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ed by https://www.hiragana.jp/)
북양통상대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본문으로 이동

북양통상대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북양통상대신(北洋ほくよう通商つうしょう大臣だいじん)은 1860년 함풍 10년, 청나라 정부가 총리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 변리삼구통상대신과 변리오구통상대신을 두었다. 부채 신설과 통상, 방어와 수입을 담당하고, 더불어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 외교를 포함한 대외통상 등의 업무를 처리하였다. 약칭하여 ‘북양대신’으로 불렀다.

개요

[편집]

제2차 아편 전쟁 이후 1861년에 청나라총리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삼구통상대신(さんくち通商つうしょう大臣だいじん)과 오구통상대신(くち通商つうしょう大臣だいじん)을 두고, 대외 통상과 외교 사무를 담당시켰다. 이중 삼구통상대신은 천진(天津てんしん)에 주재하며, 천진조약북경조약으로 개항된 우장(현재의 잉커우시, 천진(天津てんしん), 등주(のぼりしゅう, 현재의 웨이하이시옌타이시 북부)의 통상 사무를 담당했다. 초대 삼구통상대신은 숭후였다.

1870년, 삼구통상대신이 북양통상대신(北洋ほくよう通商つうしょう大臣だいじん)이라고 개칭되었고, 직례총독이 겸임하며 직례성(ちょく隷省, 현재의 허베이성), 산동성(山東さんとうしょう), 봉천성(奉天ほうてんしょう, 현재의 랴오닝성) 삼성(三省みつよし)의 통상, 양무, 외교, 해방 등을 담당했다. 역대 북양대신으로는 이홍장(鴻章こうしう), 왕문소(おうぶん韶), 영록(さかえ祿ろく), 원세개(袁世凱) 등이 있다.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