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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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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논사(じゅうだいろん) 또는 유식 10대 논사(唯識ゆいしきじゅうだいろん)는 세친의 《유식삼십송》의 주석서를 저술한 인도 불교유식학의 아래 목록에 나열된 10명의 논사들을 말한다.[1][2][3] 현대 학자들은 인도 불교의 유식학을 총 3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미륵무착유식학이고 제2기는 세친의 유식학이며 제3기는 유식 10대 논사의 유식학이다.[4]

10대 논사들의 주석서들 중 현존하는 것은 안혜의 《삼십송석론(さんじゅう頌釋ろん)》 뿐이며,[3] 법상종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은 호법의 주석을 주로 하고 거기에다 다른 유식 10대 논사의 학설을 취사선택하여 659년에 현장(げんすすむ)이 번역 · 편집한 것이다.[5]

  1. 호법(護法ごほう) 산스크리트어: Dharmapāla
  2. 덕혜(とくとし) 산스크리트어: Gunamati
  3. 안혜(あんとし) 산스크리트어: Sthiramati
  4. 친승(おやかち) 산스크리트어: Bandhuśri
  5. 난타(なん陀) 산스크리트어: Nanda
  6. 정월(きよしがつ) 산스크리트어: Śuddhacandra
  7. 화변(べん) 산스크리트어: Citrabhāna
  8. 승우(かつとも) 산스크리트어: Visesamitra
  9. 최승자(さい勝子かつこ) 또는 승자(勝子かつこ) 산스크리트어: Jinaputra
  10. 지월(智月ちげつ) 산스크리트어: Jñānacandra

참고 문헌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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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운허, "じゅうだいろん(십대론사)". 2013년 2월 12일에 확인
    "じゅうだいろん(십대론사): 『유식삼십송(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頌)』을 해석한 인도의 열 논사. (1) 호법(護法ごほう). (2) 덕혜(とくとし). (3) 안혜(あんとし). (4) 친승(おやかち). (5) 난타(なん陀). (6) 정월(きよしがつ). (7) 화변(べん). (8) 승우(かつとも). (9) 승자(勝子かつこ). 지월(智月ちげつ)."
  2. 곽철환 2003, "십대논사(じゅうだいろん)". 2013년 2월 12일에 확인
    "십대논사(じゅうだいろん): 세친(おや)의 유식삼십론송(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ろん頌)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한 인도의 열 명의 논사.
    (1) 호법(護法ごほう). 산스크리트어 dharmapāla 530-561. 남인도 달라비도국(いたる毘荼こく) 출신의 승려. 마갈타국(竭陀こく)의 나란타사(ただれ陀寺)에서 경론(經論きょうろん)을 강설하고, 29세에 대보리사(だい菩提寺ぼだいじ)에 은둔하여 수행하면서 유식삼십송(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頌)의 주석서를 지음. 32세에 입적함. 현장(げん奘)이 번역한 성유식론(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은 그의 주석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9명의 논사의 견해를 취사선택하여 하나의 논서로 편집한 것임. 저서 : 대승광백론석론(大乘だいじょうこうひゃくろんしゃくろん)·성유식보생론(なり唯識ゆいしき寶生ほうしょうろん)·관소연론석(かん所緣しょえんろんしゃく).
    (2) 덕혜(とくとし). 산스크리트어 guṇamati 5세기 말-6세기 초. 남인도 출신의 승려. 나란타사(ただれ陀寺)에 머물고, 서인도 벌랍비국(臘毘こく)의 아절라가람(おもねおり伽藍がらん)에서 여러 논서를 지음. 저서 : 수상론(ずいしょうろん).
    (3) 안혜(あんとし). 산스크리트어 sthiramati 510년경-570년경. 남인도 나라국(こく) 출신의 승려로, 유식학(唯識ゆいしきがく)과 인명(因明いんみょう)에 정통함. 덕혜(とくとし)의 제자. 저서 :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だいじょうおもね達磨だるまざつしゅうろん)·대승광오온론(大乘だいじょうこう五蘊ごうんろん)·대승중관석론(大乘だいじょうちゅうかんしゃくろん)·구사실의소(俱舍じつ疏)·유식삼십송석(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頌釋, triṃśikāvijñaptibhāṣya).
