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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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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おもね斯達)은 고조선(朝鮮ちょうせん)의 수도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백악산 아사달(白岳しらたけさんおもね斯達), 궁홀산(ゆみゆるがせさん) 금며달(こん㫆達)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고기(古記こき)》에 따르면, 단군이 평양성에 고조선을 세웠다가 아사달로 도읍지를 옮겨서 약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며, 이후 기자()를 피해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사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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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おもね斯達)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朝鮮ちょうせん)의 수도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위서》(しょ)에 따르면 아사달은 단군조선의 도읍지이며 아사달에 도읍하고 나라를 건국한 시기는 중국 신화 속의 제왕인 (堯)와 같은 시기라고 한다.[1] 한편 이어서 인용된 《고기(古記こき)》에 따르면 단군이 평양성(平壤ぴょんやんじょう)에 도읍하였다가 백악산아사달(白岳しらたけさんおもね斯達)로 옮겨 1,500년 동안 다스렸으며, 기자조선이 성립되자 장당경(ぞうからきょう)으로 옮겼다가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さんじん)이 되었다고 한다.[2] 이에 따르면 고조선은 도읍지를 여러 차례 옮긴 것이 된다. 한편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인 《제왕운기》는 《본기(本紀ほんぎ)》라는 현전하지 않는 기록을 인용하여 단군상나라 무정 8년에 아사달산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통감》과 《동사강목》은 《제왕운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아사달을 단군이 은거하여 신이 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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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아사달의 위치에 대하여 무엽산(葉山はやま), 백악(白岳しらたけ) 등 산으로 이해하여 백주(白州はくしゅう, 지금의 황해도 연백군)로 비정하는 기록과 개성 동쪽의 백악궁(白岳しらたけみや, 현재는 위치 미상)으로 비정하는 기록을 함께 전하고 있다. 《제왕운기》에는 황해도 구월산으로 비정되어 있다. 《고려사》 김위제전(きむいい磾傳)에는 신지선인(かみ仙人せんにん)의 비사()에 있는 백아강(しろきばおか)에 대한 설을 인용하여 지금의 평양을 아사달로 비정하고 있기도 하다.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아사달 및 고조선의 중심지 위치가 다섯 차례 이동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3] 일반적으로 한국사학계에서는 아사달은 신화 속의 장소이므로 실제 위치가 어디인지를 굳이 고증하지 않는다.

어원에 대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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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이 조선(朝鮮ちょうせん)을 의미하는 고유어라는 견해도 있다. 이병도는 아사달의 뜻을 '아침의 땅', '아침의 산', '빛나는 아침의 땅' 등으로 해석하고, 아침 조(あさ)자와 빛날 선(鮮)자를 합쳐서 조선(朝鮮ちょうせん)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했다.[4] 그는 아사달의 '아사'는 아침의 한국 고대어일 것이며, '달'은 양달()·응달(陰地かげち)의 '달'()과 같이 땅을 뜻하는 것으로 아사달은 조양(朝陽あさひ) 또는 조광(朝光ともみつ)의 땅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한자로 조선(朝鮮ちょうせん)으로 표기되었을 것으로 보았다.[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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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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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연 (1281). 〈기이 고조선じょう〉. 《삼국유사》. 《위서(しょ)》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는데 중국의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しょ うん乃徃千載せんざいゆうだんくん おうたて おもね斯逹 けいうん 葉山はやま またうん 白岳しらたけ ざい 白州しらす あるうんざい 開城かいじょう 東今ひがしいま 白岳しらたけ みや 開國かいこくごう 朝鮮ちょうせん あずか髙同) 
  2. 일연 (1281). 〈기이 고조선じょう〉. 《삼국유사》. 《고기(古記こき)》에 이르기를...당고(とうだか)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かのえとら)년-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つちのえたつ)인즉 50년은 정사(ちょう)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ぴょんやんじょう)-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그 곳을 궁홀산(ゆみゆるがせさん), -혹은 방홀산(ほうゆるがせさん)- 또는 금미달(いまわたるたち)이라 불렀다. 그는 여기서 1천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たけおう)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ふう)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ぞうからきょう)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さんじん)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908세였다. (古記こきうん...おう倹以から即位そくいじゅうねんかのえとらから堯即元年がんねんつちのえたつそくじゅうねんちょうかのえとら也疑其未みのる平壤ぴょんやんじょう今西いまにし亰始しょう朝鮮ちょうせんまたうつり於白岳山たけやまおもね斯逹まためいゆみいちさくかたゆるがせさんまたこん旀逹御國みくにいち千五百年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 かえかくれ於阿斯逹ため山神さんじんことぶきいちせんきゅうひゃくはちさい) 
  3.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0년, 331~357쪽.
  4.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81년, 40~41쪽.
  5. 이병도(へい燾), 《국사대관(國史こくし大觀たいかん)》, 보문각, 1959년, 26~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