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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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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93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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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소에게 한 말은 사라져도 아내에게 한 말은 밖으로 새어나간다.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은 반드시 새어나갈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말을 조심해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어린아이의 말일지라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말을 받아들일 줄 아는 총명함이 있다면 당연히 어린아이의 말일지라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노랫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오래 들으면 싫증이 난다. (좋은 말이라도 여러 번 하면 듣기 싫다는 뜻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사돈집에서 먼저 한다. (나는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반대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안 땐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나겠는가? (근거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비방일지라도 모두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말이 많은 집은 장맛도 나쁘다. (말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실제로는 덕이 없다는

  • 이 글은 통일 제국을 세운 지 9년 째 되는 해(진시황 34년), 승상 이사가 진시황에게 '진나라에 관한 기록이 아닌 모든 기록과 시( : 시경)와 서(しょ : 서경) 그리고 제자백가의 저서를 불태워버리라'고 요구한 내용이다. 이사는 의약·점복·농업에 관한 실용서와 법령을 제외한 모든 기록과 서적들을 없애고자 했다. 진시황이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함으로써, 그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焚書ふんしょ)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글은 '분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글이다. 학문 서적들을 모두 불사르라고 간언한 내용인 '소서(やきしょ)'를 명문(名文めいぶん)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진나라의 통치 이념인 법가 사상과 유가 사상이 어느 지점에서 대립하고 충돌했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즉, 학문 탄압의 명분을 찾은 글로 볼 수도 있으나, 당시 법가와 유가가 추구했던 이념적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명문(名文めいぶん)이라고 해도

  • 제왕(帝王ていおう)이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던 왕조 시대(王朝おうちょう時代じだい)를 지배한 두 가지 중요한 정치사상이 있다. 그 하나는 왕도정치(王道おうどう政治せいじ)이고, 다른 하나는 패도정치(覇道はどう政治せいじ)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정치 사상가는 유가(儒家じゅか)라고 할 수 있고, 후자를 대표하는 정치 사상가는 법가(法家ほうか)라고 할 수 있다. 왕도정치와 패도정치를 둘러싼 논쟁은 현실 정치 무대를 어떤 사상을 추종하는 정치가들이 장악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여기에서는 유가(儒家じゅか)인 맹자와 순자의 왕도정치 사상과 법가(法家ほうか)인 상앙과 한비자의 패도정치 사상을 비교하는 한편 춘추전국시대 당시 제후(諸侯しょこう)들이 어떤 정치사상을 선호(選好せんこう)했는가를 살펴보았다. [왕도정치] 공자와 그 제자인 유가(儒家じゅか)들이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삼았던 것이 왕도정치(王道おうどう政治せいじ)였다면 법가(法家ほうか)와 병법가 그리고 종횡가 등의 사상가, 제후(諸侯しょこう)나 권문세족 같은 최고 권력자들이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삼았던 것은...

  •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제기해 온 질문이다. 특히 인간은 선(ぜん)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あく)한 존재인가 하는 질문과 논쟁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철학, 정치,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선(ぜん)과 악(あく)을 둘러싼 인간 본성론(本性ほんしょうろん)에 관한 논쟁은 수많은 학파(學派がくは)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 논쟁은 학자들이 각기 다른 정치와 사회, 도덕과 윤리에 대한 원칙과 해법(解法かいほう)을 내놓게 했다. 여기에서는 성선설(性善說せいぜんせ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性惡說せいあくせつ)을 주장한 순자를 중심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춘추전국시대의 논쟁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 성악설(性惡說せいあくせつ)을 주장한 학자들 중 예(禮)를 통한 교화를 중시한 순자와 법치(法治ほうち)를 중시한 한비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간의 본성은 선(ぜん)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에게 인간의 본성이 선(ぜん)한가 아니면 악(あく)한가 하는 문제

