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판에 글은 처음 써보네요.
어디든 이런 얘기도 해본 적도 없는데..
빠져드는 필력은 없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치는 심정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글이 길어질 수도 있겠네요.
반말로 쓸게요.
나는 5살때까진 아빠가 좋았던거 같아. 그때까지는 그런 모습을들 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조금만 화가나도 ㅆ이 들어가는 쌍욕을 마구잡이로 하고 고함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거든 때리진 않았지만. 치우는건 항상 엄마 몫이었고, 물건들이 부서지거나 깨지는 일도 부지기수였어.
그래서 아빠의 화를 돋구거나 할까봐 항상 눈치를 봤고, 짜증스럽게 신경질을 낼 때면 생각이 멈추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괜한 화로 번지지않게 눈치를 봤어, 모든 가족들이 그랬을거야.
개인적인 안 좋은 일이든, 집에서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든, 한숨을 팍 쉬고 혀를 튕기며 '쯧' 소리를 내는데 우리는 이럴때마다 항상 심장을 졸였어. 언제 화낼지 몰라서 눈치만 보고 아무소리도 못내고 숨죽이고 살았어.
그래서 이게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누가 한숨쉬고 '쯧' 소리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면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아무말도 못하고 사과하며 항상 바보같이 살았던거같아.
그러면서 당시엔 성격이 많이 어긋난 것 같아. 더군다나 부모님과 같이 나가서 친구들을 만든적도 없었고,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한다는건지도 알려준 적이 없어서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어. 그리고 억눌려 살다보니 찐따같기도 했겠지. 나는 학창시절에 따돌림을 종종 당했어.
그때는 그냥 무조건 내가 다 미안하다고 했어..
그러면서 애들 환심사려고 이것 저것 사주기도 했는데 결국 그냥 찐따라 이용만 당한거더라고ㅎㅎ
초등학교땐 그냥 같이 놀면서 계급을 제일 밑으로 두고 거리두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중학교 올라오니까 애들이 다르더라 그래서 좀 크게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때 사춘기까지 같이 오면서 나도 짜증도 많이 부렸고 심리적으로 너무 많이 흔들렸었어.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을 붙이고 의지할 곳이 없었거든.
한 번은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 온갖짜증내고 울면서 따돌림당하는거 너무 힘들다고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린적이 있어.
그때 아빠가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말했어.
"너만 힘든줄 알아??!! 나도 힘들어!! 니가 뭘 알아?!"
난 그 말을 듣고 더 속상했지. 어차피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사실 그 날 14살이었던 내 마음은 더 크게 무너졌었어.
그 이후로 이런 일들을 당해도 집엔 입도 뻥끗 안하고 버텨내기만했어. 말해도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할게 뻔하니까. 그 이후론 어떤 일이, 무슨 일이, 고민거리가 있어도 집엔 아무말도 하지 않게 되었어.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는게 더 맞겠지.
그리고 아빠는 내가 어릴때부터 일이 별로 없고 안된다며 항상 짜증을 내며 눈치를 보게했어 의도한 일인진 모르겠으나 우린 항상 짜증을 내면 눈치를 봤어.
근데 그 말을 지금까지도 듣고있어, 그러면서도 한 번씩 터지면 본인은 항상 참고 인내하고 있는 사람인데 너희가 이런 힘듦을 알긴아느냐는 식으로 짜증을 내.
할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이 없으면 다른일을 하라고 했지만 절대 안들었어.
그게 몇 십년이야..ㅎㅎ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전에 할아버지는 손주를 앞에두고 말씀하셨어. "너희 아빠는 안된다.." 라고..
어째서 그런걸 손주앞에서 말씀하셨을까..
사실 아빠의 행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해.
할아버지도 화나면 물건을 던져서 부시기도 하고 소리도 고래고래 지르셨거든.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야하는걸까..
그리고 할아버지는 꼬장하신 분이시긴했지만 그래도 우리를 많이 생각해주셨어. 하지만 돈적인 부분은 어릴때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을 부양하고 가정을 세워야하는 성장배경으로 인해 짠돌이에 가까웠지만..