    (4) 친승(おやかち). 산스크리트어 bandhuśrī 4-5세기. 행적은 전하지 않음.
    (5) 난타(なん陀). 산스크리트어 nanda 6세기경. 행적은 전하지 않음.
    (6) 정월(きよしがつ). 산스크리트어 śuddhacandra 6세기경. 행적은 전하지 않음.
    (7) 화변(べん). 산스크리트어 citradhāna 5세기경. 행적은 전하지 않음.
    (8) 승우(かつとも). 산스크리트어 viśeṣamitra 생몰년 미상. 나란타사(ただれ陀寺)의 승려로, 호법(護法ごほう)의 제자.
    (9) 최승자(さい勝子かつこ). 산스크리트어 jinaputra 생몰년 미상. 호법(護法ごほう)의 제자. 저서 : 유가사지론석(瑜伽ゆがろんしゃく).
    (10) 지월(智月ちげつ). 산스크리트어 jñānacandra 생몰년 미상. 나란타사(ただれ陀寺)의 승려로, 호법(護法ごほう)의 제자."
  3. 星雲せいうん, "じゅうだいろん". 2013년 2월 12일에 확인
    "じゅうだいろん: 註釋ちゅうしゃくおや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頌」じゅうろんぜんしょう唯識ゆいしきじゅうだいろんまたさくじゅうろんたくみそく:(いち)護法ごほう,梵名 Dharmapāla(音譯おんやく達磨だるま)。()とくとし,梵名 Gunamati(音譯おんやくやつれ拏末そこ)。(さん)あんとし,梵名 Sthiramati(音譯おんやく悉恥まつそこ)。(よん)おやしょう,梵名 Bandhuśri(音譯おんやくほとりしつ)。()歡喜かんき,梵名 Nanda(音譯おんやくなん陀)。(ろく)きよしがつ,梵名 Śuddhacandra(音譯おんやく戍陀せんたち)。(なな)べん,梵名 Citrabhāna(音譯おんやくしつ呾羅ばば拏)。(はち)かつとも,梵名 Visesamitra(音譯おんやく毘世すなみつ)。(きゅう)勝子かつこ,梵名 Jinaputra(音譯おんやくたつどる)。(じゅう)智月ちげつ,梵名 Jñānacandra(音譯おんやくわかせんたち)。
     以上いじょうしょろんたて互有不同ふどう,於種子しゅしろんなん陀等ぬししん熏說,まもるがつじゅうだいろんひとしおもほん熏說,護法ごほうそくしゅ本有ほんゆうしん熏合せいせつまたよんふんせつべんあずかひねじゅうだいろん共立きょうりつさんふんせつおやしょうとくとしとうふんせつあんとしいちふんせつなん陀、きよしがつとうぬしふんせつ以上いじょうしゅ論點ろんてん,以護ほうあんとし二師之說最有力,後來こうらいまた分別ふんべつよしげん奘、真諦しんたいでんいたり我國わがくによりどころでん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がかりごうかて十大論師釋論之作,主要しゅよう依據いきょ護法ごほうせつそくあかりあらわぞく護法ごほうけい著作ちょさく
     しかしょしゃくろんちゅうげんつてしゃただそんやすとしさんじゅう頌釋ろん(梵 Trijśikā-bhāsya,梵本、ぞう譯本やくほんみなそん)。〔なり唯識ゆいしき論述ろんじゅつまきいちほん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掌中しょうちゅう樞要すうようまき上本うえほん〕"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星雲せいうん"[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823DTITLEA4QA4jBDD7AEv じゅうだいろん]". 2013년 2월 12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4. 황욱 1999, 16–17쪽
    "유식학에서는 그 학설의 내용에 따라 인도의 유식학을 3기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제1기는 미륵과 무착의 유식학을 말하고, 제2기는 세친의 유식학을 말하며, 제3기는 護法ごほう[Dharmapāla]과 あんとし[Sthitamati] 등 じゅうだいろん들의 유식학을 의미한다. 한편 제1기와 제2기를 합쳐서 初期しょき唯識ゆいしきがく이라고도 부른다.45)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음으로 유식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운 무착이 유식학에 끼친 공헌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미륵이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무착 자신인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가 유식학의 주창자로 자리매김 되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사상은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 미륵이 始祖しそ이지만,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착이 시조라 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45) とおる, 「初期しょき唯識ゆいしきこころ意識いしき思想しそうはち思想しそう 硏究けんきゅう」, 《唯識ゆいしきこころ思想しそう 硏究けんきゅう》(서울: 佛敎ぶっきょう思想しそうしゃ, 1989), pp.14~15 참조. 