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근 수정 시각:
분류
중화권의 지역에 대한 내용은 이란현 문서 참고하십시오.
|
|
이란 이슬람 공화국 [1]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Islamic Republic of Iran | ||||||||||||||||||||
국기 | 국장 | |||||||||||||||||||
استقلال، آزادی، جمهوری اسلامی[2]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 ||||||||||||||||||||
상징 | ||||||||||||||||||||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سرود ملی | Sorud-e Melli) | ||||||||||||||||||||
역사 | ||||||||||||||||||||
지리 | ||||||||||||||||||||
| ||||||||||||||||||||
인문 환경 | ||||||||||||||||||||
| ||||||||||||||||||||
정치 | ||||||||||||||||||||
경제 | ||||||||||||||||||||
| ||||||||||||||||||||
단위 | ||||||||||||||||||||
외교 | ||||||||||||||||||||
.ir | ||||||||||||||||||||
국가 코드 | ||||||||||||||||||||
364, IRN, IR | ||||||||||||||||||||
국제 전화 코드 | ||||||||||||||||||||
+98 | ||||||||||||||||||||
여행경보 | ||||||||||||||||||||
특별여행주의보 |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 |||||||||||||||||||
출국권고 | 시스탄발루체스탄 주, 튀르키예ㆍ이라크 국경지역, 페르시아만 연안 3개 주(후제스탄, 부셰르, 호르모즈건(Hormozgan) |
위치 |
정식 국호는 이란 회교 공화국[11] 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12](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 Jomhuri-ye Eslāmi-ye Irān)이다. '이란(ایران / Irān)'의 유래는 초기 인도이란조어로 '아리아인'을 뜻하는 '아리아스(*Áryas)'이다.
이것이 이란조어의 '아리아흐(*Áryah 또는 *Ā́ryah)'를 거쳐 아베스타어 '아리이아(𐬀𐬌𐬭𐬌𐬌𐬀 / airiia)'·박트리아어 '아리아(αρια / aria)'·파르티아어 '아리(𐭀𐭓𐭉 / ary)'·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𐎠𐎼𐎡𐎹 / ariyaʰ)'와 같이 옮겨졌고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서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나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즉 인도이란조어에서 유래된 '아리아스'가 이란조어의 '아리아흐'와 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를 거쳐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어로는 '에르(𐭠𐭩𐭫 / ēr)'로 이어지며 이 민족명에 복수형 접미사가 더해진 것이 '에란(𐭠𐭩𐭥𐭠𐭭 / Ērān)'이다. 이 표현이 현대 페르시아어의 '이란'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란은 어원적으로 '아리아인의 땅(سرزمین آریاییان / Sarzamin-e Āriyāyiyā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관련 자료, 관련 글.
이란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서남부의 땅을 고대 페르시아어로 파르사(𐎱𐎠𐎼𐎿 / Pārsa), 중세 페르시아어로 파르스(𐭯𐭠𐭫𐭮𐭩 / Pārs)라고 했는데, 이 파르스 출신의 키루스 2세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를 고전 그리스어로는 페르세스(Πέρσης / Pérsēs), 페르시케(Περσική / Persikḗ), 페르시스(Περσίς / Persís)와 같이 기록하였다. 이것을 라틴어로 페르시아(Persia)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이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흐르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𐭠𐭩𐭥𐭠𐭭𐭱𐭲𐭥𐭩 / 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非 )아리아인(𐭠𐭭𐭩𐭥𐭠𐭭 / Ānērān)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족들(사산 왕조의 지배 하에 있든 아니든 간에)을 타자화함으로써 이란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이란과 비이란의 왕중왕(𐭬𐭫𐭪𐭠𐭭 𐭬𐭫𐭪𐭠 𐭠𐭩𐭥𐭠𐭭 𐭥 𐭠𐭭𐭩𐭥𐭠𐭭 / šāhān šāh ī Ērān ud Anērān)'이라는 칭호를 쓴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3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 제국(دولت شاهنشاهی ایران / Dowlat-e Šāhanšāhi-ye Irān)'으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국가에 스스로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는 이란 지역의 역사적인 지명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서 더 많이 쓰인다. 팔레비 왕조가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나라 이름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꿨다.
이것이 이란조어의 '아리아흐(*Áryah 또는 *Ā́ryah)'를 거쳐 아베스타어 '아리이아(𐬀𐬌𐬭𐬌𐬌𐬀 / airiia)'·박트리아어 '아리아(αρια / aria)'·파르티아어 '아리(𐭀𐭓𐭉 / ary)'·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𐎠𐎼𐎡𐎹 / ariyaʰ)'와 같이 옮겨졌고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가 되면서 이란계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거의 굳어졌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나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리아인이라고 써 있다. 즉 인도이란조어에서 유래된 '아리아스'가 이란조어의 '아리아흐'와 고대 페르시아어 '아리야'를 거쳐 사산 왕조 시대의 중세 페르시아어, 혹은 팔라비어로는 '에르(𐭠𐭩𐭫 / ēr)'로 이어지며 이 민족명에 복수형 접미사가 더해진 것이 '에란(𐭠𐭩𐭥𐭠𐭭 / Ērān)'이다. 이 표현이 현대 페르시아어의 '이란'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란은 어원적으로 '아리아인의 땅(سرزمین آریاییان / Sarzamin-e Āriyāyiyā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관련 자료, 관련 글.
이란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고대 이란계 부족의 이름 혹은 지명인 파르스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주로 살던 이란 서남부의 땅을 고대 페르시아어로 파르사(𐎱𐎠𐎼𐎿 / Pārsa), 중세 페르시아어로 파르스(𐭯𐭠𐭫𐭮𐭩 / Pārs)라고 했는데, 이 파르스 출신의 키루스 2세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파르스 사람들이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 파르스를 고전 그리스어로는 페르세스(Πέρσης / Pérsēs), 페르시케(Περσική / Persikḗ), 페르시스(Περσίς / Persís)와 같이 기록하였다. 이것을 라틴어로 페르시아(Persia)라고 쓴 것이 서구 세계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 두 이름 중 현지인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것은 '이란'이다. 당시 이란계 종족들은 출신 지역이나 종족별로 쪼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현대의 이란 국경과 비슷한 강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 시대에 '아리아인'이라는 종족 관념이 점차 확대된 것 같다. 전술했다시피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배층인 페르시아인들이 아리아인의 한 분파였을 뿐이지 공통적인 민족 정체성 따위가 확산되지 않은 다민족 제국이었다. 파르티아 역시 다민족 제국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다하/파르니 정복자들,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 메디아인,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기타 등등의 여러 이란계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 범주 안에서 수세기 동안 부대끼면서 공통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킨 에란샤흐르 제국, 즉 사산 왕조의 국가 건설 과정인데, 사산 왕조는 '아리아인/이란인의 국가(𐭠𐭩𐭥𐭠𐭭𐭱𐭲𐭥𐭩 / Ērānšahr)'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종교적, 추상적 개념에 가까웠던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개념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구체적인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비(
이후 아랍의 정복과 이슬람 시대의 도래로 이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아랍 문자와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오래 부대끼고 사는 통에 생활 습관의 변화,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자는 바뀌었을지언정 언어와 학문 분야는 대부분 유지되었고,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실질적 축'을 담당한 이란 출신 학자들과 문인들에 의해 이란이라는 이름과 독자적 문화, 정체성이 기억되었다. 7세기 아랍의 대홍수가 거쳐간 뒤에도 11세기 이후 튀르크의 대홍수, 13세기 몽골의 침공 등으로 인해 이란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으나, 그 와중에도 이란의 독자적 정체성은 살아남아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 제국(دولت شاهنشاهی ایران / Dowlat-e Šāhanšāhi-ye Irān)'으로 못박았다. 물론 이는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며, 다른 국가에 스스로를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이라는 나라 이름보다는 이란 지역의 역사적인 지명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서 더 많이 쓰인다. 팔레비 왕조가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나라 이름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꿨다.
국기는 녹백적의 가로 삼색기이다. 뒤집고 국장을 빼면 타지키스탄이나 헝가리 국기와 색이 같다. 녹색, 백색, 적색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이전의 근대 왕정 시절에도 이란 국기에 쓰였던 색깔들인데, 1906년의 입헌 혁명 당시부터 혁명가들이 즐겨 쓰던 색깔이다. 그전에도 녹색과 흰색이 페르시아의 왕조를 상징하는 색깔로 잘 쓰이다가 붉은색이 추가된 것. 국기의 녹색은 성장, 행복, 통일, 자연 등을 상징하며, 흰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순교, 용기, 불, 생명, 사랑, 온화함 등을 상징한다.
이란 국기 가운데는 이란의 국장으로 페르시아어로 하나님(알라)를 형상화한 것이며 가운데 직선은 칼날로 하나님과 이슬람을 수호하고 이교도(이스라엘 유대교 및 시온주의자 등) 및 적대세력으로부터 국가와 신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기의 각 색깔의 경계에는 특이한 문양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문양이 아니라 아랍 문자로 알라후 아크바르(الله أکبر,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를 위아래 각각 11번 써넣은 것이다. 이러한 서체를 쿠파체(خط کوفی, Kufic script)라 한다. 이를 합치면 22개의 구절이 되는데 이것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면서 일으켰던 이란 혁명이 완수된 날짜인 페르시아력 1357년 바흐만(페르시아력의 11월) 22일[13]을 의미하는 것으로 녹색의 구절은 11월의 월
테헤란로에는 상시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테하란로 기념 비석쪽에 있는 곳은 이란 국기가 세로로 게양되어 있다. 가운데 문양만 똑바로 돌려놓은 것이 특징.
