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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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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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제4대 부통령 |
대한민국의 제4대 부통령.
- 1908.8. 사립 박문학교 입학
- 1910. 사립 박문학교 졸업 및 박문학교 고등과 진학
- 1912. 박문학교 고등과 졸업
- 1912.3. 인천공립심상소학교 6학년 편입학
- 1913.4. 인천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 진학
- 1914.3. 인천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 1년 수료
- 1914.4. 수원고등농림학교 진학
- 1917.3. 수원고등농림학교 졸업
- 1917.9. 경성 YMCA 영어학교 진학
- 1918.4. 용산예수성심신학교 강사
- 1920.3. 경성 YMCA 영어학교 졸업
- 1925.6. 맨해튼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부전공 교육학)
- 1928. 평양 천주교회청년회장
- 1931.4. 동성상업고등학교[7] 교사
- 1933.6. 가톨릭 청년보 편찬위원
- 1936.11. 동성상업고등학교 교장
- 1936.11. 계성초등학교(서울) 교장 취임
- 1937.4. 경성 혜화유치원 원장
- 1938.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간사
- 1939.4. 제3대 경성 계성국민학교 교장
- 1939.9. 천주교청년회연합회 회장
- 1944.8. 제5대 경성 계성국민학교 교장
- 1946.2.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의원
- 1946.12.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선출
- 1947.3. 조선적십자사 고문
- 1947.11. 중앙선거위원회 위원
- 1948.5. 제헌 국회의원 (서울 종로 을, 무소속)
- 1948.12. 제3차 유엔총회 대표단 대표, 교황청 파견 대통령 특사
- 1948.12. 초대 주미특명전권대사 (1948.12.27. ~ 1951.2.)
- 1950.11. 제2대 국무총리 (1950.11.23. ~ 1952.4.23.)
- 1954.5. 제3대 민의원 후보로 출마 (서울 종로, 낙선)
- 1956.8. 제4대 대한민국 부통령 (1956.8.15. ~ 1960.4.25.)
- 1960.7. 제5대 민의원 의원 (서울 종로 을, 민주당)
- 1962.8. 이주당 사건 배후로 지목되어 투옥
- 1966.6. 사망, 국민장 거행
- 1998.8.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자세한 내용은 장면/일생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장면 내각 문서 참고하십시오.
-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한 창씨명은 타마오카 츠토무(
玉岡 勉 )이다. - 일설에는 장면의 수행원 중 하나가 필사적으로 장면을 찾다가 쿠데타 당일 밤에 장면을 차에 태우고 도망쳤던 운전수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수행원의 애타는 질문에도 끝까지 장면이 있는 곳을 모른다고 잡아떼는 바람에 끝내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수행원들이 박정희 편에 매수되었거나 협박당해서 장면을 잡으려고 찾으러 다니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운전수 및 기타 노동 등을 하는 사람은 보안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초대 원장인 장정온 악네다 수녀가 장면 총리의 여동생이다. 장정온 수녀는 한국전쟁 당시 덕원수도원 소속으로 피랍되었다가 피살되어 평양에서 순교했다.# 허리수술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거동이 불편해 피신하지 못했으며 일설에 의하면, 우물 속에 생매장 된것으로 구전된다. 이 일은 장면 개인에게 가장 큰 아픔 이기도 했으며 악네다 수녀는 2022년 현재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명단에 포함되어 시복시성이 교황청에서 진행 중이다.
- 영문 통용명으로 이름이 존 M. 장(John. M. Chang)이다. 천주교 세례명이 '요한'이어서 이름에 요한을 영어로 읽은 'John'이 붙었고 M은 면(Myon)의 약자다. 미국 국무부 당국자 아서 B. 에먼스 3세 씨가 암에 걸려 별세했다는 내용의 졸기(
卒 記 )와 트루먼 기념도서관이 소장한 문서 원문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면 주미한국대사 장면의 이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실제로 혜화역 출구 안내판에 붙어있는 장면가옥 안내 밑에 영어로 ‘John M. Chang’이리고 쓰여 있다. - 최규하와 친척인 최서면과 알고 지냈다. 당시에는 그의 정체를 몰랐지만.
- 일제강점기 당시 가톨릭 교육자로 활동한 행적이 있으며 2009년 편찬된 친일인명사전에 가톨릭 분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오점이 있다. 외교관으로서 초대 주미대사를 지내며 서방 국가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조속히 승인하도록 기여하였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공을 세웠다.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주의를 지향하였고 친미적인 인물이었던 덕분에 특히 중도 우파 진영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고 세련된 신사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치적인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김대중의 정치적 은사이기도 했다.
- 1960년 4.19 혁명 이후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실시된 의원내각제 하의 2번째 행정수반 국무총리로 제2공화국 내각의 실권을 가진 집권자였다. 그 이전에도 초대 주미대사, 제2대 및 제7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제4대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내는 등 요직을 지냈다. 의원내각제 총리 재임 시절 성실성을 바탕으로 당시로써는 자유주의적인 사회정책과 정부주도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시행했지만, 윤보선과 갈등하면서 민주당 구파가 아예 탈당하여 신민당이라는 별개의 정당을 차리는 등 집권층 내부의 분열로 인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급속한 지지기반의 상실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지면서 집권한지 1년도 안되어 5.16 군사정변으로 실각하고 만다. 전반적으로 관료와 정책가로써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혼란을 수습할 만한 정치력은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48 | 23,188 (57.05%) | 당선 (1위) | 초선[14] | |||
1956 | 4,012,654 (46.42%) | 초선 | ||||
1960 | 29,098 (69.59%) | 당선 (1위) |
역대 선거 벽보·공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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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미대사 임명으로 사퇴.[2] 보궐선거 당선[3]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며 의원직 사퇴[4] 단, 어릴 때 인천으로 이주해서 살았기에, 실질적 고향은 경기도 인천부(現 인천광역시)였다.[5] 황상(凰顙)파 14세. 인동 장씨 31세.[6] 장면의 대자가 바로 김대중이다.[7] 현 동성중학교, 동성고등학교[8] 당시의 총리직은 현재와 차이가 있다. 제2공화국은 영국식 의회 제도를 가져온 의원내각제였기 때문에 국무총리가 실권을 갖춘 정부수반이었고 윤보선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가 된다.[9] <대한민국의 대통령> 강준식 100p[10] 호가 태암(太 巖 )이었던 아버지 장기빈은 아들들에게 운석, 우석(雨 石 ), 하석(霞 石 )이라고 호를 지어줬다 한다. 큰 바위의 아이들이니 돌 석 자를 붙인 것이다.[11] 1950년대 후반 부통령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의 가톨릭 세례날 대부를 담당해 주었다.[12] 1923년생. 본명은 정동민.[13] 종로을구[14] 1948.12.20: 의원직 사퇴 (주미대사 임명)[15] 재선거 결정[16] 용산갑구[17] 의원내각제 수반[18] 1961.5.16: 자격정지(5.16 군사정변)[19] 민정당과 신설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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