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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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의 4집 앨범 발매 이후 유병열을 대신하여 YB의 멤버가 되었다. 허준을 뽑은 이유는 '사람이 좋아서'라고. 원래 록 기타를 연주하지 않고 재즈기타를 연주했기 때문에 YB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로 YB의 8집에서 허준이 작곡한 무(無 )를 들어보면 블루스에 기반을 둔 그의 기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소화력이 뛰어난 팔색조 기타리스트이기도 한데, 자신의 장기인 블루지한 플레이부터 변박, 브레이크를 활용한 메탈 기타, 하드록적인 스트레이트한 기타 플레이까지 가능한 만능 기타리스트이다. 실제로 5~7집에서 YB의 음악적 변화의 키를 쥐고 있던 윤도현의 다양한 시도도 허준의 이러한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특히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YB의 8집에서 허준의 팔색조 기타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뛰어난 연주력에 비해 작곡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것. 정확히 말하면 단독으로 작곡하는 곡이 거의 없다.[6] 기타리스트들이 작곡을 담당하는 밴드들의 경우나 윤도현과 함께 이전의 YB를 이끌었던 유병열의 묵직하고도 흡입력 있는 기타 리프를 생각하면 허준의 무존재감은 좀 아쉬운 점이다.[7] 그렇다고 그가 음악적으로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라이트한 기타 플레이가 YB 변화의 축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8]
하지만 아쉬운 점은 뛰어난 연주력에 비해 작곡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것. 정확히 말하면 단독으로 작곡하는 곡이 거의 없다.[6] 기타리스트들이 작곡을 담당하는 밴드들의 경우나 윤도현과 함께 이전의 YB를 이끌었던 유병열의 묵직하고도 흡입력 있는 기타 리프를 생각하면 허준의 무존재감은 좀 아쉬운 점이다.[7] 그렇다고 그가 음악적으로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라이트한 기타 플레이가 YB 변화의 축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8]
- YB와 YB팬덤 사이에서의 별칭은 봉천동 망나니, 봉천동 기타, 쭈니 형, 홍대여신.
무대 위의 망나니, 내면은 홍대여신, 자태는 요조숙녀, 그 이름 허준
- 기혼, 밴드에서 뒤에서 두 번째로 제일 어리지만 제일 일찍 결혼한 탓에 벌써 대학생인 아들이 있다. 힐링캠프에서 밝히길 머리스타일 때문인지 학교로 아들 배웅하러 갈 때마다 학부형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 본 포지션은 기타리스트이지만 피아노 실력도 상당하다.실제로 YB 버스킹 리허설 도중 종종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한다.
- 남는 시간 (2020년)
[1] 일찍 결혼한 탓에 벌써 대학생인 아들이 있다.[2] 원래는 개신교 신자가 아니었으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박태희와 음악을 하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3] 사실 YB 전원이 개신교 신자가 된 건 박태희의 영향이 크다.[4] 4집 앨범 발매 이후 유병열을 대신하여 합류[5] 싱글 흰수염고래 이후[6] 처음 발매한 솔로 앨범인 남는 시간에서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을 보여줬다.[7]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소심한 성격도 한 몫하지 않나 싶다.[8] 윤도현-유병열-엄태환-강호정으로 대표되는 4집까지의 YB가 정통적인 하드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5집의 모던록과 6집의 하드코어를 거쳐 7집 이후로는 하드록에 기반을두되 모던록과 그런지한 성격이 강화된다. 대표적인 곡이 바로 'It burns'와 'Stay alive'.[9] 77년생인 스캇이 정식 멤버가 됐으니 이제 막내는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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