솔직히 할아버지는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아파..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도 공공근로 일을 하시면서 들어오는 돈조차 쓰지 못하고 고기 좀 사드시라는 말에도 "쓰려고 해봤는데 그게 잘 안돼." 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셨거든..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느껴졌어.
근데 나랑 동생은 아빠에겐 그런걸 느낀적이 없어..
아빠도 손주에겐 그런 사람이 되는걸까?
물론 아빠도 중학교도 못 가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공장에 취직하게 됐다곤 들었어
하지만 할머니가 항상 아빠 도시락에만 밥밑에 계란을 넣어주고 속옷도 항상 흰색으로 삶아 입히셨대..
그래서 계란 후라이 얘기는 동생들에게 좀 가슴에 남았나봐.
(고모 삼촌들..모르게 줬다고 하지만 다 알고 있었대
속에 남았다는건, 받기만하고 동생들 에게도 챙겨준 적 없다는 의미겠지)
(사실 나는 할머니에겐 대놓고 원망도 많이함.. 할머니가 그렇게 키워서 우리 가족이 힘들다고..미안 할머니..)
그래서 그런가 항상 가족들에게 뭔가를 해주는걸 아까워 하는것 같이 느껴졌어. 지금까지도 그렇게 느끼고있고.. 평생 뭘 받아본 기억이 없어..
생일선물, 입학선물, 어린이날 선물...
기억에 남는게 전혀 없어.
고등학교때 아빠 친구 가족들과 같이 바닷가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어. 난 그때도 쭈구리 찐따였고, 나서는것도 싫어했어. 초등학교땐 발표하는걸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어느순간 무대공포증이 생겼었거든. 자존감도 학창시절 내내 너무 바닥이었기도했고.
그때 하룻밤을 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나봐 어른들끼리 다른 분들 자식들도 있는데 굳이 아빠가 나를 불러서 찍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잘 찍을 자신도 없었고 못 찍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더 컸어. 비난 받기 싫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그래서 옆에 동생에게 "니가 가서 좀 찍어." 라고 했더니 거절하더라고 계속 찍으라고 투닥거리는 와중에 갑자기 아빠 표정이 누가봐도 화난 사람으로 돌변하더니 대충 찍고 온 몸에 화난 티를 내면서 차로 돌아갔어. 그때 맘씨 좋은 아주머니가 "아이구 아빠 화났나부다 어떻게 해" 라고 말할정도로 티를 냈어.
그리고 당연하게도 차가운 적막만 맴도는 차안에서 누구도 말소리를 내지않고 아빠는 난폭운전을 이어갔어. 물론 앞차가 마음에 안들면 쌍욕을 하면서.
나는 너무 힘들었어, 나서기 싫은게 이렇게나 잘 못한 일인가 차라리 '나 못 찍겠어요.' 라고 크게 말할껄 그랬나? 온갖 생각을 하며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차사고가 나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이 생각만 집에 오는동안 하면서 그 시간 내내 생지옥인 마음으로 집으로 도착했어.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문을 쾅쾅 열고 닫고 물건도 던지고 나는 늘 그렇듯 무서웠어. 좀 잦아들었을때 나는 무작정 나가서 걷기시작했어.
한 참 걷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너 아빠 화났으니까 얼른 와서 무릎꿇고 빌어."
어렸던 나는 두렵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전후 사정은 알려고하지 않는 아빠에게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무릎꿇고 빌었어. 우리가족은 그렇게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어.
언젠가는 한 번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족회의 비슷한 것을 했는데 얘기하다보니 다들 눈치보며 아빠에 대한 힘든점을 토로하게 되었어.
그때 아빠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선 가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고 하더라고?
난 사실 이해가 잘 안됐어. 가족 모두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우리가 아빠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며 충격받은 얼굴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
그리고 티비를 볼때 욕나오는 사건사고들 있잖아.
다들 보면서 욕하긴 하잖아? 근데 우리 아빠는 진짜 심해. 주변인을 불쾌하게 하면서 쌍욕을 해..
