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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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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매년 10월 15일에 열리는 기념일. [개설] 순천시민의 날 행사는 애향심과 향토문화예술의 배양을 목적으로 하며 순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향토]문화예술제’의 성격도 함께 띠고 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순천시민의 날은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면서 「순천시민의 날 행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매년 10월 15일을 ‘시민의 날’로 정하여 2019년이 25회를 맞이하였다. 통합 이전에도 ‘시민의 날’[순천시]과 ‘군민의 날’[승주군]이 각각 추진되었으므로 그 연원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며, 시민의 날의 지정과 행사는 1963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사 내용] 2018년 10월 15일 제24회 순천시민의 날 행사는 순천시 연향동 순천팔마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시청 앞 광장, 장명로 및 시민로, 연향 패션의 거리 일원에서 펼쳐졌다. 2019년 10월 15일

  • [정의]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이자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토벌군에 의하여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개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동족상잔결사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봉기했다. 군인의 봉기는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만이 고조되었던 지역 주민의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정부에서는 강력한 토벌작전을 전개하면서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으며, 「국가보안법」 등을 제정하여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반공체제를 구축하였다. [역사적 배경]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남쪽에는 미군정 시대가 열리고,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국제정세는 자주독립국 건설이라는 염원과 다르게 흘러갔다. 남쪽은 신탁통치...

  • [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무당들이 귀신에 의해 병든 환자의 쾌유를 기원하는 굿. [개설] 상문살은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귀신의 기운이다. 그 귀신은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기운을 가졌다. 속설에 의하면 문상을 갖다 오는 사람에게 붙게 되면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식구가 상가에 갔다 오면 집에 들어서기 전에 식구들이 소금이나 팥을 뿌리는 등 상문살의 부정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행위를 했다. [연원 및 변천] 상문살물리기굿의 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40년대 여수 무속인의 대방(大方おおがた)이었던 박종선(ほお鍾善)의 구술과 고증에 의해 5마당으로 된 굿이 재현된 바 있다. [절차] 상문살물리기굿은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마당은 방아거리이다. 환자를 사다리 위에 눕히고 무녀(巫女ふじょ)의 주술적 소리(唱)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환자 주위를 돌면서 절구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귀

  • [정의]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및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인접 지역에서 광복과 제주4·3사건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 [개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 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 국가를 구축하였다. 정부는 1995년부터 국사 교과서에 ‘여수·순천10·19사건’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일반적으로는 여순사건이라고 한다. [역사적 배경] 1945년 일본의 갑작스런 패망으로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진주로 미군정에서 정부 수립 시기까지 극도로 혼란한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여수·순천 지역의 정치적 동향은, 광복 초기 우익의 우세 속에 좌우익 간의 공존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1948년 남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와 상호 교류의 목적으로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 [개설] 지방자치단체는 국내외 다른 행정 지역과 자매결연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추진하며, 국제 경쟁력 강화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의 기반을 추구한다. 자매결연 도시 간 지역 주민 상호 간의 우의를 증진하고 문화·관광·체육·경제·산업 등 지역 간 시·군정 정보교류 및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순천시는 자매결연을 통하여 국제 경쟁력 강화와 정보교류 및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내외 도시들과 국제자매결연, 국제우호교류, 국내자매결연, 국내우호교류, 국내협력증진을 하고 있다. [국내자매결연도시 및 우호교류도시 현황] 국내자매결연 도시는 경상남도 진주시, 서울특별시 양천구·강서구, 경기도 오산시 등 4개 도시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자매결연 1998년 9월 25일]는 인구 34만 6985명, 면적 713㎢[1읍 15면 16동]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자매결연 2003년 5월 2일]는 인구 47만 59