  • 춘추전국시대에는 유가·묵가·법가·종횡가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을 만나 정치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철학을 내보여 제후가 이를 받아들이면 크게 발탁되어 재상의 반열에까지 오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 없이 다른 나라의 제후를 찾아가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었다. 이들은 '유세객(ゆう說客)'이라 불렸는데, 공자나 맹자 역시 유세객의 신분으로 각국의 제후와 중신(重臣じゅうしん)들을 만나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폈다. 이 글은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데, 글자 뜻 그대로 '설득의 어려움', 즉 상대방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그에 알맞은 말로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밝혀 놓았다. 그런데 설득의 어려움을 깊고 예리하게 통찰한 한비자 자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난(說難)'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였다. ▣ 설득의 어려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설명하여 상대를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 당시에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옛날에 어려웠던 일이 오늘날 반드시 어렵지는 않으며, 오늘날의 어려운 일이 옛날에 반드시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숙묘조(肅廟あさ)에는 인재의 등용과 버림을 어려운 일로 여겼고, 선조(さきあさ)에는 탕평(とろけたいら)을 어려운 일로 여겼다. 오늘날에는 오늘날의 어려운 일을 구하여 잘 해 나가야 어려운 일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當時とうじ難事なんじためなん. いにしえ難事なんじ. こん未必みひつためなん. いま難事なんじ. 未必みひつためなん. 肅廟あさ用捨ようしゃため難事なんじ. さきあさ. とろけひらたため難事なんじ. 今日きょうのりもとめ今日きょう難事なんじ. かつはた做去. ほういい難事なんじ.

  • 통일제국의 설계자 역사가들에게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운 첫 번째 공신(功臣こうしん)은 누구일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사(李斯)'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이사(李斯)'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을 경우, 대부분 간신 아니면 분서갱유의 주범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우리들은 대개 역사 속 인물들을 볼 때, 영웅은 태어날 때 영웅이었고, 간신은 태어날 때부터 간신이었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편견이다. 이사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사기』 「진시황본기」나 「이사열전」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그는 매우 뛰어난 정치적 능력과 통일국가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던 정치가였다. 분서(焚書ふんしょ) 사건 역시 법가로서 자신의 사상적 신념에 충실했던 것이지 무슨 정치적 야심이나 유가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시행한 것은 아니다. 또한 분서 사건은 효공 때 상앙의 사례에서 보듯이, 법가 이념에 따라 국가를...

  • 나는 일찍이 말이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를 할 때, 자네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면 모두 답변을 하고 또 자네 혼자 떠드는 말도 많네. 내가 집으로 돌아가 자네가 한 말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나 계산해 보았네. 자네가 한 말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더군. '다언(多言たげん, 많은 말)'을 경계하는 가르침을 제쳐 두더라도, 어찌 자네의 정신과 기운이 해로움을 입지 않겠는가? 좌중에 자네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물으면 저 사람이 대답하고 저 사람이 물으면 이 사람이 대답하고 해야지, 왜 자네 입으로만 모든 말에 대답하려고 하는가?" 나는 어떤 손님에게 아무개(이 사람 또한 무척이나 말이 많은 사람이다)가 실제로는 말이 적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깜짝 놀라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자라나는

  • 속담에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혀에서 나간다."고 했다. 또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다."라고도 했다. 모두 말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에게 재앙이 찾아오는 길은 수만 가지지만, 오직 말을 통해 오는 재앙이 가장 가혹하다. 그래서 중국 주나라의 종묘에 놓인 금인(かねじん)의 입을 세 번 봉함으로써, 옛사람들은 후대에까지 '입을 조심하라'는 뜻을 전했다. 어찌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을 많이 하면 지루하고 귀찮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싫어한다. 또한 말이 많다 보면 자연히 그 말 가운데 망령된 말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말을 적게 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 말을 적게 하되, 그 말의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가볍게 말을 내뱉으면 해로운 일을 자주 겪게 되니, "병마개를 막듯 입을 지켜라."라는 속담은 대체로 말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밖에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유명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 이웃들은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 정도였다. 칸트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면서도 이성에 의한 인간 존엄성 확립을 위한 철학을 정립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실천이성비판』의 말미에 있는 "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 new and increasing admiration and awe, the more often and steadily we reflect upon them: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가 그의 묘비명이다.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숭고한 감정과 도덕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다

  • 이 글은 한비자가 저술한 『한비자』 「망징(ほろびちょう)」편에 실려 있는 것으로, 임금을 중심으로 왕족과 측근, 중신(重臣じゅうしん) 등 상류계급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 전국시대 말기의 사회 혼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비자』의 「망징(ほろびちょう)」편은 글자 뜻 그대로,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말하고 있다. 한비자는 여기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징후로 볼 수 있는 47가지 사례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한비자는 47가지 망국의 징후들을 제대로 포착하여 국가를 개혁하지 않는 한, 그 나라가 멸망의 길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했다. 강력한 왕권과 법치의 전통을 세운 진나라만이 살아남고, 그 외 전국시대의 제후국들이 모두 멸망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보면, 한비자의 예견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나라가 망하는 47가지 사례 いち. 대개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는 작은데 대부(大夫たいふ)들이 차지한 영토는 크며, 임금의 권위는

