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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루 - 나무위키

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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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 (AS7524) ITEC Hankyu Hanshin Co.,Ltd.
토론역사
관련 문서 아이콘   관련 문서: 만주 종족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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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루 관련 둘러보기 틀
[ 관련 각국사 ]  

/ [ 관련 사서 ]
[ 본기(本紀ほんぎ) ]
1권 「광무제기(光武みつたけみかど)」
2권 「명제기(あきらみかど)」
3권 「장제기(あきらみかど)」
4권 「화제상제기(みかど殤帝)」
5권 「안제기(やすみかど)」
6권 「순제충제질제기(じゅんみかどおきみかどしつみかど)」
7권 「환제기(桓帝)」
8권 「영제기(れいみかど)」
9권 「헌제기(けんじみかど)」
10권 「황후기(皇后こうごう)」

※ 사마표의 속한서는 こころざし에 해당. 후한서 문서 참고
[ 열전(列傳れつでん) ]
11권 「유현유분자열전(りゅうげんりゅうぼん列傳れつでん)」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おうりゅうちょう彭盧列傳れつでん)」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こうそんじゅつ列傳れつでん)」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そうしつよんおうさんこう列傳れつでん)」
15권 「이왕등내열전(おう鄧來列傳れつでん)」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れつでん)」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でん)」
18권 「오갑진장전(ぶたひね臧列でん)」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れつでん)」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おう霸祭遵列でん)」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にんすもも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しゅけいおうもりりゅうでんけん列傳れつでん)」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れつでん)」
24권 「마원열전(うま援列でん)」
25권 「탁노위유열전(たく魯魏りゅう列傳れつでんでん)」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ふくこうそう蔡馮ちょう牟韋列傳れつでん)」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せんはり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れつでん)」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さるほふつよしあわびなが郅惲列傳れつでん)」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竟楊厚郞あつろう顗襄楷列でん)」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かくもりあなちょうれんおうひつじ賈陸列傳れつでん)」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かげ識列でん)」
33권 「주풍우정주열전(しゅ馮虞ていあまね列傳れつでん)」
34권 「양통열전(りょうみつる列傳れつでん)」
35권 「장조정열전(ちょう曹鄭列傳れつでん)」
36권 「정범진가장열전(てい范陳賈張列傳れつでん)」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ちょうひろし列傳れつでん)」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ちょうほう滕馮楊列でん)」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りゅうちょうあつし于江りゅうあまねちょう列傳れつでん)」
40권 「반표열전(はんあや列傳れつでん)」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だい五鍾離宋寒列傳)」
42권 「광무십왕열전(光武みつたけ十王じゅうおう列傳れつでん)」
43권 「주악하열전(朱樂あけらなに列傳れつでん)」
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じょちょうえびす列傳れつでん)」
45권 「원장한주열전(袁張かんしゅう列傳れつでん)」
46권 「곽진열전(かく陳列ちんれつでん)」
47권 「반양열전(はんはり列傳れつでん)」
48권 「양이적응곽원서열전(楊李翟應霍爰じょ列傳れつでん)」
49권 「왕충왕부중장통열전(おうたかしおうなかちょうみつる列傳れつでん)」
50권 「명제팔왕열전(あきらみかどはちおう列傳れつでん)」
51권 「이진방진교열전(ひね龐陳きょう列傳れつでん)」
52권 「최인전(ちぇ駰傳)」
53권 「주황서강신도열전(しゅうじょきょうさるほふ列傳れつでん)」
54권 「양진열전(楊震列傳れつでん)」
55권 「장제팔왕열전(あきらみかどはちおう列傳れつでん)」
56권 「장왕충진열전(ちょうおう种陳列傳れつでん)」
57권 「두난유이유사열전(もり欒劉りゅうしゃ列傳れつでん)」
58권 「우부갑장열전(おそれでんぶた臧列でん)」
59권 「장형열전(ちょう衡列でん)」
60권 「마융채옹열전(うまとおる蔡邕列傳れつでん)」
61권 「좌주황열전(ひだりしゅうでん)」
62권 「순한종진열전(荀韓鍾陳列傳れつでん)」
63권 「이두열전(もり列傳れつでん)」
64권 「오연사노조열전(のべちょう列傳れつでん)」
65권 「황보장단열전(すめらぎはじめちょうだんれつ)」
66권 「진왕열전(ひねおう列傳れつでん)」
67권 「당고열전(とう錮列でん)」
68권 「곽부허열전(かくもと列傳れつでん)」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れつでん)」
70권 「정공순열전(ていあな荀列でん)」
71권 「황보숭주준열전(すめらぎはじめかさしゅ儁列でん)」
72권 「동탁열전(ただしたく列傳れつでん)」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りゅうおそれ公孫こうそん瓚陶けん列傳れつでん)」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りゅうおもて列傳れつでん)」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りゅう焉袁じゅつりょぬの列傳れつでん)」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れつでん)」
77권 「혹리열전(酷吏こくり列傳れつでん)」
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れつでん)」
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れつでん)」
80권 「문원열전(文苑ぶんえん列傳れつでん)」
81권 「독행열전(獨行どっこう列傳れつでん)」
82권 「방술열전(方術ほうじゅつ列傳れつでん)」
83권 「일민열전(逸民いつみん列傳れつでん)」
84권 「열녀전(れつおんなでん)」
85권 「동이열전(東夷あずまえびす列傳れつでん)」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なんばん西南せいなんえびす列傳れつでん)」
87권 「서강전(西にし羌傳)」
88권 「서역전(西域せいいきでん)」
89권 「남흉노열전(みなみ匈奴きょうど列傳れつでん)」
90권 「오환선비열전(がらす桓鮮卑列でん)」