  • [정의] 고중연을 시조로 하고 고병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장흥 고씨는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영암군과 인접한 장흥에 본적을 둔 성씨이다. 19세기에 간행된 『영암군 읍지(靈巖ぐん邑誌)』 성씨 조에는 장택 고씨로 입록되어 있다. [연원] 장흥은 전라남도 장흥군을 일컫는 지명이다. 시조는 고중연(こうなかふち)으로, 고려 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을 호종하고 경상북도 지역으로 피난해 호종공신으로 책봉된 인물이다. 고중연이 장흥백(ちょうきょうはく)에 책봉되면서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현재는 제주 고씨(濟州さいしゅうだか) 장흥백파(ちょうきょうはく)로 환적하였다. [입향 경위] 장흥 고씨 영암 입향조는 고병윤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영암 군수로 부임한 형님을 따라 장흥에서 영암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2013년 현재 영암 전 지역에 약 60~7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 [정의] 1906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이전 시기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개설] 한말 의병은 1894년 이후 약 20년 동안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처음에는 1895년 10월 일본이 자행한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めいせい皇后こうごう弑害事件じけん)에 반대하여 복수토적(復讎ふくしゅう討賊)을 표방한 의병이 일어났다. 그 후 일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1904년의 한일의정서(かんにちせいしょ), 1905년의 을사늑약(おつ勒約) 등과 같은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침탈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했다. 1907년에 이르러 일제는 고종(こうはじめ)을 강제로 퇴위(退位たい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かん日新にっしん協約きょうやく)의 강제 체결, 군대해산 등을 통해 대한제국의 국권을 유린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저지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한말 호남의 의병 활동] 대한제국 시기 전라도에서는 가장 강력한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박은식(ぼくいん

  • [정의] 아기가 태어난 후 행하는 의례. [개설] 아기가 출생한 지 7일이 되면 초이레, 14일이 되면 두이레, 21일이 되면 세이레라 하여 행하는 의례로서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진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3일째 되는 날 아침 산모는 쑥물로 몸을 씻고 아이도 따뜻한 물이나 쑥물, 약초를 삶은 물에 돼지쓸개를 녹여 목욕을 시킨다. 첫날은 위에서 아래로, 그 다음날은 아래에서 위로 씻기면 발육이 고르게 된다고 믿는다. 집안 식구들은 이날부터 산실에 출입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의 주기적인 의례 중에서 7일마다 행하는 삼칠일의례 중에 첫 이렛날은 삼신상에 정화수와 떡, 미역국, 밥 등을 올려놓고 명 길고, 복 타고, 공부 잘하고, 남에게 귀염 타게 해달라고 빈다. 산모는 보통 삼신상에 놓아두었던 미역국에 쌀밥을 먹지만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가래떡이나 참기름을 먹기도 한다. 이렛날 아침 산모는 깨끗하게 목욕을 한다. 이날 아이

  • [정의] 주희를 시조로 하고 주법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중국 하남성 신안면(しんやすめん)에서 태어난 주잠(しゅせん)은 주희(しゅ熹)의 증손으로 몽고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しゅ餘慶よけい)과 문하생 섭공제(おおやけずみ) 등 7명의 학사(學士がくし)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주인이 된 원이 고려에도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안 대신 능성(あやじょう)을 본관으로 사용했다. 이후 아들 주여경, 손자 주열(しゅえつ), 증손자 주인장(朱印しゅいんちょう), 주인원(朱印しゅいんとお), 주인환(朱印しゅいんかえ) 등 후손들이 능성(あやじょう)·웅주(くましゅう)·전주(ぜんしゅう) 등지에서 각각 갈려 나갔다. 그 후손들은 다시 능주(あやしゅう)·나주(羅州)·전주(ぜんしゅう)·함흥(咸興) 등 87개의 본관을 가졌으나 1902년(고종 39) 종중의 합의로 주석면(しゅすず冕)이 상소하여 여러 파의 주씨는 신안주씨(しん安朱あんしゅ)로 통일됐다. 여수의 신안주씨는 능주파들이 임진왜란 때 입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향경위]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 [역사적 배경]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국방체제가 무너져 가고, 남해안 일대 왜구의 침략과 두만강 일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이이(李珥)는 남왜북호(みなみやまときたえびす)[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의 갑론을박 속에 군사력 강화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とよとみ秀吉ひでよし]는 혼란하였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오랜 기간 전쟁을 통해 얻은 제후들의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내세를 안정시킴과 동시에 대륙 침략이라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대마도주에게 조선 침공의 뜻을 표명하였고 조선에 사신을 보내 ‘가도정명(かりみちせいあかり)[명나라를 정벌하는데 길을 빌린다는 것]’을 통보하였다. [경과] 1592(선조25)년 4월 14일, 일본군의 대군이 침략을 시작하였다. 일본은 대군을 9번대로 나누어 침략을 개시하였다. 부산...