이란 혁명 이전의 제정 시절에는 사자와 태양의 문장을 국장으로 썼으며 물론 국기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에는 압제적인 친서방 제정을 상징한다며 폐기. 이란 혁명 이후 국외에 망명한 이란인들 사이에서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반대하는 의미로 쓰고는 하지만 이란 현지에서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2022년 이란 시위에서는 이란 시민들이 현 이슬람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란 국내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란/국장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이란/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이란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이란/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란의 과학 기술은 서방권 선진국 만큼은 아니지만 의외로 뛰어난 수준이며 혁명 이후 수 십년간 국제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상당한 수준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란은 튀르키예, UAE, 카타르, 요르단 등의 국가와 함께 중동, 이슬람 국가중에서 과학 기술이 발전한 국가 중 하나이다.
생물의학 분야에서 이란의 생화학 및 생물물리학 연구소는 유네스코 생물학 의장을 두고 있으며. 2006년에는 테헤란의 로얀 연구 센터에서 양을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이란의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 10위권에 속하며 나노기술 분야에서 세계 15위를 차지했고 이란 외의 이란계 과학자들도 중요한 과학적 공헌을 했으며 2014년 이란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카니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자 이란인이며 2018년에는 코체르 비르카르가 이란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의학 수준도 뛰어나며 이란은 400개가 넘는 의학 연구 시설과 76개의 의학 잡지 색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학 연구 분야에서 19위 국가이며 안과 분야에서도 중동 국가중 1위를 차지했고 신경 과학, 나노 기술, 류마티스학, 혈액학, 골수 이식 등 의학 및 제약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국가 중 하나라고 한다. #, #, #
테헤란 대학교의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이란의 휴머노이드 로봇 Surena 2는 2010년에 공개되었으며 IEEE는 성능을 분석한 후 Surena를 가장 유명한 로봇 5개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2019년에는 Surena 4가 공개되었다.
이란은 국제 제재로 인한 무기 금수 조치를 극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방위산업을 발전시켜왔다. 그로인해 중동을 넘어 전세계에서 전차, 장갑차, 미사일, 잠수함, 레이더 시스템, 헬리콥터, 해군 함정, 제트 엔진, 전투기, 스텔스기, 드론을 자체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이며 이란의 미사일 기술은 중동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자체적인 과학 기술력은 중동 국가 중에서 상위권이고 질적으로는 이스라엘보다는 떨어지지만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다수 아랍 국가들보다는 확실하게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샤하브-3, 에마드, 가드르-110, 호람샤르(미사일), 탈라스 대공방어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했고 극초음속 미사일 파타흐-1도 개발해 실전 배치했으며#, # 자체 국방력은 중동 지역에서 이집트, 터키, 사우디, 이스라엘과 더불어 강력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사피르2 인공위성, 오미드라는 우주발사체를 자체 개발하여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릴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 중 하나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로켓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핵연료 재처리까지 가능한 세계에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생물의학 분야에서 이란의 생화학 및 생물물리학 연구소는 유네스코 생물학 의장을 두고 있으며. 2006년에는 테헤란의 로얀 연구 센터에서 양을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이란의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 10위권에 속하며 나노기술 분야에서 세계 15위를 차지했고 이란 외의 이란계 과학자들도 중요한 과학적 공헌을 했으며 2014년 이란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카니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자 이란인이며 2018년에는 코체르 비르카르가 이란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의학 수준도 뛰어나며 이란은 400개가 넘는 의학 연구 시설과 76개의 의학 잡지 색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학 연구 분야에서 19위 국가이며 안과 분야에서도 중동 국가중 1위를 차지했고 신경 과학, 나노 기술, 류마티스학, 혈액학, 골수 이식 등 의학 및 제약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국가 중 하나라고 한다. #, #, #
테헤란 대학교의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이란의 휴머노이드 로봇 Surena 2는 2010년에 공개되었으며 IEEE는 성능을 분석한 후 Surena를 가장 유명한 로봇 5개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2019년에는 Surena 4가 공개되었다.
이란은 국제 제재로 인한 무기 금수 조치를 극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방위산업을 발전시켜왔다. 그로인해 중동을 넘어 전세계에서 전차, 장갑차, 미사일, 잠수함, 레이더 시스템, 헬리콥터, 해군 함정, 제트 엔진, 전투기, 스텔스기, 드론을 자체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이며 이란의 미사일 기술은 중동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자체적인 과학 기술력은 중동 국가 중에서 상위권이고 질적으로는 이스라엘보다는 떨어지지만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다수 아랍 국가들보다는 확실하게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샤하브-3, 에마드, 가드르-110, 호람샤르(미사일), 탈라스 대공방어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했고 극초음속 미사일 파타흐-1도 개발해 실전 배치했으며#, # 자체 국방력은 중동 지역에서 이집트, 터키, 사우디, 이스라엘과 더불어 강력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사피르2 인공위성, 오미드라는 우주발사체를 자체 개발하여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릴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 중 하나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로켓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핵연료 재처리까지 가능한 세계에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란/사회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로 인권 탄압 상황도 심각하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나 색깔도 조금씩 변하지만 그래봤자 탈레반 집권 하의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보다 조금 온건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이슬람 신정체제 국가이다.[14] 대표적인 수니파 꼰대 국가로 꼽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에 비록 진정성이 의심되기는 해도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색채를 점차 빼고, 어느정도 세속적인 사회상으로 바뀌고 있어 이란과 신세가 역전되었다. 적어도 사우디는 마구잡이로 자국민들에게 기관총을 갈겨 학살하거나 사형수를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처형하지는 않는다.[15]
1979년 이전 팔라비 왕조 시절에 백색혁명으로 여성이 참정권, 교육권을 얻고 사회진출도 하며 서구 문화도 어느정도 들어온다.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좋았지만 이슬람 국가로 회귀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법으로 금지하며 심지어 국영 방송에서도 음악 연주장면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다. 성차별도 심각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과 소수민족, 타종교 여성에게까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복식을 강요한다.[16] 심지어 SNS상에서도 여성은 히잡 쓴 사진만 올리게 하며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릴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이란 고위층 자녀는 마음껏 올린다.[17] 특히 이란 여성들은 스포츠경기 관람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회활동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남자 배구 경기를 관전했다는 이유로 이란계 영국 여성 변호사인 무함마드 레자 다바르자니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국제배구협회의 압력을 못 이겨 배구 경기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스포츠경기 관람을 허용해 유일하게 여성이 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다. 2022년 현재는 이란도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도 미혼의 남녀 배우가 같이 주연을 맡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반드시 부부배우만이 주연을 맡는다.[18]
이란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앨범 커버에 나온 여성들을 합성으로 지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신앙생활을 관장하는 별도의 “도덕경찰(گشت ارشاد/gašt-e eršād/Guidance Patrol)”이[19] 따로 있어서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도덕경찰들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해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하며 여성이 진하게 화장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단속하고 그 자리에서 매질까지 하며 또 복장에 문제가 클 경우 거액의 벌금과 함께 채찍형에 처한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급습한다.
또 이란은 국내의 공공장소에서 춤과 노래도 금지한다. (다만 결혼식이나 노루즈라고 부르는 새해에는 집안이나 공터에서 밤을 세워가며 춤을 춘다) 언급했듯이 이란에서는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했다. 또한 이란 여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누드화보를 찍자 이에 이란 정부는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망언을 했다. 결국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망명을 가 프랑스인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이란 사법 당국이 이성과 악수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각각 99대의 채찍질을 선고해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여러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이란에서 친족 이외의 이성과 악수하는 것을 “간통까지는 아니지만 적절치 않은 성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3월 이란 의회가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이 비난받는데 바로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한것이다.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 법안은 하메네이가 2012년 7월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기에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서 현재 80,000,000명 정도의 인구를 향후 50년간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법 움직임이 일었는데 하메네이는 당시 "부부가 왜 아이를 1 ~ 2명만 낳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연구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머지 않아 이란은 '노인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으로 이제부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정관 절제 수술 등의 영구 피임을 위한 수술을 금지하고 이 법을 위반한 의사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한 출산하지 않은 여성에게 취업 시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통과하면 고용주는 1순위로 아이 있는 남성 2순위로 아이 없는 남성 3순위로 아이 있는 여성 4순위로 아이 없는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또 이란 정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없애고 이혼 절차를 어렵게 하는 등 출산 촉진책도 병행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란도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고령화도 빠르고 인구감소가 일어나 골칫거리다.[20] 그래서 이란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한데 강압적으로 해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3월 11일 이 두 법안에 대해 “이란 여성의 권리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으며 “이란 정부가 여성의 핵심 권리를 박탈해 여성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닌 ‘애낳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란의 청년층은 실업과 고물가로[21] 생활고에 시달려 출산을 많이 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강제로 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
이란의 법 집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샤리아법이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희한한 해석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로 칼을 휘두른 20대 여성을 교수형에 처한 사건이 있다. 이란 사법 당국은 2014년 10월 28일 레이하네 자바리(26. 1987년생)에게 살인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바리는 10대였던 2007년 이란 정보기관 요원 출신인 사르반디에게 취업 제안을 받고 집에 따라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자바리는 성폭행을 피하려 갖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된 자바리는 재판에서 모두 정방방위이며 성폭행 당하려는 자신을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바리의 계획된 범행으로 봐 성인이라는 이유로 2009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들은 그녀가 사르반디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을 요구했으며 국제 앰네스티는 자바리의 범행이 아닌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해 사르반디를 죽였다고 했으나 이란 정부의 거부로 재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처형은 이란 인권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기사 2016년에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성 전원을 마약 혐의로 처형했다.#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을 폐지하지 않고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 문제다.
