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실증주의
논리실증주의(
역사[편집]
1922년 모리츠 슐리크의 빈 대학 교수[1] 취임과 함께 그의 세미나를 중심으로 여러 전공 분야의 학자가 모여 마흐의 실증정신(
1926년에 카르나프가 빈 대학에 초빙된 후 급속히 발전하여 이 그룹은 에른스트 마흐의 이름을 따 '마흐 협회'를 창설하고, 이윽고 그들 자신의 입장을 '논리실증주의', 그리고 협회를 '빈 학파'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동일한 운동을 지도하고 있던 한스 라이헨바흐가 가담하고 1930년부터는 기관지 《인식》을 발행하였다. 또 《통일 과학 백과전서》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연구 논문을 노이라트의 지도를 받아 시카고에서 발간, 통일 과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각지에서 대회를 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은 물론이고 신학, 나치즘, 신비주의, 관념론, 민족주의 등을 비판하였는데,[4] 이로 인해 파시즘과 대립하던 멤버의 대부분이 영국, 미국 등으로 옮겨갔고 결정적으로 1936년 모리츠 슐리크가 사망하며 사실상 해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논리실증주의는 나치즘의 발흥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칼 헴펠에 의해 논리 경험주의로 전환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운동의 중심 전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특히 윌러드 밴 오먼 콰인와 칼 포퍼에 의해, 그리고 심지어 운동 자체 내에서, 헴펠에 의해 심하게 비판받았다. 1962년 토머스 쿤의 획기적인 책 《과학혁명의 구조》가 출판되면서 과학철학의 초점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1967년 철학자 존 패스모어는 논리 실증주의를 "죽었다, 혹은 철학적 운동이 죽은 것처럼 죽었다"고 선언했다.
명제에 대하여[편집]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명제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단어의 뜻과 단어들 간의 논리적 관계만 알면 경험적 지식이 없이도 진위 판단이 가능한 명제를 분석 명제(
검증 가능성의 원리[편집]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의 원리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명제에 대해 안다는 것은, 명제를 검증할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이것은 검증 불가능한 명제는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이 원리에 따른다면 순수히 논리적인 분석 명제가 아닌 경우 오직 경험을 통해 타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5] 논리 실증주의는 이에 따라 논리 경험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검증 가능성의 원리때문에 논리 실증주의는 형이상학, 신학을 비판하고 자연 과학을 옹호하는 사고방식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형이상학과 신학에 대해 비판하는 말이다.[6]
영향[편집]
논리 실증주의는 후에 가설 연역주의와 귀납주의를 낳게 된다.[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 장대익 (2008).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영사. ISBN 97889349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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