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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루 - 나무위키

두막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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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 (AS7524) ITEC Hankyu Hanshin Co.,Ltd.
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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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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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みかど) ]
1권 「서기(じょ)」
2권 「태조기(ふとし)」
3권 「태종기(ふとしそうおさむ)」
4권 「세조·공종기(きょうそうおさむ)」
5권 「고종기(こうそうおさむ)」
6권 「현조기(あらわ)」
7권 「고조기(高祖こうそおさむ)」
8권 「세종기(そうおさむ)」
9권 「숙종기(肅宗)」
10권 「효장제기(こうそうみかど)」
11권 「폐출삼제기(はいさんみかど)」
12권 「효정제기(こうせいみかど)」
[ 열전(列傳れつでん) ]
13권 「황후전(皇后こうごうでん)」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かみもと平文へいぶんしょみかど子孫しそんでん)」
15권 「소성자손전(あきらなり子孫しそんでん)」
16권 「도무7왕전(みちななおうつたえ)」
17권 「명원6왕전(明元あけもとろくおうつたえ)」
18권 「태무5왕전(ふとしおうつたえ)」
19권 「경목12왕전(たかしきよしじゅう二王におうでん)」
20권 「문성5왕전(文成ふみなりおうつたえ)」
21권 「헌문6왕전(けんじぶんろくおうつたえ)」
22권 「효문5왕전(孝文たかふみおうつたえ)」
23권 「위조등전(まもるみさおとうでん)」
24권 「연봉등전(つばめおおとりひとしでん)」
25권 「장손숭등전(ちょうまごかさとうでん)」
26권 「장손비등전(ちょうまごこえとうでん)」
27권 「목숭전(きよし崇傳すうでん)」
28권 「화발등전(ばつとうでん)」
29권 「해근등전(奚斤とうでん)」
30권 「왕건등전(おうけんとうでん)」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こうみずうみとうでん)」
33권 「송은등전(そうかくれとうでん)」
34권 「왕낙아등전(おうらくとうでん)」
35권 「최호전(ちぇひろしでん)」
36권 「이순전(じゅんでん)」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しばきゅうとうつて)」
38권 「조옹등전(刁雍とうでん)」
39권 「이보전(たからつたえ)」
40권 「육사전(りく俟傳)」
41권 「원하전(みなもとでん)」
42권 「설변등전(薛辯とうでん)」
43권 「엄릉등전(いむ棱等でん)」
44권 「나결등전(ゆいとうでん)」
45권 「위랑등전(韋閬とうでん)」
46권 「두근등전(竇瑾とうでん)」
47권 「노현전(げんでん)」
48권 「고윤전(こうまことでん)」
49권 「이령등전(れいとうでん)」
50권 「울원등전(じょうもととうでん)」
51권 「한무등전(かんしげるとうでん)」
52권 「조일등전(ちょういつとうでん)」
53권 「이효백등전(たかしはくとうでん)」
54권 「유아등전(ゆうみやびとうでん)」
55권 「유명근등전(ゆうあきらとうでん)」
56권 「정희등전(てい羲等でん)」
57권 「고우등전(こうゆうとうでん)」
58권 「양파전(楊播でん)」
59권 「유창등전(りゅうあきらとうでん)」
60권 「한기린등전(かん麒麟きりんとうでん)」
61권 「설안도등전(薛安とうでん)」
62권 「이표등전(ぴょうとうでん)」
63권 「왕숙등전(おう肅等でん)」
64권 「곽조등전(かく祚等でん)」
65권 「형만등전(邢巒とうでん)」
66권 「이숭등전(たかしとうでん)」
67권 「최광전(ちぇひかりでん)」
68권 「견침등전(甄琛とうでん)」
69권 「최휴등전(ちぇきゅうとうでん)」
70권 「유조등전(りゅうとうでん)」
71권 「배숙업등전(裴叔ぎょうとうでん)」
72권 「양니등전(あまとうでん)」
73권 「해강생등전(奚康せいとうでん)」
74권 「이주영전(しかしゅさかえでん)」
75권 「이주조등전(しかしゅちょうとうでん)」
76권 「노동등전(同等どうとうでん)」
77권 「송번등전(そうこぼしとうでん)」
78권 「손소등전(まご紹等でん)」
79권 「성엄등전(なり淹等でん)」
80권 「주서등전(しゅみずほとうでん)」
81권 「기준등전(綦儁とうでん)」
82권 「이염지등전(琰之とうでん)」
83권 「외척전(外戚がいせきでん)」
84권 「유림전(儒林でん)」
85권 「문원전(文苑ぶんえんでん)」
86권 「효감전(こうかんでん)」
87권 「절의전(節義せつぎでん)」
88권 「양리전(良吏りょうりでん)」
89권 「혹리전(酷吏こくりでん)」
90권 「일사전(いっでん)」
91권 「예술전(藝術げいじゅつでん)」
92권 「열녀전(れつおんなでん)」
93권 「은행전(おん倖傳)」
94권 「엄관전(閹官でん)」
95권 「유총등전(りゅうさとしとうでん)」
96권 「사마예등전(司馬しばあきらとうでん)」
97권 「환현등전(桓玄とうでん)」
98권 「소도성등전(しょう道成みちなりとうでん)」
99권 「장실등전(ちょうみのるとうでん)」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こうくりとうでん)」
101권 「저등전(氐等でん)」
102권 「서역전(西域せいいきでん)」
103권 「연연등전(蠕蠕とうでん)」
104권 「자서전(自序じじょでん)」