이에 의하면 “제1기의 유식학은 초창기의 유식학으로서 후세의 발달된 유식학에 비하여 원시적인 학설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유식학을 原始げんし唯識ゆいしき라고도 하며 이때의 주요 논서는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현양성교론》과 《대승아비달마집론》 등을 들 수가 있다. 다음 제2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가 무착과 미륵의 유식학을 잘 정리하고 조직화한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유식학을 組織そしき唯識ゆいしきがく이라고도 한다. 이 組織そしき唯識ゆいしきがく의 대표적인 논서는 《대승백법명문론》과 《유식삼십론송》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다음 제3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 이후에 호법과 안혜 등 십대논사들이 세친의 《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ろん》을 훌륭한 이론으로 주석하여 유식학을 크게 발달시킨 시기로 이때의 유식학을 發達はったつ唯識ゆいしき라고 한다. 이때의 대표적인 저술로 《유식삼십론송》을 주석한 《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을 들 수 있으며, 《성유식론》은 중국에서 번역되어 法相ほうしょうむねそうまなぶ에 크게 이바지한 논서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5.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성전 > 성유식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성유식론: なる唯識ゆいしきろん 원명을 비즈냐프티마트라타싯디 샤스트라(Vijnaptimatratasiddhi­sastra)라고 하며, 세친(おや:320∼400경)의 저작이다. <유식삼십송(唯識ゆいしきさんじゅう頌)>에 호법(護法ごほう, 530∼600?)이 주석을 가한 것을 주로 하고 거기에다 다른 유식10대논사(唯識ゆいしきじゅうだいろん)의 학설을 취사선택하여 659년에 현장(げんすすむ)에 의하여 번역 편집된 것으로서,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불역(ふつやく)도 있다. 유식설(唯識ゆいしきせつ)은 중기 대승불교의 유가행자(瑜伽ゆが行者ぎょうじゃ)라고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여 미륵(彌勒みろく)·무착(ちゃく)·세친(おや)에 의하여 계승되고 체계화된 학설로서, 일체의 식(識)은 표현이며 유식(唯識ゆいしき)만이 진실이고 외계의 대상은 실유(じつゆう)가 아니다(唯識ゆいしきさかい)라고 하는 것이 불교 무아설(無我むがせつ)의 귀결이라고 주장한다. 본론(本論ほんろん)도 이런 입장에서 우선 외도(外道げどう)의 설을 논파(論破ろんぱ)하고 이어서 대상을 낳는 주체(主體しゅたい)인 아라야식, 아법2집(わがほう)의 근원이 되는 마나식, 6가지 요별작용(りょうべつ作用さよう)을 하는 6식(ろく識)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 제법(諸法しょほう)을 성격상으로 나눈 3성(さんせい)과 3성이 공(そら)임을 나타내는 삼무성(さん無性むしょう)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식수행(唯識ゆいしき修行しゅぎょう)의 해위(楷位)로서 5위()의 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중국과 일본의 법상종(法相ほうしょうむね)은 이 논에 기하여 세워진 종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