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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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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물품
성격 복식, 장신구
용도 장신용
관련의례 가례(よしみれい), 탄일(誕日)

목차

  1. 정의
  2. 내용

정의

저고리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부녀자들의 장신구.

내용

다채로운 색상과 귀한 패물을 사용하여 단조로운 우리나라 의상에 화려하고도 섬세한 미를 더해준다. 노리개는 조선시대 여성의 장신구로서 전시대(ぜん時代じだい)에 많이 애용하던 목걸이나 귀걸이가 쇠퇴한 대신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장신구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언제부터 패용(佩用はいよう)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요대에 달던 요패나, 고려 때 포(ほう)에 매던 허리띠에, 금방울[きむ鐸] 또는 향료를 넣은 금낭(にしき囊)을 차던 풍습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노리개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노리개는 띠돈[帶金おびがね]·끈[] 및 주체가 되는 패물(さんさく 또는 單作たんさく)·매듭[まい緝]·술[ながれ] 등으로 구성된다. 띠돈은 주체가 되는 패물을 연결한 끈을 한 곳에서 정리하기 위해 만든 고리로 고름에 걸게 되어 있다.

재료로는 금·은·백옥·비취옥·금패·산호(珊瑚さんご) 등을 사용하고, 형태는 정사각형·직사각형·원형·화형(花形はながた)·나비형·사엽형(四葉よつばがた) 등으로 만들었다. 화문(はなもん)·쌍희자문(そうもん)·용문·불로초문 등의 길상문양을 장식하였다.

주체가 되는 패물은 한 개 또는 세 개를 다는데, 한 개로 된 노리개는 단작(또는 외줄)노리개, 세 개가 한 벌로 된 노리개는 삼작노리개라 하였다. 매듭은 주체를 중심으로 상하에 있어 주체를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의 구실을 하는 것이며, 그 밑에는 술이 달려 있다.

매듭과 술은 홍·남·황의 삼원색을 기본색으로 하여 분홍·연두·보라·자주·옥색 등을 사용한다. 그 크기는 노리개에 다는 패물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노리개에 사용된 술의 종류로는 딸기술·봉술·끈술·방울술이 있다.

일반적으로 노리개 위쪽의 다양한 매듭부분은 짧은 저고리의 길이와, 훤칠하게 드리운 술부분은 긴 치마길이와 같은 비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우연히 생긴 결과라기보다는 도자기나 건축양식 또는 의상 등에서 흐르고 있는 우리 나라 고유의 특색인 선의 아름다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노리개는 다는 패물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예복용과 평복용으로 구분되며, 패물의 종류·형태, 술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재료로는 금·은·동 등의 금속류와 백옥·비취옥·자마노(むらさき瑪瑙めのう)·홍옥·청강석(あおつよしせき)·진옥(眞玉またま)·금강석·공작석(孔雀石くじゃくせき) 등의 옥석류(玉石ぎょくせきるい) 등이 사용된다. 또한 밀화(みつはな)·산호(珊瑚さんご)·진주·금패(にしきかい)·대모(玳瑁たいまい)·호박(琥珀こはく) 등의 보패류(寶貝ほうがいるい), 색사(いろいと)·주단(綢緞)·금은사 등이 사용된다.

형태에는 동자·박쥐·거북·나비·오리·붕어·매미·자라·해태 등의 동물형태와, 가지·고추·포도송이·목화송이·천도·연화·석류 등의 식물형태가 있다. 또한 호로병·주머니·종·표주박·북·장구·자물쇠·안경집·도끼·방아다리·방울·투호(とうつぼ)·장도(粧刀)·석등·벼루 등 생활주변에서 얻은 형태, 또 불수(ふつしゅ)·염주(念珠ねんじゅ) 등의 형태가 있다.

궁중에서는 가례(よしみれい)·탄일(誕日) 등 특별한 축의일(祝儀しゅうぎ)에는 왕비를 비롯하여 그날 참례하는 귀부인들까지 삼작노리개를 찼다. 평상시에도 왕비가 대비전에 문후를 드릴 때는 금박스란치마에 당의를 입고 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

또 철에 따라 오월단오부터는 백옥·비취로 된 외줄노리개를, 팔월추석부터는 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 왕비만이 찰 수 있었다는 삼천주(さんせんたま) 노리개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さんせんだいてん世界せか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주 큰 진주를 셋씩 꿰었다고 한다.

또, 대례복의 봉띠에 차는 대삼작노리개는 손바닥 크기가 넘는 산호가지와 백옥나비·밀화불수 등 조형미와 진귀성을 보여주는 패물들을 기품 있게 쭉쭉 뻗은 낙지발술 위에 달아 만들었다. 민간에서는 주로 은삼작을 찼으며, 혼례 때 사용하고는 백지에 싸고 또 비단보에 싸서 상자 속에 간직해두었다가 친척의 혼인 때나 꺼내 썼다고 한다.

형태는 방아다리·장도·투호·박쥐·나비·호리병·주머니 등으로 세공하거나 부귀다남·불로장생 등의 글자를 투각하였다. 소녀용인 소삼작이나 외줄노리개는 분홍·연두·노랑 등 좀더 화사한 빛깔이나 색동술로 된 것을 볼 수 있다.

도래매듭·국화매듭·가지방석매듭 등을 맺고 봉술·딸기술을 쌍으로 늘였으며, 패물은 동자·탑·가지·도끼·나비·주머니·오리·호리병·고추 등의 금속세공품에 금을 올리거나 칠보를 올린 것을 사용하였다.

이밖에 물소뿔·연꽃등[蓮花れんげとう]의 형상 위에 불로초무늬·당초무늬·연잎무늬 등을 수놓은 수노리개가 있었다. 또한 향을 꿰어 만들거나 향주머니·향갑에 담아 만든 노리개, 바늘을 담는 침낭, 장도를 달아 만든 노리개가 있었다. 이들은 장식용뿐 아니라 실용성도 겸비한 장신구였다.

즉, 향갑에 넣는 사향은 뒤뜰이나 동산을 거닐 때 뱀의 범접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그 향을 갈아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면 급한 체증에 효험이 있는 구급약품의 구실도 하였다. 장도를 달아 만든 노리개는 여성의 호신용 무기로 자결이나 적에 대항하는 데 쓰였다.

침낭도 부녀자들이 항시 사용하는 바늘을 손쉽게 찾아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실용적이던 것이 장식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호박·금패로 된 패물을 갈아 응급용 지혈제로 이용하였다는 구전을 미루어보면, 이러한 패물을 몸에 지니는 것은 원래 사치가 아니라 부덕(婦德ふとく)의 소치였다고 할 수 있다.

궁중과 상류사회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 애용되었던 노리개는 친가와 시부모로부터 예물로 받고 다음에는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으므로 대를 잇게 마련이었고 가보로 여겨졌었다. 또한, 노리개를 패용하는 정신적인 배경에는 부귀다남·불로장생·백사여의(百事ひゃくじ如意にょい) 등 그 시대의 행복관을 바탕으로 한 염원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장신구』(김희진, 신동아, 1969)
  • 『한국매듭』(김희진, 광명인쇄공사, 1974)
  • 『한국민속대관』 2(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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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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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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