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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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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83,020건
  •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근세사회를 열었던 조선 왕조의 계보.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며 건국한 조선은 1910년 순종을 마지막으로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존속되었다.

  •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 조선 세종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장영실(1390년경~?)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장영실을 가리켜 “과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 칭송하였다. 1. 장영실의 아버지, 장성휘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귀화인. 아버지 집안은 노비 출신이 아니나, 어머니 신분을 따라서 장영실은 동래현의 관노로 태어났다. 더보기 2. 태종의 발탁과 명나라 유학 장영실의 재주가 조정에 알려져 태종이 그를 발탁하였다. 세종 즉위 후 장영실은 명나라에 유학 가서, 천문관측시설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자격루 등을 만들었다. 더보기 3. 노비 신분에서 종3품에 이르다 동래현의 관노비에서 궁궐의 궁노비로 이동한 장영실. 이후 상의원 별좌, 정4품의 호군, 종3품의 대호군까지 오르면서 세종의 뜻을 받들어 많은 천문기구를 제작하였다. 더보기 4. 장영실과 세종의 결별 장영실의 감독하여 만들어진 세종의 가마가 부서져...

  • 민족을 재통일하고 중세의 사회질서를 수립한 고려 왕조의 계보. 고려는 태조 왕건으로부터 공양왕까지 34대 왕을 거치면서 475년간 존속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다. 어린 시절 오다 가문에 이어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생활을 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마가와 가문의 가신으로 활동했다. 가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전사한 것을 계기로 이마가와 가문과 결별하고 독립했으며, 이후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으로 들어가 묵묵히 힘을 길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전국의 패권을 쥐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에도 막부를 열었다. 이후 오사카 성 전투를 통해 히데요시 가문을 멸망시켰고, 이로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약 260여 년에 걸쳐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졌다. [출생과 성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42년 12월 26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이름은 다케치요다. 어머니는 미카와 국의 가리야 성의 성주 미즈노 다다마사의 딸로 이름은 오다이다. 지방 호족이었던 마쓰다이라 가문은 이에야스의 조부 기요야스...

  • 이탈리아의 화가. 사람의 몸을 해부해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여기서 얻은 지식들을 수많은 인체 소묘와 회화로 표현했다. 음악, 화학, 천문학, 건축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연구를 했다.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작품에 담다]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수많은 발명품을 생각해내다] [시대를 앞선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났어.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시골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신분 차이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지. 이렇게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사생아라고 하는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사생아는 무척 낮은 신분이었단다. 대학에도 갈 수 없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지. 그 이유로 다빈치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아들을 화가의 길로 이끌었어.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이 녹아든 작품]...

  •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민족 수난기이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주요 인물] 김구 |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했으며, 8 · 15 광복 후에는 자주적인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1949년에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는 동안 쓴 일기인 《백범일지》가 남아 있다. 김좌진 | 일제에 맞서 무장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일본의 정규군과 맞선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안창호 |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도산’이다.민족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 스승의 은혜를 되새기는 뜻으로 만든 날이 '스승의 날'이다. 우리는 오늘의 교육을 말하면서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은 참 스승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스승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스승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에서 유래한다는 설과 중을 나타내는 '사승'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옛날 무당을 나타내는 말로 '무격(みこ覡)'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서 '무(みこ)'는 '여자무당'을, '격(覡)'은 '남자무당'을 말한다. 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みこ)'를 '스승 무'라고 하고 '격(覡)'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 무당'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 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남자 무당'인 '화랑이 격'의 '화랑'은

  • 삼국통일로 단일 민족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신라 왕조의 계보. 신라는 혁거세로부터 경순왕까지 56명의 왕이 이어졌고, BC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간 존속한 국가였다.

  • 땅을 지키는 12신장(かみすすむ)으로, 십이신장(十二神じゅうにしんしょう) 또는 십이신왕(十二神じゅうにしんおう)이라고도 한다. 『약사경(藥師やくしけい)』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かみすすむ)이다. 이들은 12방위(方位ほうい)에 맞추어서 호랑이·토끼·용·뱀·말·소·원숭이·닭·돼지·개·쥐·양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도교(道敎どうきょう)의 방위신앙에서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십이지신앙은 약사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선덕여왕 때 이미 밀본법사(みつ本法ほんぽう)가 『약사경(藥師やくしけい)』을 읽어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유신(金庾しん) 장군도 『약사경(藥師やくしけい)』을 호지(護持ごじ)하는 이인(異人いじん)과 교분을 나누었다. 십이지신앙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신격이 변모해갔다. 즉 탑을 만들 때 그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경주 원원사지(とおねがいてら)에 있는 삼층석탑이 그 효시가 되고 있다....

  • 이토 히로부미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정치가이다. 무사 지위도 얻지 못한 하급 신분이었지만 본인의 역량과 좋은 스승,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일본의 초대 수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존왕양이 활동을 하다 영국 유학을 거치면서 개국론자로 변신, 이후 일본의 개국과 식산흥업을 통한 부국강병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근대 독일을 국가 모델로 삼아 각종 정책 및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다. 45세에 초대 총리가 되어 천황 아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독단적인 국정 장악과 운영으로 많은 적을 만들었다. 정계의 중심에서 물러난 후엔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한국 병탄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러시아 방문 중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하여 사망하였다. [출생과 성장]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 9월 2일 조슈(長州ちょうしゅう) 번의 스오(周防すおう) 국 쿠마게(熊毛くまげ) 군 쓰카리무라(束荷つかりむら)에서 농민 하야시 주조(はやし十蔵じゅうぞ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주조는 새로운 생활을...

  •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잖아. 어버이날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1973년에 시작됐거든.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뜻에서 ‘어버이날’로 불렀지. 박정희 대통령은 “동양사상의 근본은 충과 효다. 충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효는 부모를 잘 섬기는 효”라고 말했어.그런데 왜 ‘충’과 ‘효’를 강조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면서 국민들의 다양한 주장을 힘으로 억눌렀어.하지만 뼈 빠지게 일해 봤자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고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어.이런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는 한 방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처럼 국가에도 충성하라고 강조했던 거야. 길거리의 담벼락, 집과 빌딩의 문, 학교와 관공서의 꼭대기 층마다 ‘충효’라는 글자를 내걸었지.또한 전통 예절과 생활 예절이란 말을 강조하는 한편 ‘예절의 달’을 정해 국민예절운동, 경로운동, 가훈짓기운동 따위를 벌였어. 어버이날은 원래 ‘어머니날’이었어....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서 있던 목탑.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불에 소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삼국 중 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 하지만 결국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열세를 극복하고 대역전극의 서사를 지닌 신라인데도 사람들은 신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그 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고구려 때 갖고 있던 그 광활한 영토를 잃어버린 건 왠지 신라 탓인 것만 같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에 대한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룬 신라, 그 꿈을 이뤄낸 선덕여왕의 집념. 그 위대한 여정이 황룡사 9층 목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불에 타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황룡사지 터의 ‘심초석’들은 엄청났던 황룡사 9층 목탑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가운데 심초석을 중심으로 해서 64개의 거대한 받침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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