  • [정의] 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역사적 배경] 무인정권(武人ぶじん政權せいけん)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よるべつしょう)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창설하였다. 이리하여 좌별초·우별초와 신의군이 합쳐서 삼별초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몽고와의 전쟁이 일어난 뒤 얼마 안 된 시기였다. 1232년(고종 19) 최씨정권이 정부를 이끌고 강화도로 천도한 뒤 대몽항전의 전 시기를 통해 삼별초는 가장 강력한 전투병력이었다. 삼별초는 국가 재정에 의해 양성되고 국고에서 녹봉을 받는 등 권신의 사병과는 구별되었다. 그러나 권신의 정치권력과 너무 깊이 유착(癒着ゆちゃく)되어 있어 사병적 성격이 농후하였다. 삼별초의 난의 기본적 요인은 우선...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신덕동에 있는 위험물 보관 업체. [개설] 오일허브코리아여수는 정부 국정 과제의 일환으로 추진된 ‘동북아시아 오일 허브 구축’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첫 번째로 설립된 석유류 복합 물류 터미널 회사이다. 석유제품의 생산, 공급, 저장, 중개 및 거래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석유 물류 활동의 중심 거점, 즉 오일 허브 구축을 위해 2010년부터 공사를 시작했고, 2013년 3월부터 상업 운영에 들어갔다. [설립 목적] 원유 및 석유 제품에 대한 터미널 서비스를 주된 영업 목적으로 한국석유공사, GS칼텍스주식회사 등이 체결한 합작 계약에 따라 설립되었다. [변천] 2008년 11월 오일탱킹케이엔오씨여수를 설립하였다. 2010년부터 총 26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13년 3월 15일 탱크 터미널을 준공하였고, 2013년 4월 저장 설비가 완공되었다. 2011년 2월 오일허브코리아여수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 [정의] 장빈을 시조로 하고 장자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원] 장씨의 원시조는 신라 하대 장보고의 부친인 장백익(ちょうはくつばさ)이고, 도시조(始祖しそ)는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안동 3태사의 한 사람인 장정필(ちょうさだ弼)이라고 한다. 목천장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僉議贊成さんせいごと)를 지낸 장빈(ちょうあきら)이다. 장빈은 충렬왕 때 원나라의 반란군인 합단적(哈丹ぞく)이 침략하였을 때 전공을 세워 목천군(木川きがわくん)에 봉해졌고, 이를 계기로 장빈의 후손들이 목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입향 경위] 목천장씨가 순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것은 16세기 초반 장빈의 9세손인 장자강(ちょうつな)[1461~1526]때부터였다. 목천장씨는 장자강의 증조부 때부터 본래 경상도 진주에 살았으나 장자강이 1501년(연산군 7) 목천장씨 문중에서 처음으로 사마시(司馬しばためし)에 합격하여 순천향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순천에 입향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자강의 후손들이 순천 지역에 뿌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 [개설] 최근 여수시가 관광 도시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여수시에서는 연도별 여수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를 정리하여 촬영지에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는 안내판 등을 설치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1960년대 영화] 1. 「모정의 뱃길」 「모정의 뱃길」은 1963년 개봉한 실화 영화로, 대경도와 소경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인 가장도에 살던 한 어머니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6년 동안 1만 3352.7㎞[3만 4000리]의 바닷길을 나룻배를 저어 학교에 보낸 이야기이다.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고, 이 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전국에 알려져 박정희 의장[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육영수 여사의 청으로 이들 모녀를 만나기도 하였다. 영화 주제가로 「사랑의 뱃길 삼만리」가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의 두륜산 도립공원에서 매년 농수산물 수확기에 개최하는 축제. [개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대흥사의 두륜산 도립공원에서 매년 농수산물 수확시기 맞춰 개최하는 음식 축제이다. 해남의 대표 농수산물[쌀. 배추, 김, 고구마]을 중심으로 해남의 모든 농·수·축산물을 음식 소재로 응용하여 해남만의 특화 음식을 개발하고 음식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음식관광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고자 개최하였다. [연원 및 개최 경위] 해남미남(あじみなみ)축제는 축제 네이밍 스토리텔링을 통해 해남의 미[あじ 맛 미, よし 아름다울 미, 꼬리 미, 迷 미혹할 미]를 ‘네 가지의 미’로 담아 정의하였다. 영문 표현으로는 ‘4미[For me]’로써 나를 위한, 나만의 장소, 나를 위한 곳, 즉 해남미남(あじみなみ)축제는 내가 즐기는 축제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해남 밥상! 맛보go! 즐기go!란 슬로건으로 주민 직접참여와 경쟁력 있는 향토음식을 발굴, 관광자원화 하고 축제를 통해 해남을 대표하는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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