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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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구(
서인 당원이었으나 서인의 분당 이후 노론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딸은 경종비가 된 이후 소론성향으로 돌아선다. 1728년(영조 5)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
생애
[편집]1675년(숙종 1) 4월 18일에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양주군 해등촌면으로 이주하였다. 1699년(숙종 25) 생원, 진사 사마양시에 합격, 태릉(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사헌부지평에 제수되고, 홍문관수찬과 교리, 응교 등을 거쳐 사헌부집의를 역임하였다. 동시에 겸임으로 춘방과 한학교수, 남학교수를 지냈고, 암행어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1718년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동부승지로 특별히 제수되었다가, 승지 등을 거쳐 1718년 병조참지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이때 형 어유봉에 의하면 그는 불안하게 여겼다 한다. 곧 승선과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이후 호조참의와 예조참의를 여러번 역임하고 강화부유수로 발령되었다. 강화부 유수 재직 중이던 1720년 6월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하자 돈령부영사 함원부원군(咸原
1722년(경종 3) 목호룡의 고변 사건에 참여한 부사공신(扶社
경종이 소론에 기울었던 것에 반해 어유구는 신임사화 때 노론(
1724년(영조 즉위) 세제가 영조로 즉위하자 노론 일각에서 그가 신임사화 때 내통했다며 심문하자는 건의를 하였으나 영조가 이를 거절, 무마시켰다. 영조 때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728년(영조 5)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
사후 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비문은 그해 6월 형 어유봉이 지었는데, 그의 사망 원인을 1740년 1월 감기에 걸려 1월 16일에 사망했다고 상세히 기록하였다.
저서
[편집]- 《긍재편록 (兢齋
編 綠 )》 - 《농암사단칠정변 (
農 巖 四 端 七 情 辨 )》
가족관계
[편집]- 고조부 : 어몽린(
魚 夢 獜)- 증조부 : 어한명(
魚 漢 明 )- 할아버지 : 어진익(
魚 震 翼 )- 아버지 : 어사형(
魚 史 衡) - 어머니 : 유씨(
柳 氏 ) - 유거의 딸 - 장인 : 이하번(
李 夏 蕃 ) - 중종의 5세손- 본인 : 어유구(
魚 有 龜 ) - 경종의 국구 영돈녕부사 · 함원부원군(咸原府 院 君 ) - 처 : 완릉부부인(
完 陵 府 夫人 ) 전주 이씨- 장녀 : 선의왕후
- 사위 : 경종
- 차녀 : 함종 어씨
- 사위 : 청송 심씨 심이지(沈履
之 , 1720년 ~ 1780년, 이조참판) - 호조판서 심이지(沈頤之 , 1735년 ~ 1796년)의 사촌, 이조판서 심수(沈鏽, 1707년 ~ 1776년)의 조카, 광주목사 · 증 이조참판 심탁(沈鐸)의 아들, 담양부사 · 증 좌찬성 심계현(沈啓賢 , 심택현의 형)의 손자- 외손자 : 심능필(沈能弼, 정주목사) - 좌의정 홍인한(
洪 麟漢, 1722년 ~ 1776년)의 사위
- 외손자 : 심능필(沈能弼, 정주목사) - 좌의정 홍인한(
- 장남 : 어석정(
魚 錫 定 ) - 며느리 : 청송 심씨 - 영조의 부마 청성위 심능건(
靑 城 尉 沈能建 , 1752년 ~ 1817년)의 고모, 삭녕군수 · 증 영의정 심정지(沈鼎之 )의 여동생, 해주목사 · 증 좌찬성 심규(沈규)의 딸, 이조판서 · 좌참찬 · 판돈녕부사 청헌공 심택현(淸 獻 公 沈宅賢 , 1674년 ~ 1736년)의 손녀
- 본인 : 어유구(
- 아버지 : 어사형(
- 종조부 : 어진열(
魚 震 說 )
- 할아버지 : 어진익(
- 증조부 : 어한명(
기타
[편집]- 그의 형 어유봉의 문하생이자 사위가 홍상한이다. 홍상한의 삼촌 홍현보의 아들이 홍봉한, 홍인한, 홍용한, 홍준한 4형제이다. 조카사위 홍상한을 통해 혜경궁 홍씨와도 인척간이 된다.
- 어유구의 외손자 심능필은 어유구의 사위 심이지의 아들이고, 심능필은 홍인한의 사위이다.