  • 아첨하는 말에도 상중하의 수준이 있다. 몸을 가지런히 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하게 하고, 명예나 이익에 초연하고, 상대방과 사귀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척하는 것이 최상의 아첨이다. 또한 간곡하게 바른 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잘 활용해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은 중급 수준의 아첨이다. 말발굽이 다 닳도록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고, 돗자리가 다 떨어지도록 뭉개고 앉아 상대방의 입술과 안색을 살피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좋다고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이런 아첨은 처음 들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자꾸 듣다 보면 도리어 싫증이 나는 법이다. 그러면 아첨하는 사람을 비천하고 누추하다고 여기고, 끝내는 자신을 갖고 노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된다. 이를 두고 하급의 아첨이라고 하는 것이다. • 메모 좋은 말은 하기 좋은 말이 아니라 옳은 말입니다. 좋은 말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옳은 말입니다

  • 천재 가의(賈誼) 가의는 전한(前漢ぜんかん) 시대 최고의 천재 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가의는 어려서부터 시문과 제자백가의 사상에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중국 역사상 4대 태평성대 가운데 하나인 문제(ぶんみかど) 시대에 최연소 박사가 되었다. 태평성대의 시기에는 원래 학문과 문화가 번성하기 때문에, 역사상 최고의 문재(文才ぶんさい)를 드러낸 학자들은 이때에 많이 배출된다. 가의는 학문과 문화의 전성기에 최연소로 박사가 되었던 것이다. 박사가 된 지 1년 만에 태중대부(ふとしちゅう大夫たいふ)가 되어 진(はた)나라 때부터 내려온 법률과 관리제도, 예악 문화 등의 제도를 개정했다. 또한 국가의 관직과 제도 정비를 위한 수많은 의견을 황제에게 올렸다. 그러나 '재주가 많은 자는 시기와 질투하는 자도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약관의 어린 나이에 조정에 나와 국가의 각종 제도에 대해 직언(直言ちょくげん)을 하는 가의(賈誼)를 권력과 이권에 흠뻑 빠져 있는 고관대작들이 곱게 보았을 리 만무하다. 결국 고관

  • [최고의 스승은 부모] 예부터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 내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동서고금(東西とうざい古今ここん)을 막론하고, 자식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오죽했으면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내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했겠는가? 고전(古典こてん) 속에는, 부모가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안씨가훈(かお氏家うじいえさとし)』, 『가범(いえはん)』, 『소학(小學しょうがく)』 등에 실려 있는 기록들을 통해,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 1. 자애롭되 위엄(威嚴いげん)을 갖추어야 한다.] 총명한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성공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가르쳐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옛날 성왕(聖王せいおう)들은 태교법(胎敎たいきょうほう)이 있었다. 아이를 임신한 지 3개월이 지

  • 『한비자』 : 법가 사상의 보고(寶庫ほうこ) 중국 역사에 따르면, 춘추시대의 최대강국이었던 진(すすむ)나라가 멸망하고 한(かん)·위(たかし)·조(ちょう) 세 나라로 나누어진 기원전 453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230여 년간을 전국시대(戰國せんごく時代じだい)라고 한다. 전국시대는 춘추시대보다 더 첨예한 정복 전쟁의 시대였다. 제후국들 간의 침략과 약탈 전쟁이 빈번하다 보니, 제후들은 온통 부국강병책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각 제후들의 이와 같은 국가 전략을 진두지휘한 이들은 '법치(法治ほうち)와 농전(のうせん)'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한 법가 사상가(정치가)들이었다. 법가들은 법치를 통해 각국의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한편 백성들이 오로지 농사와 전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를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전시동원체제화' 했다. 특히 법가들은 부국강병과 체제개혁을 위해 군주권의 강화에 큰 힘을 쏟았는데, 이로 인해 유가와는 또 다른 '제왕학(帝王ていおうがく)'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법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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