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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내용] 1949년 10월 1일 제정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광복절이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이 날은 경축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하는데 중앙경축식은 서울에서, 지방경축행사는 각 시·도 단위별로 거행한다. 이 날의 의의를 고양하고자 전국의 모든 가정은 국기를 달아 경축하며, 정부는 이 날 저녁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광복회원을 위한 우대조치의 하나로, 광복회원 및 동반가족에 대하여 전국의 철도·시내버스 및 수도권전철의 무임승차와 고궁 및 공원에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펜싱·수영·승마·크로스컨트리·사격 등 5개 종목을 겨루어 각 종목의 점수를 합산한 총점으로 순위를 정하는 경기. [연원] 5개 종목 중 승마·펜싱·사격을 기능적 종목, 수영·크로스컨트리를 체력적 종목이라고 하며, 개인전과 상위의 세 사람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정하는 단체전이 있다. 이 경기는 서기전 708년 제18회 고대 올림피아대회에서 실시하던 5종경기, 즉 멀리뛰기·창던지기·200야드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경기의 성격상 전령병(傳令でんれいへい)의 임무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여 ‘근대5종’이라는 이름으로 1912년 제5회 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전령병이 말을 타고 산야나 하천 등의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는 마술, 말이 피로하거나 총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 산과 들을 달려가야 하는 크로스컨트리, 적군을 만나면 권총으로 싸워야 하는 사격, 근접한 적과 검을 들고 싸우는 펜싱, 냇물도 헤엄쳐 건너야 하는 수영 등 다섯...

  •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초복·중복·말복, 삼복. [내용] 첫 번째 복날을 초복(はつふく)이라 하고, 두 번째 복날을 중복(ちゅうふく), 세 번째 복날을 말복(まつふく)이라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げし)로부터 세 번째 경일(かのえ),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りっしゅう)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월복(えつふく)이라고 한다.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가리켜 ‘삼복더위’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복날에는 보신()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다. 과거에는 개장국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현대에는 닭백숙을 잘 만들어 먹는다. 또,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기도 한다. 한편, 아이들이나 여인(아낙)들은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어른들은 산간계곡에...

  •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 사건. [요약] 8·15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 사건이다. 국권이 강탈된 후 민족독립운동이 가열차게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한 모색과 진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은 연합국 측의 승리에 힘입은 바가 컸고 냉전질서가 심화되면서 남과 북에 체재를 달리하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어 민족이 분열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군국주의적 일제의 침탈로 국가 재건은 거의 폐허에서 시작되었고, 정치·문화적 침탈도 심각하여 일제 잔재 청산 노력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 정도이다. [개설] 광복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을 되찾는다’는 의미이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제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통치를 받고 있는 상태는 곧 암흑이라는 인식에 대한 대치관념으로 통해왔다. 따라서, 광복은 나라를 되찾고...

  • 우리 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 [내용] 10월 3일. 서기전 2333년(つちのえたつねん),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ひらきてん)’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 이 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てんじん)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かみ)를 열어 홍익인간(ひろえき人間にんげん)·이화세계(理化りか世界せか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うえもと甲子きのえねねん: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 [개설]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며 조기 게양을 한다. [연원 및 변천]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한국전쟁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으며 백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가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 일제강점기 훙커우공원 투탄의거와 관련된 독립운동가. 의사. [요약] 윤봉길은 일제강점기 훙커우공원 투탄의거와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908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했다. 3.1운동 후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고 덕산보통학교를 자퇴, 농민계몽·부흥 운동에 전력했다. 1930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으며, 이듬해 상해로 옮긴 후 김구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를 호소했다. 1932년 한인애국단에 입단, 김구의 주관 하에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으로 이송 후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본명은 윤우의(いん禹儀). 호는 매헌(梅軒ばいけん). 충청남도 예산 출신. 아버지는 윤황(いん璜)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김원상(金元かねもとさち)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덕산보통학교(德山とくやま普通ふつう學校がっこう)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3 · 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 [요약] 이승만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75년(고종 12)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광복 후 38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다. 4선 도전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4·19혁명이 발발하자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5년(고종 12)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대경리 능내동 출생으로, 본관은 전주(ぜんしゅう), 초명은 이승룡(うけたまわりゅう), 호는 우남(雩南)이다. 양녕대군(ゆずるやすし大君おおきみ)의 16대손으로, 아버지 이경선(李敬ぜん, 1839∼1912)과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1833∼1896) 사이의 셋째...

