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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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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전씨
潭陽 でん
나라대한민국
관향전라남도 담양군
시조전득시(どく)
집성촌전라남도 고흥군, 장성군, 무안군
전라북도 부안군, 군산시, 정읍시
충청남도 홍성군, 논산시, 보령시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울진군
평안북도 강계군
주요 인물전균, 전록생, 전조생, 전운상, 전우, 전명운, 전영택, 전숙희, 전락원, 전상범, 전윤철, 전용원, 전용학, 전수안, 전병헌, 숙용 전씨
인구(2015년)155,018명
비고담양 전씨 대종회

담양 전씨(潭陽 でん)는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담양군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관향이다.

이 성씨의 시조는 고려 의종 때 좌복야(ひだりぼくしゃ)를 거쳐, 참지정사(まいり政事せいじ)를 지낸 전득시(どく)라는 인물이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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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전씨(潭陽田ようだ)의 시조 전득시(どく)는 고려전라도 담양(潭陽)에서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온 향리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 중엽 때 전라도 담양에서 출생하고, 학행(がくゆき)으로 천거된 이후 수년이 지나 명경과(あきらけい)에도 급제하면서 고려 의종 때 좌복야(ひだりぼくしゃ), 참지정사(まいり政事せいじ)등을 역임하고 담양군(潭陽くん)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담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담양 전씨의 후손인 전구주(きゅう疇)도 1516년(중종 11)에 식년문과를 병과(へい)로 급제하여, 1518년(중종 13)에 조광조(ちょうひかり)의 건의로 세워진 현량과(賢良けんりょう)에서도 합격자를 심사하는 과정의 시관으로도 참가했다.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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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시의 6세손 전희경(まれけい)의 아들 전록생(祿ろくせい, 전녹생)은 야은공파(かくれおおやけ), 전귀생(貴生たかお)은 뇌은공파(ろうかくれおおやけ), 전조생(祖生そう)은 경은공파(こうかくれおおやけ)로 계파가 나뉘게 되었다.

전득시의 8세손인 전가식(うえ)을 시조로 하는 연안 전씨, 전조생의 7세손인 전균(畇)을 시조로 하는 하음 전씨, 고양 전씨[1], 전실()을 시조로 하는 예산 전씨,남원, 우봉, 개성 등은 담양 전씨에서 분파되었다. 담양 전씨 대동보에는 함께 등재하고 있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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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현재 담양은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みやこまもる)와 창평현(昌平しょうへいけん)을 1914년에 병합한 지역이다. 봉산면 · 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 · 고서면 · 대덕면 · 남면 · 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의 추자혜군(秋子あきこ兮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成あきなりぐん)으로 고쳤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しゅうとだんねり使)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 도단련사를 폐지하였고, 담양군으로 개편하여 나주(しゅう)에 편입시켰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かんつとむ)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はらくりけん :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일대)을 병합하였다. 1395년(태조 4) 군으로 승격하였고, 1399년(정종 1)에 부()로 다시 승격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みやこまもる)가 되었으나, 1728년(영조 4)에 현(けん)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역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南原なんばら)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쳤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항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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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은파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일(鎰) くち기(淇) 계(かつら) くち희(熙) 준(埈) くち수(銖) 호(ひろし) くち식(うえ) 병(炳) くち곤(ひつじさる) 호(鎬) くち구(もとむ) 상(そう) くち열(れつ) 기(もと) くち종(鍾) 근() くち형(炯)
  • 뇌은파, 정선파, 선산파
  • 경은파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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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산군후궁 숙용 전씨
  • 연안부부인 전씨(のべやす夫人ふじんでん) - 성암 전좌명(いのち)의 딸이며 영원부원군(鈴原すずはらいんくん) 윤호(いんごう)의 아내로서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さだあきらおうきさき)의 어머니이고 중종의 외할머니이다. 딸인 정현왕후는 숙의 윤씨로 있다가 성종의 비가 되었고 뒤에 중종으로 즉위한 진성대군(すすむなり大君おおきみ)을 낳았다. 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전씨()는 외명부 정1품의 위계인 부부인의 작위를 받았다.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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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였다.[2] 최근 담양 전씨 대동보에 합본된 남원, 고양, 우봉, 개성, 의령, 연안, 행주, 임천, 수안, 과천 등의 본관까지 합하면 23명의 문과 급제자가 있다.

고려 문과

전록생(祿ろくせい) 전자수(田子たつこひさし)

문과

전가식(うえ) 전구주(きゅう疇) 전규풍(けいゆたか) 전벽(闢) 전빈(馪) 전석원(すずもと) 전속( +たば) 전시우(時雨しぐれ) 전예(げい) 전위(煒) 전재오(栽五) 전흡(闟) 전여림(なんじ霖) 전건하(けんなつ) 전광옥(田光たこうだま) 전대년(大年おおとし) 전대방(大方おおかた) 전응룡(おうりゅう) 전제광(霽光) 전제현(ひとしけん) 전처경(田處たどころ坰) 전현룡(りゅう) 전호민(皞民)

무과

전광술(田光たこうじゅつ) 전광회(田光たこうみそ) 전광훈(田光たこうくん) 전귀현(げん) 전녹부(祿ろくとみ) 전대수(大穗おおぶ) 전덕현(とくあらわ) 전뒤씨(田後たじりしゅ) 전만창(まんあきら) 전문현(ぶんあらわ) 전보천(輔天) 전색(穡) 전시박(はじめ愽) 전시성(はじめもり) 전시우(時雨しぐれ) 전시원(はじめもと) 전신득(しんじ) 전양추(みのるあき) 전우룡(ぐうりゅう) 전우성(ぐうきよし) 전유양(ゆうみのる) 전융석(りゅうせき) 전은상(いんさち) 전의남(義男よしお) 전인휴(じんあぜ) 전창제(あきらひとし) 전천상(てんさち) 전태경(たいけい) 전협(浹) 전확()


생원시

전광훈(田光たこうくん) 전구주(きゅう疇) 전기문(おこりもん) 전기연(耆然) 전담(𩡝) 전동락(ひがしらく) 전만성(晩成ばんせい) 전빈(馪) 전빈(霦) 전상원(しょうもと)전선명(田善でんぜん) 전속( +たば) 전여림(なんじ霖) 전용관(よう灌) 전유룡(ゆうりゅう) 전유직(ゆうきび) 전응열(おうせつ)전응정(おう) 전응주(おうしゅう)전이로(以魯) 전재풍(ゆたか) 전정추(正秋まさあき) 전제광(霽光) 전처경(田處たどころ坰) 전집() 전필(馝) 전현룡(りゅう) 전흡(ひろし) 전흡(闟)

진사시

전계대(けいだい) 전구원(きゅう畹) 전규추(けいあき) 전대년(大年おおとし)[3] 전대년(大年おおとし)[4] 전대방(大方おおかた) 전문우(ぶん禹) 전승개(うけたまわ漑) 전승우(うけたまわあめ) 전여림(なんじ霖)전용하(りゅうなつ) 전익규(田益たます奎) 전위(煒) 전의현(あらわ) 전일량(一良かずよし) 전현룡(りゅう) 전호우(こうあめ)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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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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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조생의 장손 전자수의 후손으로 경남 의령지역의 대과 소과 합격자들이 본을 고양이라 씀
  2. 담양 전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3. 선조(せん) 38년(1605)
  4. 정조(せい) 1년(1777)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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