※ 105권 ~ 114권은 こころざ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 본기(本紀ほんぎ) ]
1권 「위본기1(本紀ほんぎいち)」
2권 「위본기2(本紀ほんぎ)」
3권 「위본기3(本紀ほんぎさん)」
4권 「위본기4(本紀ほんぎよん)」
5권 「위본기5(本紀ほんぎ)」
6권 「제본기상(ひとし本紀ほんぎじょう)」
7권 「제본기중(ひとし本紀ほんぎちゅう)」
8권 「제본기하(ひとし本紀ほんぎちゅう)」
9권 「주본기상(しゅう本紀ほんぎじょう)」
10권 「주본기하(しゅう本紀ほんぎ)」
11권 「수본기상(ずい本紀ほんぎじょう)」
12권 「수본기하(ずい本紀ほんぎ)」

[ 열전(列傳れつでん) ]
13·14권 「후비전(后妃こうひでん)」
15권 「위제종실전(諸宗しょしゅうしつでん)」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みちななおう·明元あけもとろくおう·ふとおうつたえ)」
17·18권 「경목12왕전(たかしきよしじゅう二王におうでん)」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ふみなりおう·けんじぶんろくおう·孝文たかふみろくおうつたえ)」
20권 「위조등전(まもるみさおとうでん)」
21권 「연봉등전(つばめおおとりひとしでん)」
22권 「장손숭등전(ちょうまごかさとうでん)」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ちぇたくましとうつて)」
25권 「고필등전(弼等でん)」
26권 「송은등전(そうかくれとうでん)」
27권 「굴준등전(こごめ遵等でん)」
28권 「육사등전(りく俟等でん)」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しばきゅうとうつて)」
28권 「노현등전(げんとうでん)」
29권 「고윤등전(こうまこととうでん)」
32권 「최감등전(ちぇ鑒等でん)」
33권 「이령등전(れいとうでん)」
34권 「유아등전(ゆうみやびとうでん)」
35권 「왕혜룡등전(おうとしりゅうとうでん)」
36권 「설변등전(薛辯とうでん)」
37권 「한무등전(かんしげるとうでん)」
38권 「배준등전(裴駿とうでん)」
39권 「설안도등전(薛安とうでん)」
40권 「한기린등전(かん麒麟きりんとうでん)」
41권 「양파등전(楊播とうでん)」
42권 「왕숙등전(おう肅等でん)」
43권 「곽조등전(かく祚等でん)」
44권 「최광등전(ちぇひかりとうでん)」
45권 「배숙업등전(裴叔ぎょうとうでん)」
46권 「손소등전(まご紹等でん)」
47권 「원번등전(袁翻とうでん)」
48권 「이주영전(しかしゅさかえでん)」
49권 「주서등전(しゅみずほとうでん)」
50권 「신웅등전(からしゆうとうでん)」
51·52권 「제종실제왕전(ひとし宗室そうしつ諸王しょおうでん)」
53권 「묵기보등전(まん俟普とうでん)」
54권 「손등등전(まごあがとうつて)」
55권 「손건등전(まご搴等でん)」
56권 「위수등전(おさむとうでん)」
57권 「주종실전(しゅう宗室そうしつでん)」
58권 「주실제왕전(しゅうしつ諸王しょおうでん)」
59권 「구락등전(寇洛とうでん)」
60권 「이필등전(弼等でん)」
