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ed by https://www.hiragana.jp/)
후진 (오호 십육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본문으로 이동

후진 (오호 십육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진 남북조(220~589) 왕조들의 계통도

후진(はた, 384년 ~ 417년)은 오호 십육국 시대 강족 요장(姚萇)이 건국한 나라이다. 국호는 (はた)이지만 같은 이름의 나라(315년~394년)와 구별하여 이 나라는 후진(しん)이라 부른다. 건국자의 성을 따서 요진(姚秦)이라는 명칭도 있다.

역사

[편집]

강족(羌族)은 중국의 서북방에 살던 이민족으로 후한 시대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산시성(陝西せんせいしょう) 일대에 거주하였다. 오호 십육국 시대에 들어와 요익중(姚弋なか), 요양(姚襄), 요장 등이 족장이 되어 전조(ぜんちょう), 후조(ちょう), 동진(あずますすむ), 전진(ぜんしん) 등의 용병으로 중국 각지를 전전하였다. 383년에 전진의 부견(けん)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화북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하였던 요장은 반란군에 패배하였는데, 부견의 처벌을 두려워하여 위수 북방의 말목장으로 도주하여 384년에 대장군·대선우·만년진왕(大將軍だいしょうぐんだいたんうしまんねんはたおう)을 자칭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후진이 건국된 것으로 본다.

요장은 관중(せきあたる)의 북부 일대를 장악하고 전진의 부견과 전쟁을 벌였다. 385년서연(西燕にしつばめ)에 의해 장안(長安ながやす)이 함락되자 요장은 장안을 탈출한 부견을 체포하여 살해하였다. 386년에 서연이 장안을 버리고 이동하자 요장은 장안을 점령하였으며 이를 근거지로 하여 황제에 즉위하였다. 이때 진주(しんしゅう : 간쑤성 동부)에서 부등(とう)이 전진의 잔존 세력들을 통합하였으며 이후 부등과 요장은 관중의 패권을 놓고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393년 말, 요장이 병사하자 태자였던 요흥(姚興)이 뒤를 이었다. 요흥은 요장의 죽음을 틈타 쳐들어온 부등을 격파하여 살해하여 오랜 전쟁을 종식시켰다. 이후 숙부인 요서(姚緒)와 요석덕(姚碩德せきとく)의 보좌를 받아 관중을 평정하고 세력을 확대하였다. 399년에는 동진을 공격하여 낙양을 점령하고 한수(かんすい)와 회수(淮水) 이북의 지역들을 장악하였으며 400년에는 서진(西にししん)을 멸망시켰다. 401년에는 후량(こうりょう)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남량, 북량, 서량을 속국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직후 북위(きたたかし)와 분쟁이 일어나 402년에는 시벽(しばかべ ; 산시성 양분현)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양주(りょうしゅう : 간쑤성 중서부)의 패권을 잃었다. 하지만 이후 동진을 쳐서 유유의 부모를 사로잡았고 한족 수만명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후 북위와 중립적인 관계를 회복한 후진은 403년에 다시 양주를 공격하여 후량을 멸망시키고 남량, 북량, 서량을 다시 속국으로 삼았다. 405년에는 후구지를 복속시켰으며 407년에는 남연(みなみつばめ)을 속국으로 삼았다.

그러나 405년 말 동진의 실권을 장악한 유유(りゅうひろし)가 한수 유역의 12개 군을 반환하도록 요청하자 요흥은 유유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승낙하였다. 이듬해에는 양주를 상실하였으며 407년에는 혁련발발(赫連勃勃ぼつぼつ)의 (なつ)가 자립하여 후진은 오랜 전쟁에 돌입하였다. 후진은 하와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였으며 이로 인해 409년에는 서진이 독립하였으며 동진과도 지속적으로 대립하여 많은 국력을 소모하였다.

414년 이후에는 후계자 분쟁으로 혼란에 빠져 후진의 국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마침내 416년에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요흥은 이 반란을 진압한 직후 사망하였다. 요홍(姚弘)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국내의 혼란은 계속되었으며, 417년 반란으로 멸망하였다.

후진의 문물

[편집]

현존하는 후진의 문물은 초당사(草堂そうどうてら), 기공사장별(こうたまものはた莂;386년)、여헌묘표(りょけん墓表ぼひょう;402년)、여지묘표(りょ墓表ぼひょう;402년)、부씨여정정조상(苻氏おんなせい貞造ていぞうぞう;407년)등이 있고, 이 시기 기년문서(紀年きねん文書ぶんしょ)로 투르판 문서 1점이 존재한다. 천수의 맥적산 석굴에는 후진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불이 남아있다. 또한 현존하지 않는 문물로써 건초자웅도(たてはつ雌雄しゆうがたな;386년)가 알려져 있다.

역대 군주

[편집]

같이 보기

[편집]
후진 황제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진 시조
(はた始祖しそ)
경원황제
(景元かげもと皇帝こうてい)
(무소제 추증)
요익중(姚弋なか) - - 고릉(高陵こうりょう)
- - 위무왕
(たけおう)
(무소제 추증)
요양(姚襄) - - -
제1대 진 태조
(はたふとし)
무소황제
(武昭たけあき皇帝こうてい)
요장(姚萇) 백작(しろすずめ) 384년 ~ 386년
건초(けんはつ) 386년 ~ 394년
384년 ~ 393년 원릉(はらりょう)
제2대 진 고조
(はた高祖こうそ)
문환황제
(ぶん皇帝こうてい)
(간문황제(簡文皇帝こうてい))
요흥(姚興) 황초(すめらぎはつ) 394년 ~ 399년
홍시(ひろしはじめ) 399년 ~ 416년
394년 ~ 416년 우릉(偶陵)
제3대 - 말황제
(まつ皇帝こうてい)
요홍(姚泓) 영화(永和えいわ) 416년 ~ 417년 416년 ~ 41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