 선발하여 기수를 시키는데 기수의 경우 다른 동료들에게 묻어가기 힘든 소수의 인원인지라 눈꼽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인원은 김정은에게 걸리지 않으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쪽은 실수하는 즉시 바로 생활제대 처분된다.
보통 정주년에 해당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다. 김일성 시대에는 8월 15일 해방기념일(광복절) 기념 열병식이 많았다고 한다.
50년대 이후로 60년대 부터는 6 및 9가 들어간 년도 부터는 열병식을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90년대 부터는 8월 15일 해방기념일(광복절) 기념 열병식을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이후 열병식 주기가 짧아지고, 한 해에 두 차례 개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열병식 등장 무기를 정리한 로이터 일본판 기사가 있다. 일본어로 된 기사다. 통일연구원에서 발표한 한국어 자료도 있다. 또한 김정일이 최신무기를 좀 묵혀 두었다가 공개한 것과 다르게, 김정은은 그냥 다 때려박아 전시부터 한다. 김정은은 구스스텝 각도까지 신경써가며 열병식에 집착하고 있다. #
정주년별로 개최한다고 하면 다음과 같다.
특히 구스스텝에서 드는 발 각도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원조 국가보다도 다리를 드는 각도가 과거에는 100도였고 이후로도 완화되었지만 90도에 가까웠다.[5] 다만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군 제식과 같은 약 70도로 완화되면서 안정적인 걸음걸이가 되었다. 각도뿐만 아니라 전체 열병식 과정이 상당부분 중국과 흡사한 스타일로 바뀌었는데, 김정은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 조선인민군의 군사력이야 뻔한 것이며 그래서 대외적으로 억지로 강한 척을 해야 하는 눈물겨운 발악의 일환으로 열병식에 온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훈련 강도가 아무리 높다 한들[6] 현대전을 고려한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평범한 체력단련, 제대로 된 군사학과는 동떨어진 평시제식이나 집단행동에만 중점을 둔 구시대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사용하기에 현대전에 걸맞은 전술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고[7], 사용하는 장비가 몇십 년 전에 쓰던 걸 아직도 쓰는지라 군사력이 답이 없는 수준이고 그렇다 보니 이렇게라도 해서 다른 나라가 얕잡아보지 않게 하려고 열병식에 이렇게나 목숨을 건다. 평양 출신 여성 탈북기자 김길선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열병식때 지금 운용 중인 무기뿐만 아니라 개발 중인 무기와 심지어 구상 중인 무기까지 열병식에 등장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모 국가에서 군사 퍼레이드 중 전차가 사열대를 향해 포사격을 해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북한 당국이 쿠데타를 우려해 열병식에 가짜 미사일을 등장시킨다고도 하였다.
이런 짤방이 유행하고 있으나 2010년 12월 12일 기사에서 언급된 것이다. 김정일 집권기 열병식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는 장성의 옷 색깔조차 다른 시기였다.# 열병식 영상에서는 신형 군복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옷 색깔은 그나마 비슷하다. 물론 오지에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저런 현상은 2010년대 후반에도 있다. # 대신 2020년대 열병식의 군복은 열병식 때만 보여주기식으로 입는다는 추정도 많다.
북한의 열병식 중에 가장 유명한 편집 영상[8]
열병식에 참가하는 인원들은 전부 핵심계층에서만 선발하며 그것도 키 162cm[9] 이상이어야 하고 다른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선발은 정인원과 예비 인원으로 선발[10]하며 정인원에서 탈락자가 발생하면 예비인원으로 충원된다. 여기서 탈락된 정인원에 대한 처우가 다른데 영양실조나 기타 병으로 쓰러질 경우 당해 열병식에서 제외시키고 건강을 회복시킨 후 다음 열병식에 참가시킨다. 만일 어렵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려보내되 다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동작이 틀려서 탈락하거나 한번이라도 실수했다가 김정은에게 걸릴 경우 그 자리에서 즉시 생활제대를 당한다. 대신 성공하면 이후 한번도 누락 없이 진급할 수 있으므로 리스크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 지원을 받는다.