61권 「왕맹등전(おうめいとうでん)」
62권 「왕비등전(おうひぐまとうでん)」
63권 「주혜달등전(しゅうめぐみたちとうでん)」
64권 「위효관등전(韋孝ひろしとうでん)」
65권 「달해무등전(いたる奚武とうでん)」
66권 「왕걸등전(おうすぐるとうでん)」
67권 「최언목등전(ちぇ彥穆とうでん)」
68권 「두로녕등전(まめやすしとうでん)」
69권 「신휘등전(さる徽等でん)」
70권 「한포등전(かん襃等でん)」
71권 「수종실제왕전(ずい宗室そうしつ諸王しょおうでん)」
72권 「고경등전(こう熲等でん)」
73권 「양사언등전(はり彥等でん)」
74권 「유방등전(りゅう昉等でん)」
75권 「조경등전(ちょう煚等でん)」
76권 「단문진등전(だんぶんとうつて)」
77권 「장정화등전(ちょうじょうとうでん)」
78권 「장정화등전(ちょうじょうとうでん)」
79권 「우문술등전(宇文うぶんじゅつとうでん)」
80권 「외척전(外戚がいせきでん)」
81·82권 「유림전(儒林でん)」
83권 「문원전(文苑ぶんえんでん)」
84권 「효행전(孝行こうこうでん)」
85권 「절의전(節義せつぎでん)」
86권 「순리전(循吏でん)」
87권 「혹리전(酷吏こくりでん)」
88권 「은일전(隐逸でん)」
89·90권 「예술전(藝術げいじゅつでん)」
91권 「열녀전(れつおんなでん)」
92권 「은행전(おん倖傳)」
93권 「참위부용전(僭偽いさおでん)」
94권 「고려등전(高麗こうらいとうでん)」
95권 「만등전(蠻等でん)」
96권 「저등전(氐等でん)」
97권 「서역전(西域せいいきでん)」
98권 「연연등전(蠕蠕とうでん)」
99권 「돌궐등전(突厥とうでん)」
100권 「자서전(自序じじょでん)」
(1) 본명이 장연(ちょうふかし)으로 당고조 이연(ふかし)을 피휘하여 심(ふかし)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ほうふかし)으로 당고조 이연(ふかし)을 피휘하여 심(ふかし)으로 개칭되었다.


두막루
まめ莫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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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루의 추정 위치.]
위치
만주 북부
수도
불명
정치 체제
군주정으로 추정
국가 원수
(おう)?
존속 기간
5세기 초? ~ 8세기 초?
종족 구성
멸망 이후
주요군주

1. 개요2. 역사3. 부여의 후예?4. 인지도5. 역대 수령6. 관련 연구
6.1. 한국6.2. 중국
7.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두막루(まめ莫婁)는 과거 만주 북단에 위치했던 국가이다. 달말루(いたるまつ婁), 대막루(だい莫婁), 대막로(だい莫盧)라고도 한다.

기록상 확인되는 두막루의 묘사에 따르면, 이 나라는 송화강 이북의 소흥안령 산맥 지방에 위치한 부여 계통의 국가로 비정된다. 또 퉁구스-몽골계 민족인 실위, 거란과 언어가 같다는 기록이 있고, 멸망 이후 몽골에 이주한 흔적이 있는 등 몽골 계통의 연관성도 추정할 수 있다.