난 우리 아빠 말곤 티비보면서 그렇게 욕하는 사람 못보긴했어..그것도 너무 싫은 것 중 하나였는데 명절날 티비를 보다가 어떤 사건이 보도되자 아빠가 우리랑 있는것 처럼 했더니 삼촌이 황당해 하면서 "형 왜그러는데?;" 라고 했더니 그들앞에선 바로 안하더라 ㅎㅎ우리앞에선 엄마가 듣기싫다고 하지말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해..계속 하지말라고 했더니 이제는 뭘 하지마 이러면서 쟤네들은 욕 좀 들어야 한대..ㅎㅎ듣는건 우린데
그냥 짜증내거나 신경질낼때도 인상부터 팍 쓰면서 말투까지..주변사람들까지 그 기분이 영향이 가게 한달까...그냥 너무 힘들었어 내가 어릴때부터..
그리고 조금만 아파도 그 티를 엄청나게 내는데 이것도 주변 사람이 피곤하고 괴로울 정도야...최근들어서 그런거면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보다 할텐데, 그냥 평생 그러셨어.
한 번은 나랑 같은 날 밤에 독감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 나 독감 처음 걸려봤었거든? 근육통이 너무 심하길래 자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억지로 잠들었는데 이게 너무 아파서 다시 깨더라..진짜 처음으로 겪는 등 근육통이었는데 누가 몽둥이로 막 후드려패면 그런 통증일까 싶더라..
너무 아파서..그렇게 잠 못들고 아침까지 버티다 병원 가야지 싶어서 버티고 있는데, 아빠가 아파하면서 온갖 짜증을 내더라..? 나도 같이 아픈 몇 시간 동안..
그 날 엄마도 아침부터 출근을 해야 했어서 자야했었는데 아랑곳않고 아프다고 끙끙거리면서 신경질을 몇 시간동안 내는데, 새벽에 참다못한 엄마가 옆자리에 있는 죄로 아빠한테 짜증스럽게 응급실로 가자고 했어. 그러고 다녀와서 독감이라길래 나도 독감이겠구나 했지..
그리고 또 진짜 어이없는 일화로는 아빠가 거실 중간에서 자다가 엄마가 어두워서 지나가면서 발쪽을 밟았어..그래서 아빠가 짜증스럽게 "아!!!" 하면서 인상을 다 찌푸리고 한동안 가만히 있어서 엄마가 무슨 문제 있나 싶어서 응급실 데려갔어. 응급실 가자고 하니까 옷 잘입고 나가더라고..
다녀오더니 의사가 뭘 그런걸로 오냐는 식으로 말했대ㅎ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거든..뭘 저런걸로 가냐고.
전에 허리 수술했을때도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으니까 엄마가 간병하느라 엄마 몸이 다 망가졌거든, 근데 집와서 몇 시간만 쉬다가도 성질냈대. 왜이렇게 늦게오냐고. 근데 엄마아플때 간병? 죽끓여다 주는것도 난 한 번도 못 봤어.
엄마도 아빠가 본인한테 그렇게 못해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 엄마가 해줄 거냐고 직접적으로 물었는데도 아빠도 대답안했고..
심지어는 엄마가 손가락 몇 개를 크게 다친적이 있는데(으스러짐) 그때도 사실 딱히 간병이라던가 집안일을 하지도 않았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우리는 아빠는 아빠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빠 아픈것만 생각하지 우리 아픈건 그냥 그런가보다 하거든.
그리고 이게 오늘 글을 쓰게 만든 일인데
나도 어느정도 나이먹고나니 성격도 많이 바뀌기도 했고 이만하게 참았으면 된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 어릴때부터 하고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꼭 필요한 말도 못하는 상황으로 만든 아빠한테 그만참아도 되지 않나 그런거..
그래서 그 날 같이 어딜 다녀오면서 나랑 엄마는 양 손에 짐과 가방을 들고 있었고 아빠가 주택이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이것도 우리가 다 들고 있는 상황에 조금 빠르게 움직여서 문을 먼저 열어주는게 힘든가 싶던찰나, 현관으로 가는길에 엄마 택배가 있었어.