이는 북한의 열병식이 다른 사람이 아닌 김정은이 직접 목격하는 그 현장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눈꼽만큼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진짜 정예 인원은 따로 선발하여 기수를 시키는데 기수의 경우 다른 동료들에게 묻어가기 힘든 소수의 인원인지라 눈꼽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인원은 김정은에게 걸리지 않으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쪽은 실수하는 즉시 바로 생활제대 처분된다.
보통 정주년에 해당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다. 김일성 시대에는 8월 15일 해방기념일(광복절) 기념 열병식이 많았다고 한다.
50년대 이후로 60년대 부터는 6 및 9가 들어간 년도 부터는 열병식을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90년대 부터는 8월 15일 해방기념일(광복절) 기념 열병식을 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이후 열병식 주기가 짧아지고, 한 해에 두 차례 개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열병식 등장 무기를 정리한 로이터 일본판 기사가 있다. 일본어로 된 기사다. 통일연구원에서 발표한 한국어 자료도 있다. 또한 김정일이 최신무기를 좀 묵혀 두었다가 공개한 것과 다르게, 김정은은 그냥 다 때려박아 전시부터 한다. 김정은은 구스스텝 각도까지 신경써가며 열병식에 집착하고 있다. #
정주년별로 개최한다고 하면 다음과 같다.
- 태양절(4월 1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4월 25일), 전승기념일(7월 27일): 5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2인 년도
1948년~2022년 열병식을 요약한 영상.
월간 북한의 서유석 기자에 따르면 1992년 4월 25일 열병식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북한 열병식 포맷이 처음 도입된 열병식이라고 하며 김정일이 만든 것이며 당 창건, 군 창건 행사에 열병식을 동원한 것도 김정일이라고 한다. 사실 김일성 시대에는 생각만큼 열병식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대체로 열병식보다는 평양시민들이 참가하는 군중시위가 자주 치러졌다.
조선인민군 창건 1주년 기념 열병식.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 열병식.
1953년 6.25 전쟁이 끝난 후 처음 열린 열병식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 근위부대들을 주축으로 열병식이 진행되었다. 이 열병식에서 김일성은 흰 예복을 입고 나와 6.25 전쟁은 미군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자신들의 승리였다고 선전했다. 참고로, 북한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2022년 추가 사진을 공개했다. #
조국해방 10주년 기념 열병식
조국해방 11주년 기념 열병식
조국해방 12주년 기념 열병식
조국해방 14주년 기념 열병식
조국해방 15주년 기념 열병식
공화국 창건 15주년 기념 열병식.
북한에서 제작된 영상의 일본 자막판 사본[16]을 대한민국에서 입수하여 내레이션을 새로 했다. 따라서 내레이션 내용은 영상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과 김일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40주년 기념 열병식.
특이하게도 이탈리아어로 더빙되어 있다. 유튜브 영상 설명에 따르면, 다른 북한 열병식들과 달리 북한에서 거의 재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이탈리아어 더빙판이 사실상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한다.
조국해방 40주년 기념 열병식.
위의 영상은 연출된 장면이 일부 섞였는데, 40초~50초 부분에 클로즈업된 미남형의 군관들은 배우를 써서 따로 촬영한 장면으로 추정된다. 해당 열병식 영상은 북한 영화 '군기(
영상 좌상단의 로고가 계속해서 바뀌는 것을 보아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선영화의 몇몇 장면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 북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평양지구 위수부대만 참가했다고 한다.
조국해방전쟁 승리 40주년 기념 열병식.
열병식을 참관했던 외국인이 촬영한 영상이다.
김일성 시대의 마지막 열병식이었다.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기념 열병식.
조선인민군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
공화국 창건 50주년 기념 열병식.
조선로동당 창건 55주년 기념 열병식.
김일성 탄생 90주년 겸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 최초 공개 무기
정권수립 기념이 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당시엔 조선인민군 창건일) 기념 열병식이었음에도 이례적으로 로농적위대 열병식으로 치러졌다.