브뤼셀의 투석형 반대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란계 여인. 이 사진은 퍼포먼스이지만 실제로 이란 및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저렇게 여자를 땅에 묻고 머리만 쳐서 죽인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강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란 재판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몇 여성들에게 여성을 어깨까지 묻은 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결국 사망하도록 하는 투석형을 내린것이다. 2015년 한 여성은 남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런 투석형을 당해 결국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심지어 이란 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에 이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에게 투석형을 선고해 죽게 한 것은 국내외로 큰 공분을 산다. 영국의 인권보호센터(Human Security Center)의 총무인 줄리 레나즈(Julie Lenarz)는 앞서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 "이란법에서 여성들은 간음죄에 대해 투석형을 선고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처형도 허용한다"면서 "이란에서는 매일 3명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비난했다 기사
절단기로 손이 잘리는 사람
이란에서 범죄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됐었는데 실제로 집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여 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에서는 대중이 모인 광장에서 눈을 가린 남성이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집행관 2명에 붙잡혀 손가락 절단기에 손을 올려놓았으며 나머지 한명이 절단기 장치에 부착된 핸들을 돌려 남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남자의 피 묻은 손가락은 아이오딘에 담겨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이란 정부는 형이 집행되기 전 약을 먹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나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전세계에서 너무나 잔혹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란은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2023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가 177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현재 이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론인들과 사회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는데 이란은 언론 자유를 탄압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30명의 언론인을 투옥한 상태라고 인권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 제이슨 레자이언은 이란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1년 넘게 수감돼 있으며 이란 정보 당국이 ‘세계인권의 날’인 2014년 11월 10일 유명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체포해 구금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고작 몇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이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다. 특히 이란에서 진보적이라는 언론사 카르고자란 신문사도 틈만 나면 이란 정부에게 탄압을 받는데, 카르고자란 신문은 2009년 1월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비판해 이란 정부에 의해 정간당하고 이 비판 글을 쓴 기자가 체포되었다. 이유도 기가 막힌 게 단순히 하마스의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만 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정당화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고 했다.
2020년에 이란 체제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체포하려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자 프랑스까지 쫓아가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와 재판에 세웠는데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 받은지 나흘 만에 사형에 처해버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문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심각하게 탄압한다.#, # 이란의 시인 에크테사리와 무사비는 신성 모독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는 혐의로 각각 11년 6개월과 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증언하기로 신성 모독 혐의에 대한 자백을 고문까지 이뤄진 강압적인 수사 아래서 했다고 한다. 또한 두 시인과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영화 제작자 카이반 카리미 역시 최근 6년 징역형 및 223대의 채찍질형을 선고 받았다고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인 ‘이란의 인권을 위한 국제 캠페인’ 측이 밝혔다. 또한 이란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슬람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품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배우에게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막장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악마의 시를 지어 호메이니를 화나게 만든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도 이단으로 취급해 아직도 사형선고를 취소하지 않고 있으며 루시디가 정신질환자에게 피습당했을때 자업자득이라며 대놓고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원인 모이니는 이란에서 단순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언론인이 2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란 교도소의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카르지 지역에 있는 고하르다스트 교도소의 상황을 폭로한 이란의 한 정치범은 포화상태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옥과 인간 재앙으로 표현했다. 이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정치범은 공개서한에서 이를 폭로했는데 이란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가 심각하며 수감자는 벌거벗은 채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이에 물린 붉은 자국아 온몸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은 더럽고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가 썩는 냄새 그리고 막힌 변기에서 나온 오물과 식중독 환자가 뱉어 놓은 토사물과 가래로 가득한 비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란에서 망명을 와서 캐나다의 왕립군사대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하우창 하싼-야리 교수는 많은 수감자의 가족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고 해 이 정치범의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범은 신선한 공기와 제대로 된 음식 또는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란 교도소 측은 거의 대부분의 수감자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목욕도 못하게 하며 정신적, 신체적 고문까지 하고 있다고 하싼-야리가 말했다.
이란의 사형제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란은 2014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란 정부가 마약사범 척결에 나서서 2015년 7월까지 이란의 사형자 수가 최소 694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753명에 육박하며 2015년 안에 1,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아흐메드 샤히드 유엔 이란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이란의 사형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데 이란 정부는 흉악범과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렇게 사형수가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인권 단체들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로는 정치범에게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정치범들이 마약사범으로 처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법원에 의해 형이 선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나 또는 범죄화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에서 피고인이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항소, 사면, 감형 절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에는 신에 대한 적대와 세속적 타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쿠르드족 정치범과[22] 수니파 이슬람교도, 배화교, 바하이교, 발루치족 등의 소수민족과 소수종교 및 친서방,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란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는 수천여명에 이른다.
이란 정부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80%가 마약사범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하지 않으며 여러 증언에 의하면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 아래 사형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사법살인을 당한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소년범 160명 이상이 이란에서 사형 집행을 받을 예정인데 문제는 고작 15세밖에 안 된 아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2019년에도 17세 소년 2명을 채찍질한 다음 사형선고도 하지않고 비밀리에 처형했다.# 이는 이란에서 만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분류했기에 이게 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사형이 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소식을 들으며 더 심한 경우엔 가족들이 사형집행 후 수일, 또는 수주가 지난 뒤에 생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교수형이 집행될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수감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쁜 상태다. 또한 여성 죄수의 경우 처녀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 법 때문에 사형 전에 교도관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고 강간한 다음 처형하기도 한다.[23] 그래서 종파만 시아파인 다에시가 따로없다.[24]
이란의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하는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인다.[25] 사실 이란이 사형수를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정적인 사형집행장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 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한다.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형집행이 실패해서 살아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 율법해석을 통해 살인 등 중대범죄에 속하지 않으면 적당히 감형해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토록 억압적인 사회라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이민한다. 특히 이란은 두뇌유출이 심하며 고학력자와 청년일수록 억압적인 조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이 강해서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약 4,000,000명이며 주로 영미권과 유럽에 많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사는 이란인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경우 자국과 달리 베일을 안하며 서구적으로 꾸민다. 이민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이란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데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난민 중에 이란에서 온 난민도 있다. 해외의 이란인들은 'United for Iran' 같은 이란 난민 신문을 만들어 이란의 인권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이란인들의 인권운동과 이란 난민에 대한 구제에 애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커져 2016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시민 권리 장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란의 신정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제사회와 이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국가인 이란은 라흐바르의 말이 법이지 정부 수반에 불과한 이란 대통령의 선언은 그 무게가 떨어진다.
이란의 현실이 이런데 이란이 이웃 아랍 국가들보다 개방적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국 웹에 퍼져 있다. 이란 젊은이가 SNS 등에 올린 서구 스타일 파티 사진을 보고 이란을 개방적인 국가라고 판단하면 이는 어이없는 오류다. 그런 걸 올리는 거 자체가 이란 사회에서는 일탈이며 도덕경찰이 눈씻고 찾는다. 그 파티를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연다. 젊은이의 '일탈'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검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SNS는 VPN으로 우회해서 접속한다. 과거 한국 사례처럼 두발 단속을 하고 2014년 퍼렐 윌리엄스에게 헌정하는 팬메이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체포됐다.기사 2017년 찢어진 청바지를 단속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이란에서 쉽게 본다. 도덕경찰에게 걸려서 태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
이란 이슬람 혁명 전이면 몰라도 아랍 나라보다 이란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사회나 문화가 개방적인 걸로 따지면 이집트는 비록 독재국가지만 정부의 강력한 세속 정책과 맞물려 문화 산업과 연예계가 발전해 아랍 전역에 영상 매체를 수출한다. 아랍 국가들중 세속화와 개방도의 끝판왕인 레바논[26] 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란과 비교 가능하거나 혹은 더 억압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우리에게 이슬람 막장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적어도 대도시 지역들은 이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정상적이다.[27] 도덕 경찰이 존재한다는자체가 개방적인 거와 거리가 멀다. 중동 종교경찰의 양대산맥이 이란의 도덕 경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타와다. 다만 사우디의 종교 경찰은 2020년대 들어서는 히잡을 안했다고 연행하지는 않는다. 미혼 남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잡고 음란물을 규제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란의 종교 경찰은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를 연행해 사망케 함으로써 2022년 이란 시위를 촉발시켰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뜩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쌓여온 불만이 이 사건으로 폭발하여 탈히잡 시위와 2022년 9월 이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
1979년 이전 팔라비 왕조 시절에 백색혁명으로 여성이 참정권, 교육권을 얻고 사회진출도 하며 서구 문화도 어느정도 들어온다.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좋았지만 이슬람 국가로 회귀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법으로 금지하며 심지어 국영 방송에서도 음악 연주장면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다. 성차별도 심각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과 소수민족, 타종교 여성에게까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복식을 강요한다.[16] 심지어 SNS상에서도 여성은 히잡 쓴 사진만 올리게 하며 쓰지 않은 사진을 올릴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이란 고위층 자녀는 마음껏 올린다.[17] 특히 이란 여성들은 스포츠경기 관람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회활동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을 받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남자 배구 경기를 관전했다는 이유로 이란계 영국 여성 변호사인 무함마드 레자 다바르자니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국제배구협회의 압력을 못 이겨 배구 경기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의 스포츠경기 관람을 허용해 유일하게 여성이 경기를 관람할 수 없는 나라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다. 2022년 현재는 이란도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도 미혼의 남녀 배우가 같이 주연을 맡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반드시 부부배우만이 주연을 맡는다.[18]
이란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앨범 커버에 나온 여성들을 합성으로 지워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신앙생활을 관장하는 별도의 “도덕경찰(گشت ارشاد/gašt-e eršād/Guidance Patrol)”이[19] 따로 있어서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도덕경찰들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해 여성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태형을 하며 여성이 진하게 화장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여성을 단속하고 그 자리에서 매질까지 하며 또 복장에 문제가 클 경우 거액의 벌금과 함께 채찍형에 처한다. 심지어 파티장까지 급습한다.