[ 본기(本紀ほんぎ) ]
1권 「무제기(たけみかど)」
2권 「문제기(ぶんみかど)」
3권 「명제기(あきらみかど)」
4권 「삼소제기(さんしょうみかど)」
[ 열전(列傳れつでん) ]
5권 「후비전(后妃こうひでん)」
6권 「동이원유전(ただし袁劉でん)」
7권 「여포장홍전(りょぬの臧洪でん)」
8권 「이공손도사장전(公孫こうそんすえよんちょうつたえ)」
9권 「제하후조전(しょなつこう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でん)」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おう邴管でん)」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ちぇもうじょなに邢鮑司馬しばつたえ)」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はな歆王ろうでん)」
14권 「정곽동류장류전(ほどかくただしりゅう蔣劉でん)」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りゅう司馬しばりょうちょうあつし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にんもりていくらつたえ)」
17권 「장악우장서전(ちょうらく于張じょつたえ)」
18권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藏文呂許典二龐閻傳)」
19권 「임성진소왕전(にんじょうひねしょうおうつたえ)」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たけふみ王公おうこうでん)」
21권 「왕위이유부전(おうまもるりゅうつたえ)」
22권 「환이진서위노전(桓二陳徐衛盧傳)」
23권 「화상양두조배전(かずつね楊杜ちょう裴傳)」
24권 「한최고손왕전(かんちぇだかまごおうつたえ)」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からし毗楊阜高どうりゅうつたえ)」
26권 「만전견곽전(滿田みつた牽郭でん)」
27권 「서호이왕전(じょえびす二王におうでん)」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おう毌丘しょかずら鄧鍾でん)」
29권 「방기전(かたわざでん)」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からすま鮮卑東夷あずまえびすでん)」

관련 틀:


1. 개요2. 역사3. 풍속4. 지리


2cela koguryo

[1]

1. 개요[편집]

고대 만주 지역에 살던 퉁구스계 종족이자, 부여종속국이었다.[2]

2. 역사[편집]

한서후한서 기록에 따르면 오랫동안 부여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위나라 황초(220~226) 연간에 부여의 세금과 부역이 무거워 반란하여 종속에서 벗어났다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읍루인들이 화살에 독을 발라 공격하니 부여의 군인들이 이기지 못했는데, 고구려 영양왕 시절 말갈인들을 동원하여 요서를 공격할 때, 말갈인들이 독화살을 잘 쓴다고 표현한 걸로 보아 두 부족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계에서도 읍루가 말갈의 전신이라고 여기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한 정체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관계가 없진 않을 듯.

일부에서는 당시 몽골어족과 튀르크어족, 퉁구스어족이 특히 만주~바이칼호 일대에서 활동 영역이 겹치는 일이 많아 교류가 잦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나라'를 뜻하는 몽골어 '울스(улс)'의 고대형을 음차한 것이 '읍루'라고 보기도 한다. 참고로 읍루의 상고한어 발음은 *qip-[r]o(키프로), 중고한어 발음은 ʔiɪp̚-ləu(이프루)이며, улс의 원형은 튀르크조어 *uluš(울루슈)로 재구되었다.

3. 풍속[편집]

매우 추운 지방에 거주했으며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땅에 무덤 같은 굴을 파놓고 거주했고, 몸에 돼지기름을 발라[3] 추위를 면했다. 목축과 농경을 같이 했다.
그들은 항상 산림속에 살며 동굴 속 생활을 한다. 대가(大家たいか)는 그 깊이가 9계단이나 되며, 계단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그 지방의 기후는 추워서 부여(おっとあまり)보다 혹독하다.
그들은 돼지기르기를 좋아하여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 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그 두께를 몇 푼이나 되게 하여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철에는 알몸에다 한 자 정도의 베조각으로 앞뒤를 둘러서 형체만을 가린다. 그들은 깨끗하지 못해서 [집]한가운데에 변소를 만들고 그 주위에 빙 둘러 모여 산다.