2. 역사[편집]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 숙신국의 지역이다. 읍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으며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동이 중에서 가장 강하며, 언어도 그들 만이 다르다. 두막루(まめ莫婁) 등의 나라를 항상 깔보며 여러 나라도 이들을 두렵게 여긴다.
勿吉こく, ざい高句麗こうくりきた, きゅう肅愼こく也. 邑落各自かくじゆうちょう, あい總一そういち. 其人勁悍, 於東おひがしえびす最强さいきょう. 言語げんごどくこと. つねけいまめ莫婁註 とうこく, 諸國しょこくまた患之. らく千里せんり. 龍北りゅうほく百餘里有善玉山, 山北やまきたこうじゅうさんにちいたり祁黎さん, またきたぎょうななにちいたり如洛瓌水, みず廣里ひろさとあまり, またきたぎょうじゅう五日至太魯水校勘, また東北とうほくゆきじゅうはちにちいた其國. 國有こくゆう大水おおみず, 闊校勘こうかんさんさとあまり, そくまつみず.
- 위서 물길
まめ莫婁こく, ざい勿吉國北くにほく千里せんり, らくろく千里せんり, きゅうきた扶餘也. ざいしつ韋之ひがし, あずまいたる於海, かた千里せんり. 其人ちょ, ゆう宮室きゅうしつ倉庫そうこ. 山陵さんりょう廣澤ひろさわ, 於東おひがし夷之えびすのいきさい爲平ためひらたかし. むべ五穀ごこく, せいはて. 其人長大ちょうだい, せいきょういさむ, 謹厚きんこう, 寇抄. 其君ちょうみなろく畜名かん, 邑落ゆうごうそち. 飮食いんしょくまたもちいまないたまめ. ゆう麻布まふ, ころもせいるい高麗こうらい而幅だい, 其國大人おとな, 以金銀きんぎんかざり. ようけいげんきゅう, 殺人さつじんしゃ, ぼつ其家人爲じんい奴婢ぬひ. ぞくいん, ゆうあく妬婦, 妬者ころせこれ, しかばね其國みなみ山上さんじょういたりくさ. おんな欲得よくとく, 輸牛乃與. あるげんほんけがれ貊之也.
두막루국은 물길국 북쪽 1천 리에 있고 낙양으로부터 6천 리 떨어져 있다. 옛날의 북부여다. 실위의 동쪽에 있고, 동쪽은 바다와 닿아있고 사방 2천 리이다. 그 사람들은 토착하며 살고, 집에 거주하며 창고가 있다. 산과 구릉, 넓은 연못이 많아 동이 지역에서 가장 넓고 높다랗게 트여있다. 땅은 오곡에 알맞고 오과가 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키와 몸집이 크고, 성품이 강직하고 용맹하고 신충하고 중후하니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 그 군장은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삼고 읍락에는 호걸과 장수가 있다. 음식은 역시 조두를 사용한다. 삼과 베가 있고 옷을 마름질하는 것은 고려와 비슷하나 폭이 크다. 그 나라의 대인은 금과 은으로 장식한다. 형벌은 엄하고 급하여 살인자는 죽이고, 그 집안은 노비로 삼는다. 풍속은 음란하고 투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서 죽여서 시체를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놓고 썩힌다. 여자 집에서 이 시신을 거두려면 소나 말을 주어야 한다. 혹 말하길 본래 예맥의 땅이라고 한다.
위서 두막루전

위서 두막루전이나 아래의 신당서 기록과 종합하여 성립시기를 빠르게 잡으면 5세기 초 또는 중엽 이전이라고 추측한다. 485년과 486년 물길은 북위에게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때 (아마도 두막루인 듯한) 대막로국(だい莫盧こく)이 사신을 파견한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1]

그런데 두막루를 설명한 위서 두막루전의 내용은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 관련 기록을 거의 복붙하다시피 똑같아서 사료의 신뢰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이 부분을 가지고 '부여 풍습과 두막루 풍습이 비슷하니 두막루가 부여의 후계국가가 아닌가?'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풍습이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한문으로 씐 서술 자체가 거의 똑같기 때문에 무성의한 복붙으로 보일 여지가 큰 것이 문제. 정주 민족이고 법이 있으며 노략질을 안한다는 것만 봐도 당시에 기록한 사람도 부여의 후계국으로 추정해서 썼냐는게 아니냐는 것이다.[2]

두막루가 부여계가 아니라 단지 부여계를 자칭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일부 학자들은 부여계가 맞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래 써 있다시피 학계에서도 인지도가 듣보잡인지라 논쟁은 그냥 정체 상태다.