또 이란은 국내의 공공장소에서 춤과 노래도 금지한다. (다만 결혼식이나 노루즈라고 부르는 새해에는 집안이나 공터에서 밤을 세워가며 춤을 춘다) 언급했듯이 이란에서는 단순히 남자 배구경기를 관전했을 뿐인 영국계 여성을 샤리아를 어겼다면서 체포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월드컵에서 자국을 응원하며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을 타락했다며 체포했다. 또한 이란 여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누드화보를 찍자 이에 이란 정부는 “그녀의 가슴을 잘라내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망언을 했다. 결국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망명을 가 프랑스인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이란 사법 당국이 이성과 악수했다는 이유로 남녀에게 각각 99대의 채찍질을 선고해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여러 인권 단체들에 의하면 이란에서 친족 이외의 이성과 악수하는 것을 “간통까지는 아니지만 적절치 않은 성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5년 3월 이란 의회가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이 비난받는데 바로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한것이다.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 법안은 하메네이가 2012년 7월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기에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서 현재 80,000,000명 정도의 인구를 향후 50년간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입법 움직임이 일었는데 하메네이는 당시 "부부가 왜 아이를 1 ~ 2명만 낳거나 아예 출산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유를 연구해봐야 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머지 않아 이란은 '노인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으로 이제부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정관 절제 수술 등의 영구 피임을 위한 수술을 금지하고 이 법을 위반한 의사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 또한 출산하지 않은 여성에게 취업 시 불이익을 주는 법안도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통과하면 고용주는 1순위로 아이 있는 남성 2순위로 아이 없는 남성 3순위로 아이 있는 여성 4순위로 아이 없는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또 이란 정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없애고 이혼 절차를 어렵게 하는 등 출산 촉진책도 병행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란도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고령화도 빠르고 인구감소가 일어나 골칫거리다.[20] 그래서 이란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한데 강압적으로 해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3월 11일 이 두 법안에 대해 “이란 여성의 권리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으며 “이란 정부가 여성의 핵심 권리를 박탈해 여성을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닌 ‘애낳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란의 청년층은 실업과 고물가로[21] 생활고에 시달려 출산을 많이 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강제로 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
이란의 법 집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샤리아법이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희한한 해석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로 칼을 휘두른 20대 여성을 교수형에 처한 사건이 있다. 이란 사법 당국은 2014년 10월 28일 레이하네 자바리(26. 1987년생)에게 살인혐의로 교수형을 집행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자바리는 10대였던 2007년 이란 정보기관 요원 출신인 사르반디에게 취업 제안을 받고 집에 따라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자바리는 성폭행을 피하려 갖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경찰에 체포된 자바리는 재판에서 모두 정방방위이며 성폭행 당하려는 자신을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바리의 계획된 범행으로 봐 성인이라는 이유로 2009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여러 인권단체들은 그녀가 사르반디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을 요구했으며 국제 앰네스티는 자바리의 범행이 아닌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해 사르반디를 죽였다고 했으나 이란 정부의 거부로 재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처형은 이란 인권 역사에 핏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기사 2016년에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성 전원을 마약 혐의로 처형했다.#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을 폐지하지 않고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 문제다.
브뤼셀의 투석형 반대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란계 여인. 이 사진은 퍼포먼스이지만 실제로 이란 및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저렇게 여자를 땅에 묻고 머리만 쳐서 죽인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강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란 재판부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몇몇 여성들에게 여성을 어깨까지 묻은 후 죽을 때까지 돌을 던져 결국 사망하도록 하는 투석형을 내린것이다. 2015년 한 여성은 남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런 투석형을 당해 결국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심지어 이란 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International Human Rights Day)에 이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에게 투석형을 선고해 죽게 한 것은 국내외로 큰 공분을 산다. 영국의 인권보호센터(Human Security Center)의 총무인 줄리 레나즈(Julie Lenarz)는 앞서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 "이란법에서 여성들은 간음죄에 대해 투석형을 선고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처형도 허용한다"면서 "이란에서는 매일 3명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국가(pariah state)"라고 비난했다 기사
절단기로 손이 잘리는 사람
이란에서 범죄자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됐었는데 실제로 집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여 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에서는 대중이 모인 광장에서 눈을 가린 남성이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집행관 2명에 붙잡혀 손가락 절단기에 손을 올려놓았으며 나머지 한명이 절단기 장치에 부착된 핸들을 돌려 남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남자의 피 묻은 손가락은 아이오딘에 담겨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이란 정부는 형이 집행되기 전 약을 먹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나 이 영상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전세계에서 너무나 잔혹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란은 언론 탄압이 극심하다. 2023년 기준으로 언론자유지수가 177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며 현재 이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론인들과 사회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는데 이란은 언론 자유를 탄압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30명의 언론인을 투옥한 상태라고 인권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밝혔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 제이슨 레자이언은 이란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1년 넘게 수감돼 있으며 이란 정보 당국이 ‘세계인권의 날’인 2014년 11월 10일 유명 여성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체포해 구금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고작 몇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이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다. 특히 이란에서 진보적이라는 언론사 카르고자란 신문사도 틈만 나면 이란 정부에게 탄압을 받는데, 카르고자란 신문은 2009년 1월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비판해 이란 정부에 의해 정간당하고 이 비판 글을 쓴 기자가 체포되었다. 이유도 기가 막힌 게 단순히 하마스의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만 했는데 이것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정당화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고 했다.
2020년에 이란 체제와 인권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체포하려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자 프랑스까지 쫓아가 납치하여 강제로 끌고와 재판에 세웠는데 1심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 받은지 나흘 만에 사형에 처해버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학문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심각하게 탄압한다.#, # 이란의 시인 에크테사리와 무사비는 신성 모독 내용을 담은 책을 썼다는 혐의로 각각 11년 6개월과 9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들이 증언하기로 신성 모독 혐의에 대한 자백을 고문까지 이뤄진 강압적인 수사 아래서 했다고 한다. 또한 두 시인과 유사한 혐의가 적용된 영화 제작자 카이반 카리미 역시 최근 6년 징역형 및 223대의 채찍질형을 선고 받았다고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인 ‘이란의 인권을 위한 국제 캠페인’ 측이 밝혔다. 또한 이란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슬람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품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배우에게 태형 90대와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막장 독재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악마의 시를 지어 호메이니를 화나게 만든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도 이단으로 취급해 아직도 사형선고를 취소하지 않고 있으며 루시디가 정신질환자에게 피습당했을때 자업자득이라며 대놓고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일원인 모이니는 이란에서 단순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언론인이 2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란 교도소의 인권침해도 심각한데 카르지 지역에 있는 고하르다스트 교도소의 상황을 폭로한 이란의 한 정치범은 포화상태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옥과 인간 재앙으로 표현했다. 이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한 정치범은 공개서한에서 이를 폭로했는데 이란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가 심각하며 수감자는 벌거벗은 채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이에 물린 붉은 자국아 온몸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은 더럽고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가 썩는 냄새 그리고 막힌 변기에서 나온 오물과 식중독 환자가 뱉어 놓은 토사물과 가래로 가득한 비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란에서 망명을 와서 캐나다의 왕립군사대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하우창 하싼-야리 교수는 많은 수감자의 가족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고 해 이 정치범의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이란의 정치범은 신선한 공기와 제대로 된 음식 또는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란 교도소 측은 거의 대부분의 수감자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목욕도 못하게 하며 정신적, 신체적 고문까지 하고 있다고 하싼-야리가 말했다.
이란의 사형제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이란은 2014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이란 정부가 마약사범 척결에 나서서 2015년 7월까지 이란의 사형자 수가 최소 694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753명에 육박하며 2015년 안에 1,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아흐메드 샤히드 유엔 이란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이란의 사형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심각한데 이란 정부는 흉악범과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렇게 사형수가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인권 단체들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로는 정치범에게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거나 정치범들이 마약사범으로 처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법원에 의해 형이 선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나 또는 범죄화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에도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에서 피고인이 조사 단계에서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항소, 사면, 감형 절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법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에서 처형된 사형수 중에는 신에 대한 적대와 세속적 타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쿠르드족 정치범과[22] 수니파 이슬람교도, 배화교, 바하이교, 발루치족 등의 소수민족과 소수종교 및 친서방,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이란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는 수천여명에 이른다.
이란 정부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80%가 마약사범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하지 않으며 여러 증언에 의하면 마약 사범이라는 누명 아래 사형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사법살인을 당한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소년범 160명 이상이 이란에서 사형 집행을 받을 예정인데 문제는 고작 15세밖에 안 된 아이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한다.# 2019년에도 17세 소년 2명을 채찍질한 다음 사형선고도 하지않고 비밀리에 처형했다.# 이는 이란에서 만 15세 이상을 성인으로 분류했기에 이게 가능하다. 또한 대부분 사형이 집행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소식을 들으며 더 심한 경우엔 가족들이 사형집행 후 수일, 또는 수주가 지난 뒤에 생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교수형이 집행될 수 있는 상태일 정도로 수감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쁜 상태다. 또한 여성 죄수의 경우 처녀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 법 때문에 사형 전에 교도관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고 강간한 다음 처형하기도 한다.[23] 그래서 종파만 시아파인 다에시가 따로없다.[24]
이란의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하는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나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인다.[25] 사실 이란이 사형수를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고정적인 사형집행장을 만들어두지 않아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 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한다.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형집행이 실패해서 살아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 경우 율법해석을 통해 살인 등 중대범죄에 속하지 않으면 적당히 감형해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토록 억압적인 사회라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이란인들이 해외로 이민한다. 특히 이란은 두뇌유출이 심하며 고학력자와 청년일수록 억압적인 조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이 강해서 해외로 이민을 가고 싶어한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약 4,000,000명이며 주로 영미권과 유럽에 많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사는 이란인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경우 자국과 달리 베일을 안하며 서구적으로 꾸민다. 이민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이란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데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난민 중에 이란에서 온 난민도 있다. 해외의 이란인들은 'United for Iran' 같은 이란 난민 신문을 만들어 이란의 인권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이란인들의 인권운동과 이란 난민에 대한 구제에 애쓴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커져 2016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시민 권리 장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란의 신정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국제사회와 이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국가인 이란은 라흐바르의 말이 법이지 정부 수반에 불과한 이란 대통령의 선언은 그 무게가 떨어진다.
