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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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y Party
잉글랜드에 존재했던 정당.
역사적으로 두 개의 토리당이 존재하는데, 각각 1661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와 1783년부터 소(小 ) 윌리엄 피트를 중심으로 기존의 휘그당에서 나와 독자적 세를 이루며 형성된 토리가 그것이다. 즉, 따지고 보면 두 당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후자가 전자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에 존재했던 정당.
역사적으로 두 개의 토리당이 존재하는데, 각각 1661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와 1783년부터 소(
1661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속했던 토리당은 제임스 2세의 왕위 계승에 찬성을 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당으로, 이름의 유래도 이때 휘그당이 이 찬성파들을 토리즈(Tories)[1]라고 부른 것이라고 추측된다. 1688년 명예혁명 때는 휘그당과 협력했지만, 이후 하노버 왕조가 이어지면서 휘그당이 내각을 주도하자 약 50년 동안 듣보잡 취급을 받고 세가 약해져, 1760년대 중반부터는 영국 의회에서 토리당의 당원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당시 토리당은 온건 중도와 진보적 리버럴파 중심의 휘그당에 맞서는 반동적 왕당파에 가까웠다.
이후 시간이 지나 소(小 ) 윌리엄 피트와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휘그당에서 나와 독자 세력을 이루게 되는데, 이들은 초창기에는 "독립파 휘그(Independent Whigs)", "피트주의자(Pittites)"로 불렸으나, 피트의 사후 "토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1812년부터는 아예 토리가 이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정착하게 된다. 과거 토리당과 달리 휘그당에서 갈라져나온 세력답게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여 온건 보수화되고, 이후 휘그당과 경쟁하며 영국 정치를 양분하게 된다.
1832년에는 로버트 필에 의해 보수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40년대에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던 보수당 정책에 맞서 곡물법 폐지를 통한 자유무역 확대를 주장한 로버트 필을 지지하던 필 주의자들(Peelites)들이 보수당을 빠져나와 휘그당의 후신인 자유당과 합치게 된다. 이들 탈당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훗날 자유당을 이끌고 보수당 대표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경쟁하게 되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다. 19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체제는 이때를 기점으로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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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에는 로버트 필에 의해 보수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40년대에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던 보수당 정책에 맞서 곡물법 폐지를 통한 자유무역 확대를 주장한 로버트 필을 지지하던 필 주의자들(Peelites)들이 보수당을 빠져나와 휘그당의 후신인 자유당과 합치게 된다. 이들 탈당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훗날 자유당을 이끌고 보수당 대표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경쟁하게 되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다. 19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체제는 이때를 기점으로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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