  •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 [요약]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임시정부 수립 운동] 3 · 1 운동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공화정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일어났다. 임시정부 수립 운동은 3 · 1 운동을 계기로 일어난 돌출적 운동이 아니었다. 임시정부 수립 운동은 대한제국이 망할 무렵부터...

  • 일제강점기 이토히로부미 암살사건, 상해 훙커우공원 폭탄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교육자. [개설] 호는 도산(島山しまやま). 평안남도 강서 출신. 안흥국(やす興國こうこく)의 셋째아들이다. 부인은 이혜련이며, 자녀로는 안필립, 안필선, 안수산, 안수라, 안필영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선대는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あずまむら)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8세까지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는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김현진(きむ鉉鎭)에게 한학을 배웠다. 이 때 서당 선배인 필대은(畢大いん)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1895년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상경하여 언더우드(Underwood, H. G.)가 경영하는 구세학당(救世きゅうせい學堂がくどう)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서구문물과 접하게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필대은과 함께 평양에서...

  •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 [내용] 5대 국경일의 하나로 7월 17일이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로서, 이 날과 맞추어 공포하였다. 이 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7월 12일) 및 공포(7월 17일)를 온 국민이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헌법수호를 다짐하는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온 국민은 가정에 국기를 게양하여 이 날의 뜻을 높이고 있다. 중앙기념행사는 생존하는 제헌국회의원과 3부요인을 비롯한 각계 대표가 모여 의식을 거행한다.

  •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에 생활안정을 위하여 일정기간 동안 급여를 지급하는 실업급여사업과 함께 구직자에 대한 직업능력개발·향상 및 적극적인 취업알선을 통한 재취업의 촉진과 실업예방을 위하여 고용안정사업 및 직업능력개발사업 등의 실시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하나. [개설] 원래 전통적인 실업보험제도는 실직된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도입되었으나, 고용보험제도는 실직근로자의 생활안정과 함께 고용촉진 및 실업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전환하여 다양한 보험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내용] 「고용보험법」은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사업을 통해 1차적으로는 취업 중인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촉진하고, 부득이 실업이 되더라도 2차적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재취업을 촉진함으로써 근로자의 실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여성근로자들의...

  •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의 신부로서,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개설] 본관은 김해(きむうみ). 세례명은 안드레아. 초명은 재복(さいぶく), 보명(めい)은 지식(しばしょく). 충청남도 당진 출신. 아버지는 김제준(きむわたるしゅん)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증조부 김진후(きむしんあつし)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金澤かなざわ鉉)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1836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ちぇかたずみ)·최양업(ちぇりょうぎょう)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巴里ぱりがいくにでん敎會きょうかい東洋とうよう經理けいり)로 가게 되었다. 그 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Ferreol, J. J .J. B.)...

  •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법률로써 지정한 날. [내용] 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등의 국경일이 있는데, 국경일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로 공포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기미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며,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공포를 경축하는 날이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국권을 회복한 날로서, 국경일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다. 10월 3일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에 단군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10월 9일 한글날은 1446년 10월 9일에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신평(新平しんぺい). 호는 고하(いにしえ). 어렸을때 이름은 옥윤(たまじゅん). 전라남도 담양 출생. 송훈(そう壎)의 넷째아들로, 어머니는 양씨(りょう)이다.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한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동아일보사가 주식회사로 개편되자 사장에 취임, 이후 30여 년 간 『동아일보』를 이끌었다. [학력] 네 살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하였으며, 뒤에는 의병장이었던 기삼연(さん衍)에게서 수학하였다. 1904년 15세 때 정읍의 유씨(やなぎ)와 혼인하였고, 2년 뒤에 담양 창평의 영학숙(英學えいがくじゅく)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김성수(かねせい洙)를 알게 되었다. 1907년 전라도 장성 백양사(しろひつじてら)의 말사인 청류암(淸流せいりゅうあん)에서 공부를 하던 중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절에서 나와 군산 금호학교(きむみずうみ學校がっこう)에서 수학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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