이란의 현실이 이런데 이란이 이웃 아랍 국가들보다 개방적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한국 웹에 퍼져 있다. 이란 젊은이가 SNS 등에 올린 서구 스타일 파티 사진을 보고 이란을 개방적인 국가라고 판단하면 이는 어이없는 오류다. 그런 걸 올리는 거 자체가 이란 사회에서는 일탈이며 도덕경찰이 눈씻고 찾는다. 그 파티를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연다. 젊은이의 '일탈'은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은 검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SNS는 VPN으로 우회해서 접속한다. 과거 한국 사례처럼 두발 단속을 하고 2014년 퍼렐 윌리엄스에게 헌정하는 팬메이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체포됐다.기사 2017년 찢어진 청바지를 단속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이란에서 쉽게 본다. 도덕경찰에게 걸려서 태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다.
이란 이슬람 혁명 전이면 몰라도 아랍 나라보다 이란이 융통성 있고 개방적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사회나 문화가 개방적인 걸로 따지면 이집트는 비록 독재국가지만 정부의 강력한 세속 정책과 맞물려 문화 산업과 연예계가 발전해 아랍 전역에 영상 매체를 수출한다. 아랍 국가들중 세속화와 개방도의 끝판왕인 레바논[26] 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란과 비교 가능하거나 혹은 더 억압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우리에게 이슬람 막장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적어도 대도시 지역들은 이란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정상적이다.[27] 도덕 경찰이 존재한다는자체가 개방적인 거와 거리가 멀다. 중동 종교경찰의 양대산맥이 이란의 도덕 경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타와다. 다만 사우디의 종교 경찰은 2020년대 들어서는 히잡을 안했다고 연행하지는 않는다. 미혼 남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잡고 음란물을 규제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란의 종교 경찰은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를 연행해 사망케 함으로써 2022년 이란 시위를 촉발시켰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뜩이나 경제난으로 인해 쌓여온 불만이 이 사건으로 폭발하여 탈히잡 시위와 2022년 9월 이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
자세한 내용은 이란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 이란인과 결혼한 여성 외국인 배우자는 비자발적으로 이란 국적을 부여받게 된다. 한국인 여성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국적법이 대한민국 국적 자동 상실을 규정한 “외국 국적 자진 취득”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6개월 이내 국적보유신고를 하면 대한민국 국적이 소멸되지 않으며,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2년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2년 이내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한국과 이란의 이중국적을 평생 유지하거나 또는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할 수도 있다. 6개월이 지나서 국적보유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적회복을 하면 된다.
표면적으로는 신정국가답게 인구의 99.4%가 통계상으로는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젊은 층에서는 아예 종교 자체를 가진 이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서류 상으로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신앙을 보일 뿐이다.
국교는 시아파(시아파 중의 12 이맘파)로 정해져 있고, 이란의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인구 91.5%로 주류를 이루며, 수니파가 7.9%를 차지한다. 전세계 시아파의 본좌 국가로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이란은 사파비 제국의 발흥으로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면서 시아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만다야교, 바하이교나 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졌다.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시아파, 수니파),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샤리아법 때문에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도 전면금지인데다 그나마도 허울만 좋은 종교권리 보장과 계속되는 실질적 박해 때문에 상당수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 이슬람 신자들이 이란을 떠나 망명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화된 이후부터 인도로 주로 망명해온 역사가 있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수르프 바다락(성찬 예배)을 보게 한다. 물론 오래 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이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가톨릭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살해당하며 성당들을 불태우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성당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성당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 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선교 때문에 선교만큼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29]
유대교 역시 이란에서는 배척받는다. 이란은 대표적인 기독교 탄압국으로[30] 오픈도어선교회의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다만 사우디처럼 개종자를 마구 처형하는 일은 그나마 드물고,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문제는 이게 장기간 복역하는 중형이다. 게다가 이란은 배교와 개종을 금지하며 중죄로 다스린다. 실제로 이란 법원은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18명에게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이란에서 선교활동은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입국금지에다 선교가 적발될 시 무조건 추방이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 전교에서 성경 공부 또는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2014년에만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됐으며 이들은 구금 후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악랄한 인권탄압과 폭정을 저지르는데도 이란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국가라며 한심한 정신 승리나 해댄다. 이 점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것을 빌미로 이란은 우리 욕할 자격 없다며[31]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와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폭력적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 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국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반유대주의 역시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자국의 유대인 여성들에게까지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이란에서의 복장에 대해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이란 시아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넥타이를 서구 제국주의식, 기독교식 문화의 산물이라며 금지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의 공직자들과 공무원, 외교관, 사회인사등을 보면 와이셔츠와 수트는 입어도 유독 넥타이는 안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들이 시아파 신정정권의 넥타이 금지령을 엄격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웃긴 건 넥타이를 뺀 수트, 서양식 구두, 와이셔츠 등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 대신 조끼를 많이 입는 편이다. 단 넥타이 금지는 이란 이슬람 정권의 괴악한 해석일 뿐, 이란 본토나 헤즈볼라 등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거의 없다. 당장 팔레비 2세만 해도 넥타이 잘 매고 다녔고, 해외 망명 이란인들, 비이란 계열의 시아파인 알라위파나 이란 외의 시아파 거주자들은 이런 교리에 신경쓰지 않고 넥타이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잘 매고다닌다. 옆나라 이라크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나, 시아파로 인정받은 알라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 버젓이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아파 유명인들도 상당하다.
그 외에 소수 종파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전통 종교라서 겉으로는 간판으로 삼고 있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강제로 강요받는 상황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계율은 술을 허용하고 담배를 절대 금지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고 담배는 방치하는데, 조로아스터교도들 입장에서 무슬림들한테 함부로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무척 애매하다고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개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시아 무슬림들이 개를 워낙 싫어하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시아파에서 갈라진 바하이교 또한 잔혹한 박해를 일삼는다. 사실 이쪽이 제일 심한데 이란 정부는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 만댜야 등 다른 쪽은 최소한 "종교"라고 인정은 해주지만 바하이는 식민 지배 시기 서구의 지원으로 생긴 사이비 종교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종교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바하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려고 했으나 보수적인 시아파 율법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취소되었고, 이슬람 혁명 당시 바하이 중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신정 정부에 의해서 많은 수의 바하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만약에 신정 정부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만다야교 신자, 아시리아인같은 고대 소수파 종교 신자들을 죽이면 국제 사회에서 맹비난을 받게 되지만, 바하이를 탄압하면 대내적으로는 보수 율법학자도 만족시키고 대외적으로는 걸프 순니 아랍 국가들의 호응을 받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며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이긴 하나 수니파도 마찬가지로 억압의 대상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주적으로써 수니파 무장단체 다에쉬와 알카에다 등이 이란 내에서는 크게 사고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IS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남부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를 벌였다. 이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이로써 이란도 더이상 IS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미국과 사우디에 있다며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부정하며 테러를 비난했다.
이란은 이슬람 탓에 주말은 오직 금요일뿐[32]이며 현지에서 술을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다만 페르시아력의 새해인 춘분이 있는 3월에 전체 공휴일 중 적어도 5일[33] 가량이 있다.
위에서 이슬람 이외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였지만 이란 현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종교가 아예 없는 무종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혹시 본인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냥 기독교나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교나 불교라도 대는 편이 아예 종교 없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란이 종교탄압국이긴 하지만 이란인 개개인들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단기 방문객의 종교 같은 걸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는다.
현실은 2020년도의 네덜란드 대학의 온라인 통계에 5만명이상의 자가응답 조사 통계에서, 90%이상이 이란에 사는 이란 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아파나 그외 수니파, 그 이외 분파를 합쳐도 무슬림은 고작 40.4%에 불과하다. 무슬림식 1일 5회 기도를 드리는 비율은 불과 27%, 전혀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60% 다. 기독교나 조로아스터 등 다른 종교를 포함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은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 등 비종교적 인구가 40% 가량이다. 즉 이란에서 무슬림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인 인구가 훨씬 많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23% 정도만 찬성하고 56% 는 반대하며 더구나 법적인 의무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15%만 찬성이고 72%는 반대한다. 이 통계결과를 두고 이란 현지인들은 이 통계는 이란 현지인들은 공감하지만 외국인들은 신뢰못하는 전형적인 통계라고 말할 정도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99.4%가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슬람의 정부 통계는 명목상의 통계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시아파 이슬람교를 강요하니 믿는 척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반 정도의 인구는 어떤 종교든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은 무종교인 비율이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같은 이란의 보수층은 대체적으로 독실… 한 것은 아니고 보수층의 자녀들 역시 종교 행위에 별 관심이 없고 놀고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 관광 혹은 유학하는 이란인 여성 중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경우는 10명 중 한두명이 될까말까이다. 이란에 출장 혹은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가 신정 정치 체제인 것과는 별개로 이란인들의 종교 성향은 사우디인보다는 외려 터키인에 가까워서 의외였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앞머리를 아예 내놓는 수준의 히잡을 착용하는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보다 많다. 도시의 젊은 남성들도 서구식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국교는 시아파(시아파 중의 12 이맘파)로 정해져 있고, 이란의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인구 91.5%로 주류를 이루며, 수니파가 7.9%를 차지한다. 전세계 시아파의 본좌 국가로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이란은 사파비 제국의 발흥으로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가 되면서 시아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만다야교, 바하이교나 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아졌다.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시아파, 수니파),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샤리아법 때문에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도 전면금지인데다 그나마도 허울만 좋은 종교권리 보장과 계속되는 실질적 박해 때문에 상당수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수니 이슬람 신자들이 이란을 떠나 망명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화된 이후부터 인도로 주로 망명해온 역사가 있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반크 성당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수르프 바다락(성찬 예배)을 보게 한다. 물론 오래 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이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가톨릭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살해당하며 성당들을 불태우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성당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성당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 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선교 때문에 선교만큼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29]
유대교 역시 이란에서는 배척받는다. 이란은 대표적인 기독교 탄압국으로[30] 오픈도어선교회의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WL·World Watch List)’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다만 사우디처럼 개종자를 마구 처형하는 일은 그나마 드물고,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하는데, 문제는 이게 장기간 복역하는 중형이다. 게다가 이란은 배교와 개종을 금지하며 중죄로 다스린다. 실제로 이란 법원은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18명에게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이란에서 선교활동은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입국금지에다 선교가 적발될 시 무조건 추방이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 전교에서 성경 공부 또는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발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2014년에만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됐으며 이들은 구금 후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악랄한 인권탄압과 폭정을 저지르는데도 이란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국가라며 한심한 정신 승리나 해댄다. 이 점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것을 빌미로 이란은 우리 욕할 자격 없다며[31]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와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폭력적 제국주의 국가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 중 하나이다. 중동 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 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국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반유대주의 역시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자국의 유대인 여성들에게까지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고 있다.