공화국 창건 55주년 기념 열병식.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열병식.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숙청당한 리영호가 김경식과 함께 열병식 준비검열을 하였다
공화국 창건 63주년 기념 열병식
이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이것이 김정일 생전의 마지막 열병식이 되었다. 이후 2012년 열병식 부터는 김정은이 주관한다. 2008년과 마찬가지로 로농적위대 열병식으로 치러졌으며, 김정은 시대에는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김정은 시대에 오면서 열병식 빈도가 많아졌다. 그만큼 체제결속이 필요하기도 하고, 대외적으로 무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국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
2013년, 역사상 최초로 1년에 3번 열병식을 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으며, 2011년 9.9절 열병식에 이어 치러진 로농적위군 열병식이다.
김일성 탄생 105주년 기념 열병식.
화성-12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추후 2017년 4월 초의 화성-12 발사현장 사진이 공개되었으므로 그 이전부터 화성-12를 열심히 쏴대고 있던 것은 맞지만, 화성-12가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이 때 생방송이 최초다. 열병식 기준으로 두 달 전에 최초 시험발사 된 북극성-2도 등장했다.
이 외에도 고체연료 기반 ICBM으로 추정되는 트레일러형 미사일 운반차량과 러시아 토폴과 유사한 캐니스터형 미사일 TEL도 식별되었다. 단, 이 두 미사일(차량)은 시험발사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후 화성-18로 후자는 현실화되었다.
한편, 당시 한 BBC의 기자가 SA-5의 휘어진 탄두부를 보고 가짜 미사일 설을 제기했다. 이를 몇몇 언론과 방송에서 재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팩트체크가 있다. 원래 그렇게 생긴 대공 미사일이다.
- 최초 공개 무기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갑자기 창건기념일로 내세우던 4월 25일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변경하고, 이렇게 치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 날 있었던 이벤트였다.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었기에 일부 우리 언론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북한이 이를 들었을 리 만무하다. #경기신문의 열병식 중단 요구 사설 북한은 올림픽 날짜를 바꿔라라는 북한스러운 응수를 했다. # 결국 강행 했고, 화성-12·화성-14·화성-15 등의 장거리급 미사일의 쇼케이스가 되었다. #
- 최초 공개 무기
- 화성-11가(KN-23)
당시 언론은 '새로운 전략무기는 없었다', 로키(low key)로 수위를 낮췄다고 평가했다. #
자세한 내용은 2020년 10월 10일 북한 열병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기념 열병식.
2021년 1월 14일에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열었다. 10월 열병식이 끝난 후 참가병력들을 복귀시키지 않고 3개월 동안 평양에 대기시켰다가 열었다고 한다.
- 최초 공개 무기
- KN-23 대형화 개량형
공화국 창건 73주년 기념 열병식.
2021년에는 무려 두 차례나 열병식을 열었다.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 73주년을 기념한 열병식이었다.# 보통 -5, -0으로 끝나는 정주년[20]에 열병식을 열던 것과는 다른 모습. 리춘히[21]의 발표로는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 이 열병식에서 핵심이 된 것은 로농적위군 이었다. 소방차, 사회안전성의 군견들 등이 등장했다. 심지어 체육상, 문화상이 이끄는 체육인 종대와 문화예술인 종대도 열병식에 참가했다. 대한민국에 비유하자면 문체부 장관이 올림픽 스타들과 연예인들을 데리고 열병식에 선 것.#
이 당시 김정은이 홀쭉하게 등장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주황색 방역복을 입은 방역부대#나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부대#, 방사포를 장착한 농업용 트랙터 등 군사목적보다는 내부 결속용 민생용 열병식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신형 무기 공개는 바로 약 한달 뒤인 2021년 10월 11일, 자위-2021에서 이루어졌다. 이 주황색 방역복 부대는 오징어 게임의 병정들과 유사해 밈처럼 퍼지기도 했다.
- 최초 등장 무기
자세한 내용은 2022년 4월 25일 북한 열병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자세한 내용은 2023년 2월 8일 북한 열병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자세한 내용은 2023년 7월 27일 북한 열병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조국해방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
- 정주년 5년을 지킨다면 예상되는 다음 차기 열병식은 2025년 10월 10일 열병식이다.