위서 실위전에서도 두막루가 나오는데, 동호 계통인 실위와 두막루의 언어가 같다고 기록했으므로 부여계와 동호계의 언어가 같았다는 추측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위서(역사책) 문서에서도 소개하였듯, 이 책 자체가 가짜는 아니지만 '더러운 역사서(けがれ, 예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확도나 공정성이 전체적으로 낮아 천수백 년 전부터 계속 까여온 책임도 문제다.
ひらけもとじゅういちねん, またゆうたちまつ婁․たち首領しゅりょう朝貢ちょうこう. いたるまつ婁自げんきた扶餘裔, 高麗こうらいめつ其國, のこひとかわ, いんきょ, ある曰他かわ, 東北とうほく流入りゅうにゅう黑水くろみず. いたる姤, しつ韋種也, ざい河陰かいん, 涷末かわひがし, 西にしせっあたましつ韋, 東北とうほく距達まつ婁云.
개원 11년(723)에 또 달말루와 달구 등 두 부락의 수령들이 조공하였다. 달말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로서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혹은 타루하라고 하는 물줄기가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에 유입된다 하였다. 달구는 실위의 종족으로 나하의 남쪽, 동말하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황두실위와 접하며 동북쪽으로는 달말루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들은 당나라에도 조공했기 때문에 신당서 열전에도 남아있다.그런데 어째서인지 이 기사가 , 일본 기록의 맨 마지막 문단에 기제되어 있다여기서 달말루(두막루)는 북부여의 후예라고 했는데, 달막루인의 '자칭(げん)'이라고 써서 신당서 편찬자도 신빙성을 보장하지 않았음이 문제.[4]

헌데 무슨 이유인지 ·이 만주를 공격하던 6세기 말부터 7세기까지는 이들의 조공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시기에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공 기록이 8세기 초반까지 지속되다 사라지기 때문에 이쯤에 멸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8세기 초반은 때마침 발해 무왕흑수말갈이 충돌하던 시기인데 두막루의 정확한 위치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바가 없지만 발해와 흑수 말갈 사이에 끼어 있다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보다 두막루를 연구한 내용 자체가 손가락으로 셀 정도지만. 멸망 이후 실위와 함께 몽골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그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실위, 고막해, 거란과 같은 말을 썼다는 기록으로 봐선 몽골 지방으로 이동 후 몽골계 민족들에게 동화된 것 같다.

영토는 사방 이천 리로 서쪽에 실위, 남쪽에 말갈이 있고 동쪽으로는 바다에 접한다는데, 동쪽 바다라는 게 아무르강인지 오호츠크해인지 동해인지 모른다.

두막루를 연구한 유태용 교수의 두막루국 흥망사 시론 연구(2004)에서는 724년 즈음 발해흑수말갈 간의 대립으로 중간에 낀 두막루는 멸망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3. 부여의 후예?[편집]

(북)부여의 후계국가로 추정하는 설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부여계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기록도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두막루 한국사설은 정설 단계로 올라서지 못했다. 2019년 기준 일반적으로 한국사를 소개하는 저명성 있는 매체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지명이나 인명이 '루' 자로 끝남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만주한반도에 있던 부여계 국가들의 한 가지 언어적 특징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고구려 관직명인 대막로와 발음이 연관성이 보인다며 여기서 국호가 유래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있다.[5]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두막루의 틀 / 한국사 잔존 여부와 두막루가 부여계 국가인가 아닌가로 엄청난 키배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고 대부분 판단은 부정적이었다. 이 나무위키에서도 틀:한국의 역사 문서에 두막루가 있었으나 저명성 부족과 한국사 여부 불분명으로 틀에서도 제외당했던 적이 있다. 일단 한국사에서 이름 없이 등장했다 사라진 소국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나라들을 다 적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두막루는 적시해야 할 근거가 부족하다.

4. 인지도[편집]

대중적인 인지도는 거의 없다. 국사에도 나오지 않거니와 문서 내용을 훝어보면 알겠지만 우리 민족과의 연관성도 거의 없거나 의심받는 동떨어진 나라이며, 국내의 주요 역사서에서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애호가들 사이에선 부여를 계승했을 가능성이 있을 만주의 정체불명의 신비한(?) 나라 정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을까? 사실 존재한다는 '인지도'도 한국어 위키백과나 이곳 나무위키(...) 같은 몇몇 사이트에 등재됐기 때문에 그걸 보고 생겨난 인지도에 가깝다.

