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근
혜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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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혜근( |
출생 | 1320년 2월 24일 고려 경상도 영해 |
입적 | 1376년 6월 2일 고려 양광도 여흥 신륵사 | (56세)
입적원인 | 병사 |
거주지 | 고려 개경 |
국적 | 고려 |
속명 | 아원혜( |
경력 | 공민왕(왕전)의 왕사 |
활동 기간 | 1339년~1376년(법랍 37세) |
종파 | 대승불교 |
소속 | 고려 양광도 양주 회암사(주지승) |
출가 | 1339년 고려 충숙왕 치세 말기 시대의 서해도의 장연의 묘적암( |
저작 | 《몽산법어( |
직업 | 불교 승려( |
스승 | 요연 |
제자 | 야운 |
배우자 | |
자녀 | |
부모 | 아서구(부), 연일 정씨 부인(모) |
웹사이트 | 혜근(나옹 선사)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한국의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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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근(한국 한자:
생애[편집]
원(
혜근(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양광도 양주 소재 회암사에서, 지난 4년 동안 밤낮으로 홀로 앉아 정진하던 중에,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5]
1347년(충목왕 3년)에 원나라 말기 시대의 옌징(
그 후 1351년(충정왕 3년)부터 1354년(공민왕 3년)까지, 중국 원나라 전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5]
1354년(공민왕 3년)에서부터 이듬해 1355년(공민왕 4년)까지는, 원(
1358년(공민왕 7년)에 고려로 귀국했으며, 1360년(공민왕 9년)에 오대산에 머물렀다.[5]
1361년(공민왕 10년)에 왕(공민왕)과 태후(공원왕후)와, 궁주(덕녕공주)의 청으로 인하여, 전라도 장수 소재 신광사(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구월산에 들어갔었고, 1365년(공민왕 14년)에는 물러나는 것을 허락받았으며, 그 후 여러 산사(
1370년(공민왕 19년)에는 회암사(
1371년(공민왕 20년)에, 법복(
1376년(우왕 2년)에 낙성(
저서[편집]
- 《몽산법어》
- 《나옹화상행장(
懶 翁 和 尙行狀 )》 - 종로도서관 소장 고려 후기의 선사 나옹화상 혜근(惠 勤 , 1320-1376)의 행장(行狀 ), 어록(語錄 ), 가송(歌 頌)을 각련(覺 璉)이 집록(輯錄)하고, 혼수(混 修 )가 교정하여 간행한 선가(禪家 ) 법어집(法語 集 )이자 유고 문집.
관련 문화재[편집]
- 나옹화상어록 및 나옹화상가송 - 보물 제697호
-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 보물 제822호로 나옹선사가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 나옹님 - 중요민속문화재 제17-12호
- 나옹선사부도및석등 -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50호
-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08호
전기 자료[편집]
- 이색, 『목은문고』 권14, 보제존자 시 선각탑명
각주[편집]
- ↑ 단, 1325년(충숙왕 12)까지의, 만5세 시절에, 한자(
漢字 )의 이름의 일부를牙 元 慧 로 개명(改名 )하기 이전의 아명(兒 名 )은牙 元 惠 - ↑ 속명(
俗名 )은 아원혜(한국 한자:牙 元 慧 )로 알려짐. - ↑ 음력 1월 15일
- ↑ 음력 5월 15일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이색, 『목은문고』 권14, 보제 존자 시 선각의 탑명.
- ↑ 혜근(
惠 勤 , 1320년생~1376년졸; 속명은 아원혜) 선사 그의 부친 아서구(한국 한자:牙 瑞 具 , 1288년생~1331년졸, 원래 원나라 셴양 출생.)의 경우에는, 1288년, 원(元 )의 산시(陝西 )의 셴양(咸陽)에서, 한족(漢 族 )의 후손(무녀독남 외동아들)으로 출생하였으며, 만6세 시절이었던, 1294년(충렬왕 20년)에, 지난날 쓰촨 청두·산둥 칭다오 등으로 시집 떠난 두 고모(姑 母 )들은, 아쉽게도 원나라 자국에 남기어 두고, 부모(父母 )·조부모(祖父母 )와 함께 모두 다섯 명(직계 일족)이서만, 원나라의 셴양 향리를 떠난 훗날, 같은 해(1294년)에 원나라를 아주 출국하였고, 고려(高麗 )의 경상도(慶 尙道)의 영해(寧 海 )로 건너온 이후 사실상 고려에 정착하여, 훗날 고려의 경상도 영해에서 조부모상(祖父母 喪 )과 부모상(父母 喪 )을 모두 치렀으며, 1331년(충혜왕 1년)에, 고려(高麗 )의 경상도(慶 尙道)의 영해(寧 海 )에서 하세(향년 44세)한, 원나라의 고려 이민자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