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보로 종사랑 시종원시종관에 이르렀으나 일찍 죽었다. 사후 가선대부 시종원부경으로 추증(追贈)되었다. 형 이준용은 한때 고종의 대안자로 지목, 이후 고종의 정치적 라이벌로 갈등하였으나 그는 별다른 화를 입지는 않았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경로(景魯), 호는 석문(石門).
이문용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문용(們鎔)이다. 장조의 서2남 은신군(恩信君)의 현손이며, 남연군의 증손이고, 흥선대원왕의 손자이자 고종황제의 조카이다. 아버지는 흥친왕(興親王)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郞) 풍산인(豊山人) 홍병주(洪秉周)의 딸로 풍산 홍씨(豊山洪氏)이다.
부인은 교관(敎官) 김병일(金炳日)의 딸로 정부인 김씨(貞夫人金氏)이다. 슬하에 일남 이녀를 두었다.
흥친왕과 정부인 풍산홍씨의 2남으로 1882년(고종 19) 한성 안국방 운현궁(雲峴宮)에서 탄생하였다. 위로는 형 영선군이준용과 서녀인 이복 여동생이 1명 있었다. 완은군은 그의 서숙부였다. 그의 부친 흥친왕 재면은 고종의 친형이었으나 아버지 흥친왕과 형 이준용은 한때 고종의 대안자로 지목되었으므로 고종은 그들을 경계하였으며, 왕족임에도 왕족에게 부여되는 작위를 받지는 못하였다.
1874년11월 섭정직에서 축출당한 할아버지 흥선대원군은 흥친왕이나 완은군보다 자신과 성격, 기질이 통하는 호탕한 이준용을 더욱 총애했는데, 이준용은 그의 친형이었다. 한편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행적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 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수립 후 8월 21일 왕후의 빈전에 향관(享官)의 한사람으로 참여한 공로로 아마(兒馬) 1필을 상으로 사급받고, 이해 9월 19일 빈전(殯殿)의 별전(別奠) 친행할 때 참여로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다. 이해 11월 6일 인산 때의 종척 집사(宗戚執事)로 봉무하여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고, 이해 11월 17일 부알례 때 참여로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고, 이해 12월 12일 경효전 연제 때 참여로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다.
종사랑으로 승진, 시강원시종관(侍講院侍從官)이 되었다. 그러나 1898년(광무 2) 1월 18일 시강원 시종관에서 의원면직하였다. 이해 1월 21일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고, 이해 3월 22일 전작례 때 참여로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고, 이해 8월 20일 아마(兒馬) 1필을 사급받았다. 흥선대원군의 내외가 연이어 사망하자 형 이준용을 대신하여 빈전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