그래서 엄마가 택배좀 주워달라고 했는데
찌푸린 표정으로 택배를 내려다보다가 그냥 가더라고?
그걸 보면서 내가 화가 좀 났어..
그래서 자기 몸밖에 모른다고 그 말을 하게됐어.
그랬더니 그 때부터 성질을 막 내면서 집에 들어가서는 60세가 넘어서도 문을 쾅쾅 열고 닫고 물건을 던지고 식탁에 있던 간장종지를 집어 던져서 유리도 깨지고 간장도 튀고 난리났어. 물론 쌍욕도 했지. 얼마전에 본 한인 버블티 사건이 생각나더라.. 또 내가 얼마전에 알게된건데 평생 당한 이것들도 일련의 정서적 학대. 가정폭력이라고 하더라고..
이게 어릴땐 그냥 무서웠는데 지금은 어이가 없더라.
던지고 부수고 깨고 쌍욕하고 소리지르면 어렸을때처럼 통할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어느 사회를 나가도 그렇게 행동해서는 해결되는게 없을텐데.
그러면서 여전히 감정컨트롤 못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소리지르고 쌍욕하고 그러길래 그렇게 소리지르면 해결되는거냐고 했더니 더 소리지르더라.
그러면서 니는 니는 이러면서 ㅎㅎ
내가 얼마전에 잠도 못 들고 움직이기도 힘들정도로 눈알도 머리도 아픈적이 있었는데, 뇌졸중 가족력이 있어서 혹시나 그런건가 싶어서,
가족톡방에 아프다고 티내는게 아니라 혹시나 내가 연락이 계속 없으면 119라도 불러주겠지 싶어서..
카톡으로 두통 너무 심각하다고 남겨놨었거든..
그러고 아파서 한 참 잠도 못자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전화가 왔어.
처음엔 엄마였는데 카톡보고 전화했었나봐
엄마가 가서 약주고 챙겨줄게 이런 전화였고,
그 다음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
아빠가 물을 사왔는데 같이 좀 옮겨달라고.
내가 말했어 너무 아파서 할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잠시 정적과 함께 괜찮냔 말도 없이 뚝 끊더라고?
좀 당황스러웠지만 난 아팠으니까 더 누워있었거든.
그걸 얘기하면서 니가 안도와줘서 물 혼자 옮겼다고 더 화를 내는거야..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면서..
그래서 그건 내가 아파서 못한게 아니냐 했더니
말이 안통하더라..그냥 내가 말을 말았어..
그래서 아파서 못하겠다니까 기분나쁘다는듯 전화를 뚝 끊었구나 싶더라..ㅎ
괜찮은건 궁금하지도 않았을테고..
그러면서 최근에 알게 된 아는 언니도 해주는걸 자식이라고 신경써줬더니라고 얘기하더라...
받는건 생각 하나도 안하고 해준것만 생각하나봐..ㅎ
전에 엄마랑 결혼얘기로 크게 싸운적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엄마를 지켜보다보니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어.. 좋은 사람 만나면 하는건데 그냥 남들 다 하는데 뒤쳐지니까 서둘러하는 결혼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첫째로 난 엄마처럼 살기 싫거든.. 누구를 받들고 키우면서 살고싶지 않아..
난 아직도 답답해..
진짜 평범하게 살아가는건 방법이 없는걸까..
사실 엄마가 없었다면 동생이나 나나 어떻게 버텼을까 싶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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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아빠 가장 큰 유일한 장점이
본인이랑 꼭 닮은 내가 항상 나를 돌아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할 수 있게 일깨워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줌
개똥도 약에쓸라면 없다는데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그래도 얼굴 보기 싫어서 결혼식 초대안한다하고 손절침!
혼자지내며 자유로운것도 좋고 결혼도 좋고
나도 아빠때문에 결혼로망 없었지만(엄마아빠 세기의 사랑 하면서 가출결혼함)
좋은 사람 나랑 맞는 사람이 있긴 하고 아빠로 인해 허전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적당히 편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