또 이란에서의 복장에 대해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이란 시아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넥타이를 서구 제국주의식, 기독교식 문화의 산물이라며 금지한다. 그래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의 공직자들과 공무원, 외교관, 사회인사등을 보면 와이셔츠와 수트는 입어도 유독 넥타이는 안매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들이 시아파 신정정권의 넥타이 금지령을 엄격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웃긴 건 넥타이를 뺀 수트, 서양식 구두, 와이셔츠 등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 대신 조끼를 많이 입는 편이다. 단 넥타이 금지는 이란 이슬람 정권의 괴악한 해석일 뿐, 이란 본토나 헤즈볼라 등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거의 없다. 당장 팔레비 2세만 해도 넥타이 잘 매고 다녔고, 해외 망명 이란인들, 비이란 계열의 시아파인 알라위파나 이란 외의 시아파 거주자들은 이런 교리에 신경쓰지 않고 넥타이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잘 매고다닌다. 옆나라 이라크의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나, 시아파로 인정받은 알라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등 버젓이 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니는 시아파 유명인들도 상당하다.
그 외에 소수 종파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의 전통 종교라서 겉으로는 간판으로 삼고 있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강제로 강요받는 상황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계율은 술을 허용하고 담배를 절대 금지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지하고 담배는 방치하는데, 조로아스터교도들 입장에서 무슬림들한테 함부로 앞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무척 애매하다고 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개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시아 무슬림들이 개를 워낙 싫어하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시아파에서 갈라진 바하이교 또한 잔혹한 박해를 일삼는다. 사실 이쪽이 제일 심한데 이란 정부는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 만댜야 등 다른 쪽은 최소한 "종교"라고 인정은 해주지만 바하이는 식민 지배 시기 서구의 지원으로 생긴 사이비 종교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종교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바하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려고 했으나 보수적인 시아파 율법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취소되었고, 이슬람 혁명 당시 바하이 중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신정 정부에 의해서 많은 수의 바하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만약에 신정 정부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만다야교 신자, 아시리아인같은 고대 소수파 종교 신자들을 죽이면 국제 사회에서 맹비난을 받게 되지만, 바하이를 탄압하면 대내적으로는 보수 율법학자도 만족시키고 대외적으로는 걸프 순니 아랍 국가들의 호응을 받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며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이긴 하나 수니파도 마찬가지로 억압의 대상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주적으로써 수니파 무장단체 다에쉬와 알카에다 등이 이란 내에서는 크게 사고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IS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남부 호메이니 영묘에서 테러를 벌였다. 이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이로써 이란도 더이상 IS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미국과 사우디에 있다며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부정하며 테러를 비난했다.
이란은 이슬람 탓에 주말은 오직 금요일뿐[32]이며 현지에서 술을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 다만 페르시아력의 새해인 춘분이 있는 3월에 전체 공휴일 중 적어도 5일[33] 가량이 있다.
위에서 이슬람 이외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였지만 이란 현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종교가 아예 없는 무종교이다. 그러니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혹시 본인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냥 기독교나 잘 모르겠으면 하다못해 유교나 불교라도 대는 편이 아예 종교 없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란이 종교탄압국이긴 하지만 이란인 개개인들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단기 방문객의 종교 같은 걸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는다.
현실은 2020년도의 네덜란드 대학의 온라인 통계에 5만명이상의 자가응답 조사 통계에서, 90%이상이 이란에 사는 이란 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아파나 그외 수니파, 그 이외 분파를 합쳐도 무슬림은 고작 40.4%에 불과하다. 무슬림식 1일 5회 기도를 드리는 비율은 불과 27%, 전혀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60% 다. 기독교나 조로아스터 등 다른 종교를 포함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은 6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무종교, 무신론, 불가지론 등 비종교적 인구가 40% 가량이다. 즉 이란에서 무슬림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인 인구가 훨씬 많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23% 정도만 찬성하고 56% 는 반대하며 더구나 법적인 의무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15%만 찬성이고 72%는 반대한다. 이 통계결과를 두고 이란 현지인들은 이 통계는 이란 현지인들은 공감하지만 외국인들은 신뢰못하는 전형적인 통계라고 말할 정도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99.4%가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슬람의 정부 통계는 명목상의 통계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시아파 이슬람교를 강요하니 믿는 척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반 정도의 인구는 어떤 종교든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은 무종교인 비율이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같은 이란의 보수층은 대체적으로 독실… 한 것은 아니고 보수층의 자녀들 역시 종교 행위에 별 관심이 없고 놀고 먹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 관광 혹은 유학하는 이란인 여성 중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경우는 10명 중 한두명이 될까말까이다. 이란에 출장 혹은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정부가 신정 정치 체제인 것과는 별개로 이란인들의 종교 성향은 사우디인보다는 외려 터키인에 가까워서 의외였다는 평도 있다. 그래서 앞머리를 아예 내놓는 수준의 히잡을 착용하는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보다 많다. 도시의 젊은 남성들도 서구식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슬람 법학자 통치체제라 불리는 특유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몇 안 되는, 선거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한 공화제를 채택한 나라다. 물론 정교분리가 안 되어있어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왕인마냥 정치에도 간섭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점이긴 하지만, 이슬람 최고 지도자도 일단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들의 합의로 선출되는 방식이라 이란 국민들의 의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고, 대통령 역시 정권의 성향에 따라 그 안에서도 보수/개혁처럼 사회적 분위기나 색깔도 어느 정도는 바뀌는 나라다.
이란 헌법에는 시아파의 구세주인 '마흐디'가 재림할 때까지 이란의 정치를 시아파 율법 전문가(호자톨 이슬람, 마르자 에 타클리드 등으로 부름)들이 맡아 대리로 통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의 국가원수(라흐바르)는 곧 종교지도자이고 국가 운영에 종교인(이슬람 시아파)이 직접 참여한다. 때문에 이란 정치를 자유민주정이 아니라 '이슬람법 전문가정'이라고 평가하는 정치 논객들도 있으며, 이란에서 민주주의란 이슬람 근본주의를 보좌하기 위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평과 그럼에도 그것조차 안하는 주변 전제군주정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란 평이 공존한다. 옆동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왕이 하고 싶은대로 다스리고 장관도 전부 직계 왕족이 맡고 국회의원도 없는 식이니.[36] 물론 이란도 서아시아 수준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교해보면 그리 민주적이지도 않고 인류 보편적 인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또, 혁명세대의 족벌정치도 심각한 상태다.# 그래도 상당수 이란 국민들은 각 정치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자국 고유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찌됐든 본인들이 혁명을 통해 부패한 전제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운 체제라고 다수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
이란은 현재 전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간접선거로 선출된 종교지도자가 전제군주에 가까운 권력을 가지나, 그 아래의 관료들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뽑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지수는 독재국가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중국, 전제군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불리는 에리트레아보다 낮다.
1979년 혁명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된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란 대통령은 4년 임기에 1회 연임이 가능하고 국민 직접 선거 및 결선투표로 선출되어 정부수반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역시 국민의 직선 및 결선투표로 선출된 4년 임기의 국회가 있다. 의원 정수는 290명으로 헌법상 소수종교에 5석을 배정하고 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정교 2, 조로아스터교 1, 유대교 1, 아시리아정교 1인) 헌법 64조에 따라 매 10년마다 의회에 20석 이하의 의석을 증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란 의회>에는 입법권이 있으나 법을 만들 때는 헌법수호위원회와 라흐바르의 재가를 거쳐야 한다. 사법부의 경우에도 그 수장 후보군 명단을 보내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형태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8년 임기의 직선 의원 88명으로 이뤄진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مجلس خبرگان رهبری)가 있고, 이들이 선출한 종신직의 라흐바르(خطای سطح دسترسی)[37]가 국가원수의 역할을 한다. 현 라흐바르는 2대인 알리 하메네이로 1989년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이란의 국가원수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도 겸하지만, 이란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 6명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와 6명의 법학자, 총 12명의 위원으로 이뤄진 헌법수호위원회(شورای نگهبان قانون اساسی, 또는 수호자 평의회)가 있다. 6명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는 라흐바르가 임명하고, 6명의 법학자는 사법부의 지명을 받아 국회가 동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은 헌법을 해석하고 헌법재판소처럼 헌법 재판을 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율법 전문가 회의, 대통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모든 사람들을 심사해 부적격자를 떨어뜨리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다.