(읍루)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其人がたおっとあまり, 言語げんごあずかおっとあまり·うららどう).

활의 길이는 4자인데 그 위력은 쇠뇌(いしゆみ)와 같다. 화살대로는 싸리나무(楛)를 쓰는데 길이는 한 자 여덟 치나 되며, 푸른 돌로 화살촉을 만들었으니, [이는 읍루가] 옛 숙신씨의 나라 [이기 때문]이다. 활을 잘 쏘아 사람을 쏘면 어김없이 명중시킨다. 화살에는 독약을 바르기 때문에 사람이 맞으면 모두 죽는다. 적옥(あかだま)과 좋은 담비 가죽이 산출되는데, 오늘날 이른바 읍루의 담비가 그것이다.

あい婁喜乘船じょうせんきた沃沮かしここれ 夏月かづき...
읍루는 배를 타고 노략질하는 것을 즐겼는데, 북옥저는 이를 두려워하여 여름에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동옥저'(ひがし沃沮)편
동해 인근에서 해적질을 하기도 했다.[4]

특이한 점이 또 있는데, 이들은 소금을 구할 길이 없어 나무를 태운 다음 그 재를 물에 타서 이것을 소금물로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읍루인들이 집의 가운데에 화장실을 만들어 거기서 똥과 오줌을 눈다고 적었는데[5], 실제로 읍루인들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나나이족 같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살았던 전통 가옥들은 그런 구조다. 그래서 19세기 나나이족을 방문한 러시아인 탐험가들은 나나이족들의 몸에서 참을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기록했다(...)[6]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연해주에서 읍루인들이 살았던 유적지들을 발굴한 결과, 읍루인들이 이미 대장간을 차려서 자체적으로 도끼 같은 쇠로 만든 도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도끼의 표면은 그 강도가 강철과 같을 만큼, 읍루인들이 독창적인 기술로 강화시켰을 정도였다. 아울러 2009년 러시아 사할린 섬 앞바다에서 발견된 읍루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 중에는 그 길이가 62cm나 되는 쇠로 만든 긴 이 있었다.[7] 사실 21세기의 고고학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함경도와 연해주 일대가 고조선보다도 일찍 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고, 읍루인들도 야만족 취급을 받을지언정 주변 국가나 종족들과의 교류도 있었을테니 제철을 안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는 했다.

화살대로는 싸리나무를 쓰는데, 이걸 사용하는 이유는 싸리나무가 곧고 습하거나 건조해도 휘어지지 않으며, 만주와 밀림 지역에서 많이 자라서라고 한다. 또 독화살의 경우 베링 해 건너의 알래스카, 사할린 북부, 아무르강 하구, 아이누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이들과 동일한 문화권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고 한다.

읍루족의 문화 수준은 매우 뒤떨어졌으나, 대단히 사납고 난폭한 부족이었기 때문에 군사력이 강력하여 주변의 다른 집단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고구려를 공격했던 중국 위나라 관구검의 군대는 고구려의 동쪽에 있는 옥저까지 쳐들어와 3,000명의 옥저인들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모든 마을들을 파괴했으나, 읍루인들의 영토에는 쳐들어가지 않았다.

4. 지리[편집]

서쪽에는 부여가, 동쪽에는 바다가 있었고, 북쪽은 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아마 북동시베리아 쪽이었던 거 같다)

고고학에서는 아무르 강 중하류 지역에 폭넓게 분포한 우릴 문화, 우릴 문화 이후 탈라칸 문화(아무르 주를 포함한 서아무르 유역), 폴체 문화(아무르 강 중하류, 기원전 2세기 이후 점차 연해주 일부까지 확장)를 읍루로 비정하고 있다.

읍루와 관련된 문화유형들에서 공통적이며 두드러지는 특징은 호류와 같은 토기들의 견부에 화살표 문양의 장식을 시문하는 것이 있으며 그 밖에도 수레바퀴 모양의 장식 등이 있다.

[1] 위 지도에서 Yilou. 읍루의 중국어 병음 표기가 Yìlóu인 관계로 영문 표기로는 Yilou라고 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게임 바람의 나라에서는 부여의 한 성으로 등장한다.[3] 돼지비계를 그냥 피부에 문지르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돼지비계에서 추출한 기름을 피부에 문지르는 것이다.[4] 읍루인들의 후손인 여진족들도 동해에서 해적질을 자주 벌여 일본쓰시마규슈까지 쳐들어갔다!#[5] 왜냐하면 읍루인들이 살았던 곳이 워낙 춥기 때문에 볼일을 보러 일일이 집밖으로 나갔다 들어갔다 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6] 출처: 《옥저와 읍루》, 강인욱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2020년 12월 15일 발간[7] 그 형태는 곧게 뻗은 검이었다. 다만 읍루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알타이 같은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옥저와 읍루》, 강인욱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2020년 12월 15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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