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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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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가(いえ)

구분 단편 소설
저자 박완서
발표매체 현대문학
발표일 1989. 11.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어젯밤의 동창모임을 하고 집에 들어온 것은 한시가 넘어서였다. 현관문을 따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오셨다는 말을 전한다. 어머니는 성구에게 할머니를 뵙기를 청하지만 취했다는 이유로 성구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렇잖아도 결혼을 앞둔 성구에게 홀어머니는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 교제한 지 일년이 넘는 다영은 어머니도 며느리 감으로 허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영은 결혼을 하기 전에 확실히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 어머니를 모셔야 되나 안 모셔도 되나였다. 성구도 그 문제에 대해 어머니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해주시지 않는다. 성구가 여덟 살 때 홀로된 어머니는 근검 절약하여 남매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그리고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에도 어머니의 근검절약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성구는 쉽사리 나가 살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집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자 외할머니가 뵙고 싶어졌다. 그는 외할머니에 의해 다영의 부담이 과중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잠시 한다.

그는 할머니를 뵙기 위해 안방 문을 열어보나,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그는 베란다에서 할머니의 두상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13층인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외할머니가 흩뿌린 점점의 다홍빛이 핏자국이 보였다. 성구는 현관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는 5층에서부터 계단을 통해 걷는다. 성구는 외가에 대해, 외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성구의 외가는 파주에서 십대를 넘게 터를 잡고 번성한 향반이라고 했다. 그런 외가에 어머니가 기피현상이 있는 것이 예사 결벽증하고 다르다는 사연을 접하게 된 건 외삼촌이 기어코 집을 팔아먹고 나서였다.

파주땅 교하면 성씨가의 셋째 딸인 성구의 외할머니(교하댁)는 열 여덟 살 때 조씨가의 둘째 며느리로 들어왔다. 교하댁의 시댁은 시골 양반이 대개 다 그러하듯이 며느리를 호미들려 들에 안 보낸다 뿐이지 풍년에야 배를 곯지 않을 정도였으며, 일이 고되었다. 또한 시할머니까지 계신 층층시하에 거느려야할 식구도 수월찮았다. 교하댁은 삼 년 안에 첫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뒷간에 갔다오는 길에 쓰러지더니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숨을 거두자, 새사람이 들어오고 삼년 안이 어렵다느니 하는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재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막내 시동생이 불장난을 하다가 사랑채를 홀랑 불내고 말았다. 그 불로 번듯하던 집이 벌거벗은 것처럼 안채를 드러내게되자 급한 대로 사립문을 닫았으나, 방이 모자랐다.

그리하여 시할머니의 분별하에 거쳐가 정해졌는데 맏며느리 내외에게만 따로 방을 내어주고, 나머지 식구는 남자와 여자가 나누어 자게 한다. 딸 둘뿐인 맏아들 내외에게 아들을 바라고 합방을 시키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자 맏이는 건넌방으로 건너가라고 명령이 내려졌다. 쇠죽 가마솥이 걸린 건넌방 따뜻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들들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하면서도 며느리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둘째 내외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4년 동안 합방의 기회가 없음에도 보리이삭이 필 무렵 보리밭 이랑에서 아이를 만들 아이 둘을 더 낳았다. 이것은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 가운데 셋째 아들을 장가를 들이면서 조그맣게나 새집을 지어 세간을 내는 걸 본 둘째 내외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소학교밖에 안나왔지만 체질이 약하고 자존심이 강해 농사짓기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둘째는 어느 날 대처로 돈벌이를 떠난다.

일년만에 세간을 낼 만한 돈을 벌어오자 드디어 교자댁은 세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교하댁은 세간을 내고 아들 둘을 더 낳았다. 아들 셋, 딸 둘 도합 오 남매였다. 소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이 하루는 화경을 빌려왔다. 먹칠을 한 종이에다 화경으로 햇빛을 모아 연기가 올라오게 하고 마침내 빨갛게 인화되는 것을 재미있어하던 일순이(성구 어머니) 남매는 지는 해를 쫓아 굴뚝 모퉁이에서 그 장난을 치다 지붕을 이려고 엮어 놓은 이엉에 옮겨 붙어 불을 낼 뻔하였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던 교하댁이 이엉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발견하고 동이째 물을 부어 불은 간단히 잡혔지만 교하댁의 분노는 컸다. 살림나고 나서 화경으로 인한 불상사 외엔 교하댁은 근심이 없고, 재미가 났다.