이런 식의 정치체제는 삼권분립과 신권 정치를 결합한 정치체제라는 평가를 받는데, 말만 삼권분립이지 라흐바르가 모든 국가권력을 쥐고 휘두르며, 라흐바르는 임기 그딴것 없이 종신직으로써 수십년을 해먹고 있다. 특히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심사 과정에서 개혁파 후보들을 죄다 떨구어 법학자 체제와 심각한 인권 탄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도 선거가 그럭저럭 이뤄지기는 하기에 전제 왕정이나 세습 대통령이 수두룩한 중동에서 이스라엘, 레바논, 이라크, 튀니지 등을 제외하면 그나마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체제 내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나라기도 하다. 그 동네에서는 민주의식이 높기는 한 모양인데, 예컨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에 신 아프간 헌법을 논의하는 본(Bonn) 회의에서, 아프간 헌법에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미국 대표가 아닌 이란 대표였다. 헌법 초안을 검토하던 이란 대표가 말하길, "이와 같은 문서라면 마땅히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중에 미국 대표가 말하길, "내가 받았던 훈령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점을 특별히 언급해야겠군요." 또한, 문서에 아프간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항해 협력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 또한 개혁파로서 서방과의 화해를 적극 추진했던 하타미 대통령 치하의 이란 대표였다.[38]
헌법수호위원회도 어디까지나 부적격자를 떨구는 것이지 일단 적격자로 판정난 사람이 실제 선거에서 이겨서 뭔가가 된다면 대놓고 확 쳐내지 못한다. 이는 최고지도자도 마찬가지. 아무리 실권은 딸려도 국민들이 직접 뽑았다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일단 되고 나면 함부로 내칠 명분은 없다. 때문에 어느 정도 맞지 않더라도 다들 조금씩 양보를 하고 마찰을 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대통령도, 헌법수호위원회도, 최고지도자도 서로 대놓고 충돌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이질적인 사람[39]은 헌법수호위원회가 부적격자로 미리 자르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지언정 최소한 체제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은 그럭저럭 합의해서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1987년 호메이니의 교시에 따라 정당을 허용하지 않고 개인 자격 정치만 허용하며, 따라서 이란의 의회는 정파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견을 공유하는 느슨한 정파연대를 중심으로 정치단체를 구성한다. 이란 국회의원 선거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헌법수호위원회가 후보자가 후보 신청을 하면 사전자격검증을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당연 이러한 행위를 반민주적이라고 지적하지만 이란은 서구식 민주공화제가 아닌 이란 고유의 이슬람 공화국이기에 후보자 검증과정에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나라의 선거 연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5세부터다. 이란 현지 고등학교 1학년[40]에 해당하는 나이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 사회 진보의 가장 강력한 동력원이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발이 적지 않고 이 때문에 이슬람 법학자 정부의 탄압을 받아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대선 후보자 수가 1,636명이라서 화제며 나이도 18세부터 92세까지 다양했다.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 후에 후보가 6명으로 좁혀졌으며 이 중 여성 후보는 모두 탈락해서 여성계의 반발이 있었다. 이 선거에서 하산 로하니 현임 대통령이 57%의 지지율로 재선되었다.2017년 대선 대선 후에는 라흐바르인 알리 하메네이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갈등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2017년말 이후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대선에서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 대법원장이 당선되면서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후보 중에서 하산 로하니같은 개혁파 후보는 모두 사전검증에서 낙마하고 피선거자가 보수 일색이 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국민들이 투표 보이콧을 선언, 지난 대선보다 무려 24.55%p나 낮은 48.78%로 역대 이란 대선 중 최저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무려 72.3%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했고 약 13.7% 남짓의 득표율로 참패한 모흐센 레자이도 같은 보수파. 중도파는 압돌나세르 헴마티를 단일 후보로 내세웠으나, 9.8%도 안 되는 처참한 득표율로 광탈했다.
알리 하메네이의 나이가 많아서 에브라힘 라이시가 차기 라흐바르가 될 전망이었으나, 라이시가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 되었다.[41] 대통령 궐위를 다룬 이란 헌법 131조에 따라 현재 모하마드 모흐베르 부통령이 최고지도자의 승인 하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 그 후 제1부통령,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으로 이뤄진 대통령 평의회가 선거를 주관하여 50일 내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즉 다음 이란 대통령 선거는 2024년 7월 9일 이전에 열리며 이 때 당선된 대통령은 4년의 임기를 새롭게 부여받게 된다.
선거 결과 예상을 뒤엎고 개혁파 소속의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에 올랐다. 의회 다수당이 원칙파인 데다 라흐바르가 버티고 있어 대통령 혼자 뭔가를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개혁파 후보가 모두 승리한 것은 이란 정치사에서 굉장한 이변으로 평가된다.
팔라비 왕조를 혁명으로 뒤엎고 현재의 정부 체제를 수립한 나라라 그런지, 이란 혁명 당시 미국 등 서방으로 망명한 팔라비 구 왕족들에 대한 이란 귀국이나 방문을 일체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도 거대하고 다양한 다민족국가이다 보니까 분리주의 역시 존재한다. 특히 이란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차별을 받기에 이란의 소수민족들은 이란과 주류민족인 페르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종교와 관련된 민족갈등도 있기는 하지만 시아파를 믿는 소수민족들조차도 페르시아인과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서부 이란령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족의 거주지로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랑 달리 이란과는 같은 페르시아어족이긴 하나 엄연히 별개의 민족에다가 종교 역시 수니파로 달라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0,000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81,800,000명이 넘는 이 나라에서는 5,000,000 ~ 6,000,000에 이르기에 무시못할 수치다.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مهاباد)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جمهوری مهاباد)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분쇄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근래에는 잠잠한 편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이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분리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동남부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이 사는데 이들은 이란과 또다른 지배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오만에 분할 편입된 점을 봐서 가히 작은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는 6,900,000명, 이란에는 1,560,000명, 오만과 아프간에는 각각 430,000명과 300,000명이 거주한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대부분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에 산다.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긴 하지만 이들 조직의 지도자 대다수가 사살되어 현재는 별 다른 활동은 없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시스탄의 주민들이 모두 수니파이며 시아파인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여 이 지역에 발루치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비민주 국가인 이란 정부는 발루치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저 극단적인 정책으로만 토벌하려고 하니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발루치 무장단체들은 이란 정부를 계속 게릴라전과 테러로 엿먹이고 있어 이란 정부에게서 골칫거리다.
북서부 아제르 투르크인이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 더 많아서 역시 분리주의 및 아제르바이잔이랑 페르시아 아제리인이 서로 합쳐서 대아제르바이잔을 이룩하잔 대아제르 투르크주의(통칭 아제리스탄)가 있기도 하지만 발루치, 쿠르드의 분리주의에 비하면 훨씬 미미한 편.
서남부 이라크와의 접경지대 후제스탄은 아랍인의 땅이라 분리주의가 있는데 1980년대 당시 이라크는 후제스탄은 아라비스탄, 호람샤르는 모하마라라 불르면서 이라크의 영토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중서부 이란령 쿠르디스탄은 쿠르드족의 거주지로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랑 달리 이란과는 같은 페르시아어족이긴 하나 엄연히 별개의 민족에다가 종교 역시 수니파로 달라 이란으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0,000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81,800,000명이 넘는 이 나라에서는 5,000,000 ~ 6,000,000에 이르기에 무시못할 수치다.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مهاباد)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جمهوری مهاباد)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분쇄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근래에는 잠잠한 편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쿠르드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이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분리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동남부 발루치스탄에는 발루치족이 사는데 이들은 이란과 또다른 지배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있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오만에 분할 편입된 점을 봐서 가히 작은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키스탄에는 6,900,000명, 이란에는 1,560,000명, 오만과 아프간에는 각각 430,000명과 300,000명이 거주한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대부분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에 산다. 발루치스탄 이란령 쪽으로 가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 테러리스트가 분포해 있긴 하지만 이들 조직의 지도자 대다수가 사살되어 현재는 별 다른 활동은 없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시스탄의 주민들이 모두 수니파이며 시아파인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여 이 지역에 발루치 무장단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특히 비민주 국가인 이란 정부는 발루치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저 극단적인 정책으로만 토벌하려고 하니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발루치 무장단체들은 이란 정부를 계속 게릴라전과 테러로 엿먹이고 있어 이란 정부에게서 골칫거리다.
북서부 아제르 투르크인이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 더 많아서 역시 분리주의 및 아제르바이잔이랑 페르시아 아제리인이 서로 합쳐서 대아제르바이잔을 이룩하잔 대아제르 투르크주의(통칭 아제리스탄)가 있기도 하지만 발루치, 쿠르드의 분리주의에 비하면 훨씬 미미한 편.
서남부 이라크와의 접경지대 후제스탄은 아랍인의 땅이라 분리주의가 있는데 1980년대 당시 이라크는 후제스탄은 아라비스탄, 호람샤르는 모하마라라 불르면서 이라크의 영토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항목 참고.
자그로스 산맥 중에 있는 주요 도시 케르만샤의 전경
이란고원의 평범한 도시. 사진은 샤흐레코르드 인근의 하프셰잔이다.
1,648,195km²(한반도 전체 면적의 8배)에 이르는 땅 면적은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넓은 나라다. 아시아 전체에서도 중국(9,640,821km²) - 인도(3,287,263km²) - 카자흐스탄(2,724,900km²) - 사우디아라비아(2,149,690km²) - 인도네시아(1,904,569km²) 다음으로 6번째로 큰 나라다. 한반도의 8배가 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운 사막성 기후와 더불어 눈이 엄청 내리거나 춥고 시원한 날씨를 가진 알브로즈 지역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알브로즈 지역에 위치한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 산(Damavand Mountain, 5,610m)을 겨울에 보면 그야말로 히말라야급으로 눈이 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42] 또한 사계절이 뚜렷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꽤 있다.[43] 북쪽으로 갈수록 무진장 추운 지역도 있다. 이게 이란을 남북으로 나누면 북부지방은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이란 최북단은 북한의 중남부지역인 평안남도와 비슷한 위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쪽인 것도 아니다. 이란 서북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중부지방과 비슷한 위도이고 우르미아와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같다. 그리고 이란 최북단은 평양보다도 북쪽에 있다. 당장 수도인 테헤란만 해도 일본의 도쿄, 전라북도 전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과 거의 같은 위도에 속한다. 다만 남쪽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남쪽에 있으며 최남단이 위도상으로 대략 대만이나 방글라데시 북쪽과 비슷한 저위도이다. 이때까지 이란에서 기록된 최고기온은 섭씨 70.6, 최저기온은 섭씨 -36.0이다. 더운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축에 속하며 여름에는 50도가 넘어가는 맹렬한 폭염이 맹위를 떨치며 추운 곳은 한국의 강원도만큼 추워지기도 한다.