- 2021년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한 전통을 이어간다면 2026년 개최가 예상되는 9차 당대회 열병식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1] 육성 연설을 많이 남긴 김일성, 김정은과 달리 김정일의 경우 열병식에서나 인민들을 향해 육성을 내보였다.[2]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던 새터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내장에 충격이 오고 관절에도 무리가 간다고 한다. 그래서 복대 같은 것으로 배를 꽉 묶고 한다고. 그럼에도 무리한 움직임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편이다. 실제로 시연과 함께 증언했던 여성 출연자는 골반에 후유증이 생겨 앉기도 힘들 때가 있다고 한다.[3] 그것도 제대로 먹이지 못한 영양실조로 인해 허약한 체격이 되는 판국인데도 타 국가보다 더 빡세게 하니 거의 신종 고문 수준이다.[4] # 아리랑 훈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주로 다루며, 열병식 훈련 관련 내용은 후반에 나온다.[5] 구스스텝은 거위걸음이란 뜻으로 관절을 굽히지 않고 걷는 제식인데 소련이나 중국과는 달리 북한은 다리를 높은 각도로 들어올려 굉장히 힘차게 바닥을 치듯이 움직이며 그 때문에 잠깐 동안은 양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뜨는 모양새가 되며, 상체 역시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구스스텝은 건강에 매우 나쁜 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창자가 요동친다.. 이런 특성상 측면에서 보면 마치 한 발로 걷는 것처럼 보인다.[6] 신체조건이 매우 안 좋은 절대다수 북한군 병사들에게는 이 훈련강도조차도 제대로 높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훈련은커녕 굶어죽지 않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북한군의 영양실조 문제는 만성적이다.[7] 북한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 역시 현대전에 맞춘 최신식 훈련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최우선 개선사항으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실이다.[8] 영상을 보다보면 블라디미르 레닌과 카를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보이는데 주체사상을 따르고 자기네 지도자만 찬양하는 나라에서 왜 저 초상화가 보이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저 초상화는 김일성이 완전한 독재를 시작하기 전인 1958년 이전에 걸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김일성이 정권을 잡고 나서 개인 우상화만 하던 시기에도 그래도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데 그냥 내리기는 뭐했는지 저것만큼은 남겨놓은듯 하다. 이후 저 사진은 김정일 시대까지 유지되었다가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자 자신들의 사상과 거의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 판단했는지 그냥 내려버렸다.[9] 신장은 의외로 북한 평균보다 작다. 동북아시아인은 아무리 굶주려도 평균 키가 이것보단 크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을 많이 뽑아 뒷열로 갈수록 키가 작아지는데 155cm까지 줄어든다고 한다.[10] 12*24 의 대열을 만드는데 그래서 정인원 288명과 예비인원 12명이 선발된다.[11] 1985년 개최가 마지막[12] 본래 4월 25일이었으나 2018년부터 변경되었다.[13] 다만, 이때의 북한군에 제대로 된 기갑부대는 아직 없었다.[14] 영상 제목은 1950s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1949년에 진행된 열병식이다.[15] 영상에서는 5월 1일 열병식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영상 끝부분에 '조선인민의 일제의 식민지통치...(생략)' 라는 플랜카드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8월 15일 진행된 열병식인 것으로 보인다.[16] 우측에 세로쓰기로 된, 희미한 일본어 자막이 보인다.[17] 문화어 표기법을 지킨다면 '영웅적조선인민군'으로 붙여 써야 한다.[18] 해당 환영곡은 '따뜻한 환영의 음악'이 아닌 '4호 환영곡'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외국 국가원수 이외의 인사들을 위해 연주되는 음악이다.[19] 열병식 중간에 카메라가 흔들리는 실수 장면이 편집됨[20] 북한에서만 쓰는 이유는 한국에서 이렇게 무언가를 기념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21] 본인이 김정은 옆에서 열병식을 참관하고, 다음날 열병식 중계방송의 진행자로 나섰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