5. 역대 수령[편집]

대수
시호
재위기간
??
미상
낙개제(だくみなもろ)[6]
? ~ ?

6. 관련 연구[편집]

워낙 알려지지 않은 나라여서 연구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연구 제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김정배와 유태용 외 나머지는 핵심 주제가 두막루가 아닌데 주제 이야기와 관련해서 위서 두막루전을 참고하여 두막루에 대해서 짧게 고찰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름만 전해서 학자들이 연구조차 못 하고 있거나 아예 이름 자체가 잊혀 전해지지 않는 소국들에 비하면 그래도 두막루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 노태돈, 〈부여국의 강역과 그 변천〉, 《국사관논총》 제4집, 국사 편찬 위원회, 1989년
  • 김정배,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국사관논총》 제29집, 국사 편찬 위원회, 1991년 12월
  • 박경철, 〈부여사 전개에 관한 재인식 시론〉, 《백산학보》 제40호, 백산 학회, 1992년
  • こころざし耿, 김영수(번역), 〈고대 탁리 연구〉, 《백산학보》 제44호, 백산 학회, 1994년
  •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백산 학회, 2004년 12월
  • 강인욱, 〈삼강 평원 곤토령⋅봉림 문화의 형성과 물길⋅두막루⋅말갈의 출현〉, 《고구려발해연구》 제52집, 고구려 발해 학회, 2015년
  • 박원길, 〈타타르(Tatar)부의 역사적 고찰〉, 《몽골학》제50호, 2017[7]
  • 이종수, 〈부여 강역 연구현황과 쟁점〉, 《백산학보》제110호, 2018년
  • 溤家のぼり, 〈まめ莫婁こくこう〉, 《禹貢》半月はんつきかん 7かん 1,2,3 ごうかん, 1937년

7.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 역사의 시대 2/메가모드: 2024년 Uwut 통합모드 버전에서 대한민국 플레이시 형성 가능한 국가로 나온다. 개발 유저가 두막루의 위치를 모르는지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경우 형성할 수 있는 국가로 해놓았다.
[1] 태화(ふとし) 9년(485)에 (물길에서) 또 사신 후니지(ほうささえ)를 파견하여 조회(朝會ちょうかい)하였다. 그 이듬해에 다시 입조(入貢にゅうこう)하였다. 그 나라 근처에는 대막로국(だい莫盧こく)·복종국(くつがえ鍾國)·막다회국(莫多回國かいこく)·고루국(くら婁國)·소화국(もと和國わこく)·구불복국(どるふくこく)·필려이국(ひきはじむ尒國)·발대하국(拔大なんこく)·욱우릉국(いくはねりょうこく)·고복진국(くらふくしんこく)·노루국(魯婁こく)·우진후국(はねしんこうこく)이 있는데, 연이어 각각 사신을 보내어 조헌(あさけんじ)하였다. - 위서 물길전[2] 담당 공무원 업무가 주변국 정세를 파악이라면 어떤 나라인지 조사를 해야겠지만 귀찮으므로(...) 복붙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3] 관련 주소 클릭 뒤 高麗こうらいめつ其國 를 검색하면 된다.[4] 교차검증 없이 자칭한 것으로 따지면 고구려는 기자조선을 계승했다고 여겼고 신라흉노 김일제 후손이며 거란은 고구려를 이었다고 주장했다. 고려 왕건당숙종의 후손이다. 물론 현대 사학계에서는 저것들 모두 신빙성이 부족한 자칭으로 결론났다. 굳이 자칭, 혹왈 같은 표현 붙이는 건 그대로 받아들이기 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5] 출처가 필요하다. 다른 관직명인 대대로와 막리지가 섞인 이름인 것 같다.[6] 책부원귀 외신부 조공조에 의하면 당나라 현종 개원 12년(724년)에 달말루의 대수령 낙개제(だくみなもろ)가 와서 조공했다고 한다. 아마 낙개제는 기적적으로 전해지는 두막루의 유일한(...) 인명인 것 같다.[7] 8세기 ~ 13세기 활동한 타타르부의 활동이 주 연구이나, 두막루에 대한 언급도 나와있다. 해당 논문에서 박원길 교수는 두막루를 북부여 계통이나 실위의 부족 중 하나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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