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와 후기에 여자의 혼례복으로 많이 사용한 것은 활옷과 원삼이다. 특히 활옷은 공주와 옹주의 대례복으로서, 서민에게는 혼례 때에 한하여 사용이 허락되었다. 활옷에는 다홍색 비단에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이성지합 백복지원, 수여산 부여해(
혼례는 의혼(
의혼은 혼인 상대를 구하여 혼인을 합의하는 과정으로 남자는 열다섯 살 이상, 여자는 열두 살 이상이면 의혼할 수 있었다. 양가에서 혼인에 합의하면 신랑의 사주를 적어 신부 집에 보냈는데, 이를 납채라 했다. 사주를 받은 신부 집에서는 혼인날을 정해 신랑 집에 적어 보냈다.
혼인날이 정해지면 신랑 집에서 혼서(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혼례 행렬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신랑은 흰 말을 타고 보랏빛 비단 단령(
친영은 신랑이 신부 집에서 초례(醮禮)를 올린 뒤 신방을 치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초롓날 신부는 짙은 화장을 하고 혼례복을 갖춰 입고, 눈썹에 왜밀(
신랑 집에 도착하여 신부는 시부모께 인사를 드리는데 이때 친정에서 마련해 온 대추, 밤, 술, 약포 등으로 폐백상을 차렸다. 시댁에서 새사람으로서의 예를 치른 신부는 사흘 또는 일주일 뒤에 신랑과 함께 친정으로 갔다. 이를 재행(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이옥(李鈺)이라는 여인이 신혼 시절을 시로 남겼는데, 조선 여인의 삶을 읽을 수 있기에 소개한다.
신랑은 목안(
신부는 건치(
그 꿩이 울고 그 기러기 날 때까지
두 정 그치지 않으리
복 있는 손으로 홍사배(
낭군에게 권하나니 합환주를
첫 번 잔에 아들 낳고
세 번 잔에 오래 사네
시어머님께서 예물 주시니
한 쌍 옥동자에
끼어 보자는 말도 못 하고
보에 싸 장 속에 넣었네
사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오경에 시부모님께 문안 올릴 제
기왕에 시집왔으니 다짐하기를
침식 잊고 힘쓰리라고
사람들은 다 비단 바느질을 꺼리나
나는 병정 옷 그 바느질 중히 하리
농부는 가문 밭에 호미질하고
가난한 집 부녀는 베를 짜는데
임은 흰 말 타고 장가왔고
나는 붉은 가마 타고 시집갔네
어머님이 문에 나와 분부하되
시부모님 잘 모시라 하시네
누에 쳐 주먹만 하매
뜰아래에 가 뽕을 따네
동해주(
몸소 쳐 보고 싶어 치노라
임의 옷 짓고 깁다가
꽃내음이 서리어 시들해지는 때면
굽은 바늘 옷섶에 꽂고
앉아서 숙향전을 읽는다
초록 상사단(
쌍침(
손수 세 겹으로 접어
얌전히 손을 내어 임에게 바치도다
사람들은 다 그네놀이 하는데
나는 홀로 그 틈에 못 끼누나
팔의 힘 여리다 들었거니
옥룡 비녀 떨구면 나는 어이리
해 무늬 고운 보에 싸서
피죽상에 간직한 옷감
밤에 임의 옷 마르니
손에도 향기, 옷에도 향기로다
진홍빛 화포(
아청빛 토주(
게다가 운문단(
황금빛 거북이 네 귀를 눌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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