그러나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삼남매를 잃었다. 한 집에서 셋씩이나, 그것도 애초상만 난 집은 그 집밖에 없었다. 교하댁은 원통하고 부끄러웠다. 교하댁의 눈은 짓무르고 우물에도 못나갔다. 어느 날 남편이 혼잣말로 '수돗물 먹고사는 경성 사람은 걸리지도 않는 병을 부모 잘못 만나....'하는 소리를 듣고, 남은 자식들만은 서울에서 길러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교하댁은 가산을 정리하여 고향을 등졌다. 가산을 정리한 돈으로는 장안에선 전세방을 얻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들은 청량리 밖에, 거름 냄새나는 동네에다 방을 얻었다. 남편 조씨는 남대문통에 있는 일본인 도매상회의 배달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일본인은 월급을 박하게 주지 않고 배 곯을까봐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나 조선인은 비위생적이다라는 고정관념으로 남편의 손·발톱까지 조사하고 잔소리하려 하였다. 덕택에 서울살이 1년만에 때를 벗고 사무원 같아졌다. 남편의 소원이 주인의 신용을 얻어 사무직이 되는 거였기 때문에 교하댁은 남편이 목간통에 가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또한 교하댁은 이웃에게도 남편이 나나카회사 사무원이고, 곧 집 장만을 해서 셋방살이를 면할 거라고 으스댔다. 교하댁은 아이들에게도 잘 먹이고, 씻기고, 빨아 입히는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고향에서도 그들은 서울에 가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소문에 서울에서 뭔가 시작해 볼려고 상경하는 고향친척이나, 친구들이 제일 먼저 찾아왔지만 교하댁은 그들을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하루는 남편의 친구가 소·전답을 판 8백원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때 마침 안집아이들과 교하댁 아이들의 싸움이 나서 어른 싸움이 되어 집을 나가야하게 된다. 교하댁은 지기가 싫어서 방을 복덕방에 내어놓기 전에 집을 계약한다. 그것은 친구가 가지고온 8백원을 믿고 저지른 일이었다. 결국 친구에게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고 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나, 교하댁은 돈을 이백오십원 밖에 갚질 못해 고향에서 도둑년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친가·시가가 그 돈을 갚아주었지만 그것은 교하댁과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교하댁은 친가와 시가에서 상종하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백 평이 넘는 집은 푸성귀를 심어 먹을 수 있었고, 집을 몇 칸 늘여 세를 주었다. 남편이 징용에 가도 남매를 중학교에 보낸 건 집의 덕이었다. 징용에서 돌아온 남편이 미군부대 경비로 취직하면서 살림형편도 좋아졌고, 방 값도 다달이 높아졌다. 교하댁의 맏아들이 기골이 장대한 청년으로 자라 교하댁이 교만해졌을 무렵 6·25전쟁이 터지고, 그 해 가을 징집되어 나간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일년만에 되돌아 왔다.

침식을 전폐하고 침통해하던 교하댁이 남편에게 아이 하나를 더 낳자고 한다. 이때 교하댁의 나이가 마흔 다섯 살이었다. 교하댁은 남편에게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아들 하나를 더 낳겠다고 장담을 하여 웃음거리가 되나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남편은 아내가 생 남 한 것을 보고도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이년이나 더 병상에 있으면서 가산을 탕진했다. 조씨는 집을 팔자고 하나, 교하댁은 그럴 때마다 양갈보 노릇을 해서 돈을 벌어 오면 벌어왔지 집은 못 판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집은 다시 황금 알을 낳기 시작했다. 백 평 땅을 근거로 아들을 삼수 까지 해서 대학을 졸업시키고 취직도 하게 했다. 그러나 연애를 하면서 수많은 방이 부끄럽다고 하여 색시 감을 데려오지 않자 외할머니는 오십 평의 땅을 팔고, 그 판돈으로 오십 평에다 양옥집을 신축했다. 외삼촌은 좀더 잘 살아보려고 다니던 주방용품회사를 그만두면서 그 회사 대리점을 따내었다.

그 과정에서 집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외할머니는 모르게 하였다. 한 이삼년은 잘 살았으나, 부도가 났다는 소문과 함께 외삼촌은 대리점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그 동안 회사에 진 빚이 삼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그때는 외할머니의 충격이 크지 않았다. 집을 팔면 변두리라도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삼촌 내오는 제일 집 값이 비싼 강남에서도 반포에 작은 아파트를 얻었고 자가용도 구입했다. 자식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 집에 외할머니의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구는 외할머니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자 가슴이 감동으로 벅찼다. 그는 외할머니의 주검을 확인하러 가는 중에 아장아장 걸어오는 외할머니와 마주쳤다. 쪽을 다 찌니 외할머니가 그를 발견하더니 두 손을 벌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질 것 같은 외할머니 어깨를 얼떨결에 안았다. 외할머니는 성구가 아침부터 어디를 갔다 오냐는 질문에 장독대에 나갔다가 금비녀를 떨어뜨려 주우러 나갔다가 한참이 걸린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성구의 신세를 지게 되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의 소리가 성구에게는 메마른 울음소리로 들렸다. 성구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대신 할머니를 한번 번쩍 안아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어머니하고 상쇄시키기엔 너무나 가벼운 무게라고 생각하면서….

출처

제공처 정보

  • 저자 권영민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1948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버클리에서 한국문학 초빙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 현대문학평론상, 1992년 김환태평론상, 2006년 만해대상 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외에도 서울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 현대문학사』, 『우리문장강의』, 『서사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한국 근대문학과 시대 정신』, 『월북 문인 연구』, 『한국문학 50년』, 『윤동주 연구』, 『작은 기쁨』 『문학의 이해』등이 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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