이란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덥고 뜨거운 곳이 존재한다. 이란의 남동부에 위치한 루트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최고 기온 섭씨 70.6도라는 엄청난 더위로 위용을 떨쳤다. 어찌나 더운지 박테리아들이 자동으로 멸균되어 우유가 상하지 않을 정도이다.[44]
현재 유일하게 아시아치타가 서식하는 국가이기도 한데, 이란마저도 아시아치타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아시아치타는 역사서에서도 페르시아 왕실 엽수로 사용한 유서 깊은 이란의 자랑거리인지라 당국은 악착같이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로드킬 등으로 인해 현재 보존 상태는 최악[45] 그 자체다.
국토의 대부분이 건조 기후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막 기후(BWh)와 한랭 반건조 기후(BSk)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카스피해와 접하는 일부 도시들만 지중해성 기후(Csa)와 온난 습윤 기후(Cfa)로 분류된다.
기후 분포가 여러가지 섞여 있다 보니 대부분 도시들이 점이지대에 놓여 있다. 수도인 테헤란의 경우, 한랭 반건조 기후(BSk)와 지중해성 기후(Csa)의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인 마슈하드도 한랭 사막 기후(BWk)와 한랭 반건조 기후(BSk)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고지 지중해성 기후(Dsa, Dsb, Dsc) 지역도 있으나, 이는 단순히 해발 고도가 높아 최한월이 영하로 떨어지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 부족은 이란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고대부터 이란의 물부족은 정말 심각했는데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의 자얀데 강(자얀데루드)의 경우 천 년 넘게 이란 중부의 도시 이스파한의 젖줄 역할을 했지만, 오랜 개발의 역사와 인구증가로 인한 물수요의 증가로 점점 말라가 모래만 남은 황량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사막화도 심각하지만, 강수량도 세계 평균의 1/3인 200mm에 불과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데 그나마도 기후 변화와 가뭄이 심해지면서 급감하고 있다. 그래서 지하수를 퍼내는 방식으로 물을 조달하고 있지만 이조차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다. 비록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다지만, 카스피"해"의 물은 바닷물에 준하는 짙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 사실 쓸모가 없다.
물부족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파산해 농촌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46]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한 농업이 이란 수자원의 9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파산하다보니 식량 자급도 불가능해져 식량수입국[47]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도시와 마을들은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정부에서 통제하는 급수탱크에 의존한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로 가는 수도관을 파괴해 물을 탈취하는 사건이 터질 정도. 중부와 남부는 아예 수원 자체가 없으며 물 공급률도 40%에 불과해 물부족이 이란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에서는 이상적인 집이 물이 마음껏 나오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부자집들조차 수영장을 가지기 힘들다.
수자원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과도 갈등이 심해졌다. 이라크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수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남서부 후르 알 아짐 습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북동부 국경 하리루드 강은 비슷한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이 농업용수 사용을 위해 상류를 막아 이란의 제2도시인 마슈하드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과는 헬만드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남동부 하문스 지역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물부족은 오래 전부터 우려되었기에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티그리스강을 반드시 차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48] 산업화로 인한 물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자원 고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수 담수화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해수담수화로도 수자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사 칼란타리 전 이란 농무부 장관이 물부족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7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이 지하수의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파괴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탄할 정도다.
사실, 물부족은 이란 말고도 중동 나라들에게 심각한 사항이다. 물 부족 국가에서 나오듯이 이란과 앙숙이라는 이스라엘도 물 부족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이스라엘 역시 이란이나 다른 아랍권 나라와 전쟁보다도 물부족으로 큰 위협이라고 비상이 걸린 상황이며 지도에 나오듯이 중동권 나라들 모두가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역시 물이 풍요로운 게 아니라서 저 강들을 죽기살기로 가지려고 하는 상황이다.
한편, 2019년 1월 지하수 남용으로 인해 곳곳마다 싱크홀 문제에 시달려 이란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부족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파산해 농촌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46]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한 농업이 이란 수자원의 9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파산하다보니 식량 자급도 불가능해져 식량수입국[47]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의 도시와 마을들은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정부에서 통제하는 급수탱크에 의존한다.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로 가는 수도관을 파괴해 물을 탈취하는 사건이 터질 정도. 중부와 남부는 아예 수원 자체가 없으며 물 공급률도 40%에 불과해 물부족이 이란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에서는 이상적인 집이 물이 마음껏 나오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다. 물부족이 심한 나머지 부자집들조차 수영장을 가지기 힘들다.
수자원 문제 때문에 주변국들과도 갈등이 심해졌다. 이라크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수자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남서부 후르 알 아짐 습지도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북동부 국경 하리루드 강은 비슷한 처지의 아프가니스탄이 농업용수 사용을 위해 상류를 막아 이란의 제2도시인 마슈하드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과는 헬만드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남동부 하문스 지역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물부족은 오래 전부터 우려되었기에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티그리스강을 반드시 차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48] 산업화로 인한 물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수자원 고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수 담수화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해수담수화로도 수자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사 칼란타리 전 이란 농무부 장관이 물부족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7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란이 지하수의 빠르고 기하급수적인 파괴가 지속된다면 20년 안에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탄할 정도다.
사실, 물부족은 이란 말고도 중동 나라들에게 심각한 사항이다. 물 부족 국가에서 나오듯이 이란과 앙숙이라는 이스라엘도 물 부족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이스라엘 역시 이란이나 다른 아랍권 나라와 전쟁보다도 물부족으로 큰 위협이라고 비상이 걸린 상황이며 지도에 나오듯이 중동권 나라들 모두가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역시 물이 풍요로운 게 아니라서 저 강들을 죽기살기로 가지려고 하는 상황이다.
한편, 2019년 1월 지하수 남용으로 인해 곳곳마다 싱크홀 문제에 시달려 이란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5년 기준 이란 철도 노선. 주요 도시들을 효과적으로 잇고 있으며 표준궤(1,435mm)로 되어 있다. 튀르키예,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철도와 연결되는 국제 노선이 있다.
남한의 16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덩어리인 만큼 많은 항공노선이 이란의 교통을 커버하고 있다. 국적기인 이란항공을 비롯해 마한항공, 아세만 에어라인, ATA 등 열 개가 넘는 항공사가 국내선에서 경쟁 중이다. 기령의 노후화로 인해 국제선에서는 이란항공을 위시한 이란 국적 항공사들 보다는 외항사들이 힘을 내는 듯.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노후기체들이 교체된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철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한 도시 간 이동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경우 고속도로의 중간중간에 서서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전에 마약을 운송하다가 적발된 사건이 크게 터졌기 때문이라는 듯. 다만 엄격한 검문은 아니고, 꽤 요식적으로 이뤄지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외국인이라서 따로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버스는 크게 VIP버스와 일반 버스로 나뉘는데, VIP버스는 우리나라의 우등버스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란은 땅이 넓어서 장거리 이동을 할 경우에는 자리가 편한 VIP버스가 훨씬 좋다. 물론 버스에 타는 순간,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와 '편안한 휴식'과는 거리가 먼 이동을 할 수도 있다. VIP 버스는 물론 일반 버스에서도 승객들에게 과자박스를 제공하니, 입이 심심하지는 않게 갈 수 있다. 철도는 나름 근대화된 편으로 새마을호 객차가 모 사철로 수출되어 운행 중이었으나 최근 그 객차가 탈선하여 대형사고가 났다고 DC인사이드 철도갤러리에 알려졌다. 한국철도공사에서 디젤기관차를 수출한 적도 있다. 관련 기사
터미널에서도 회사별로 창구가 다 따로 떨어져있고 각기 요금표가 모두 다르다는 것. 같은 구간에 같은 등급의 버스를 타더라도 요금이 다를 수 있으니 타기 전에 꼭 확인이 필요하다.
여행자들은 시내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간의 이동에는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도 택시같은 회사택시가 있는 반면, 그냥 일반 승용차를 택시로 운용하는 사설택시도 있다. 일정한 목적지로 향하면서 자유롭게 합승이 가능한 모스타김 택시의 경우 짧은 거리라면 우리 돈으로 300 ~ 500원가량인 1,000 ~ 2,000토만의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합승이 불가한 다르 바스트의 경우는 조금 더 비싼데, 미터기로 달리는 정찰제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가격을 흥정하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협상스킬이 가장 중요하다. 미터기로 달린다며 접근하는 택시들의 경우 엄청난 바가지를 쓸 수 있으니 탑승하기 전 꼭 가격흥정을 하는 것이 좋다.
이란 도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아 프라이드의 행렬이다. 길에 다니는 차의 절반 이상은 프라이드로 보일 정도. 이렇게 된 이유는 이란의 자동차 회사 SAIPA가 프라이드를 라이선스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란 현지에서는 SABA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값이 싸서 너나없이 사는 차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러시아워만 되면 아수라장이 되는 도로사정에다가, 이란인 특유의 거친 운전, 구식 차량의 콤보가 합쳐져서 어디 한 군데 찌그러지거나 벗겨지지 않은 멀쩡한 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수도 테헤란의 대기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도 역시 손꼽히는 산유국답게 주유비는 아주 싸다. 2015년 초반 기준으로 휘발유 1리터에 1,000토만, 약 300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기습적으로 인상한 가격이라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그렇듯, 지하철이나 굴절버스 등의 칸이 분리된 교통수단의 경우 여성전용칸이 따로 존재한다. 여성전용칸에 남성은 탈 수 없지만, 반대로 여성이 남성인 가족과 함께 일반 칸에 탑승하는 경우는 흔하다.굳이 가족이 아니라도 같이 탄다 해서 딱히 제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렇게 따지면 율법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셈이다. 버스의 경우 내 옆자리에 다른 성별의 사람이 앉게 될 경우, 차장이나 운전수가 자리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란/여행 및 출장 정보 문서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